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성토대회 / 박승류
Ⅰ.
부부 각자 집 한 채씩 가졌다 별거는 아니다 일세대 이주택이다 서류와 진실은 곳곳에서 충돌한다 새끼들도 한 채씩 가졌다 세대분리는 아니다 일세대 다주택이다 일찌감치 증여했다 어린것에게 마구 물려준다고 모두 입방아다 올챙이도 굼벵이도 불만이다 비가 오면 개구리 시끄러운 건 그 때문이다 날벌레 현수막 펄럭이며 불에 뛰어드는 건 그에 대한 시위다
단숨에 말을 끝낸 그가 숨을 깊이 들이키자,
거북이 눈 둥그렇게 뜨고 목울대 길게 빼어 주변에다 느릿느릿 말한다
맨발 부르트고 발톱이 벗겨지도록 일해 모은 살림 중 집 한 채씩만 주는 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몸에 딱 맞는 오두막 그 치수일 뿐이다
면세점 이하다 그래서, 증여세는 없는 거다
누군 온몸으로 뛰었거늘, 굼벵이와 지렁인 면세점이 높다고 여전히 불만이다 그들이 지하로 스며들어 세태에 무관심한 건 그 때문이라며 뒷자리에 있던 뱀이 한마디 거든다
Ⅱ.
거북의 눈이 불룩 튀어나온 이유를 알고 있다
우리가 눈치 채기 훨씬 전부터 그는 렌즈를 착용했다
어릴 때부터 눈이 좀 나쁘기는 했지만
조세법이 든 가방을 메고 다니던 어느 날부터
시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지금도 틈틈이 그는 조세법을 들여다본다
그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이
재산세와 양도세 그리고 상속세와 증여세다
최근엔 종부세로 골치가 더 지끈거린다
그는 세금 줄이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예 갑골문자로 세법을 등에 새긴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그는 또한 지독한 구두쇠다
처음 구입한 렌즈를 아직까지 착용하는 것을 보면 안다
가끔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렌즈를 씻기 위함이다
집에 대한 애착도 당연한 것,
애용하던 낡은 집은 관으로 저승까지 가져간다
그가 상속해 준 집은 하나도 없다 양도한 집도 물론 없다
선친으로부터 그가 그랬듯이, 새끼의 집은 태어날 때
이미 증여해 두었다
일설에 의하면 좋지 않은 시력이 유전되었다는 것에 이어
렌즈도 태어날 때 물려받은 것이라는 소수설이 있다
다수설이 틀리고 소수설이 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집에 관해선 달팽이 집착이 더 대단하다
그는 조세법을 너무 많이 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지팡이는 그의 더듬이다
소수설인지 다수설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Ⅲ.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 내려놓지 않는다 암수 교미할 때도 그럴 것이다
거북이도 만만치 않다 집을 지고 토끼와 경주했다니 알 만하다
그럴 때마다 집은 숨통이 막혀 비명을 지른다
집값이 뛰어오르자 집을 진 채 다니고 집을 진 채 일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물속의 자라와 우렁이도 동참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들이 일찍부터 그랬다는 걸 깜빡 잊은 대중들은 아우성쳤고 소금쟁이는 소문을 포장해 파문으로 재빠르게 날렸다
숨 고르던 집은 다시 폭등하고,
홍합과 고둥도 그렇다는 정보가 재래시장 골목 좌판 멍게로부터 타전되었다 기실 멍게는 주검으로 입을 닫았지만 주변이 가만두지 않았다 죽으면서도 집을 놓지 않은 끈기는 본받을 만하다고 그를 기리는 소주파티가 포장마차에서 가끔 열리는데,
민달팽이와 소라게는 소주파티에 참석이 늘 어려웠다
폐가라도 잡지 못하면 지하도로 가야 한다는 것
그들은 알고 있었다
Ⅳ.
이리 재고 저리 재다 그의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간다
한 때는 그랬다
목청 높인 매미의 호객이 있었다 시장은 술렁이었고 생각은 비틀댔다 푸르던 전광판은 군데군데 붉게 물들고 세상의 이목은 더욱 판을 달구었다
지갑을 든 그가 짧은 몸을 힘껏 늘려 기웃기웃 판 위에 앉았다
주변은 혼자 남은 달팽이에게 간의 크기를 물어보고 더러는 손가락질하며 힐끔거렸다 달팽이 천천히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사이, 원 貨 타고 떨어지는 자벌레가 있었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순식간에 사그라진 불꽃, 서리(霜) 맞은 원화는 끝없이 추락하고 파편으로 눈물 찔끔거리는 달팽이 허공을 더듬는데,
외마디로 흩어지던 그의 비명은 땅바닥에 붉은 유언장으로 나뒹굴고 찬바람은 재빨리 낙엽을 휘발시키기 시작한다
Ⅴ.
