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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동지회 'HI-AN' Friends']… ‘문경 회동’
▶ 2013년 11월 29일(금요일)~30일(토요일) : 1박 2일
▶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 [제2일] — (2)
* [예천 용궁의 맛집] — <단골식당>의 별미 순대국!
☆… 회룡포 라운드트레킹을 마치고, 낮 12시가 조금 넘어 용궁 읍내에는 있는, 순대국 전문점 ‘단골식당’에 당도했다. 최근 용궁은 ‘순대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단골식당’은 맛집 기행으로 방송을 타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서울과 지방의 각 방송국에서 보도한 내용을 벽에 즐비하게 게시해 놓았다. 평소 기원섭이 맛있다고 노래 부르던 바로 그 집이었다. 너른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식당에는 어제 저녁에 만난 최주원 문경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안동에서 행사가 있다고 했는데, 마침 취소되어 다시 우리를 만나고 싶어 왔다고 했다. 따뜻한 마음이다. 순대국은 따끈하고 뽀얀 육수에 순대와 연한 돼지고기를 썰어 넣었는데, 그 국물 맛이 아주 진하고 구수했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맛집이었다. 이진애 여사가 말했다. 평소 순대국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이곳의 순대국은 맛있게 먹는다고 했다. 별도 주문한 순대와 오징어볶음도 아주 별미였다. 백주(白晝)지만 좋은 안주가 나왔으니 백주(白酒) 이슬 한 잔 아니할 수가 없다. 점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전 문경시의회 고형조 의장을 만나 인사하고, 문경시청에 국장으로 있는 고향 후배도 만나고, 귀농한 기원섭의 동기 고재호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 [문경시 산북의 <뉴욕제과>] — 별미 ‘찹쌀떡’과 ‘꽈배기’
☆… 윤필암 가는 길, 앞서 가던 기원섭의 차가 산북의 <뉴욕제과>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이집의 ‘찹살떡’과 ‘꽈배기’가 아주 맛이 있어서 사서 가야겠다는 것이다. 먹어보니 과연 옛날에 먹던 그 추억의 꽈배기와 찹쌀떡이었다. 이곳 산북(山北)은 황희 정승의 후손이 자리 잡고 있는 유서 깊은 고을이다. 학자와 독립지사가 많이 배출된 장수 황 씨 종택(宗宅)이 있고 가양주로 전해 내려오는 호산춘(湖山春)이 특산품 명주(名酒)로 알려져 있다.
* [은우(恩雨)스님이 계시는 대승사 윤필암(潤筆庵)] — 송림산봉에 우뚝한 사불암!
☆… 산북(山北)에서 석문(石門)을 지나 대승사(大乘寺) 윤필암(潤筆庵)을 찾았다.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장대한 노송이 군락을 이루어 세속의 벗어나는 신선함이 느껴졌다. 파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산사(山寺), 아주 고요하고 평화스러웠다. 기원섭이 뵙고자하는 은우(恩雨) 스님은 출타 중이어서 뵙지 못했지만, 인적이 없는 고요한 경내를 둘러보았다. 특히 윤필암에는 사불전(四佛殿)이라는 아주 특이한 법당이 있다.
대승사(大乘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사불산 산마루에는 사면(四面) 석불상이 있는데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587년(신라 진평왕 9) 커다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공덕봉(功德峰)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사불암(四佛巖)이었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賜額)하였다. 망명비구(亡名比丘)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고,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1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산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亦德山)이라 하였다.
윤필암(潤筆庵)은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사불산 자락에 있는 대승사의 부속암자로 비구니 선원이다. 1380년(고려 우왕 6)에 각관(覺寬)이 창건하였으며 1645년에 서조(瑞祖)와 탁잠(卓岑)이 중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885년에 고종의 명으로 창명(滄溟)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980년대에 모든 전각을 새로 지어 비구니들이 수행하고 있다. 윤필암의 명칭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각각 사불산의 화장사와 미면사에서 수행할 때 의상의 이복동생인 윤필(潤筆)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이름 지었다고 한다.
관음전과 사불전, 산신각, 선원이 갖추어진 비교적 규모가 큰 암자이다. 윤필암은 ‘사불암’으로 이름난 사찰이다. 사불전에는 불상이 없고 정면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사불산 정상에 있는 사면석불을 향해 참배한다. 사면석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紙龕)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8호로 지정된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으며, 사불전 뒤쪽의 암벽 위에는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12 번지에 있다.
