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오목모둠에서 살펴볼 책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와 관련해서
좋은 글 및 생각해 볼 점에 대해 공유해 봅니다.
"오늘날 대학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이란 어리둥절한 채 성인이 되어버렸으나 실상은 유예된 청소년에 지나지 않는 이들의 귀중한 스무 살 생명표를 꼭 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초등학교 다음 중학교에 갔고, 중학교 다음에 고등학교에 간 것과 같이 고등 학교를 마쳤으니 대학에 진학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학비보다 열배는 비싼 등록금이요, 모두가 입어야 하는 교복 대신 모두가 가져야 하는 스펙을 등에 업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젊음은 싸구려 술과 술값보다 비싼 커피와 크고 작은 성추행과 미필자조차 향유하는 선배들의 갑질, 전공과목 들을 시간을 뺏는 교양 강의와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을 틈을 주지 않는 전공 강의 , 토익 시험과 한국사 시험과 각종 컴퓨터 자격증과 크고 작은 기업 공모전과 인턴 경력에 소모된다. 과제로 수많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연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대신 비문으로 A4용지 다섯 장을 채워내는 끈기, 남의 것을 베끼되 표절 여부를 자동으로 검사하는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몇몇 표현을 바꿔치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비용과 시간과 어처구니없는 문화와 그 젊음은 대체 무엇을 위한 제물인가.
'대졸자'라는 꼬리표 하나를 위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모되는데, 기업은, 화려한 스펙의 지원자가 몰리는 회사일수록, 큰 비용을 들여 대졸 신입사원을 재교육한다.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을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모두가 대학에 다니는 바람에 '반값 등록금'이니 '국가장학금'이니가 국가적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다."
- 55~56쪽
자격증, 스펙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제한적인 일자리에 능력? 우선주의 등 이런 시각과 분위기가 당연하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속으로 들어간다. 누굴 탓하랴, 나 역시나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산문시>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자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 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톳빛 노을 물든 서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닝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땅을 일구어 사는 농민들도 풍요로운 나라. 권력자에게는 관심 없지만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꿰고 있는, 노동과 예술이 어울어지는 나라. 어린이들도 총싸움 같은 것을 놀이로 할 필요가 없는, 상처받고 상처 주는 일이 없는 나라.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볼 수 있을까? 몇십 년 전부터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평등의 나라, 인간 존재 자체로 의미 있는 세계.....
시는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는 그래서 아름답다. 권련이 만들어낸 폭력이 사라지고, 계층과 위계가 없어지고, 자연과 예술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꿈꾸게 한다. 그 꿈이 강해질수록 현실은 변화할 것이다.”
- 이영주 《백일의 밤 백편의 시》66~67쪽
꿈과 현실...
언제부터 그 경계에서 서서 이쪽과 저쪽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야만 한다고.
그런데 어쩌면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꿈과 현실의 교집합이 공집합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가 함께 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