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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하워즈 엔드 - Howards End >
< 전망좋은 방 > 의 영국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가
1992년 연출한 작품 < 하워즈 엔드 >...
영화는 19세기말 영국 '슐레겔'가와 '윌콕스'가 간
인물들의 초상을 통해,
영국 상류 계급층의 천민 자본주의적인 실상과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 채 가부장적 프레임에
속박됐던 당대 여성들의 곡절어린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렛(엠마 톰슨 분)과 헬렌(헬레나 본햄 카터 분)
은 지적이며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슐레겔 가
자매들이지요.
그들은 부유하지만 꽉 막혀있는 헨리 J. 윌콕스
(안소니 홉킨스 분) 가문과 친교를 갖게 됩니다.
한데, 슐레겔 가의 헬렌이 윌콕스 가의 둘째 아들
폴(조셉 베네트 분)과 돌발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며 두 가문의 운명적인 결합이 이루어집니다만,
불행하게도 이 첫 만남은 양가에게 좋은 결실을
맺어주지 못하게 되지요.
헬렌의 갑작스런 결혼 소식은 하루도 되지 않아
깨져 버리고...
영문을 모르고 급하게 찾아온 그녀의 이모
줄리(프루넬라 스케일스 분)는,
우연히 동승한 윌콕스 가의 장남 찰스(제임스
윌비 분)가 저지르는 무례함에 넌더리를 치게
됩니다.
몇달 후...
윌콕스 부부는 찰스의 결혼과 함께 런던의
슐레겔 가 집 앞으로 이사해 옵니다만,
그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악연때문에
곤혹스런 불편함을 어쩔수 없이 체감케 되지요.
하지만 붙임성이 좋고 성격이 활달한 마가렛은
직접 윌콕스 부인(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인
루스를 찾아갑니다.
덕분에 양가 간에 쌓인 앙감의 묵묵함은
흔연스레 풀어지며, 두 여인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지요.
한편 헬렌은 윤리협회(Ethical Hall)가 주최한
'음악의 의미'라는 교양 강좌를 듣다가 실수로
남의 우산을 가지고 강의실을 떠나게 되는데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까지 따라온 우산 주인은
레너드 바스트라는 남자였습니다.
레너드와 헬렌이 들은 강좌의 주제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Schicksal)' 였지요.
리스트가 편곡한 '운명' 주제를 어머니와 함께
연주한 피아니스트(사이먼 캘로우 분).
그는 놀랍게도 " 운명교향곡엔 투쟁하는 영웅이
아닌, 외로운 고블린(악귀)이 존재한다 " 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헬렌과 레너드에게 폭풍처럼 닥쳐올
불운한 운명이 에둘러 암유되고 있지요.
우산으로 맺어진 슐레겔 가와의 만남이 점점
본격화 되는 계기도 바로 예술에 빠진 레너드의
엉뚱하면서도 정결한 문학적 감수성입니다만...
별빛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슐레겔 자매의 집에까지 왔다는 레너드의
감성은,
마가렛 눈에는 '낭만적 야망가'로 비춰지며,
순수했으나 세상물정에 약삭빠르지 못했던
그의 비극적인 숙명을 예감케 합니다.
병약했던 윌콕스 부인은 죽음이 다가오자,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마가렛에게
하워드 엔즈를 넘겨주라고 유언을 남기지요.
천박한 윌콕스 가의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유언을 마치 노망처럼
여기면서 유언장을 찢어 태워버린 채,
다시는 슐레겔 가문의 사람들과 만나지 않기로
다짐하지요.
그래도 유언을 집행하고자 형식적인 절차로
상속 당사자인 마가렛을 만나게 된 헨리...
그는 뜻밖에도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때부터 극과 극의 두 가문이 어떻게
서로 증오하고 경멸하면서도,
결국에는 전통과 부가 뒤섞이면서 하나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미려하고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지요.
이렇듯 아이러니하게도 홀아비 헨리 윌콕스가
마가렛 슐레겔을 만나 청혼을 하기에 이릅니다만,
마가렛은 고민 끝에 윌콕스 가문과 슐레겔 가문
과의 운명어린 결연을 희망하며 결혼을
받아들입니다.
배려심이 많았던 마가렛이 레너드에 관해
남편 헨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헨리는 레너드가 일하는 포피리언 화재보험사가
파산지경에 있으니 이직하는 것이 좋을거 같다고
조언하지요.
