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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학강좌 《문예사조》8
4 현대문학-1
《한강문학》은 《문예사조》(성기조, 1995, 한국문화사)를, ‘문학도의 필독서’로 선정하여, 17호(여름호)부터 권두에 분재한다.〈편집자〉 *강좌 순서 ⟹ 1 고대문학(17호), 2 중세의 서양문학(18, 19호), 3 근세문학(20호, ②21호, ➂22호, ➃24호), 4 현대문학-1(25호), 현대문학-2(265호), 5 작가연구 |
4 현대문학-1
IV. 현대 문학
‘문학작품의 가장 직접적인 환경은 언어적 문화적 전통’ 이라고 한 웰렉과 워렌의 말이나 ‘문학작품은 단순한 상상의 유희도, 열띤 두뇌에서 튀어나온 동떨어진 변덕도 아니며 동시대 모습의 모사이며 어떤 정신 상태의 전형’이라고 주장한 테느의 이론은 문학이 시대적 배경을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19세기에 들어 산업혁명이 급진적으로 확산되어 감에 따라 빈부의 차가 격심해지는 면이 드러나게 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사회주의 사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마르크스(1813〜1883)의 공산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기는 하였지만 사회 전체에 대해서는 큰 위협을 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점점 빈부와 노사의 대립이 격렬해짐에 따라 사회주의 사상이 고조되어 갔고, 드디어 제1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에 문학자들은 크게 문학의 사회적인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속에는 순수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더 이상 초연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문학에 있어서 사회사상이 강렬하게 색채를 드러낸 것은 20세기 문학의 큰 특색이라 하겠다. 19세기의 리얼리즘이 사회의 불공평과 부패를 폭로했던 것에 비해, 20세기에 와서는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혁명의식을 고취하고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한편, 20세기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게 되고, 그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인간들은 그 참혹한 인간 살육과 문화 파괴의 전쟁 및 거기에 수반하는 문제들로 고뇌하였다. 이와 동시에 과거에 확립된 전통이나 제도에 대한 반항에서 새길을 모색 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젊은 세대들은 반역과 부정의 외침을 쏟아내며 표현주의,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을 주창하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존의 안정된 인생관과 문학 방법을 던져 버리고, 쫓기는 사람들처럼 온갖 방향으로 예술혁명을 실험하고 시도하였다.1) 전 세기의 자연주의 작가들은 과학사의 방법을 응용해서 소설을 썼는데 이것에서 일보 전진하여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데 흥미를 가진 문학도 나타났다.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보다 인물의 마음속의 움직임에 정밀한 분석을 가하는 새로운 모습의 소설문학이 나온 것이다. 20세기 문학을 정리해 보면 난해성과 다채로운 유파, 그리고 전통 거부, 실존을 그 특징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20세기 문학은 다양한 사조가 동시대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사조중심으로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20세기를 전반기, 중반기, 후반기 등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는 일은, 경직된 개념의 틀을 설정함으로써 연구 그 자체를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20세기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문예사조란 결국 문학으로 관련을 맺게 되는 그 시대의 정신사라는 측면에서2) 이런 방법은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또한 20세기의 문학은 함부로 평가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사실적 나열의 서술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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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희보 편 《世界文藝思潮史》(종로서적, 1989), p. 495 참조.
2)김용직, 김치수, 김종철 《문예사조》(문학과 지성사, 1977), p. 2.
1. 20세기 전반기의 문예 사조
19세기의 문학사조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전개된 시기로, 현대화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다. 대표적인 사조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문학이 개화한 시기였다. 특히 이 시기처럼 지능과 상상과 감정이 만개한 적이 없었으며 수많은 천재 작가의 대거 출현이나, 다기한 문학유파가 세계문학을 지배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세기 말에 이르러 문학사조는 한 때나마 혼돈상태에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두각을 나다낸 작가도 없이 1차 대전을 맞게 되었다. 즉 세기의 종말을 의식하여 허무, 상실의 어두운 이미지를 강조하였으며, 이 구제 받을 수 없는 풍조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고뇌의 반영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모순, 정신주의와 물질주의의 격렬한 대립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는 감성이 날카로운 작가에 의해서 우발적인 경향으로 관찰되어지고 분석되어졌다. 특히 현대에 있어 작가들이 문제시하고 있는 창작의 중심과제는 자아를 확대하여 사회화하는 것이므로, 인생과 종교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현실적 문제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한 자율 윤리와 데카르트에서 성립하는 과학 이성에 대한 신앙을 축으로 한 근대적인 세계관은 19세기 시민 사회의 난세와 더불어 파생된 여러 가지의 모순이 1차 대전 발발의 결정 요인이 되었다. 하나의 시대적인 몰락은 인간의 존재를 영의 지점에 떨어지게 한다. 낡은 세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는 성립되지 않았다는 이중의 부재 상황과 그에 따른 공포감이 확산 되었다 . 그리고 이러한 현재 상실의 해명과 그것으로부터 탈출이 문제가 되었을 때, 근대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학 이른바 ‘존재의 문학’으로서의 현대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20세기 전반기 문학의 특징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허무감과 상실감이 주제가 되고 있다.
