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병은 항상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교육대 훈련과정에서 하사와 병장 사이의 가오 문제였다. 군대 짬밥을 먹을 만큼 먹은 사병들과 6 개월간의 하사관 교육을 받고 바로 하사 계급장을 단 일반 하사들과의 갈등은 한국의 군대생활에서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짬밥이 많은 병장이 교육 마치고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임 하사에게 고분고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럭저럭 지냈다.
그런데 엄연히 하사가 분대장으로서 지휘를 해야만 하는 전쟁터인 월남에서는 하사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안되지만 권위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본국에서 하사와 어영부영 맞먹고 지내던 병장들이 월남에 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하사들에게 고분고분해 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미 고국의 파월 훈련소에서 한 달 동안 같이 훈련을 받고 같은 배를 타고 와서 함께 교육받는 교육생들끼리 사병과 하사 사이를 엄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인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생태를 익히 알고 있는 교육대에서 훈련 기간 중에 하루 날을 잡아서 조교인 하사들과 교육생 하사들이 짜고 사병들을 반쯤 죽여서 군기를 잡는 비공식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도록 기습적으로 진행되었다. 재앙은 달이 뜨지 않아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느닷없이 비상이 걸려 집합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왜 달이 없는 날이냐 하면 어두워서 교육생들끼리 사병과 하사들이 서로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병장에 집합을 한 후 교육생들 사이에서 일단 하사를 분리해 놓고 조교 중에 가장 악명이 높은 고참 하사가 사열대에 올라가서 “여기는 전쟁터이기 때문에 오늘 기압을 받다가 너희들 중 한 놈쯤 죽어도 사고처리 하면 그만이다.”라고 겁을 잔뜩 주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몇 번 하더니 ”포복 앞으로!“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끝이다. 계속 앞으로 전진이다. 연병장을 무릎과 팔로 기어서 몇 바퀴 도는 것이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갓 전입해 온 신병들도 아니고 본국에서 나름대로 각기 군대생활에 이력이 붙은 월남 전입병들에게 조교들의 공갈이 쉽게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처음에는 군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겁주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어쭈? 겁 주는데?”하며 형식적으로 적당히 슬슬 포복을 했다. 그러나 그 날은 그게 아니었다.
조교들은 반복되는 교육을 통하여 교육생들의 이런 심리까지 파악을 하고 있었다. 조교들이 점점 살기가 등등해서 날치는 것을 보고서야 ‘어이구.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바짝 들게 되었다. 이날 밤 기압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사병들이 하사들을 무서워하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정상적인 교육을 통한 설득으로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루 밤 사이에 사병들을 길들이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하사들의 친위쿠데타인 셈이다.
조교로부터 기어 다니는 사병들이 요령을 부리면 교육생 하사들이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정없이 때리도록 명령이 떨어졌다. 하사 조교들은 사병을 감시하지 않고 교육생 하사들을 감시했다, 사병들을 다루는 것이 시원치 않은 교육생 하사들에게 “그렇게밖에 못해?”하면서 무자비하게 군화발로 걷어찼다. 조교 하사는 교육생 하사들을 조지고 교육생 하사는 사병들을 조지는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교육방법이기 때문에 장교들은 전혀 개입이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알고도 모르는척 해주고 있었다. 제법 각본이 치밀하게 짜여 있는 셈이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마음에 걸려 머뭇머뭇거리던 교육생 하사들도 나중에는 눈에 핏발이 서서 사병들을 잡아먹을 듯이 날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도 마음이 약한 교육생 하사들은 조교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중에도 차마 연병장 바닥을 포복으로 박박 기는 동기생들을 때리지 못해 흐느껴 우는 이들도 있었다. 삽시간에 평소에 만만하게 보던 교육생 하사들이 퍼붓는 매와 하사 조교들이 퍼붓는 욕설이 난무하는 공포의 밤인 것이다.
야간에는 철모 뒤에 은박지로 부친 비표로 아군끼리 계급을 구별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날 밤은 악을 써대며 닥치는 대로 손과 발로 치는 하사 조교들과 일체 소리를 내지 않고 몽둥이를 들고 설치는 교육생 하사들과 무릎과 팔뚝이 모두 까지도록 연병장 바닥을 설설 기어 다니는 사병으로 구분이 되었다.
교육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그날 아침부터 하사만 보면 저절로 경례를 하기 위해 손이 올라가고 식사 시간에 배식은 물론 취침 시간에 모포를 까는 것까지 분대장을 받들어 모시도록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졌다. 이렇게 해서 조교들이 계획대로 하사들의 권위가 하룻밤에 완벽하게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기성부대에 배치되면 분위기에 따라서 저절로 될 일을 야만스럽게 저지르는 군대 문화의 단면이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야만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단 번에 고치려고 하는 것이 군대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공 시절 박정희가 국가재건 최고위원회를, 5공 시절 전두환 정권이 국가 보위위원회라는 것을 설치해서 사회악을 일소한다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로 보내서 원한이 사무치게 만들던 것도 바로 그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