레너드를 돕고 싶던 충정으로 헬렌은 그에게
직장을 옮길 것을 권고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충고로 인해 레너드는
직장을 옮기자마자 해고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도 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제 더이상 잃을 것도 없을 정도로 비참한
20대 실업자의 나락으로 빠져든 레너드.
'지금도 음악을 듣고 지내냐'며 그를 애써
위로하는 헬렌에게 그는 힘겹게 말하지요.
" '음악과 의미'는 저녁을 먹고 나서 배부른
사람을 위한 거랍니다..."
게다가 헨리와의 대화 속에서 헬렌은 그가 했던
이야기가 무책임한 거짓였슴을 알게 되지요.
그녀는 평생동안 레너드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되며, 거짓말을 한 형부 헨리를 증오하게
됩니다.
급기야 찰스가 레너드를 살해하고 투옥되는
상황 끝에, 윌콕스의 가장 헨리는 심각한
정서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어느덧 나쁘지 않은 '다음 여름'(The following summer)이 돌아오고...
헨리는 마음 언저리에 간직해왔던 전처 루스의
유언을 비로소 마가렛을 위해 실행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워즈 엔드의 새 안주인이 된
마가렛은 동생 헬렌을 그 곳으로 오게 해
그녀의, 또한 슐레겔 가의 아기를 태어나게
하지요.
그렇게...
하워즈 엔드를 마가렛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루스의 유지는 마가렛의 참을성 많고
결 고운 인간성에 의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되고,
꽉막힌 촌부 헨리 윌콕스를 그야말로 품격있는,
인간다운 인물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1.영화 < 하워즈 엔드 - Howards End >
Trailer 1992
https://youtu.be/iq1450mzTRA
영화 < 전망좋은 방 > 과 < 모리스 > 에 이어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과 이스마엘 머천트
제작 팀이 영국작가 E.M.포스터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각본 역시 < 전망좋은 방 > 의
푸스 프라우어 자발엔라가 썼지요.
영화는 20세기 초 영국 중산층 사회의
인습적이며 위선적인 생활 풍속도와 이기심,
그리고 인간 내부의 혼돈과 모순의 무질서를
들추는 이중구조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각자 아주 다른 세 가족...
슐레겔(Schlegal)가의 마가렛과 헬렌은
매우 로맨틱하고 이상주의적으로,
지적이고 교육을 많이 받아,
정치, 문학, 미술에 관심이 많은,
반은 영국, 반은 독일의 피가 흐르는
자매이지요.
슐레겔 가는 런던 사교계에서 한때 이름을
떨쳤으나,
유감스럽게도 이젠 몰락한데다 남자들은 모두
단명하고 두 자매만 남은 초라한 중산층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집안입니다.
반면에 윌콕스(Wilcox)라는 가문은 실용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신흥 부유층 집안이지요.
마지막으로 바스트(Bast)가의 젊은이 레너드는
과거가 의심되는 아내 재키(니콜라 더프트 분)와
함께,
먹을 거랑, 쉴 수 있는 집 빼고는 누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그저 겨우겨우 살아가는
빈한한 사람으로,
이런 가난함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음악 콘서트를 보러다니며,
항상 지식의 보고인 책을 읽습니다.
영화의 핵심 질문은 "과연 누가 '하워즈 엔드'를
물려받을 것인가?" 로 모아지지요.
여기서 하워즈 엔드는 '영국'을 은유하며,
윌콕스, 슐레겔, 바스트 집안은 영국의 각각
다른 뿌리들을 상징합니다.
하여,
'하워즈 엔드의 물려받음'이란 명제는 이른바
'어떤 사람이 영국의 주인이 되기에 마땅한가'로
치환되는 게지요.
헨리 윌콕스는 말합니다.
" I am not a fellow who bothers about
my own inside."
"자기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내뱉는 꽤 충격적인 이 독백을 통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감이 전해져 오지요.
온통 무뚝뚝한데다
오직 '사실(facts)'에만 집중하는,
부잣집 상위 계층의 주인공으로 자기가 남한테
어떻게 보여질지 늘 조마조마해 하며,
묵묵히 돈만 버는 데 열중하지만,
도덕적인 열정(passion)은 없는 사람...