1) 영국 문학
영국의 현대문학은 빅토리아시대의 작가로부터 에드워드시대의 작가로 옮겨지며 그 분위기가 보다 심각해진다. 빅토리아 시대에 다아윈의 자연도태나 사회진화의 이론은 정통파기독교를 압박하고 있었다. 과학에서의 자유로이 대상을 탐구한다는 정신은 마침내 사회질서, 도덕질서 전반에 걸친 비판으로 이행되었다. 불안과 초조, 불만과 권태, 과민한 신경과 강렬한 욕망 등이 분출하며, 세기말 문학, 데카탕의 문학을 낳게 되었다.
1901년으로 빅토리아조는 끝났지만 아직도 살아남아 있던 수많은 전세기의 대 작가들은 그대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노익장의 하아디는 필생의 대작 《패자》를 내놓고,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고 있던 웰즈는 과학소설을 쓰고, 키플링은 여전히 제국주의의 이상을 고취하고 있었으며, 콘라드는 해양소설, 제임즈는 정밀한 심리묘사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또 쇼오는 전 세기말 경 부터 일으켰던 근대극 운동을 계속 추진하면서 점진적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20세기 초엽은 19세기의 사조와 문학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모든 빅토리아조적인 것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여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전쟁은 질서와 신념과 가치관의 일체를 파괴해 놓고는 오직 혼란과 무질서와 절망과 환멸과 회의와 불안을 안겨다 주었다.
시인 엘리어트는 전후 세계의 정신의 황폐를 상징하는 《황무지》(1922)를 읊었고, 조이스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인간 군상의 행동 뒤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을 추구하는 ‘의식의 흐름’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율리시즈》(1922)를 발표했다. 기나긴 세월을 낭만적인 꿈속에서 파묻혀 있던 예이츠는 그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 폐허 속에 새로운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는 위대한 상징파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처럼 폐허 속에서 새로운 문학정신과 새로운 문학형식이 탄생된다. 20세기 영문학의 초점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20년대에 맞추게 되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20년대 이후 로오렌스, 헉슬리, 울프 등 새로운 경향의 작가들이 연이어 나타났었다. 로오렌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암시를 받아 인간 속에 잠재하는 본능을 과감하게 캐고 들어 성을 생명의 원천으로서 찬미하였고, 헉슬리는 현대지식 계급의 고뇌와 회의를 냉혹하게 풍자하는 주지주의 경향의 작품을 썼으며, 울프는 의식의 내면세계를 천착함으로써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든 또 한 명의 ‘의식의 흐름’ 작가이었다.
그러나 30년대로 들어서면서 나찌스의 대두로 유럽은 또다시 사상의 혼란과 경제의 공황, 그리고 갈등과 분열 속에 빠지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시를 다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20세기 초기의 영국 시는 1890년대의 데카당 시들을 딛고 T. S. 엘리어트의 주지주의 시에서 개화를 보였다. 그러나 그전부터의 메이스필드(1878∼1967), 브리지즈(1844∼1930)등의 시인들의 활약과 한편으로 ‘죠지언 시파’라는 무리들이 1910〜1911년부터 출현하면서 활동, 그들의 시집을 내었고, 브르크(1887∼1955), 깁슨(1880〜1926) 등이 기성 시인들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당시 토마스 하디, 로렌스, 에드워드 토마스(1878∼1917) 등이 인기가 높았다. 특히 로렌스는 《이미지스트 시집》(1916∼1917)이라는 새로운 현대 시집도 간행했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이 시운동은 영문학상 20세기 현대시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몇몇 작가와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키플링(1865〜1936)은 다방면의 활동을 보여주었다. 민속학자, 소설가, 아동문학가, 국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영국이 여러 나라를 합병하여 옛날 로마제국 같이 되기를 꿈꾸는 제국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정글북》은 아동들의 읽을거리로 지금까지 많이 읽히고 있다. 키플링의 대표작인 《김》은 인도에서 성장한 아일랜드의 고아인 ‘김’이 나중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히말라야에서 러시아의 스파이를 잡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이야기 줄거리의 재미와 인도의 풍물이 독자의 흥미를 끈다.
한 때 그는 영국 국민의 자부심을 북돋아 주는 소설을 써서 인기를 끌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이 그의 인기절정 시대이고, 대전 후에는 인기가 떨어져서 동화작가로 기억될 뿐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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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학개론》(조용만, 고려대출판부, 1992) p. 87.
모옴(1874∼1965)은 말년에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가서야 비로소 자기 스스로를 찾게 됐다고 했을 정도로 프랑스 문학에 친밀감을 가졌다. 모옴의 소년시절은 소설 《인간의 굴레》에 묘사된 것처럼 불행한 것이었다. 40대의 중반에야 그는 세계적인 인기작가로 떠올랐다. 풍습희극의 전통을 계승하여, 전후 희극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높은 양반》, 《일주》 등에서 풍자와 궤변의 능란함을 보여 주었다. 특히 걸작인 《달과 6펜스》는 경이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인간의 굴레》도 새롭게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장편으로는 《채색된 베일》, 《과자와 맥주》, 《극장》 등 다수가 있으나, 60년대를 맞으면서부터 비로소 죽음을 의식 《크리스마스 휴가》, 《면도날》 등을 발표했다. 그는 기지와 유모어가 넘쳐흐르는 풍속희극의 작가로서, 문장은 평이, 단순 그리고 듣기 좋은 어감을 절대적인 요건으로 삼고 있다. 많은 독자를 확보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쇼오(1856〜1950)는 입센의 제자로서 인습과 우상의 파괴에 노력하였고 관객에 대하여 정신적인 혁명을 촉진시켰다. 쇼오는 런던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하던 중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 사회주의에 공명, ‘페이비언’협회를 결성하여 가두연설을 하기도 하고 극평을 쓰기도 했다. 그는 40편에 가까운 희곡에서, 날카로운 지적 통찰력에서 오는 기지, 풍자, 역설로서 사회에 대하여 기탄없는 비평을 가했다. 쇼오의 대표작에는 《무기와 인간》, 《워런 부인의 직업》,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인간의 초인》 등이 있다. 1926년, 《운명의 사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입센의 영향을 받아 연극 혁명을 시도한 쇼오는 셰익스피어 이후의 영국 극단에 사회 희극을 확립시킨 대 극작가이다.
