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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語로 읽는 連作長詩 《大邱》가 감행해 낸 궁극의 시학은 컷다. 우리의 역사와 문학이 누락시킨 시간과 공간의 창조적 복원이 거기에 生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누락’, ‘서사의 누락’, ‘생태의 누락’ 그 모든 누락의 창조적 복원이 마지막에 도도한 ‘금호강’의 물결로 흐르며 대단원을 이루고 있는데 이르러서는 누구나 찬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부언하자면 사투리라는 지역적 국한성을 넘어 모국어로서의 근원적 생명성을 시로서 극대화시킨 궁극의 시학이 바로 이 시집의 근간이다.” |
* 상희구 시인의〈대구〉연작장시 제5詩集 《개살이 똑똑 듣는다》를 받아들고 첫 반응은 ‘이걸 어떻게 번역해?’ 하는 생각이었다. 번역이 목적이란 말이 아니라~ 토속적 향토언어로 가득 채운 시집! 살아있는 소리글 言語였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번역할 수 없다면, 하면 안 된다”로 결론내린다. 직후 토속적 언어, 향토언어 즉 사투리, 방언 시 특집을 기획한다. 이 같은 편집자의 생각을 정진규 시인의 말을 인용(상희구 시인의 시집 표4를 장식하고 있는 발문)하여, 밝힌다.
* 경상북도 대구는 상희구 시인의 고향이다. 따라서 〈대구〉연작시와 시집 시리즈의 구성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북지방의 토속적 일상 향토언어를 시화화한 것이다. 제2시집《추석대목장날》중 p35,「밍절이 되마 모도모도가 바뿌다」의 한 대목을 감상해보자. “이 집안에는/ 웡캉 피가 뜨굽았는지,// 시부媤父, 시조부, 시징조부/ 시고조부꺼정 할배들 마캉다// 소실少室, 측실側室, 첩실妾室에다다/ 작은댁이, 작은오마씨,/ 작은방지기꺼정 할매들 너덧씩은/ 다 거느리싰지렁,// 이 할배들 지사祭祀에 할배들이/ 거느리고 온 작은 할매들/ 지사까지 합쳤뿌리마/ 할배 할매들,/ 지방紙榜 써대기도 바뿌고// 짓상祭床에서 할매 할배들/ 지사 진지 잡숫고 난,/ 숭녕 수발하기도 엄청 바뿌다”로 민속명절날 전례의식 갖추기에 번잡함을 희화해 그려놨는데~ 웃다 말고, 시인의 의도한바 심상치 않음에 숙연해 지고 만다.
* 한국인의 우리 민족의 문화원형질은 무엇인가. 어떻게 원형질을 찾아내고 어떻게 살려내어 쓰임새를 어떻게 밝혀야 할까. 21세기에~. 우리 민족의 1.특징을 찾아내고 그 특징을 2.스토리텔링화 하여, 생활속에서 공감하고 즐기며, 나아가 한민족의 3.골계, 해학, 민담, 설화, 전설로 정착되고 속담과 명언으로 반기며, 4.그 맛과 멋을 계승하고 문화예술 활동으로 전파하여, 다시 첫 단추로 되돌아와서 특징과 특성을 5.인지하고 DNA로 확인하는 과정(융합, 통섭)을 통하여 6.글로벌 지구촌에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전천후 무한경쟁 21세기 지구촌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조건과 미래의 번영방식을 백범 김구선생의 말씀처럼 평화적으로도 희망하게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 靈感을 실천한 시인, 고향을 무척 사랑한 시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앞 서 헤쳐 나가기는 힘든 평범하고 소중한 일을~ 꾸준히 진척시킨 시인 상희구! 1등은 애초부터 경쟁자가 없다. 상희구 시인의「母語로 읽는 連作長詩」〈대구〉시리즈 詩集, 1권~5권을 접하고 거저 받은 벅찬 감동을~ 지면으로 밝히며, “한민족 문화원형질”을 찾아내고 유지, 보존, 계승하는 일의 가치를 새삼 계량해 본다. <편집자 주>.
말쌈
미느리가 상추쌈을 무울 때는
시에미 앞에서 누늘 뿔씨고
미느리가 말쌈을 무울 때는
시할매 앞에서 누늘 뿔신다.
