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3년 2월 4일 마가복음 7장 찬송가 215장(새찬송가 426장)
0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0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0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0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0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0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0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0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0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유대인들의 반대와 이방 여인의 믿음”
이방인들을 위한 마가복음에서 본 장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공생애의 대부분 기간 팔레스틴 땅의 일부인 갈릴리에서 이루어지던 예수님의 사역이 이제 이방 땅으로 확장되어 나감으로써 장차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문맥 속에서 본 장에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전반부인 1-23절에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악의적인 예수님에 대한 배척과 그들의 위선적 종교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 소개되고 있으며, 후반부인 24-37절은 예수님께서 이방 땅인 두로에 가셔서 그들의 질병을 치유하신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이방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크게 칭찬을 받았음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인 이방인 출신의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마가복음의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며,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외식하는 신앙(1-23절)
【1-5절】예루살렘에서 파견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해서 비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처럼 엄히 지키는 ‘결례’는 원래의 율법에 명시된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 즉 유대교의 발전 과정에서 랍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은 율법에 대한 열심이 지나쳐 원래의 율법 규정들에 추가적인 세세한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지켰는데, 이런 그들의 율법주의적 종교는 율법의 본질적 의미는 망각하고 외면적인 규칙들을 지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를 ‘제의종교(祭儀宗敎)’라고 부르는데, 외면적인 행동이 행해지면 그것이 곧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런 제의적 종교의 특징입니다.
【6-16절】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제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제의종교가 되어버린 유대교에서는 ‘고르반’과 같은 웃지 못 할 모순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에 대해서 ‘고르반’, 즉 하나님께 바쳐졌음을 선언하면 그 모든 재산은 하나님의 것이 되고 그는 재산이 하나도 없으므로 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처럼 ‘고르반’을 선언하고서도 그 재산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만든 종교 전통에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편의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교묘한 목적들도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위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7-23절】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은 제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속사람에 관련된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외부적으로 깨끗한 것을 만지고, 깨끗한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사람의 부패함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면적인 정결함은 유대교의 의식적 정결법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방 여인의 큰 믿음(24-30절)
【24-30절】예수님께서 이방 지역으로 가셨음이 처음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두로 지역은 구약시대부터 가장 타락한 곳으로 알려졌던 곳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이방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진실하고 겸손한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딸을 치유하여 주신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앞서 나온 유대인들의 신앙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야로 본다면, 이 여인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의도적으로 멸시하는 말(‘개’)에도 불구하고 전심으로 매어 달렸던 이 여인의 신앙이 진정한 신앙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 여인의 대화는 구속 계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데, 그것은 복음이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질 것이지만 장차 이방인들에게도 그 복음이 전파될 것이며, 그들 가운데에는 유대인들보다 더 순전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바다’(31-37절)
【31-37절】이 이적 사건도 이방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부터 마가는 새로운 주제를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시는데, 그냥 말씀으로 고치시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시고 ‘에바다’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고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귀먹고 어눌한 자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들과 제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후부터는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사역을 시작하실 것을 보여주는 예표적 사건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고르반’이란 무슨 뜻이며, 유대인들이 이 규례를 어떻게 악용하였습니까?
2. 오늘 우리에게는 ‘에바다’의 이적이 어떻게 일어나야 합니까?
◈오늘의 기도◈
“외식함이 없는 진실하고 겸손한 믿음을 주소서!”
◈믿음의 글◈ “더럽혀짐과 정결의 참 의미”
예수님은 ‘더럽혀짐’의 진정한 성격은 의식법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그것은 바리새인이 가르쳤듯이 바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군중에게 설명할 기회로 삼으셨다. (중략) 그 시대 대부분의 유대인처럼, 제자들은 죄를 일종의 병원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오염으로 생각했다(이것은 대략 유교적인 견해로서, 대부분의 비기독교는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견해였다). 예수님은 죄가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이나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 암덩어리와 같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처리하기가 훨씬 어렵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염되는’ 것을 피함으로써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내적인 본성을 변화시켜 줄 근본적인 영적 수술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실 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게 될 것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다. 때때로 우리는 ‘성령 세례’를 오로지 영적인 은사와만 연결시키는데, 성경은 더욱 자주 성령 세례를 변화된 본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 IVP 간, “IVP 성경주석(신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