조이스(1882〜1941)는 에이레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0개 국어를 알았고, 그 중 6개 국어에 능통하였다. 평생을 트리에스테, 로마, 파리 등지에서 지냈으며,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계속 작품을 발표했다. 전아한 정조를 기조로 한 서정시집 《실내악》을 발표하고 자서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스케치한 단편 《더블린 사람들》을 냈는데 이 작품은 후일의 대작 《율리시즈》(1922)에의 싹이 되었다. 오디세이에 바탕을 둔 3부 19개의 에피소드로 된 《율리시즈》는 1904년 6월 16일의 아침부터 야반까지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청년스티븐(티레머커스)과 유태인 리오폴드 불룸(율리시즈) 그리고 불룸의 아내 마리론 불룸 등 주인공 세 사람을 혁신적인 기법과 ‘의식의 흐름’의 수법에 의한 묘사를 보여 주고 있다. 총 735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은 난해하고 파격적인 표현과 함께 기탄없는 관능 묘사로 20세기의 문단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조이스는 항상 무너져가는 인간성을 그리면서 거기에 더욱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려고 고심하였다. 또 조이스의 마지막 작품인 《피네건즈 웨이크》에서는 수면 중의 의식을 그려 잠자는 사람의 심리상태가 전 인류의 삶과 역사를 상징한다고 다루었는데 이 작품은 12개 국어로 쓰여졌다. 특히 《피네건즈 웨이크》의 일부인《나 리비어 플루라벨》과 《하베드 찰더즈 에브류어》에서 쓰인 기괴한 언어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특이한 영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 되었다. 그의 희곡엔 《추방자》가 있다.
T. S. 엘리어트(1888〜1965)은 미국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1913년 이래 런던에 거주하다가 귀화한 시인이며 비평가이다. 그는 교사와 은행원으로 있으면서 《크라이테리온Criterion》지를 창간했으며, 처녀시집 《프루프로크와 그 외》를 내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대전 후의 사회혼란과 공허한 마음을 고발한 장시 《황무지(1922)》를 발표, 일대 반향을 일으켰고, 현대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황폐한 인간현실에 대한 환멸과 혐오와 빈정댐으로 가득 차있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황폐한 유럽의 모습을 상징적인 재료와 구성으로써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집은 ‘사자死者의 매장’, ‘체스놀이’, 익사’, ‘천둥이 한 말’ 등 5부로 되어 있다.
예이츠(1865∼1939)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의 지도자로 활약한 시인이고 극작가이다. 신비시인블레이크의 영향을 받은 그는 모국과 고 전설을 배경으로 해서 운명과 사랑과 환상을 아름답고 정묘하게 노래했다. 그가 사용한 언어의 매력, 로맨틱한 테마, 정서적 체험의 달콤함은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영국의 독자층까지도 감동시켰다. 그는 장편 서사시 《어신의 방랑》(1889)을 비롯하여 희곡 《심원의 나라》(1894), 극시 《환상의 바다》(1904), 《개슬린 백작부인》, 시집《갈대의 바람》 등이 있다. 대체로 초기엔 상징적인 환상의 세계를 노래했다. 그러나 후기 시에서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한 계열과 영국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의 경향의 합류를 볼 수 있다. 1923년 노벨상을 받은 그는 20세기 최대의 시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 변함없는 정열과 상상력으로 시를 썼다.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가 문명 전반의 붕괴와 그 고통을 시에 담았다면, 이러한 풍조는 소설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전전戰前 작가인 포스터(1879〜1970)와 울프(1882〜1941) 등의 지적 자유주의 작품은 현대 문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회의와 공포를 작품화 하고 있다. 또 이런 분위기에다 헉슬리(1894〜1963)는 새로운 자유 지성인의 불안과 히스테리컬한 풍자를 곁들여 우중충하고 무익하며 두려움에 찬 현실을 작품화했다. 1938년 이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정주하여 현대 지식인의 생활과 의식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품을 썼다. 그가 현대를 비판할 때는 자연과학의 지식을 비롯한 방대한 영역에 달하는 박식이 큰 무기가 되었다. 초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불안과 회의는 제1차 대전 후의 시류에 맞아 호평을 받았다. 헉슬리는 30년대 들어와서 미래소설 《멋진 신세계》나 《가자에서 눈이 멀어》, 《몇 여름이 지나서》, 《시간은 걸음을 멈춰야 한다》 등과 《목적과 수단》, 《영원한 철학》 등의 평론에서 불안과 회의라는 그 자신의 일면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헉슬리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흉악한 현실의 배후에 있는 신비적 세계에 도달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며 그것은 폭력을 부정하게 될 무저항의 사랑으로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2) 프랑스 문학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있어서의 프랑스 현대문학은 그 작품의 경향과 유파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어서, 문학사조상의 구획을 짓기가 쉽지 않다. 19세기 자연주의 주창자인 졸라의 실증적인 과학주의는 결정론적인 인과율의 틀 속에 인간을 몰아넣었다. 