---제1시집〈 대구 9〉
* 말쌈 : 옛날 연못에서 많이 나는 食用水草의 하나로 ‘말’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개 양념장에 절여서 먹거나 쌈을 싸서 먹곤 했다. 특히 손바닥 가득히 말을 듬뿍 얹고는 쪽파, 고춧가루, 참기름 등으로 갖은 양념을 한 양념장으로 쌈을 싸서 먹는 말 쌈은 당시 여인들이 즐겨 찾던 별미였다. 더욱이 엄마외 이웃 분들이 말쌈을 먹을 때 이 사이에 끼인 말찌끼의 까믓까믓한 것들을 보고는 서로 삿대질을 해가며 웃음보를 터뜨리던 기억이 어제 같다.
* 무울 때는 : 먹을 때는
* 누늘 뿔씨고 : 눈을 부릅뜨고, 대개 쌈을 싸서 먹을 때는 쌈의 덩이가 크기 때문에 입의 아구를 크게 벌리고 손윗사람들 앞에서도 체면없이 눈을 부릅뜨게 된다는 것인데, 예의 말쌈을 상춧쌈보다도 맛이 더 좋으니 으레 쌈의 덩이가 더 클 것이므로 말쌈을 먹을 때는 상춧쌈을 먹을 때보다 눈을 더 크게 부릅떠야 하니 시에미보다 하나 더 윗자리인 시할매 앞에서도 눈을 부릅뜨게 된다는 것이다.
란닝구
란닝구란 이 말 참 오랜만이다
원래 러닝셔츠란 외국어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온 듯한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흘러내린 바지춤을 치켜 올리거나 뒤집어지거나 삐딱해진 란닝구의 어깨끈을 고쳐 주시느라 엄마의 손이 많이 닿아서 그런지 몸빼니 네지마시니 하는 말들과는 달리 전연 왜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땟자국에 절고 해지고 닳아 어깨끈만 달랑 남았던 시절의 이 란닝구, 언젠가 엄마가 란닝구 한 벌을 사 오셨다 이 란닝구, 목으로 내려서 두 팔만 끼우면 될 것을 엄마는 공연히 무슨 큰 양복이라도 사 오신 양, 아래를 당겨 보기도 하고 어깨끈을 늘어뜨려 보기도 하시면서 “야아, 잘 맞구나!” “좋제?”하시면서 이런저런 사설을 늘어놓으셨다
순간, 퍼뜩 나는 오늘도 저녁밥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1시집〈대구 11〉
범물동凡勿洞
청도淸道 이서伊西 쪽에서
팔조령八鳥嶺 넘어온 새들이
잠시 놀다 가고
금호琴湖 대창大昌 쪽에서
건들바람이 불어와
기양 건들거리다가 가고
청도淸道 운문雲門 쪽에서
구름이 몰려와
그렁지만 맨들어
놓고 가고.
----제1시집〈대구 17〉
*범물동 : 大邱市 壽城區 凡物洞은 옛날 대구의 변방으로 산세가 수려한 아름다운 전원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아파트촌이 즐비한 번화가로 바뀌었다.
*이서 : 慶北 淸道區 伊西面
*八鳥嶺 : 대구와 청도의 경계에 있는 嶺으로 옛날 대구 이남에서 한양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의 관문이다.
*대창 : 永川郡 琴湖邑 大昌里
*기양 : 그냥
*운문 : 淸道郡 雲門面
*그렁지 : 그림자
맨자지
맨자지는 아부지 생일밥
반자지는 형 생일밥
반반자지는 내 생일밥
꼽삶이 꽁보리밥은 엄마 생일밥.
----제1시집〈대구 63〉
*맨자지 : 백 퍼센트 하얀 쌀로만 지은 흰 쌀밥을 맨자지라고 한다. 본래말은 맨잦이일 듯. <밥을 잦힌다>라는 말이 있는데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보리, 조, 수수 등은 단단하고 거칠기 때문에 두 번씩은 삶아야 하는 잡곡밥과는 달리 쌀은 거칠지 않고 연하기 때문에 맨으로 잦힌다고 하여 <맨잦이>가 아닐까 하고 단정해 보는 것이다.
*반자지 : 절반은 쌀, 절반은 보리쌀로 지은 쌀밥. 그 시절 아버지와 형만 생일날 나보다 더 하얀 쌀밥을 준다고 필자가 빗대어서 만들어 낸 말이다.
*꼽삶이 꽁보리밥 : 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순전한 보리밥을 말한다. 보리가 거칠기 때문에 두 번씩 삶는다고 하여 꼽삶이라고 한다. 당시 어려웠던 시절의 어머니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얀 맨자지 쌀밥만 먹는 것을 죄악시했다.