* [산북면 소야리의 ‘최영호’] — 부산에서 귀향(歸鄕)한 농부(農夫)
☆… 윤필암을 둘러보고 산북면 전두리에서 동로로 넘어가는 길, 산북면 소야리에 있는 최영호(崔英浩) 댁을 찾았다. 최영호 사장은 원래 이 곳 산북면 소야리 출신으로 이상배 대장의 김룡국민학고 1년 선배이다. 부산에서 어물도매상을 하여 자수성가한 분으로 몇 년 전 이곳 고향에 귀향하여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이 대장과는 같은 학교 동문으로서 부산에서 우연히 만나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다. 수더분하게 생긴 최(崔) 사장도 이(李) 대장처럼 알프스 몽블랑이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다녀온 산악인으로 부산산악연맹 이사이면서 부산에서 수영JCI특우회 회장으로 활동한 분이다. 몇 마디 대화를 하고 보니 무척 소탈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상배 대장과 주고 받는 농자(弄子)가 아주 걸죽하다. 부산의 사업은 아들에게 맡기고 이렇게 고향에 돌아와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부산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데, 자주 왔다갔다한다고 했다. 집은 남향받이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집안을 살펴보니 황토방도 만들어 놓고, 모든 구조가 아주 짜임새가 있었다. 거실에 가서 자리를 잡으니, 특별히 담가 놓은 장뇌삼주(長腦蔘酒)를 내놓았다. 그리고 손수 금방 삶은 돼지고기에다 맛깔스런 김장김치와 검은콩 두부를 곁들여 내놓았다. 소탈하고 따뜻한 인정이다.
* [무송대(舞松臺)의 낙락장송] — ‘명주패옥(明珠佩玉)’과 ‘말무덤’의 전설
☆… 901번 지방도로, 동로에서 여우목고개로 가는 길이다. 동로에서 잠시 주유(注油)하고 얼마가지 않아서 앞서가던 기원섭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내려 보니 눈앞에 장엄한 낙락장송(落落長松)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었다. 소나무 아래 표지를 보니 ‘舞松臺’(무송대)라 씌어 있었다. ‘춤추는 소나무’, 과연 굵은 둥치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크고 작은 소나무 가지가 휘어지고 굽어져 그 형상이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그 풍모가 아주 완강한 듯하면서도 절묘하여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과연 유서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명주패옥(明珠佩玉)’ ‘말무덤’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추인 백두대간 산줄기는 문경지방에 무수한 고봉명산을 솟아놓고, 그 중에서 이곳은 전국 명산 묘터 중에 ‘옥관자(玉貫子) 서 말, 금관자(金貫子) 서 말이 나온다’는 연주패옥 명당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예로부터 ‘무송대’ 또는 ‘말무덤’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1598년)을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귀화한 명지관(名地官) 두사충(杜思忠)이 조선의 문신인 악포(樂圃) 정탁(鄭琢) 대감의 큰 은혜를 입게 되어 그 보답으로 정 대감의 신후지지(身後之地, 살아있을 때 미리 잡아두는 묏자리)를 이 일대에 잡아두고 그 위치를 구종(驅從, 말몰이 하인)에게 알려 주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연주패옥(明珠佩玉)의 명당(名堂)으로 자손이 아주 귀하게 되는 곳이라 하였다. 얼마 후, 정(鄭) 대감의 아들이 그 위치를 아는 구종을 데리고 묏자리를 찾아 이곳에 와서 구종이 명당을 가리키는 순간, 말이 구종을 차서 죽게 하니 화가 난 대감의 아들이 말을 죽여 이곳에 묻었는데, 그 뒤 연주패옥의 명당은 다시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도 일대에는 명당을 찾으려는 지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백두대간의 명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황장산(1,077m)을 비롯한 옥녀봉, 경대봉, 천주봉이 있어 그 형세를 가히 짐작케 한다.
차에 오르기 전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서쪽 여우목고개 쪽으로 초겨울 해가 걸려 있었다.
* [여우목 고개] — 문경의 동서(東西)를 가름하는 분수령(分水嶺)!