그런데, 정신세계의 모든 형상이 결정론적인 인과율로써 좌우된다면 거기에는 생동력과 정신의 자발적성을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문학의 상상력과 창조성은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보불전쟁(1870∼1871)에 패한 쓰라린 경험은 프랑스인으로 하여금 회의적인 염세사상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이로 인해 프랑스인들은 종교에의 부활, 전통에의 부활, 자발성의 고양 등을 찾게 되어 반자연주의적 문학이 일어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문학은 인간의 자유와 개별문체에 있어서의 인간을 그려낸 자연주의 문학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부르제, 바레스, 모라스, 모리악 등이 자기 나름대로의 문학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문학의 장을 펼친 것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발레리(1871∼1945), 지드(1869∼1951), 프루스트(1871∼1922)의 3대 작가였다. 베르그송의 직관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로망롤랑(1866∼1944)은 전 인류적인 휴머니즘을 담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부르제(1852∼1935)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분석하는 작품을 썼다. 그는 《제자》라는 소설을 통하여 도덕적 의식의 각성과 종교에의 부활을 형상화 하였다. 이밖에 《가혹한 수수께끼》, 《이혼》, 《대낮의 악마》, 《우리들의 행위는 우리를 쫓는다》 등의 소설에서 심리분석 외에 가정, 사회 등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전통주의를 표방하며 프랑스 정신과 가톨릭 신앙의 회복을 강조 하였다.
로망 롤랑(1866〜1944)은 연극운동과 함께 대표작 《장크리스토프》의 집필에 전념하다가 스위스 체류 중에 제1차 대전이 발발, 그 곳에서 평화를 주장하여 반전 운동을 벌였다. 이후 그는 대작 《매혹된 영혼》 등을 쓰는 한편 정치운동에도 참여했다. 희곡으로는 연작 《혁명극》, 《사랑과 죽음의 유희》 등 15편, 문예평론집에는 《민중연극론》, 《동반자》 등이 있다. 롤랑은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도 작품을 남겼는데, 평론집 《싸움을 넘어서》, 《투쟁의 15년》 등과 20세기의 정밀한 정신적, 정치적 기록이라고도 할 방대한 양에 달하는 일기와 서간을 편집 간행하였다. 로망 롤랑의 사상과 행동 전체에 일관된 특징은 프랑스 합리주의에 의거한 강력한 정의감과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는 인류 동포애를 구현하는데 있었다.
아나톨 프랑스(1844〜1924)는 어려서 철저한 고전주의자가 되었고, 청년 시대에는 고답파에 가담하여 시집 《황금시집》, 운문극 《코린트의 결혼》을 발표하였으나 그 뒤로는 모든 당파에서 떠났다. 그는 해박한 학식을 소유, 탁월한 재능을 가진 명쾌하고 음영이 풍부한 작가로 정확한 문장 기술을 하였다. 경쾌한 아이러니와 풍자는 그의 특징으로 사, 비평, 소설 등 각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몽테뉴와 18세기의 회의주의적 경향, 합리주의에 깊이 빠져 볼테르, 르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비평가로서는 객관적, 과학적 비평에 반대, 인상비평을 주장, 차츰 사회주의로 전향했다. 1921년 노벨상을 탔다. 최초의 장편소설 《시르베스트 보나르의 죄》로서 문명을 날렸다. 《타이스》, 《붉은 백합》 등은 전기에 속하는 소설이며 후기에는 급진파로 전향하여 풍자적인 작품을 썼다. 《현대사》, 《제신은 갈망함》 등은 후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프루스트(1871∼1922)는 병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였다. 그는 병실에서 15년에 걸쳐 20세기의 문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 하였다. 거의 완전히 일인칭으로 쓴 이 소설은, 전 7편 16책 4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으로,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파리의 폐쇄된 사회에서의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환기시키고 또 그 감정에 대한 명상을 담고 있다. 시간과 기억의 취급은 베르그송의 철학에 힘입고 있으며, ‘무의식 상태’의 기억을 다룬다는 점에서 프로이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앙드레 지드(1869〜1951)는 외사촌 누이 마들레스와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영혼과 육체의 갈등을 그린 《앙드레 왈테르의 수첩》을 익명으로 출판했다. 부르조아지 모럴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북아프리카로 여행, 정열과 갈증과 개방된 욕망의 구가를 보고 생명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폐병을 극복하고 상징주의 잡지에 협력, 와일드와도 친교를 갖게 되었다. 이어서 《사슬을 벗어난 프로메테우스》와 희곡 《캉도르왕》, 평론 《오스카 와일드론》을 발표하고 《배덕자》에서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을 시도, 문단적 위치를 확고히 했다. 《좁은 문》에서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 지상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헛되이 죽어가는 엘리사를 그려 신교를 비판하였고, 《교황청의 지하실》에서는 인습적 도덕을 초월한 참된 자유로운 행위를 하고 싶어, 동기 없는 살인을 감행하는 청년을 그렸다.
