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마라
이 영자
저녁 산책길
돌아오는 길가에 노랗게 핀 금계국
혼자 있기 싫어하는지
뭉텅이로 잔뜩 피었구나
저녁 어스름한데도 너의 물이 흐드러져서
길 가득히 메우고도 남는다
아주 큰 꽃다발을 선물 받아
설렘으로 네게 다가간다
어쿠, 곱게만 여기던 너는
그 마음이 아니었구나
너는 답답했던 게야
갇히기 싫었던 게야
고로하더라도 몸 내밀어 숨을 쉬고
쪽빛처럼 환한 얼굴 비춰주는 달빛 쫓아
한 뼘이라도 빼곡히 내미려는 네 노고에
감복한다
그런데 아가야,
너무 애쓰지는 마라
네 살점 뜯기는 수고로움에도 시간은 가고
지쳐 나동그라진 순응에도 시간은 가더이다
적정한 삶의 순간을 사랑하며
그 순간을 지키기 위해 자조하는
모습이면 어떨까
비죽이 내민 네 머리 손으로 쓰담어
기특하다 기특하다
너의 향내에 한순간 꽃세상 머물다
애쓰며 살아갈 내 세상으로 귀환한다
이기적 독서가에서 이타적 독서가로
이영자
예전의 나는 잘 살고 싶었다. 아니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얼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 자기 계발서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특히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시크릿>과 김미경 씨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는 두 권의 책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다.
돈도 벌면서 성공도 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겨주었고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난 모범생이다. 배운 대로 실행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공부하고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양육도 잘하기 위해 육아서를 섭렵했다. 딸이 사춘기 시기가 올 무렵이면, 사춘기의 딸을 둔 엄마가 읽어야 하는 지도서를 책장 한 줄 만큼 사다가 읽었다. 그렇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것이고, 아이는 성공하는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무리 자기 계발서를 읽어도 난 성공하지 않았다. 아니 성공하지 못했고 부자도 되지 못했다. 읽는 순간에만 캐러멜 마키아또 같은 꿈을 꾸었지, 책을 덮으면 씁쓸한 에스프레소의 맛만 남았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인문고전 책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사람들의 책 후기도 읽어보고 논문도 읽고 블로그도 찾아보며 이해될 때까지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바는 계속 읽으면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내가 지금 변신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고,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으며 ‘6펜스를 버리고 달을 쫓아 보리라’고 결심했다. 나쓰메 소셰키의 <마음>을 읽으며 내 마음에 솔직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단 걸 알았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보며 ‘태어났다고 다 인간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야 인간이다’라고 결론 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삶의 쓸데없이 무거운 것을 들어내고, 가벼워져야 할 것을 정리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고 가족으로써의 책임과 권리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15년간 그렇게 읽은 고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표현에 휘둘리지 않으며 타인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학생들을 이해하며 지적하기보다는 ‘그럴 수 있지’라는 여유도 조금씩 생겼다.
이제는 내 성공이 나에게 화두가 아니다. 내 마음이 좀 더 풍성해져서 곁의 사람들에게 흘러갈 수 있기를, 나로 인해 만나는 이들이 조금은 위로받고 행복해진다면 그게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돈보다는 사람이,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인간보다는 자연이, 성공보다는 따뜻함이, 판단보다는 공감이, 타인의 인정보다는 내 만족이, 중요한 나보다는 덜 중요한 타인이 소중하다.
그래서 오늘도 일하느라 곤해진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