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트레일(GIO TRAIL)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했다.
특수한 형태의 지질과 관련문화를 탐방하는 걷기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제주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지질공원으로 다양한 지질과 식생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올레가 힐링이라는 테마로 걷기에 중점을 두는 문화활동 프로젝트라면
지질트레일은 교육탐방에 좀더 중점을 둔 문화활동 프로젝트로 이해된다.
화산활동 등 지질활동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지형과 여기에서 비롯된 생물계의 형성과 변화, 인간의 적응과 활용에 따른 특수 문화의 형성 등을 살펴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엔 산방산 용머리해안, 만장굴의 김녕 월정, 성산일출봉의 성산 오조리, 수월봉 등 12개의 지질명소가 있다.
이들 트레일코스는 상당부분 이미 개발돼있는 올레길과 코스가 중첩되어 있다.
오늘은 성산 오조리지질트레일을 했다.
성산에서 종달로 넘어가는 갑문 중간에서 시작하여 오조리포구와 고산 성산포성당, 광치기해변과 이생진시비를 잇는 약 7.1km의 트레일이었다.
시간은 두시간이면 넉넉하지만 중간에서 만나는 오조리 트뮬러스, 오조리마을, 철새도래지, 4.3사적지, 일본군 동굴 유적지, 광치기해변 등을 천천히 돌아보노라면 서너시간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트뮬러스는 용암이 지표면 아래로 흐르면서 지표면이 계단층을 형성한 지질형태이다. 오조리포구 안쪽에서 그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오조리마을은 제주의 전통 가옥과 골목 등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때로는 즐거운 인테리어나 벽화 등이 트레일러를 웃음짓게 하기도 한다.
고산의 성산포성당은 멀리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매괴동산을 갖춘 한 폭의 그림 같은 성당이다.
마침 내일이면 맞이할 성모의 밤을 위해 붉은 장미화관을 쓴 성모의 미소가 더욱 아름다운 날이다.
성산일출봉의 섹시(?)한 매력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은 거대하고 날렵한 녹색 크루즈다.
언제라도 내가 원하면 저 먼 바다를 향해 떠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존심 강한 상남자의 섹시함 같은 것.
그 배는 나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자신감이다.
성산일출봉은 그런 크루즈 같은 섬이다.
제주 4.3 양민학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름도 낯선 이념의 그물에 걸려들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야했던 제주의 민초들.
제주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만명 이상의 참혹한 죽음이 있었다니,
그래서 제주도민의 제사는 한 날 한 시라니,
이 믿을 수 없는 악행이 국민을 지켜야할 군경에 의해 자행되었다니....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수없이 많은 무고한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터질목 길가 담장에 새겨진 희거나 붉은 꽃잎들이 과연 그 날의 원혼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
거창에서 광주에서 또다시 그런 잔인한 역사를 되풀이 하는 인류와 인간,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자위 그리고 뻔뻔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성산포시인은 성산을 그리워한다.
고향은 아니지만 이미 마음의 고향이니
몸으로 주어진 고향보다 마음으로 새긴 고향이 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언덕 아래 오정개에선 오늘도 제주 아낙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파도보다 먼저 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억세지만 힘센 웃음소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