보리밥
무성하구나 오뉴월의 보리밭,
보리는 우리의 근본이다
저 대지의 푸른 힘
푸픈 충만이구나!
우리가 허기질 때
너는 너의 가장 소중한 자양분의
골수를 쪼개어
우리를 먹여왔구나
밥심이여!
땅심을 도꾸려고
퇴비 내고 객토客土하여
우리가 뿌리고 심고 매고 가꾸어
거두어 들일 때
고봉밥 믹이고 싶지 않은
애미가 어디 있었겠느냐?
씨 뿌릴 곳이 모질라서
개골창 옆이라도 팬팬하마,
높운 데, 얖운데, 언덕빼기, 둔덕
나중에는 산삐얄 우에까지
땅뙈기가 째매라도 빼엔하다 카마
씨를 뿌려 왔구나
지일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양 두리뭉실하기 생기 가주고
생진 실증 안나는 조선 사람맹쿠로
마암씨가 좋은, 어데 시골 오촌 당숙
아재씨겉치 무덤덤한,
우리네 보리밥,
씨름선수가 씨름할 때
쫓아바리 선수가 쫓아바리 할 때
‘뒷심이 좋다’란 말
모도가 보리밥 묵고
보리밥의 밥심이
좋다란 말이다
고시考試한 사람
장관, 국회의원 한 사람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마카마카 보리밥이
바탕이었다
손기정
엄복동
안창남
이 사람들 모도가
쌀밥 묵었겠느냐?
지일로 낮고 낮은 겸허한 곳에
양산도나 아리랑 겉은
우리네의 노래가락처럼 면면하게
이어온 우리의 보리밥,
참 우리네 에미들
신통방통도 하구나
우째가주고 맨날겉치
밥 묵을 식구들은
우굴거리쌓는데 적은 양석으로
그러쿰 많은 식구의 밥을 해댔을꼬?
아, 이모도가 필시
하늘의 計量이 있었을 터!
----제3시집〈대구 211〉
우리 겨레의 유정한 식량인 보리는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다. 이미 7000~10000년 전에 보리를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 전래의 역사도 아주 오래여서 문헌상으로도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벌써 보리를 경작하였다는 흔적이 나타난다. 보리는 들판은 물론 산비탈이나 언덕배기, 심지어 개골창, 둔덕 같은 아주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 우리 겨레의 굴곡진 인고忍苦의 삶과도 한참 닮아 있어 우리와는 뗄 수 없는 고귀한 식량이다. 대중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서민적인 보리, 마치 우리네의 양산도나 아리랑 같은 노래가락처럼 면면히 이어온 보리, ‘아무려면 보릿고개라는 말까지 생겼을까?’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흉년이나 전란을 무사히 넘겨 지금의 오늘에까지 우리의 기층민과 서민들을 이어 오게 한 보리, 보리는 그야말로 우리 겨레의 눈물이었다. 특히 경상도는 논농사를 지을 땅이 귀한 지역이어서 일찍이 보리농사가 성했고 보리가 주식이었던 고로 보리를 중심으로 한 나물과 쌈 등 여러가지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 밥심 : 밥의 힘, 경상도에서는 힘을 심이라고 한다.
*고봉밥 : 밥을 그릇에 담을 때 그릇의 전 위로 높이 많이 담는 것.
*팬팬하마 : 편편하면
*빼엔하다 : 대구 방언에서 ‘빼엔하다’라는 말은 여러가지의 뜻으로 쓰인다. 1. 땅을 두고 말할 경우에는 땅이 조금의 공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뜻. 2. 아가씨 얼굴이 빼엔(반반)하다. 3. 병이 다 낳았다의 뜻. 예)아기가 고뿔이 들어서 밤새도록 콜록거리쌓디마는 새벽이 되니 좀 빼엔해졌다. 4. 하늘이 개었다의 뜻. 예)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인자사 조금 빼엔해졌구마는 등.