반면,
너무 무뚝뚝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감성적이어도
안되는, 그 두가지를 조화롭게 연결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마가렛...
그녀는 차거운 현실과 뜨거운 열정이 공조하는
룰을 자신의 삶 전체에 적용하고 싶기에
그녀와 너무도 다른 숨결의 헨리와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즉, '헨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걸',
그녀 인생의 참다운 목적과 의미로 둔 채 살고
싶어하는 게지요.
마가렛은 헨리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만...
레너드가 헨리의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조언
때문에 직업을 잃은 게 불쌍해서 감정적으로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 헬렌은,
레너드와 연민의 잠자리를 함께 하며,
급기야 그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헨리는 헬렌의 형부로서 외면의 겉치레적
모습 (public life)에만 신경을 쓰는 인물이기에
이런 황당한 스캔들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고민하지요.
헨리의 큰아들 찰스는 레너드가 죄책감으로
헬렌과 마가렛을 찾아오자, 그를 경멸하고
질책하며 두들겨 팹니다만,
그 충격으로 레너드는 책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책들에 깔려 심장마비로 죽고 맙니다.
상류사회로 오르기 위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책들에게 ...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윌콕스가의 가장 헨리의
감성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게 되지요.
그는 헤어지려하는 아내 마가렛에게 울먹이며
매달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화면은 헨리와 마가렛, 그리고 헬렌과 그녀의
어린 아이가 함께 하워즈 엔드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풍경을 비춰주지요.
일련의 사건으로 심신이 크게 심약해진 헨리는
그의 둘째 아들 폴과 딸 에미(제마 레드그레이브
분), 큰 며느리인 찰스 부인, 또한 아내 마가렛을
모두 불러서 가족 회의를 가집니다.
그는 사후 유산 대신에 마가렛한테 하워즈 엔드
를 남겨주겠다고 가족들에게 이르지요.
그러자 마가렛은 하워즈 엔드를 후에 그녀의
조카(헬렌의 아들)한테 물려줄거라고 말합니다.
하여,
윌콕스 부인이 처음부터 원했던대로
하워즈 엔드는 마가렛한테 주어졌으며,
이후에도 하워즈 엔드는 각각 다른 영국 집안이
모두 섞인 자들이 함께 물려받게 되는 게지요.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특별한 시각적 효과나
반전보다는 등장인물의 세심한 내면의 표현과
이들의 배경에 한껏 귀기울이며,
또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3악장의 선율을
아우르면서 그 집중도를 높이고 있지요.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시대의 격랑 앞에서
그저 떠내려갈 수 밖에 없는 과거 속 전통을
붙들어 맬 수 없다는 애절한 탄식과 복고풍의
아련한 그리움...
바로 그 회한어린 부르짖음과 동경을 사정없이
내리 누르는 '운명'을,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는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5번 '운명'의 3악장 알레그로 선율로,
처음엔 리스트의 피아노 편곡, 이어 오케스트라와
운명간의 통렬한 투쟁을 통해 절절히 품어내고
있습니다.
*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운명(Schicksal)'
- 벤 모튼(Ben Morton)의 피아노
https://youtu.be/QiaH1mpODrk
리스트는 장장 27년에 걸쳐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전부를 피아노 한대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했지요.
리스트의 베토벤 교향곡 트랜스크립션
전 9곡은 에이 워커(A.Walker)가 말했듯이
'편곡 예술의 최고봉'인 동시에,
베토벤의 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진심어린
노력의 결과물로 우뚝 섭니다.
그 당시 베토벤의 음악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못한 때였지요.
이 피아노 편곡들을 통해 관현악적 이디엄을
놀랍도록 재현해낸 리스트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무한 감탄하게 됩니다.
- 李 忠 植 -
2.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운명(Schicksal)'
극 후반, 뜻하지 않게 그의 아기를 임신한
헬렌에게 사과하고자 오른 하워즈 엔드 행
기차 객실에서,
잠든 레너드는 '운명교향곡'의 3악장 선율 속에
그녀의 사랑스런 모습을 꿈꾸게 되지요.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6fsDkAa9VtM
-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SG7I9W0AOBA
* '운명'의 3악장 'Allegro'
- 마시모 자네티 지휘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https://youtu.be/4BIe8RbettA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우교수
김영훈 님의 '문학 속의 클래식' 글을 옮겨
봅니다.'