☆… 우리는 무송대를 출발하여 문경의 오지(奧地) 마을 동로면 생달리를 지나 ‘여우목고개’에 당도했다. 여우목 고개는, 황장산-대미산-포암산-탄항산-마패봉-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중, 대미산에서 문경시 관내의 중심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이다. 문경시 권역의 물길을 동서로 나누는 분수령(分水嶺)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는 예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금천(錦川)이 발원하여 흐르고, 서쪽으로는 이곳에서 영강(潁江)이 발원하여 흐른다. 이 두 줄기의 강물은 삼강(三江) 부근에서 각각 낙동강(洛東江)에 유입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곳 지형(地形)의 구조(構造)가 우리가 다녀온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초룽패스와 같다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산군은 동쪽에 샤르망디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칼리간다키강이 흐르는데, 이 두 강의 원류가 발원하는 분수령이 바로 초룽패스(5,416m)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동쪽의 동로(東魯)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초룽패디, 산북(山北)은 마낭, 하류에 있는 산양(山陽)은 베시사하르 쯤 될 것이다. 그리고 서쪽의 상류의 문경(聞慶)은 안나푸르나의 묵티낫트이고 마성(麻城)은 좀솜, 하류의 점촌(店村)은 포카라 쯤 될 것이다. 이 동서의 양 강줄기의 한 가운데, 여우목고개를 넘어가는 산줄기가 운달산-성주봉-활공장-오정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문경지맥의 수많은 산군(山群)을 이루고 있다. 오늘 우리의 여정(旅程)이 공교롭게도 여우목고개를 정점으로 하여 두 강줄기를 따라서 문경시의 관내를 한 바퀴 도는 라운드 트레킹을 한 것이다.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처럼…
* [백화산 보현정사(普賢精舍)] — 현공(玄空) 스님의 천진한 미소
☆… 여우목을 넘어 901번 도로를 따라 오는 중에, 붉은 햇덩이가 멀리 서쪽의 백화산 산등성이에 내려앉고 있었다. 당포를 지나 문경읍에 들어왔을 때는 해가 살짝 그 모습을 감추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예정대로 우리는 백화산 아래에 있는 보현정사(普賢精舍)를 찾았다. 백화산(白華山)은 백두대간이 이화령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온 거대한 산봉이다. 기원섭이 자주 들리는 보현정사는 비구니 현공(玄空)스님이 주석하는 작은 암자이다. 사위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하니, 그곳에 문중 후배인 권영훈(전 대법원 행정관)이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스님을 뵙고 있었다. 현공스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눈 덮인 너와집 요사체 마당에서 기원섭이 여러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한 곡조 뽑았다. 오나가나 기원섭은 ‘여옥의 노래’를 부르는 명물이다. 노래가 끝나고 산우들과 스님이 함께 어울려 사진도 찍었다. 스님의 해맑은 미소(微笑)가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약 30분 정도 머물렀을까, 스님의 공양 시간이 된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 하산했다.
* [문경온천 주차장에서의 해단] — 파이팅 ‘이기자’의 여운, 그리고 떠나는 ‘이스타나’
☆… 일단 일행은 정(鄭) 교수의 승용차가 주차해 있는 문경온천장까지 내려와서 석별(惜別)의 정(情)을 나누었다. 출발하기 전, 다함께 손을 모아 파이팅을 했다. 김옥련 여사가 제의한 ‘이기자’ 구호를 힘차게 외친 것이다. ‘이기자’는 ‘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를 줄인 말이다. 이상배 대장이나 전민수 사장 말하기를 ‘다음에는 부산의 금정산이나 영남 알프스에서 만납시다!’ 아쉬운 마음으로 환송(歡送)했다. 저녁 6시, 전민수, 여삼동 사장은 모시고 부산으로 가야할 이상배 대장의 ‘이스타나’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출발했다.
* [교촌 햇비농원에서의 상경(上京)] — 시원한 동치미국수 먹고!
☆… 부산의 벗들을 보내고 일행은 교촌의 햇비농원에 들었다. 기원섭이 지난번에 담가놓은 동치미맛을 꼭 보고 가야겠다는 것이다. 참꽃, 연꽃, 방실, 세 분의 여사가 주방에 들어가 따뜻하게 난방을 넣고 환하게 불을 밝히더니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듯하다가 금방 국수를 삶아서 시원한 ‘동치미국수’를 말아내 놓는 것이 아닌가. 한겨울에 먹는 동치미 국수의 맛! 용궁에서의 순대국 점심과 소야에서의 간식이 아직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지만 그 시원한 동치미국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 [에필로그] 1박2일의 정겨운 여정, 모두에게 감사한…
아, 1박2일의 여정(旅情)! 우리 정겨운 고향 문경에서 참 따뜻한 여행을 했다. 지난 3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보름 동안 고행을 함께 했던 산우들이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고, 은은한 우정을 나누었다. 우리 고향 문경(聞慶)은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이다. 부산에서는 이상배 대장을 비롯하여 전민수, 여삼동 사장이 올라오고 서울에서는 기원섭과 백파가 내려왔다. 그런데 무엇보다 울산의 김석순 동지가 허리를 다쳐 입원 가료 중이어서 함께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다. 빠른 쾌유(快癒)를 빈다. 그리고 특히 정종용 교수와 세 분의 부인이 동행하여 더욱 정겨운 여행이 되었다. 더구나 우리 고향 문경경찰서 최주원 서장이 두 번이나 식사 자리에 함께하여 따뜻한 정을 나눈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꽃미남 최 서장은 정 교수와는 고등학교 후배이고, 백파와는 고향 산양초등학교 후배라는 것이 확인되어 더욱 친근감이 갔다. 용궁에서 헤어지면서 최 서장은 자연산 ‘뽕잎차’ 한 봉지씩을 선물하니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그리고 평소 친애하는 후배인 고윤환 문경시장이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했지만, 문경시 관계자가 스포츠타올, 방한용 기능성 목도리 등 기념품을 제공하여 우리의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참으로 은혜로운 1박2일이었다. … 또 한 해가 가고 2014년 새해를 맞는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모두 건승하시기를 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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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2013.12.03. <好山兒> 백파(柏坡) 오상수(吳尙洙) ksbpoh@naver.com
첫댓글 장문의글 그리고 역사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늘 좋은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