*쫓아바리 : 달리기
*孫基禎 : (1921~2002) 신의주 출신의 마라톤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조선인 최초로 우승하여, 일약 조선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嚴福童 : (1892~1951) 서울 출신으로 자전거 판매상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중 1913년 전 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 1922년 같은 대회에서 당당히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연거푸 우승함으로서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 조선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운 당대 조선 민족의 영웅이었다. 한때 “하늘에는 안창남, 땅에는 엄복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安昌男 : (1900~1930) 서울 출신으로 조선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였다. 미국인 비행사 스미스의 시범 비행을 보고 비행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자동차 학교를 거처 아카바네 비행기 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조법을 배운 뒤 오쿠리 비행학교(小栗飛行學校)에서 항공기 조종을 배웠다. 1921년 비행사 시험에 합격했고 다음해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고국 방문 기념 비행을 하여 대환영을 받고 조선의 영웅이 되었다.
*지일 : 제일
*우째가주고 맨날겉치 : 어째서 매일같이
*우굴거리쌓는데 :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뜻.
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 묵는 짐장뱁추짐치 잎사구 맛
묻어 논 짐장독 하나를 새로 헐었다고
동네 아낙, 대여섯이 대청마루 양지 쪼오에
오복히 모있다
모락모락 짐이 나는 방금 해낸
따신 보리밥이 한 양푸이
허슬허슬한 보리밥을
누리끼리한 놋숙깔에다가
북태산겉치 퍼담고는
온통 군둥네가 등청登廳을 하는
질쭉한 묵은 짐장뱁추짐치 한 잎사구를
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
똥구락키 따배이로 틀어
보리밥 우에다가 얹고는
뽈때기가 오볼티이겉치
미어터지두룩 아죽아죽 씹는데
그 맛이랑 기이
얼매나 기가 차던지
이때 망쿰은
사우가 꽃가매로
태야준다 캐도 싫고
늙은 배껕 영감이 주착맞구로
초지역 나절도 안 되서
요대기 깔자 카는 것도
마카 기찮을 정도라 카이끼네.
----제3시집〈대구 219〉
옛날에는 점심 나절이면 갖은 핑계를 갖다대어 이웃끼리 점심밥을 나누어 먹곤 했다. 김장 담그는 날, 된장 간장 담그는 날, 김장독 허는 날, 상추나 미나리 첫 수확하는 날, 친정이나 시댁에서 특별한 먹거리를 가져온 날, 메주 끓이는 날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참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다.
*대청마루 양지 쪼오에 : 밥심 : 대청마루 양지 쪽에
*북태산 : 北泰山. 중국에 있는 높고 큰 산
*등청登廳을 하다 : 옛날 아주 높은 벼슬아치들이 관아에 등청할 때는 시윗소리도 요란할 뿐더러 갖은 풍악을 울려 주위를 떠들썩하게 했다. ‘등천登天을 하다’가 맞는 듯하나 필자가 억지로 ‘登廳을 하다’로 써본 말이다.
*똥구락키 따배이를 틀어 : 따배이는 옛날에 여인들이 머리에 무거운 것을 일 때 머리가 짓눌려서 아프지 않게 머리와 물건 사이에 짚 같은 것을 동그랗게 엮어 끼워두는 것을 말하는데 그 시절에는 밥숟가락의 밥 위에다 김치 포기를 부욱 찢어서 동그랗게 따배이처럼 돌돌 감아서 얹어 먹곤 했다.
*뽈때기 : 뺨
*오볼티이 : 어린 아기의 뺨에 포동포동 살이 오른 모습을 오볼티이 겉다고 한다.
*사우가 꽃가매를 태야 준다 캐도 : 사위가 처부모에게 꽃가마를 태워주는 일만큼 호사스러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늙은 배껕 영감 : 늙은 남편
*요대기 깔자 : 잠자리를 함께하자는 뜻
*기찮을 정도 : 귀찮을 정도
약전골목
어데 묵은디 부잣집에
오래 묵은 조선간장 땔이는
포근하이 짭쪼롬한 냄시
겨울 안방에
눌누리하게 뜨끈뜨끈한
구둘묵서 풍기는
훈훈한 사람 냄시 섞인
구수한 미주 띄우는 냄시
머든지 주기만 할라 카시는
우리 할매 냄시
이모 고모 냄시
아, 진짜 대구의 대표 냄시,
대구 약전골목의
인심 좋은 사람겉은
초지역의 안온하민서
누굿하고 따따무리한
한약 냄시.