영국 출신의 소설가 E.M.포스터
(Edward Morgan Foster)...
영문학에서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을 연구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 전망 좋은 방 > 과 <모리스>, 그리고
< 하워즈 엔드 > 와 같은 그의 대표 작품들이
영화화되었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자이기도 하지요.
포스터는 버지니아 울프, 로저 프라이, 그리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이 속해 있던 '블룸즈베리
그룹'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특히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지요.
매우 진지한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가이기도 했던
포스터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고
그 음악적 구조를 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한 바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 때문인지
그는 허먼 멜빌의 소설을 각색한 벤자민 브리튼
의 오페라 < 빌리 버드 > 의 리브레토(대본)를
작성하기도 했지요.
포스터의 < 하워즈 엔드 > 는 영국의 전통적
정체성과 운명에 관한 소설입니다.
'하워즈 엔드' 라고 불리우는 집, 공간은
다름아닌 '영국(England)의 전통'을 상징하지요.
소설은 영국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계급 전쟁, 남녀 갈등, 그리고 이데올로기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적 기업가를 대변하는 윌콕스 집안,
포스터 자신이 속해있던 블룸즈베리 그룹과
같은 지식인 계층을 대변하는 슐레겔 자매,
그리고 하층민을 대변하는 바스트 부부가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이지요.
각각의 클러스터에 속해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서로 얽히며
발전합니다.
소설의 중심은 단연 슐레겔 자매이지요.
중산층, 혹은 지식인을 대변하고 있는 그녀들의
노력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다양한 계층적
갈등의 화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마가렛과 헬렌은 처음에는 대립되는
두 방향으로 나아가지요.
언니인 마가렛은 헨리 윌콕스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와 결혼을 합니다.
반대로 동생 헬렌은 레너드 바스트에 대한
연민 때문에 그의 아이를 임신하지요.
소설의 결론 부분에서 오랫동안 헤어졌던
마거릿과 헬렌은 하워즈 엔드에서 재회합니다.
헬렌은 소설이 시작했던 이곳으로 되돌아와
레너드와의 아기를 출산하지요.
이처럼,
모든 것은 '하워즈 엔드'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모든 것이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피의 섞임이라는 강렬한 열정의
힘을 통해 계급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영국이라는 한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그 유산을 계승한다는 메시지를
온전히 읽을 수 있게 되지요.
슐레겔 자매는 중산층의 교양과 문화를
동경하는 가난한 회사원 레너드 바스트를
공연장에서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을,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함께 듣지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을 포스터는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 인간의 귀를 뚫고 들어간 소리들 가운데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이 가장 숭고하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도, 또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도 그 음악을 통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먼트 부인처럼 음악이 나오면 가볍게
장단을 맞추는 사람에게도
(물론 다른 사람들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헬렌처럼 범람하는 음악의 물결 속에서
영웅과 난파선을 보는 사람에게도,
마가렛처럼 오직 음악만을 보는 사람에게도,
아니면 티비처럼 대위법에 정통하고 무릎 위에
악보를 펼쳐 놓고 있는 사람에게도,
또 이들의 독일인 사촌인 프리다 모제바흐처럼
줄곧 베토벤은 ‘진정한 독일인’이라는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도,
또 프리다의 약혼자처럼 오직 프리다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우리 인생의 열정은 더욱 생생해지고...
이런 음악을 접하는 데 2실링이라는 돈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음악을 듣는 곳이 런던에서 가장 우울한
음악당인 퀸즈 홀이라고 해도 (물론 이곳은
맨체스터의 자유 무역회관만큼 우울하지는 않다)
역시 저렴하게 느껴진다.
또 우리가 공연장의 맨 왼쪽에 앉아,
쾅쾅 울리는 금관악기 소리에 다른 모든 악기
소리가 묻혀 버린다고 해도 그래도 역시 이것은
저렴한 대가이다. ”
맨체스터의 자유 무역회관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 중 하나인 할레 오케스트라가
1858년 첫 연주회를 가진 곳이지요.
퀸즈 홀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축제인
BBC 프롬이 1895년에 시작된 장소입니다.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 속 인물들은
바로 그 퀸즈 홀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듣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인공들은 각각의 개성에 따라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을 다르게 듣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들은 이 중 하나에게서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슐레겔 자매의 동생인 티비처럼 대위법에
익숙할 정도로 진지한 음악 애호가도,
사랑에 빠진 프리다의 약혼자에게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은 강렬하게
'인생의 열정'을 전염시키지요.