회오리가 몰아쳐 새끼달팽이는, 돌멩이에 뚫린 벽을 보며 한참 동안 망연자실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울먹이며 그는 집을 진 채 어미에게로 달렸고
그가 지나간 길은 눈물자국으로 축축이 젖었다
단단한 집을 가진 거북이를 시샘하며 어미 앞에서 울다 멈춘 새끼에게, 조용히 타이르는 아비
애야, 울지 마라 고대광실이 다 좋은 게 아니다 애야, 요즘 그 값이 무너지는 중이라니 멀지 않아 거북이, 그 무게로 질식할까 걱정이다
弔問갈 형편도 못되는데,
달러가 뛰고 여의도는 쑥대밭이 되었다지, 소라게가 소라껍데기에 깔려 숨을 거두었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틈틈이 어미가 나직나직 끼어든다
리먼# 가문이 풍비박산이라 해도 타워팰리스*는 꿈쩍도 하지 않을 걸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는 새끼달팽이
보고 있던 지렁이와 뱀이 몸을 좌우로 끌끌끌 흔들며 지나가고
굼벵이도 몸을 접었다 폈다 끄덕끄덕 지나가고,
Ⅵ.
거북이 뭍으로 긴 나들이 가능한 렌즈를 끼고 있어 그는 제가 낀 렌즈가 못마땅하다
거북이 단단한 집을 가지고 있어 그는 자신의 물렁한 움막이 못마땅하다
수륙겸용인 거북을 닮으려 그는 가끔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지만 눈부신 하늘은 여과 없이 그의 눈을 자극하고 그는 수면 밖을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거북보다 몸집이 큰 것 외에 아무것도 더 좋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 생각하는 그, 늘 거북이 부럽다
누군가 달팽이를 성토하면 언제나 달팽이를 변명하는 그,
종부세의 과세표준을 달팽이의 토담집으로 할지 거북의 철근콘크리트 집으로 할지 관가(官家)에선 이미 시끄럽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소시민 자벌레가 자신의 몸을 지렛대로 벤처의 주인공이 되려 한 전설은 이미 잊어버렸다
지렛대에 힘 한번 주지 못하고 그 힘에 질식사한 것도 물론 잊었다
철근콘크리트 집을 지고 물과 뭍을 넘나드는 거북의 무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거북보다 자신의 이빨이 더 단단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한 번 물면 놓치지 않는 힘,
그것으로 그는 먹이를 잡아 여태 살아남았다
Ⅶ.
주변에서는 침이라 했다 일부는 오줌이라 했다 애액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우렁이는 달팽이가 안쓰럽다 더듬이 끝까지 튀어나온 눈으로 허공을 짚는 모습을 보면 제 눈이 다 아프다 그의 움막도 불안하지만 오줌을 싸며 다니는 건 한심스럽다 우렁이는 그를 만나면 늘 왜 그렇게 사느냐 타박했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채식하는 그는 육식동물이 못마땅하다 더 못마땅한 건 잡식동물의 식단이다 상황에 따라 주장을 달리하는 회색분자처럼 일관성 없는 우렁이, 얼마 전 올챙이까지 꿀꺽했다는 소문을 소금쟁이에게 들었다 그는 줏대 없는 우렁이가 늘 눈에 거슬린다
잡식성이 우렁이를 살아남게 한 걸 그는 모른다
그가 지나간 길이 축축한 이유는 흘린 눈물 때문이란 걸 우렁이는 모른다
질금질금 흘리면서도 다녀야 하는 이유를, 일인 일주택인 우렁이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샴쌍둥이인 그의 삶을,
Ⅷ.
거북은, 달팽이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치욕이라 했다 토담집을 가졌든 통나무집을 가졌든 누구나 다 분수에 맞게 사는 거라 했다 고등동물을 하등동물과 비교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게다 내외도 분간 못하고 주야장천 한 지붕 밑에 있을 수 없다는 게다 늘 암수한몸일 수는 없다는 게다 미개한 자웅동체의 움막은 그냥 줘도 싫다는 게다 우아하게 진화된 성문화를 자랑하며 그는 체위까지 들먹이는 게다 진즉부터 여성상위를 신봉했다는 게다 아내가 괴성을 지르는 교미, 늘 그렇다는 게다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게다 몸과 마음 모두 여성 상위라는 게다
달팽이와 도매금이라니, 주변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게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알고 있겠다는 게다
-월간 [우리詩] 2010년 6월호-
《詩作後記》
여의도에서 잘 보이는『밤섬 산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거북은 렌즈를 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신기하다는 것도 잠시, 강변의『포장마차 안을 엿보다』가 오나가나 돈이 문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자벌레의 레버리지』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은 아직『가문의 위기』상태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물론 했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미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다가, 다시 강변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불쑥『자라의 입』이 보였습니다.『달팽이와 우렁이』도 보였습니다. 그때 문득『거북의 진정서』를 읽은 기억이 떠올라 더욱 착잡해졌습니다.
첫댓글 여백시인님의 걸쭉하고 진지한 시어, 감흥 깊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여전히 재미있는 닉네임 (메주) ^^
감사히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