----제3시집〈대구 273〉
대구 약전골목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약령시로 약 350년 전으로 추정하며 이조 효종(孝宗 1650~1659)때부터 경상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열렸던 계절시장이었다. 약재가 주로 봄과 가을에 채취 수확되었으므로 일 년 중 춘령시(春令市:음력2월 초하루부터 그믐까지)와 추령시(秋令市:음력 동짓달 초하루부터 그믐까지)로 두 번 열렸었다. 지금으로 보면 조선시대 국가가 추진했던 국책사업인 것이다. 1906년 읍성이 해체되고 1908년 객사가 사라지면서 상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중부경찰서로부터 중부경찰서와 센츄럴호텔에 이르는 당시로는 가장 폭이 넓었던 종로 부근으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대구 新택리지에서 부분 인용》
*냄새라는 말과 비슷한 말의 대구방언으로 냄시와 내미라는 말이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것으로 미세하게 구분되는데 예를 들면 ‘약 냄시가 난다라든가’. ‘고기 굽는 냄시가 난다’와 같이 순간적으로 냄새를 맡았을 경우에의 ‘냄새’를 말하는 것과 ‘어데서 퀴퀴한 내미가 난다’ ‘방에서 홀아비 내미가 난다’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딘가에 배어 있었음직한 냄새를 내미라고 하는 경우인 것이다. 이를 시간 경과가 오래된 것으로 구분하면 냄새 - 냄시 - 내미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땔이는 : 달이는
*짭쪼롬한 : 약간의 짠맛이 느껴지는
*눌누리한 : (온돌방 같은 데에)약간의 눗는 내가 느껴질 정도로 뜨끈뜨끈한
*따따무리한 : 다문다문 따스하게 느껴짐
날미 미나리꽝
색깔의 바탕은
빛이라는 것을 안 것은
비산飛山 성당聖堂 옆
경부선 철둑 건너
광할한 날뫼 미나리꽝을
처음 만날 때였습니다
4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아, 초록이 초록을 이긴
초록의 바다,
파르르 떨며
새파랗게 질려 있는 듯한
미나리꽝의 초록은
‘꽝’하고 고함을 지를 것만
같았습니다
날미 미나리꽝
꽝, 꽝, 꽝,
----제3시집〈대구 289〉
날미는 날뫼로 ‘大邱市西面 飛山洞’에서 飛는 날飛이고 山은 뫼山이니 날뫼는 비산동의 어느 언저리를 말한다. 옛날 날뫼에는 여기저기 미나리꽝이 참 많았다.
시골 잔칫날
오늘은 막내이 대랜님
장개 가는 날
집안이 엄청 분답다
미느리는 동동거리고
시누이는 아지랑거리고
시에미는 예지랑시럽고
시에비는 어기적대는데
미느리 등더리에 업힌
알라는 기양 사부작거린다.
----제4시집〈대구 317〉
옛날 우리네 시골의 잔칫날 풍경인데 며느리, 시누이, 시어미, 시아비와 아기까지 해서 가족이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모든 층위에 걸쳐 집안에서 차지하는 신분상의 지위에 따라 甲과 乙의 행동거지에 확연한 차이를 엿볼 수가 있다.
*동동거리다 : 종종걸음을 치며 바쁜 모습.
*아지랑거리다 : 아무리 바빠도 바쁜 체를 않고 짭짝대면서 걷는 모습. 예) 여기에 너댓 살 먹은 말 안 듣기 시작한 고집 센 계집애가 있다. 여남은 행보 앞서서 엄마가 걷고 있는데 엄마가 아무리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해도 계집애는 아지랑거리기만 한다.
*예지랑시럽다 :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분에 넘치게 체면을 차리면서 격식을 따짐.
*어기적대다 : 일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걸치적거림.
*사부작거린다 : (대개 아기들의) 작은 몸 동작을 말함.
울진 장날
- 사람을 통해서 바라본 1950년대의 풍경
오늘은 울진 장날.
장터꺼래에는 온갖 물화物貨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는데 할배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온통 할매들 뿐인데다 할매들은 하나같이
서로가 닮아 있었다
곶감 팔러 나온 할매, 울 엄마 같고
강새이 팔러 나온 할매, 울 할매 같고
아욱 팔러 나온 할매, 우리 이모 같고
찹쌀 팔러 나온 할매, 우리 고모 같고
능금 팔러 나온 할매, 우리 장모님 같고
기장 팔러 나온 할매, 우리 처이모님 같고
말란 가재미 팔러 나온 할매, 우리 처고모님 같고
홍시 팔러 나온 할매, 우리 숙모님 같고
연근 팔러 나온 할매, 우리 백모님 같고
외숙모님 같고, 당숙모님 같고
종이모님 같고, 재종고모님 같고
처종이모님 같고, 처종고모님 같고
왕고모님 같고, 내외종 누님 같고
다시 깐 밤 팔러 나온 할매, 울 엄마 같고
다시 붕어빵 팔러 나온 할매, 울 할매 같고
울 엄마 같고, 울 이모 같고, 울 고모 같고.