포스터는 < 소설의 이해 > 에서 소설가가
추구해야만 하는 이상은 완성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향곡이 끝날 때 우리는 음악의 완성이
아니라, 곡을 구성하고 있던 음 하나하나가
마침내 해방되었다고 느끼지요.
전체의 리듬 속에서 각각의 음악들은 자유를
찾습니다.
포스터는 소설도 음악과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비록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도, 소설 또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과 같은 아름다움과,
무한히 확장되는 여운을 전해주는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물리적으로 종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소설의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완결 혹은
완성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차라리 문제가 되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끊임없이 확장되는 소설의 잠재적
가능성과 독자에게 그 가능성을 전염시킬 수
있는 능력일 것입니다.
< 하워즈 엔드 > 에서 포스터는 또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지요.
“ 음악은 그녀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요약해 주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일러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분명한 진술로 읽었으며,
그것은 다른 것과 대체될 수 없었다. ”
포스터에게 음악과 마찬가지로 소설은 환상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단순히 미래의 예견이 아닌 조화와 화합의
계시인 게지요.
< 하워즈 엔드 > 에서 나타나는 조화와 화합을
이룩하는 데에 헬렌의 열정은 결정적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베토벤의 음악은 인간 열정의
상징이지요.
그렇기에 헬렌이 레너드 바스트와 조우하게
되는 계기가 베토벤의 음악이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헬렌의 열정을 일깨우고,
이는 그녀가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레너드와
조우했을 때 그녀의 삶을 변하게 한 게지요.
로베르트 슈만은 "세계가 존재하고 음악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을
들을 수 있을 것" 이라 말했습니다.
포스터의 말을 다시 한 번 빌리자면,
“인간의 귀를 뚫고 들어간 소리들 가운데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가장 숭고하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도, 또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도 그 음악을 통해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을 듣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포스터가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이룩하고자 하는 바였을 것이지요.
첫댓글 " 사람의 운명은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저항하면 운명은 사정없이 끌고서라도
갈 것이며,
순종하면 짓밟고 지나가 버릴 것이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1992년 연출작
< 하워즈 엔드 > 는,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자본가의 시대가 시작되는
20세기 초의 미묘한 격변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은 우리에게 < 인도로 가는 길 >,
< 전망좋은 방 >, < 모리스 >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E.M. 포스터의 소설이지요.
제목 '하워즈 엔드' 는 영국 근교의 아름답고
조용한 별장의 이름으로,
누구라도 한번만 보면 매혹될 만한 곳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헬렌과 티비' 의
두 동생을 키운 '마가렛'은 모성애와 다름없는
관용심과 자애심을 가진 여성이지요.
다른 가족과 달리,
타인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엄격히 경계하며, 언제나 사려깊은
배려심으로 주위 사람들을 대합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지성인이지요.
여동생 헬렌의 해프닝에 가까운 연애소동
이후 멀어질 것만 같았던 윌콕스 가문과의
인연은,
현명하고도 온유한 심성의 마가렛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윌콕스 부인 '루스'는 마가렛과는 자못
그 결이 다른 지점에 서있는 여성이지요.
2남 1녀의 유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지나간 날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마가렛은 특유의 친화력과 상냥함으로
윌콕스 부인을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주지요.
이토록, 마가렛의 놀라운 이타심은 두가지
시퀀스를 통해 단적으로 묘사됩니다.
첫번째는 윤리협회 음악회에서의
우산 사건으로 연결된 레너드와의 만남,
두번째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함께
갔던 백화점에서 어색하게 헤어진 후
'하워즈 엔드'로 향하는 부인을 쫓아가는
장면이지요.
< 하워즈 엔드 > 의 서사 속 실타래는
꽤 복잡하게 얽히긴 했습니다만,
문화와 감성의 정점에는
레너드 바스트와 헬렌 슐레겔,
물질과 사업에는 헨리 윌콕스와
찰스 윌콕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양쪽 모두에 관련을
맺고 있는 연결축인 마거릿 슐레겔을
중심으로 풀리어가죠.