특히 그의 작품 《좁은 문》과 《배덕자》는 대조적이다. 《배덕자》의 주인공 미시엘은 기성적인 도덕과 인습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갈구한 나머지 실패하였는데 《좁은 문》의 주인공 엘리사는 인간적인 사랑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을 구속하고 희생한 나머지 오히려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된다. 이 두 작품은 지드 자신의 내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그리고 《전원 교향곡》은 신교와 구교의 차이를 보여줌과 동시에 무지가 행복의 조건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제시하고 《교황청의 지하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맹목적인 신앙과 교회의 당파적 정책과 기만을 풍자한 작품이다.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드는 미래의 세대에 남기는 그의 유언인 최후의 희곡 《태제》를 발표 하였다. 콩고 기행을 계기로 외부세계의 정치, 사회문제 등과 대결했다. 이러한 편력을 통하여 그는 구속과 금지의 모럴을 고집하는 타율성을 배척하고 자발성을 확립했으며, 자유롭고 자율적인 자기비판과 양심에 충실하려는 성실성의 모럴을 확립하였다. 그가 ‘20세기의 모럴리스트’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도 그의 저서가 나올 때마다 사회의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켰고 도덕적으로 퇴폐된 당시에 있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폴 발레리(1871〜1945)는 프랑스 시에서 일대 혁신을 이룬다. 발레리는 시의 순수성과 완벽한 미의 이상을 추구하고자, 상징파가 시도하는 바를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 특히 음악성을 강조하여 시에서 일체의 산문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순수시론을 발표하였다. 그는 고전주의자에 기
반을 둔 예술비평가로서,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문명비평가로서 대전 뒤의 정신적 혼란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장시 《젊은 파르크》(1917), 《해변의 묘지》(1920)와 시집 《매혹》(1922) 등이 있다.
마르탱 뒤 가르(1881〜1958)는 프랑스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사실존중의 정신, 과학적 경향의 작품을 썼다. 1908년 발표한 《생성》에서는 금세기 초엽까지 섬뜩한 예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던 정치적, 사회적 불안 속에서 헤매는 예민하고 다감한 청년들의 내적 고뇌를 그렸다. 《장 바르와》에서는 19세기말 프랑스 전국을 뒤흔든 드레퓌스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정의의 문제, 신앙과 과학적 정신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는 8부 11권의 대하소설 《티보오가의 사람들》을 발표하여 노벨문학상(1939)을 받았다.
이 시대에 나타난 유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로망(1885, 시인, 극작가, 《일궤의 생활》을 발표)에 의하여 일체주의가 제창되었으며 소위 일인일파주의로서 무수한 시파가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신상징파, 입체파, 일체파, 미래파, 다다파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신상징파(Neo-Symbolism)
상징파가 너무 지나친 주관을 강조하고 형이상학적인 신비적 정조를 상징화하려는 것과는 달리, 신상징파는 자연 가운데 직접 감흥을 받아 건강하고 밝은 일광에서의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다. 몽상 가운데서 제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이 금보다 아름답고 깊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것이라 주장한 이 주의는 ‘프랑시스 잠’에 의해 주창되었다.
(2) 입체파(Cubism)
20세기 전위예술의 한 양식으로 피카소가 시조로 되어 있는데 루이스, 윈덤 등이 이를 영국에 소개했다. 자연의 사물을 단순화시킨 화면과 선과 기하학적인 형을 써서 단색으로 그려, 동시에 여러 관점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의 구조관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몇 개의 관점을 동시에 환기함으로써 하나의 실체를 제시하고자 시도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아폴리네르, 살몽, 쟈콥 등이 있다.
(3) 일체파(Unamisme)
종래 개인을 중심으로 하고 개인과의 교섭에 시종하고 있던 문학에 대해 개인을 초월하고 개인의 모임인 각종 집단, 즉 작게는 가족으로부터 나아가 군중, 집회, 도시, 사회 등 요컨대 개인을 떠나서 개인 및 개인 심리의 인식도 이런 집단 및 집단 심리와의 융합으로 비로소 완전하다는 주장 위에 서게 된 문학운동이다. ‘줄 로망’이 제창했다. 로망에 의하면 집단은 개개인의 의식과 다른 일단一團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현상도 실상은 이러한 집단의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군중심리와 사회심리를 문예 가운데서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4) 미래파(Futurism)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접어들었을 때, 유럽의 문학 학술계는 일종의 무정부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 현상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젊은 세대의 여러 가지 움직임 가운데서 일체파 운동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미래파였다. 이 파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1900년대 초기의 시인 ‘마리네티’를 중심으로 시인 및 예술가들에게 의해서 시작되었다. 마리네티는 ‘미래파 선언’을 파리에서 발표했으며 이들은 새로이 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세계를 빛나게 하려고 했다. 그들은 노동과 쾌락과 반항에 의하여 움직이는 대집단을 노래하려 하였으며 진격적인 운동, 위험한 스릴 등을 노래했다. 즉 모든 전통에 반항하고 행동주의에 입각한 창작을 시도한 것이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따위가 나타내는 기계의 아름다움까지 파악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를 쓰는데 색채를 이용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활자를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의성어를 사용함으로써 효과를 올리고자 하였다. 대표적 작가엔 마리네티와 파올로가 있다.
