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어의 어휘는 그 언어에 원래부터 있었던 고유어와 다른 언어에서 빌려 온 외래어로 나뉘게 되지요. 하나, 둘, 사람, 땅’과 같은 말은 고유어, 즉 순우리말이고 ‘버스, 커피, 컴퓨터’ 등은 외래어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중국, 몽골 등 주변 나라 언어로부터 어휘를 빌려 써 왔습니다.
'붓, 송골매’ 등이 그런 예들이죠. 20세기 이후 생겨난 대부분의 외래어는 영어에서 들어온 것인데 ‘커피, 넥타이, 인터넷’ 등 많은 예가 있고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외래어의 표기 혼란을 막기 위하여 외래어 표기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최초의 외래어 표기법은 1939년에 조선어학회에서 만든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이나, 현재의 외래어 표기법은 1986년에 고시된 것입니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중요한 점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래어는 국어입니다. 외래어는 원래 외국어이던 말이지만 국어에 들어온 이상 외국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국어에 동화됩니다. 예를 들어 coffee는 영어이지만 국어에 들어와 ‘커피’로 바뀌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외래어를 적을 때 일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보이기 위하여 옛글자를 되살려 쓰거나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외래어는 국어이기 때문에 국어의 특성에 맞게 적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외래어의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의 일곱 받침만을 쓰고, ‘ㅈ, ㅊ’ 다음에는 ‘ㅑ, ㅕ, ㅛ, ㅠ’와 같은 이중 모음을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디스켇’, ‘커피숖’은 틀리고 ‘디스켓’, ‘커피숍’이 맞습니다. 또 ‘레져’, ‘쥬스’가 아니라 ‘레저’, ‘주스’가 맞습니다.
셋째, 외래어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까스, 땜, 뻐스, 써비스’와 같은 표기는 틀린 표기이고, ‘가스, 댐, 버스, 서비스’가 맞습니다.
우리는 ‘외국어는 어릴 때 배우는 게 좋다’거나 ‘지나친 외래어 사용을 삼가자’는 말을 하면서 ‘외국어’나 ‘외래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그러나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을 구분해서 설명해 내기란 쉽지 않고, 더구나 어떤 특정한 낱말이 외국어인지 외래어인지를 판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죠.
일반적으로 ‘주스’나 ‘커피’, ‘바나나’, ‘텔레비전’처럼 국어 생활 속에 널리 사용되고, 또 바꾸어 쓸 수 있는 적당한 우리말이 없는 경우에는 외래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킨’이나 ‘비전’, ‘키’, ‘루머’ 따위 낱말들은 딱히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잘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국어 단어로 인정하기엔 아직 어색한 면이 있으나 ‘닭고기’나 ‘전망’, ‘열쇠’, ‘소문’ 등으로 바꾸어 쓰기에는 마땅치 않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외국어’는 ‘모국어’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고,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 같은 정의를 따르면 ‘외국어’는 남의 나라 말이지만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비롯되긴 하였으나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낱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특정 단어가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를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국어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말’이라는 판단을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외국어의 특정한 낱말이 우리말 속에 들어와 외래어로 정착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외래어는 원래 언어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을 잃어버리고 우리말에 동화(同化)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 동화의 정도가 흔히 외국어와 외래어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발음의 변화입니다. 즉, 외래어가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게 되면 본래 발음이 유지되지 못하고 국어의 소리로 대치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file이라는 영어 단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오는 과정을 생각해 볼까요? [f]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으면서 내는 소리인데, 우리말에는 이런 소리가 없으므로 그에 가장 가까운 소리인 ‘ㅍ’ 소리로 바뀌어 ‘파일’로 발음됩니다. 영어에서는 다른 소리인 [r]과 [l]도 모두 ‘ㄹ’로 바뀌어, 영어의 race와 lace는 모두 ‘레이스’가 됩니다. <마지막 잎새>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O Henry는 영어 발음이 [o henri]이고 한글 표기도 ‘오헨리’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 리’를 [철리]로 읽는 발음 습관에 따라 흔히 [오헬리]로 발음하게 되죠.
