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5. 수요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휴고볼프 이탈리아 가곡집
랄프 고도니& 임선혜& 시모메키넨& 앙상블오푸스
Wohl denk ich oft an mein vergangnes Leben, by Hugo Wolf-휴고 볼프 가곡「난 잠시 지난 날을 회상한다.」 제라르 코르비유 감독 1987년 영화 가면속의 아리아 중에서-
Herr. Wolf
왕년에 명바리톤 호세반담의 목소리로 볼프의 가곡을 듣다가 그만 그가 감추고 싶어했던 비애를 알아채고 말았다. 그때의 당혹감이란...마치 오직 신부님과 본인만 알아야 하는 은밀한 고해성사가 우연히 외부로 공개되어 본의 아니게 모든이가 알게 될 때의 그 심정과 유사할테지...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정서를 오롯이 투영한 낭송조의 음악. 19세기 낭만 가곡의 계승자 휴고 볼프와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46개의 이탈리아 가곡집
요사이 에밀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에 푹 빠져 사는 중이다. 자연주의 대가답게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비극적 결말로 수렴된다. 총서 20권 중 제 11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만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찬가지로 고독, 번뇌, 고통, 타락 등등... 언제나 무채색만 고집하는 볼프라 할 지라도 더러는 원색을 추구할 때도 있다. 「46개의 이탈리아 가곡집」이 그랬다. 남녀간의 밀당~>사랑~>다툼~>화해~>남자의 외도~>여자의 맞불~>최종적으로 화해!!
이탈리아의 직열하는 태양아래 게르만인의 차가운 심장이 드디어 녹기 시작한걸까?
전반부는 버건디, 후반부는 초록색 드레스로 성장한 소프라노 임선혜
거진 한달만에 프리마 돈나와 재회했다.
순수하고 천사같은 음색도 여전하고
(내가 선호하는 소프라노는 일레나 코트루바스같은?? 부드럽고 청순한 목소리다.)
능청스러우면서도 깜찍한 표정과 손짓 연기하며~~
호리호리한 실루엣 그리고 애교있고 시원한 눈매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비록 그녀의 주특기 화려한 멜리스마는 애당초 나올 수 없는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
서정적 목소리, 에드립, 상냥한 미소 등등 그녀의 또다른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프리마 돈나 임선혜의 파트너 시모 메키넨
그야말로 사랑에 들뜬 젊은 남성역에 적합한 리릭 테너였다. 순수하고 깨끗하며 고음부도 별 이질감 없이 담쟁이 덩쿨 뻗듯이 쭉 쭉 올라갔다..간간 임선혜씨와 시선을 맞추며 관객 흥미몰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자 랄프 고토니
엄마는 이웃집 할아버지같은 친근한 외모의 지휘자가 무척이나 맘에 들었나보다.
"지휘가로서의 모습도 멋지지만 이 경우에는 작곡가로서의 면모에 먼저 주목해야 해...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피아노 반주를 풍성한 실내악으로 편곡했으니까."
"어머, 그러니??대단하구나...근데 지휘도 어쩜 그리 섬세히 잘 한다니?! 지휘봉 없이 손가락 마디마디로 컨트롤 하는 거 봤지?"
"근데 하프는 당췌 왜 넣은거라니? 별로 연주도 안하더만...남들 연주할 때 얼마나 지루했을까?!"
"아~!!엄마 왕 웃겨 ㅋㅋㅋ다 이유가 있겠지.
남녀가 다투긴 하지만 일단은 러브스토리니까
감칠맛을 위해 넣었나보지...원래 로멘틱한 분위기 연출엔 하프만한 악기도 없다고!!
그나저나 그 플룻주자 꽤 훌륭하지 연주하지 않았어?"
"응~그러더라...."
"한때 플룻 연주를 금지한 적이 있데...
처녀를 유혹하는 악기라는 죄명으로..."
"어쩜 그렇게 지휘를 잘 한다니? 음악에 푹 빠져 지휘한단 게 바로 그러한 모습을 두고 말하겠지?"
아놔 ㅋㅋㅋ무슈 고토니씨!!오늘밤 우리 엄마 당신 광팬 되었어요 ㅎㅎㅎ팬심 관리 들어가야 하실듯 ㅋㅋㅋ
물론 앙코르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앙코르곡은 젤 첫곡이었다. 스토리 중간 중간엔 두 남녀가 지지고 볶고 싸우지만 피날레에서는 결국 화해 하므로, 그러한 결말에대한 연장선이랄까?? 소프라노 임선혜씨와 테너 시모 메키넨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불렀다.
잔잔한 앙상블의 반주....유독 아름답게 편곡된 플룻...가을밤의 정원, 어딘가 들려오는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처럼 기분좋은 게 또 있을라나?!
"왕자와 공주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유년시절,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읽던 동화책은 항상 해피하게 끝나더라...아마도 어린이 애독자들이 맘편히 단잠을 잘 수 있도록 하려는 작가의 임시방편 배려이리라...
그 얄팍한 눈가림으로 그네들은 아주 잠깐동안은 결혼이 행복에대한 유일한 답이다라고 생각할거다. ...물론 잠시후면 그때부터 새로운 문제들이 추가된다는 걸 깨닫겠지만...어쩌면 바로 그점으로인해 휴고 볼프의 현실을 인정한 가곡이 현실을 미화한 가곡보다 더 호소력있게 들리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