----제4시집〈대구 360〉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이모, 고모는 물론 삼촌, 사촌 형님 등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모두들 자식 하나도 버거워하는 시절이 닥치고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지만 참으로 황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잔칫날이면 모든 일가권속一家眷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모님, 고모님, 작은아버님, 큰아버님, 당숙모님, 처종고모님, 내외종 오빠, 누님 등으로 불러쌓던 친족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네의 혈족부터 시작해서 그만큼 삭막해진다는 것인데, 위의 작품은 십여 년 전 아내와 울진 장날을 찾아갔을 때 참 오랜만에 시골 장날다운 시골 장터의 정감에 흠뻑 젖어들면서 그때 벌써 점점 없어져 가는 우리들 인척관계의 아쉬움을 조금 일찍 예견하였던 것인지는 아닌지?
초승달
정월 초사흘
초승달이 새초무리한데
생긴 꼬라지가
꼭 비웃장 상한 시에미
눈꼬랑대기맹쿠로
까꼴랑해졌다.
---제5시집〈대구 405〉
*새초무리하다 : 싸늘하고 찬 기운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꼬라지 : 꼴
*비웃장 상한 : 비위가 상한
*눈꼬랑대기맹쿠로 : 눈꼬리처럼
*까꼴랑하다 : 낚시바늘처럼 날카롭게 꼬부라진, 뭔가 기분이 뒤틀려 있을 때도 마음이 까꼴랑해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시시마꿈과 전칠바꿈
장독 가새는 복숭아
새미 가새는 쪽또리
축담 가새는 나팔꽃
도랑 가새는 여뀌
요론 꽃들은 요록쿰
지가 좋아하는 데서
시시마꿈 피고
이월에는 산수유
삼월에는 개나리 진달래
사월에는 영산홍
오월에는 철쭉
조론 꽃들은
조록쿰 철 따라서
전칠바꿈 피고.
---제5시집〈대구 407〉
*시시마꿈 : 각자각자가 따로따로
*전칠바꿈 : 돌아가면서 차례차례로
*새미 : 샘
*가새 : 가에, 옆에
*쪽또리 : 채송화
*요론 : 이러한
*지가 : 자기가
*조론 : 저러한
간따바리
-기여히 고놈이 일을 저질렀구마는.
글캐 새빅에 지 애비 추럭을 몰고
야시골 재 넘어꺼정 갔다 안 카디요
추럭에다가 사람이라도 칭가았시마
우짤 뿐 했노,
내사마 간이 다 벌렁벌렁 하네
-글케 올개사 재와 여남은 살 묵었다카나 머라카나
안죽 대가리에 피도 안 마린 놈이 간따바리도 크다.
---제5시집〈대구 422〉
일상적으로 말을 할 때 ‘간 큰 어른’이라고 할 때는 그대로 그냥 통용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덩치에 비하여 아주 간 큰 짓을 했을 때는 고놈 ‘간따바리도 크다’와 같은 표현을 쓴다.
*사람이라도 칭가았시마 : 사람이라도 치었으면
*올개사 재와 : 올해(금년)에 들어와서 겨우
*여남은 살 : 열 살 전후
*안죽 :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린 놈 : 갓난아이. 지금 막 엄마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직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았다.
시인 상희구 프로필
1942년 대구에서 출생
1961년 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1987년 「낮꿈」외 4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창간한
월간『문학정신』신인상으로 당선되어 등단
1989년 첫 시집『발해기행』을 상재
1996년 『요하의 달』출간
1998년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2008년 시집『숟가락』출간
2010년 連作長詩「大邱」집필 시작
2011년 連作長詩「大邱」를 월간『현대시학』에 4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2012년 2월호로 100편 연재를 끝냄
2012년 5월 母語로 쓰는 連作長詩『大邱』제1집 출간
2013년 1월『大邱』제2집「추석대목장날」출간
2014년 6월『大邱』제3집「노곡동 징검다리」출간
2015년 2월『大邱』제4집「권투선수 정복수」출간
2015년 5월『大邱』제5집「개살이 똑똑 듣는다」출간
2015년 현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E-mail : balhae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