(5) 다다파(Dadaism)
5년간의 1차 대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전쟁 자체의 표현, 무조직이 조직이며 무질서가 질서라고 주장한 이 운동은 1916년 광막한 전화戰禍의 와중에 오아시스처럼 남겨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일어났다. 다다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이들은 외친다. 이것은 전쟁의 공포에서 일어난 반항정신의 표현으로, 조소를 통하여 예술에 있어서의 모든 전통과 가치기준의 파괴를 지향했다. 다다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는다. 혼란 그것이 가장 동감할 수 있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다다는 일체의 어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다다이즘은 극단적인 반이성주의이며 전후에 있어서의 불안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작가엔 루마니아 태생의 차라, 화가인 한스 아르프, 독일의 문인 후라발, 휠센베르그 등 네 사람이 중심이었으나 뒤에 브르통, 수포, 아라공 등이 참가하여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이후 브르통, 수포, 아라공이 초현실주의를 제창하면서 1924년경 다다운동은 끝났다.
3) 독일 문학
(1) 신낭만주의, 신고전주의
19세기 말에 갑자기 일세를 풍미한 자연주의 문학의 생명은 극히 짧았다. 곧이어 자연주의뿐만 아니라 19세기적 리얼리즘 전체에 대한 반동으로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반자연주의적 경향이 대두하였다. 이 새 경향의 문학은 일반적으로 인상주의(원래는 프랑스의 화가 마네에 의하여 제창됨)라고 명명되어 있으나, 새 문학이 다분히 낭만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낭만주의라고 부르는 문학이론가도 있으며, 이 시기에 현대 독일시를 세계적 수준에 올린 게오르게(l863∼1933), 릴케(1875〜1926)를 상징주의자라 부르기도 하고, 자연주의를 배격하고 독일 고전주의적 전통을 재흥하려고 한 파울 에른스트일파를 신고전주의자 라고 명명하는 등 이 시기의 문학은 문학사가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 시니쮤러, 호프만시탈, 리리엔크론 등의 협의의 인상주의에 속하는 작가들과 그 밖의 20세기 대표적인 작가들이 신낭만주의란 명칭 아래 거의 망라된다. 그런데, 상징주의자라고도 불리는 게오르게, 릴케를 비롯하여 여류시인 라카르다 후흐(1864∼1947), 숄쯔, 시미트본, 빈당, 스테판 쓰바이크, 바세르만 등과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인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등은 신낭만주의에 억지로 넣을 수도 있지만, 이들처럼 본래 대가일수록 어떤 유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기의 독자적 문학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2) 표현주의, 신즉물주의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10수년에 걸쳐 표현주의가 독일 문단을 석권하였다. 이것은 외계에 의존하는 ‘인상’이 아니고 인간의 내력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표현’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문학운동이었다. 대표자는 베르펠, 카이제르, 운루 등이다. 인간의 실존과 생존을 해명하는 작가로 오늘날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는 카프카가 《변신》 등의 작품으로 현대생활의 허무와 불안을 알레고리풍으로 표현한 것도 이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기가 지난 후에 표현주의 대신에 다시 사실적 문학의 시대가 시작되어 나찌스의 집권까지 계속되었는데 이것을 신즉물주의라고 한다.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대표적 작품이다.
(3) 나찌스 시대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고, 민족주의적 국민문학의 확립을 요청하여 유태계의 작가, 국제주의적 민주주의 작가는 모조리 추방하거나 처형하였다. 그리하여 하인리히 만, 토마스 만, 쓰바이크, 바세르만, 베르펠, 되블린, 쭈크마이어 등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국외로 망명하게 되었다. 국내에 잔류한 작가 중에서 나찌스에 이용당하지 않은, 한스 카로사, 케스트너, 가톨릭 작가 베르겐그루엔 등은 국내 망명 작가라고 부른다.
토마스 만은 20세기의 위대한 작가 중에서 제일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다. 이와 동시에 그의 끝없는 철학적, 신학적, 미학적 논술 때문에 작품이 산만하고 잘 짜여지지 않아서 읽기 힘든 작가로 생각되었다, 그는 괴테, 니이체, 프로이트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새로운 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부덴브룩 집안》, 《토니오 크레겔》, 《베니스에서 죽다》, 《마의 산》 등이 있고, 제2차 대전 후에 《파우스트 전사》를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마魔의 산》으로서 이 작품으로 192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마의 산》은 19세기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명세계ᅵ에 나타난 모든 문제가 제기되어 토마스 만의 사상을 집대성시키고 있다. 장소는 스위스의 다보스 요양소이고, 시대는 제1차 대전이 일어나기 수년 전, 그리고 함부르크의 돈 많은 상인의 아를로 태어난 한스 카스토르프가 주인공이 되어서 평범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토마스 만은 나치스가 일어나기 전까지 문학자는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였지만,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쥐고 뒤흔들자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서 사회주의를 주창하였다. 그리고 대전 후에 파우스트 전설에 의해서 《파우스트 박사博士》를 썼다.