외래어는 형태적으로도 우리말에 동화됩니다. 외래어 형용사나 동사가 우리말 속에서는 항상 접미사 ‘-하다’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말 동사나 형용사의 특징은 문장 속에서 어미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먹다’는 항상 ‘먹은, 먹으니, 먹어서’ 등 어간과 어미가 결합한 형태로 사용되죠. 외국어에서 온 동사나 형용사들도 우리말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려면 어미 변화를 해야 하므로 항상 접미사 ‘-하다’와 결합한 형태로 쓰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어 형용사 smart는 우리말 속에서 항상 ‘스마트한’, ‘스마트하여’, ‘스마트하게’ 따위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흥미로운 변화는 의미의 측면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외래어는 본래 의미와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죠. ‘미팅’이나 ‘부츠’ 같은 예를 들 수 있는데요. meeting은 영어에서 ‘모임’이나 ‘회의’를 뜻하지만, 국어에서는 ‘남녀가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되어 사용됩니다. 이에서 더 나아가 ‘미팅’의 ‘팅’만을 따로 떼어내 ‘소개팅’, ‘맞선팅’, ‘폰팅’ 같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boots는 영어에서 온갖 종류의 ‘장화’를 두루 가리키는 말이나, 국어에서는 비 오는 날 신거나 작업용으로 신는 고무장화는 ‘부츠’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신는 목이 긴 구두를 가리키는 말로만 사용이 되죠.
외래어는 그에 대응하는 적당한 우리말 용어가 없어서 다른 나라 말을 빌려다 쓰는 것으로 대개 위에 제시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실리거나 교과서에 사용되는 외래어들은 대체할 우리말 용어가 없는지, 얼마나 널리 사용되고 있는지, 동화의 정도는 어떠한지 등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정됩니다.
그러나 <외래어 표기법> 의 표기 대상은 완전히 우리말로 정착한 소수의 ‘외래어’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말에 들어와서 어떻게 표기해야 좋을지 모르는 낯선 외국어들과 외국의 인명·지명이 주요 표기 대상입니다. 오히려 오래전에 들어와 국어의 일부가 된 전형적인 외래어들은 표기 혼동의 염려가 별로 없어서 논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나 ‘라디오’, ‘피아노’ 같은 예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표기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올바른 표기형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의안’이나 ‘의제’라는 뜻의 agenda는 외래어로 정착될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어젠다’, ‘*아젠다’, ‘*어젠더’ 등 표기형이 혼란한 상태이므로 표기형 통일을 위해 심의를 해야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외래어 용례 심의는 대개 진정한 ‘외래어’가 아닌, 단지 외국어에서 들어온 낱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정착되지 않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한글 표기는 통일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죠.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를 한글로 적는 방식을 정해 놓은 규칙입니다. 우리말을 적을 때에 ‘한글 맞춤법’에 따라 표기하듯이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항상 일정하게 적어야 합니다. 외래어는 다른 나라 말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말소리가 우리말과는 상당히 다르죠. 그런 말들을 일정한 규칙 없이 제각각 적도록 놓아둔다면 언어생활이 혼란해지겠죠?
거리의 간판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가 외래어 표기에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은 ‘슈퍼마켓, *수퍼마켓, *슈퍼마킷, *수퍼마킷, *슈퍼마켙, *수퍼마켙, *슈퍼마킽, *수퍼마킽’ 등 다양한 표기가 사용되고 있으며, ‘초콜릿’도 ‘*초컬릿, *초콜렛, *쵸코렛, *쪼코렡’ 등 매우 여러 가지 어형이 쓰이고 있습니다.
고유 명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New York’에 대한 표기는 ‘뉴욕, *뉴우요오크, *뉴우욕, *뉴요크, *뉴욬’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외래어의 기원이 되는 외국어의 소리가 국어와는 매우 달라서, 낯선 외국어 발음을 가장 가깝게 나타낼 수 있는 한글 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사람마다 제각각 적고 있는 외래어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언어생활에 매우 큰 불편을 가져오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이는 물론 외래어만의 문제는 아니며, 고유어나 한자어에서도 같은 개념을 지시하는 말이 표기가 각각이라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언어생활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고유어나 한자어의 표기를 <한글 맞춤법> 에 따라 하듯이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 에 따라 적어야 합니다. <외래어 표기법> 은 외래어의 표기를 통일하고 어형을 고정하여 언어생활의 표준을 제공하려는 목적을 갖습니다. 즉, <외래어 표기법> 은 다양한 어형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외래어에 대해 표준어를 정해 주기 위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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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아~~그렇군요. 혹시라도 3급시험에 나올지 몰라서 꼼꼼히 읽엇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