https://youtu.be/2tmf7wzYIN8
1868년, 미국인 작곡가 셉티머스 위너가 민스트럴 쇼를 위해 원래 존재하던 민요에다 "Ten little Injuns"라고 이름 붙이고 각색했다.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 이 노래 속 인디언은 인도인일까? , 네이티브 어메리컨 인디언(Native Americans, American Indians)일까? 한 사람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고 나머지들은 물고 뜯고 할퀴었다. 어느 순간, 그리고 일제히 침묵했다. 지난 4년, 난 정체성을 잃었다. 1919년 4월 11일 설립한 대한 제국의 사람일까? 잘 살아온 삶을 "뎅강" 잘린 느낌이었다.
2020년, 10월 6일, 그날 아침, 아빠는 코로나 음성이 나왔다. 가족들 모두 축제 분위기였다. 저녁에 다시 양성이라고 판정이 나오고 난 마녀사냥을 당했다. 제발 냄새만 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그토록 간절한 기도를 드린 적은 없었다. 이제 진실은 나만 알고 있다. 그래 난 마녀 맞다. 빗자루를 사야겠다. 싹 쓸어버릴 용도로 거대한 싸리나무를 마당에 키워야겠다.
이제 싸움은 시작되었고 난 돈으로부터 자유이다. 작년 10월 6일에 손해배송 청구 기간이 끝났다. 돈이 목적이 아닌 싸움은 사실 쉽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지르면 된다.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난 강자다. 먼저 걸어온 싸움을 피하진 않을 것이다. 몸을 떠난 영혼에도 귀천이 있을까? 제발 아니길! 강제로 벌린 연꽃! 죽음 후 구원이 무슨 의미가 될까?
꼬마 인디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노래는 언제나 슬프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이 되었을 것이다. 허공의 먼지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나에게 한글로도 영어로도 가장 처음 알려준 노래이다. 롯데, 초코파이, 코카콜라, 오리온 등등 알파벳을 알려주자마자 일주일도 안되어 영어가 보였다.
어느 정도 읽게 되니까 까막눈이 심봉사 눈뜨듯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지식의 영역이 확 자라났다. 교육엔 별로 관심이 없는 엄마가 전셋돈만큼 비싼 브리태니커 영어 테이프를 돼지 엄마들 덕분에 곗돈으로 샀다. 평생 동안 엄마가 잘한 것은 바로 이 사건뿐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영어면 통한다. 난 최고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다 할 수 있다.
놀기 바쁜 순자 여사 엄마는 4남매를 다 선인장처럼 키웠다. 어쩌면 엄마나 아빠의 무관심의 관심 교육관이 우리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라졌다는 전설의 개근상, 우리 집안의 자랑이다. 가훈: 죽더라도 학교에서 죽어라!
관심법은 교육에서 최악일지도 모른다. 무심한 듯 바라보다 도와주기! 어제도 술을 마셨다. 하루 만에 무너진 나의 신념들!
오늘 하루 불안감과 고통 속에 떨다가 술 마시고 이솝우화 속, 주체성이라곤 없는 미련한 부자처럼 당나귀에 발을 묶고 메고 가다 시냇물에 풍덩. 빠뜨리는 모습처럼 삶을 들고 왔다. 이 지난하고 고달픈 삶의 끝엔 결국 헛된 희망만 남는 것일까?
나의 병은 글로벌한 우울증(melancholia)이다. 당신에겐 말랑 카우는 알아도 멜랑카리아는 처음일지도 모른다. 폐경기가 불경기보다 나쁜 것처럼 때론 악성종양보다 더 위험하다. 정신과 단골 고정 고객님들이 주류층이다.
57번째 삶을 살고 있는 남편과 함께 있다. 어머님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상복을 입고 나오면서 남편을 어찌 위로할까? 고민하는데 바로 문자가 왔다
" 어우동보다 섹시하고 예쁜 온! 자식으로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제 후회는 없다. 힘내라!" 남편이 그렇게 멋지고 든든해 보인 적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샌프란 시스코 명소인 피어 39에 정착한 바다사자 중 한 명처럼 보이는 배를 가진 그냥 오빠이다.
1번 술 끊기
2번 약 끊기
3번 훌라후프 1000개 돌리기! ( 개꿀 팁 하나, 한번 돌릴 때마다 만 원씩 돈이 떨어진다고 상상하면 무한하게 돌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