베데킨트(1864〜1918)는 독일에서 일어난 표현주의 작가의 제일인자이다. 표현주의는 외부에서 오는 인상을 충실하게 받는 자연주의 수법에 반대하여 정신을 외부를 향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물질을 초월하고, 개인을 해방하고, 인간 정신을 응시하기 위하여 모든 형식을 파괴하고, 독특한 표현 형식을 추구한다. 그의 대표작 《봄의 눈뜨기》는 청소년의 성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카이제르는 베데킨트에게서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극작가로서 《가스》와 《해전》 등 40여 편이나 되는 희곡을 써서 그 대부분이 상연되었다. 그의 희곡 《아침부터 밤까지》가 미국에서 상연되어 미국에서 표현주의 운동의 새 기원을 일으키며 ‘유진 오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가스》는 대표적인 표현주의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카프카 같은 작가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헤세는 한편으로는 심리분석적인 소설과 또 한편으로는 이상소설이라고 하는 지적인 우화의 두 극단을 방황한 작가다. 다만 그가 19세기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것만은 명백해서 그의 소설에서는 시간, 장소, 환경이 지극히 모호하게 암시되고, 모든 행동이 비현실적으로 몽롱하게 전개된다. 그의 작중인물은 문사文士, 화가와 같은 고등 인간들이고, 내용은 이런 상아탑의 존재들과 속세 생활과의 싸움이다. 작품으로는 소설 《데미안》, 《페터 카멘진트》 등이 있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반동시대인 1929년에 출판되어 독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졌다. 이 소설은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연주의 수법에 따라서 건실하게 쓴 작품이다. 다음 소설 《개선문》도 똑같은 수법으로 썼는데 작가의 성실성과 신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4) 미국 문학
1776년에 정치적 독립은 되었지만 문학의 독립에 관한 자각과 노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였다. 이 때의 미국문학은 영문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새로운 환경과 특수한 조건에 의해 지방적 특색이 짙은 문학을 낳게 되었다. 예를 들면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낭만주의 문예사조가 꽃을 피웠으며, 뉴욕을 중심으로 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사실주의 문학이 왕성했다. 미국문학은 초기에는 주로 정치사나 사회사에 의해서 그리고 후기에는 주로 문학상의 운동에 따라 구분되는 게 특색이다.
19세기 미국 국민문학 형성기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작가로는 뉴욕에서 활약한 어빙이 있다. 이어서 창작 작가로 어빙보다 더 높은 명성을 얻은 쿠우퍼,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철학적인 고찰을 주제로 시를 쓴 브라이언트, 시공을 초월한 고딕풍의 무대와 소재로 공포와 환상의 세계를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린 포우, 그리고 뉴잉글랜드의 문예부흥의 주역인 에머슨, 현대문학의 진로를 암시해 준 휘트먼 등을 위시하여 많은 작가, 시인들이 생명감 넘치는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심즈, 홈즈, 로웰, 마크 트웨인, 호웰즈, 드라이저, 노리스, 크레인, 제임스, 갈런드,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포크너 등이 대표적이다.
심즈는 19세기 전반 남부 최대의 소설가로서 작품에는 식민지 시대의 인디언 봉기 이야기인《예메시 족》과 독립전쟁의 이야기인 《유격대》 등이 있다. 남부 지방의 유일한 로맨스 작가인 심즈는 무대의 대부분을 고향 사우드 캐롤라이나주에 두고 있다. 역사물 《사우드 캐롤라이나》는 원주민과 이주민들과의 투쟁사이며, 《혁명시대의 사우드 캐롤라이나》는 노예 해방을 다룬 전쟁소설이다.
홈즈(1809∼1894)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이다. 그는 롱펠로우 등과 함께 보스톤의 귀족계급에 속하며 소위 ‘점잖은 전통’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아침 식탁食卓 시리즈’라 일컬어지는 수필집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침식탁의 독재자》, 《아침식탁의 시인》 등과 같은 수필집을 발표 하였다. 이 작품들은 깊이는 없으나 기지와 해학이 풍부하다.
로웰(1819〜1891)은 외교관 출신의 시인이다. 그는 노예 폐지론자인 화이트와 사귀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녀의 영향을 받아 사회 개량운동에 종사하였고 비평가로서 활동했다. 양키방언을 사용하여 당시의 정부를 공격한 풍자시 《비글로우 페이퍼어즈》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마아크 트웨인(1835〜1910)은 홈즈가 《아메리카 문학계의 링컨》이라고 지적하였듯이 미국의 국민적 작가가 되기 전에 인쇄공, 신문기자, 미시시피강의 수로 안내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마아크 트웨인’의 뜻은 미시시피강의 안내원들이 쓰는 용어로써 ‘두 길 깊이’라는 뜻의 안전 수역을 의미하는데 그는 뉴욕의 〈새터리 프레스〉지에 《뛰어 오르는 개구리》를 발표해서 ‘아메리카 제일의 유머 작가’라는 위치를 굳혔다. 그의 작품의 중심적 사상은 민주주의며 인간미와 유머는 그 상징이다. 작품의 성격은 자율적이며, 삽화적이며, 유머의 그늘에 깃든 인간에 대한 통찰과 풍자의 바닥에서 용솟음치는 평등과 사회정의를 작품화했다. 헤밍웨이는 “현대의 모든 미국문학은 마아크 트웨인이 쓴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나온다”라고 언급했다. 대표작엔 《톰 소여의 모험》 그 후편에 해당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이 있다.