윌콕스 집안의 둘째 아들 폴과 쉴레겔 가의
둘째 딸 헬렌의 치기 어린 하룻밤 키스...
여기에 드리워진 씁쓸하고 치욕적인
뒷맛으로 두 집안의 관계는 시작됩니다.
헬렌은 윌콕스 집안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보다는 좀더 이성적이고 예의 바른
언니 마가렛은 윌콕스 가와의 친교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지요.
그런 마거릿에게 진한 우정을 느낀
윌콕스 부인 '루스'...
그녀는 마지막 병상에서 간호원을 통해
'연필로, 사인도 없이',
마가렛에게 하워즈 엔드를 주겠다는
유서를 남깁니다만...
영화 '하워즈 엔드'(Howard's End) 에는
그야말로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영국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죠.
영국 특유의 안개 낀 풍경, 흐린 날씨,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는 물론,
메이드(maid), 소박한 옷차림, 홍차,
케이크와 스콘, 로스트 비프, 요크셔 푸딩,
캐시미어, 지팡이와 푹 눌러쓴 모자라든지
전형적인 수트 차림 등
어쩐지 마틴 스콜세지의 1993년 연출작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를
연상케 하는 ...
헨리의 부적절한 충고로 인해
직장을 잃은 레너드를 보는
헬렌의 마음은 마냥 편치 않지요.
게다가 헨리는 그에 대한 책임같은 건
전혀 느끼고 있지 않고,
그런 그의 냉혹하고 무관심한 태도가
헬렌의 가치관과 크게 부딪치게 됩니다.
물론, 그 중간에서 마가렛만 죽어날 정도로
괴로워합니다만....
중간 중간에 오래 전 헨리와 재키
(레너드 아내)의 치정어린 불륜이
드러나는 등 몇몇 사건들도 있고요.
품격, 무례함, 거짓말, 문화적 격차와 갈등 ,
살인(과실 치사였지만) 사건에다
재산 문제까지 얼키고 설킨 내용이니까요.
어쩌면 주인공인 마가렛 자체가 관용과
조화를 중시하는 인물이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만...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가지 물음들은
현재도 유효합니다.
어쩌면 헨리의 편을 들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돈과 재산이라는 문제는 언제나 눈 앞에
있는 것이고,
문학과 예술, 나아가 정신 세계라는 주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꽤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슐레겔 자매 또한 '우리에게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활을 누리지 못했을 것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매에 대한 레너드의 견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지요.
그는 낮은 계급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인이 되고자 갈망하고 또한 노력하고
있다는 데서 차이가 있지만요.
현명하고 똑똑한 여성으로, 헨리의 전 부인
루스보다 더 적극적으로 많은 것을 조율해
나가는 마가렛.
그녀는 레너드에 대해 평가를 내리길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라고 했죠.
그는 문화인이지만 유약하며 경제 능력이
없는 신사를 대변하고 있는데,
결국 레너드는 원하던 것도 갖지 못하고
파멸을 맞게 됩니다.
뻔뻔하게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던
헨리는 호된 인생의 고난을 겪었지만
아무튼 마가렛에 의해 구원(?)을 받았는데
말이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워즈 엔드'라는
집은 극 중 크나큰 의미를 지닙니다.
하워즈 엔드는 '윌콕스 부인, 루스'의
마음의 안식처인 곳이며,
그녀의 정신적 계승자라고 볼 수 있는
마가렛이 갖게 되어 있었던 곳이죠.
모르는 사이에 강탈(?)당하긴 했지만요.
슐레겔 자매는 자신들의 정식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집에 들어오자 평온함을 느끼죠.
결국 모든 것은
'하워즈 엔드'에서 시작되었고,
'하워즈 엔드'에서 끝맺어지게 됩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20세때(1831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그 초절기교에 반하여,
피아노로도 이러한 성취를 달성하겠다는
취지 하에 100 여명의 오케스트라가 내는
하모니를 피아노로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리스트는 초절기교의 난해함과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는, 베토벤 교향곡의 피아노
편곡을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작업에
비유하며,
베토벤 작품에 대한 열렬한 탐구와 이해,
끊임없는 피아노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 어려운 작업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고
하지요.
1865년, 장장 27년에 걸친 편곡 대업을 마친
리스트...
그는 "베토벤의 숭고한 작품의 전체적인
윤곽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없이 보람찬 작업이었던
셈이다." 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