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실
인간이 기록한 역사는 ‘왜곡된 기록’이 정답이다. 그것도 자연自然의 존재를, 신적神的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싶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 권력에의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낸, 인간 중심 승자승勝者勝 기록이 역사서歷史書이다. 따라서 역사서는 욕망의 결과를 시대별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서류에 불과하다.
인간 세상의 모든 제도 중에서, ‘다수결 제도’는 갈망에 지친 어린 백성들에게 ‘제 손으로 제 육신을 옥죄고 제 정신을 스스로 얽어매게 만드는 최상의 방안’이 됐다. 이 제도를 고마워하며 받아들인 어리석은 백성들은 이를 다수의 약자들을 보호해주는 발전된 사회제도로 착각하고 순응하게 됐다.
최근 일부 나라의 권력층은 이 제도를 통한 권력 장악을 위하여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기막힐 정도로, 말도 잘 만들어내는 권력자들의 욕망을 조감도鳥瞰圖 보듯 살펴보면, 누가 이런 생물을 지구에서 살게 만들었고 제 멋대로 살게 놔뒀는지 궁금해진다. 또한 이 욕망을 ‘자유의지’라고 포장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해 볼수록 기특하다. 아울러 이 결과가 자연 선택인 적자생존체인지 신적 선택인 창조물인지 정말! 특이한 생명체이다.
지구가 판단해도 인간들은 지구 생태계 유지에 절대 이롭지 못한 생명체인데, 왜 이런 생명체를 제 멋대로 살게 놔두고 있는 것일까. 혹시 자정 작업에 필요해서일까. 독毒도 약으로 쓴다는데, 지구도 그런 것일까.
권력의 노예로 삼는 조건에는 인간이 최상급이다. 그리하여 피부색이 틀린 인간들이나 타국의 포로를 최상급으로 쳤다. 소, 말, 낙타, 개, 순록보다 효용성이 월등하였다. 그 중에서 똘똘한 ‘년.놈’들 몇몇을 골라 완장을 채워주고 마름 정도의 권한을 맡겨주면, ‘주인의식’을 갖추고 ‘냅 둬도 알아서’ 잘들 끼리끼리 해나갔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1차, 2차 쿠션 과정을 통해 생산물을 얻어야 한다는 시간적 수고와 비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지배도구로 초창기에는 먹고 사는 경제력이었고 그 다음은 종교였으며 다다음은 교육이었다.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조선 5백년을 받쳐준 주자학朱子學, 양반 상놈 이분법 신분제도로 백성들을 농노農奴로 삼은 시스템이다.
한동안 그리해오더니, 외세에 의하여 그 좋던 시스템이 몽땅 깨져버렸고, 새로운 시스템, ‘민주’를 선택적 여지없이 주입 받듯이 도입하게 됐다. 이에 적응을 마친 최근의 권력층은 ‘생김새와 생활관습이 같은 동족들이 최상급’임을 깨닫고 말았다. 조선 이후 노예근성이 자동프로그래밍 되어있는, 눈치만 줘도 착착 움직이는, 권력층으로 진입하고픈 욕망으로 추종자들이 자생 집단화 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정치 이념’으로 스스로를 물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다른 말로는 ‘아편’, ‘마약’에 중독 되어 가는 과정에 빗댄다. 한 번 맛보면 못 끊는 특징까지 있다. 게다가 결속을 핑계 삼아 지연, 학연, 과거, 현재, 미래를 갈葛과 등藤으로 배배
꼬는 중이어서, 이 문제를 순리대로 풀어내기가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더러는 내부에서 끊는 의지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변절자’, ‘반동분자’, ‘배신자’, ‘내부고발자’라는 멍에가 씌워져 과거와 같은 사회생활이 곤란해지는 경우를 겪게 된다. 이같은 현상을 일러, 남은 인생 동안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사실, 역사에서 동시대를 살다 간 패배자들의 상황을 중계방송 하듯 써놓아야 할 공간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가 역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글로벌 인터넷 시대, 즉 ‘해인시대海印時代’가 도래하자 ‘중구삭금衆口鑠金’의 효력과 능력이 권력자들의 손에서 어린 백성들의 품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권력 통제 하에서 언론 통제, 가짜뉴스, 프로파간다, 선전선동이 잘 먹혀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이 세상 모든 물질계에서의 행적이 ‘포랜식’으로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까지 알게 된 백성들은 승자들 즉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신분을 망각한 노예들이 대들기 시작했다. 노예들을 현혹하기 위하여 권력자들이 발명(?)한 용어用語 ‘자유, 민주, 평등, 공정, 공평, 복지’ 등을 역린逆鱗하듯 들이대며 반항하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됐다. 그렇지만, 남은 방법이 단 하나 있다.
‘대홍수’로 인간들을 징벌한 것처럼 ‘신의 노여움’을 모방한 ‘팬더믹’이 있다. 2020년, 연습 게임까지 마쳤다.
지구地球 정축시대에 닥쳐올 자연의 대변화를 겪을 인간들에게, 자연재해를 빙자한 ‘대학살 실험’이 아직 남았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붙들고 매달려온 파뿌리 같은 성경聖經, 신약新約의 마지막 예언서 〈요한 계시록〉이 구현된 파괴된 지상낙원! 인구멸절의 참혹한 세상! 황량한 지구 환경! 이 그림이 ‘역사적 진실’이 될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인간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다시 철학哲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