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실한 관계 2. 하나님의 축복 3. 그리스도의 모형 핵심어는 '기업 무를 자', '조상'등이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척으로서 나오미의 기업에 대한 권리를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기꺼이 기업 무를 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룻은 다윗의 족보 속에 들어가고 보아스와 룻은 다윗의 증조부와 증조모가 되었다.
룻기는 어떠한 책일까요? 시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하는 며느리들에게 주는 경고 메시지일까요? 불행하고 가난한 과부라도 마음씨만 고우면 부자남편 만나 잘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스토리일까요? 아니면 어느 이방여인과 이스라엘 남자가 한눈에 반하게 된 러브 스토리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다윗의 조상들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옛날 조상들 이야기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룻기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룻기는 작자 미상입니다. 기록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윗의 이름이 마지막에 나온 것으로 보아 적어도 다윗 시대이거나 그 이후에 기록된 것은 확실합니다. 유난히 대화문이 많아서 연극으로 만들기에 좋은 문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목가적 분위기의 단편소설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룻기에는 보리추수와 밀추수가 언급되는데, 따라서 그 계절과 관련된 절기인 칠칠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회당에 모여 룻기를 읽는 전통이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은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 시대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암흑과 무질서, 부도덕, 영적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룻기에는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고부갈등은커녕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를 봉양하겠다고 따라 나섭니다. 노사관계의 갈등은커녕 보아스와 그의 일군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축복의 인사부터 나눕니다. 과부인 이방여인을 무시하기는커녕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해줍니다.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친족조차도 자신의 ‘기업 무를 의무’를 다하려다가 힘에 부침을 깨닫고 할 수 없이 보아스에게 책임을 양도합니다. 이들 모두가 사사 시대의 사람들 같지 않게 선한 행동을 합니다. 죄악 된 시기에 보석 같은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룻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의 주요 등장 인물은 나오미, 룻, 보아스 세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룻은 단연 돋보입니다. 이는 룻에게 계속적으로 따라 붇는 ‘모압여인 룻’이라는 타이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이방여인이며 더군다나 과부입니다. 구약에서 ‘고아, 객, 과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비와 동정에 의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요, 극빈곤층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자들입니다. 룻의 경우는 이방여인 과부로서 늙은 과부인 시모를 모셔야 하는 최악의 조건을 지녔는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기로 자원합니다. 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시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교 행위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방 여인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자처하는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룻은 나오미를 위하여 자손을 만들어주기를 원했으며, 나오미는 룻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를 원하고, 보아스는 이런 룻을 기특하게 보고 기꺼이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결정합니다. 보아스는 ‘친족’으로서 할 수 있는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뛰어넘어 엘리멜렉의 자손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자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신 삶의 모습입니다. 세 사람의 아름다운 삶의 결과로, 그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다윗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를 원함으로, 결국 온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는 중심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여인이 아닌 모압여인 룻이 있었습니다.
구약 중에서 여성의 이름이 제목이 된 책은 단 2권입니다. 하나는 에스더이며 그녀는 이스라엘 여인입니다. 그러나 룻은 이방여인이요, 과부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방 여인 룻이 이스라엘 여인보다 훨씬 더 고귀하게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룻기에서의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또한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이방인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은혜 베푸심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룻기를 잠언 뒤에 배열합니다. 룻기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현숙한 여인’(3:11)이라고 말하는데,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의 모델이 바로 룻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왜 현숙한 여인으로 불렸는지를 질문하며 룻기를 통해 이 놀라운 여인을 만나보기 바랍니다.[출처] - 드라마바이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사랑의 법 ]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추수하면서 떨어진 이삭은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 두라고 명하셨다. 이런 아름다운 법은 하나님 백성을 빈부귀천을 초월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있는 '사랑'이 실체화된 것이었다. 룻과 나오미가 처한 극한 가난과 불행이 새로운 계기를 맞아 기쁨으로 변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사랑'의 법에 따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한데 어울리는 자리에서였다. 룻이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고 이삭 줍는 룻에게 보아스가 은혜를 베푼 것도 바로 그 '사랑' 때문이었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줍기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넘어설 정도로 자비를 베풀었다. 율법대로 하면 곡식 단을 다 묶고 난 후에야 이삭을 주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룻의 신변을 염려하면서 보리와 밀의 추수가 마치기까지 두 과부를 곁에 있게 하였다. 이렇듯 사랑의 시작은 계속해서 사랑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빛은 어둠을 밝히고 소금은 음식물의 맛을 내듯이 이웃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악과 불행을 없애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당신은 룻이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가?
[ 치리 ]
주도권을 쥐고 다스림(창41:33; 눅20:20).통치함(잠8:15). → '통치'를 보라.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 그리스도의 향기 ]
흉년이 들자 나오미와 그 남편은 모압 지방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곳에서 남편이 죽고 나중에는 모압 여인들과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게 됐다. 유다 땅에 다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물론 나오미는 며느리들이 모압에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룻은 진정으로 시어머니께 헌신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나오미의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모압 땅에 살던 룻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그것은 룻이 나오미에게 한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쩌면 나오미가 진실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해 늘상 룻에게 이야기 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룻은 틀림없이 나오미에게서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을 내리게 하는 어떤 선함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과연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있기를 원하며 우리가 아는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