호웰즈는 대륙의 사실주의 문학을 미국 내에 소개하고 리얼리즘 운동의 이론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정상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식자공, 신문기자 등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영문학을 공부하여 소설가, 비평가가 되었다. 그는 《애틀랜틱 먼들리》 편집에 관여하면서 여행기풍의 처녀장편 《신혼여행》과 《아루스투크호의 귀부인》, 《인도의 여름》 등을 발표하였고 소설, 시, 희곡을 섭렵하며 80여권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 호웰즈는 톨스토이 연구에 기울어지면서 사회주의에 접근, 가난한 자에 대한 자선이 아닌 정의를 요구하는 《애니킬버언》과 어느 잡지사의 편집진과 출판자의 대립을 줄거리로 한 《새로운 운명의 주사위》 등의 소설을 써서 자본주의적 경제의 모순을 표현하였다.
드라이저(1871〜1945)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완성자로서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도덕성의 타락을 비판했다. 1927년 소련을 방문하고 만년에 좌경화하였다. 그는 1892년부터 뉴욕, 시카고 둥지에서 신문, 잡지의 기자를 지내면서, 한 여인이 운명에 농락되어 타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장편 소설 《시스터 캐리》를 집필했으나,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출판을 중지 당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작품 《제니 게르하르트》에 의해 작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드라이저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 결정론을 인생관으로 삼아 스타일도 구성도 무시한 자연주의적 수법에 의해 사회의 암흑면을 폭로한 장편을 주로 발표하였다. 작품엔 《천재》, 《아메리카의 비극》, 《성채》 외 다수가 있다.
노리스(1870〜1902)는 그림을 전공하기 위하여 파리로 갔으나, 졸라의 작품을 탐독하고 그 영향으로 문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대학 재학 시 샌프란시스코의 빈민가를 그린 《맥티이그》를 발표한 바 있는 노리스는 뒤늦게 이 작품으로 크레인과 함께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의 막을 열었다. 그의 대표작엔 소맥의 생산과 분배 문제에 얽힌 서사시적 3부작인 《밀의 서사시》로서 〈초어〉, 〈소맥小麥 거래소〉와 유럽의 기근을 그린 〈늑대〉를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긴 채 32세의 나이로 요절 했다. 그의 창작 면에서의 주장은 평론집『소설가의 책임』에서 밝게 드러난다.
크레인(1899〜1932)은 단명한 시인, 작가로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연주의 기법에 의해 작품을 썼다(멕시코에서 알콜과 동성애로 고민하다가 뉴욕으로 돌아가는 배위에서 투신자살). 그의 문체는 인상주의의 수법이 짙다. 특히 빈민가의 한 소녀가 빈곤으로 하여 타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처녀작 《매기》는 뉴욕 빈민가의 추한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 고발하고 있다. 또 《적색 무공훈장》은 남북전쟁 당시의 살인과 절망이 아무런 과장도 감상도 없이 냉정히 재현되고 있다. 시작에서도 새로운 자유시의 형식을 시도하여 신시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대표 단편엔 《오픈 보트》, 《블루 호텔》, 《괴물》 등과 장편엔 《죠지의 어머니》 그리고 두 개의 시집 《흑마기사》, 《전쟁은 정답다》가 있다. 그는 강렬한 현대적 작가로서 헤밍웨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갈런드(I860〜1940)는 자본주의 사회의 결함을 폭로한 작가로서 중서부 출신이다. 주로 그는 서부 농민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그 개선책을 촉구하는 농민소설을 썼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단편집 《중앙 가도》, 《대초원의 사람들》과 장편 《다처가의 로우즈》 등이 있다. 평론집 《무너지는 우상》에서는 인상주의적 문학이론인 베리티즘4)의 설명으로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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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Veritism: 1890년대 초기 미국에서 유행한 사실주의의 하나. 개인의 인상을 사실에 비추어 보아 수정하고 이것을 바르게 표현하고자 함.
피츠제럴드(1896〜1940)는 처녀작 《낙원의 이쪽》으로 ‘미국 청년의 왕자’로 추앙 받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가장 전형적인 것을 소설에서 묘사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재즈시내의 이야기》 등을 거침없이 썼다. 대표작 《위대한 캐츠비》, 《밤은 부드러워》 등이 있으며, 《마지막 힘》을 미완으로 남겼다. 그는 1차 대전 후의 청년들의 정신적 공백을 파헤쳐 환멸을 얼버무리는 재즈의 광란, 칵테일, 바, 깽 등 주로 20년대의 세태를 예리하게 묘사하였다.
헤밍웨이(1899∼1991)는 내적인 심리상태를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하여 외적인 행동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기법을 썼다.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처녀작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라는 장편을 통해 ‘잃어버린 세대’의 인생에 방향을 잃은 모습을 여실히 그려낸다. 《노인과 바다》에서는 자연을 찬미하는 동시에 자연을 개척하는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그려,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이 있다.(26호에 계속 4 현대문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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