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회개
오 헨리
“짐 발렌타인, 소장실로!”
부지런히 구두의 갑피를 깁고 있는 짐 발렌타인에게 간수가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어요.
짐 발렌타인이 소장실로 들어서자, 형무소장이 종이쪽지를 내밀었습니다.
“짐 발렌타인, 사면장이다! 방금 지사가 보내왔어. 내일 아침 석방해 주겠다. 다시는 나를 보는 일이 없도록. 나가거든 금고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 것! 알았나, 짐!”
“예.”
대답을 마친 짐은 소장실을 나왔어요.
짐은 금고를 턴 죄로 4년 형을 선고 받고, 10개월째 복역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3개월 안에 꺼내 준다더니 이게 뭐야, 1년이 다 돼 가잖아?’
짐은 투덜거리며 감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어요.
이튿날 아침. 7시 15분.
짐은 소장실 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출감자가 석방될 때 주는 몸에 맞지 않는 기성복에다 헐렁한 구두를 신고 있었지요.
소장실로 들어간 짐에게 고향까지의 기차표와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주어졌습니다.
소장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짐에게 주면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라는 마지막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어요.
드디어 짐은 형무소 문을 나섰습니다.
밖은 햇살이 눈부셨어요. 새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짐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곧장 근처에 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통닭구이와 포도주 한 병!”
주문을 마친 짐은 아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물었어요.
짐은 그제야 자유라는 기쁨을 느꼈어요.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오자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식당을 나왔답니다.
짐은 천천히 기차역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짐은 기차역 입구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는 장님의 깡통에 25센트짜리 동전 한 닢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 뒤 역으로 들어가 기차를 탔어요.
3시간 후, 짐은 주 경계에 있는 조그만 역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역에서 나온 짐은 마이크 돌런이 경영하는 카페로 들어가 카운터에 앉아있는 마이크와 악수를 나누었어요.
“짐, 좀 더 일찍 꺼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스프링필드 경찰에서 반대가 심해서 말이야. 하마터면 지사가 생각을 바꿀 뻔했다고. 그래도 넌 운이 좋은 놈이야!”
“내 열쇠는?”
마이크에게서 열쇠를 받아 쥔 짐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갔어요.
짐은 방문을 열었습니다.
“휴우, 떠날 때 그대로군…….”
짐이 중얼거렸어요. 방 안은 짐이 형사들에게 체포될 때 어질러졌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때 짐을 체포했던 형사 벤 프라이스의 와이셔츠 깃에서 떨어진 흰 단추가 아직도 뒹굴고 있었어요.
짐은 벽 안에 박혀 있는 간이침대를 잡아당겨 꺼냈습니다. 그리고 벽의 널빤지 한 장을 열어젖히고는 그 속에서 먼지투성이인 가방 하나를 꺼냈어요. 가방을 열자, 짐이 아끼는 금고털이용 연장 세트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습니다.
최신형 드릴과 착공기, 자루가 굽은 회전 송곳과 조립식 쇠지레, 집게 장도리와 나사 송곳, 그리고 그가 늘 자랑하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연장 두 개 있었지요. 이 연장들은 900달러의 거금을 주고 산 것이랍니다.
방에 들어온 지 반 시간쯤 지나서 짐은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몸에 꼭 맞는 멋진 양복을 입고, 손에는 깨끗이 먼지를 닦아 낸 연장 가방을 들고 있었지요.
“앞으로 무얼 할 작정이야?”
마이크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나? 응, 뉴욕에 있는 숄트 스낵 비스켓 크래커 소맥분 회사에 취직이 되었어. 내일부터 취직이야.”
“뭐? 취직이 되었다구. 축하한다, 짐.”
마이크는 짐의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어요.
“고마워, 마이크.”
짐 발렌타인이 출감한 지 일 주일 뒤, 인디애나 주의 리치먼드에서 금고털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둑맞은 것은 불과 800달러였지만요. 그리고 2주일 후, 이번에는 로건 스포트에서 도난 방지 특허를 받은 개량형 금고가 감쪽같이 털렸습니다. 이번에는 1,500달러를 도둑맞았습니다. 그런데 증권과 은화는 그대로 있었어요. 이상하게 생각한 형사들이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일 주일 뒤, 제퍼슨 시 은행의 구식 금고가 털려 5,000달러의 거금을 도둑맞았습니다.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답니다. 형사 벤 프라이스도 참여했지요.
그는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짐 발레타인의 짓이 분명해! 그 녀석 또 일을 시작했군. 저 자물쇠 손잡이 좀 봐. 저 손잡이를 뺄 수 있는 집게장도리를 가진 건 그 놈뿐이야. 그리고 이 자물쇠의 회전판에 뚫린 구멍을 보라구. 짐은 언제나 구멍을 한 개 이상 뚫지 않는다고.”
벤 프라이스는 짐의 수법을 훤히 알고 있었어요.
“이번에 짐을 붙잡으면 판사도 단기형이니 사면이니 하는 바보 같은 판결은 내릴 수 없겠지!”
그런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아칸소 주의 엘마라는 조그만 읍 광장에 우편 배달 합승 마차가 도착했어요. 그리고 그 마차에서 가방을 든 말쑥한 신사가 내렸습니다.
짐 발렌타인이었어요.
짐은 호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때 한 아가씨가 짐의 옆을 스쳐 지나갔어요. 무심코 아가씨를 쳐다보던 짐은,
“아!”
하고 그 자리에 발이 얼어붙고 말았답니다.
아가씨는 ‘앨머 은행’이란 간판이 붙은 건물 속으로 사라졌어요.
짐은 건물 입구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에게 다가가며, 손님을 위해 마련된 의자에 앉았습니다.
“얘, 먼지나 좀 털어 주렴.”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 짐을 올려다보았어요. 그의 구두가 이제 막 사 신은 듯 반짝반짝 윤이 났기 때문이지요. 소년은 솔로 먼지를 털어 낸 뒤, 헝겊으로 문질러댔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까 그 아가씨가 건물에서 다시 나왔어요.
짐은 소년에게 15센트짜리 동전을 주면서 급히 물었습니다.
“저 아가씨가 심프슨 양이지?”
“아니오. 저 아가씨는 은행장님 딸인 아나벨 아담스 양이에요.”
짐은 의자에서 일어나 호텔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어요.
호텔 프론트로 간 짐은 숙박부에 랠프 스펜서라고 기입하고 방을 예약했습니다.
그런 뒤, 짐은 지배인에게 자기는 장사를 시작해 보려고 이곳에 왔다고 말한 다음,
“이곳에다 구두 전문점을 차리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어요. 지배인은 짐의 옷차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답니다.
“좋지요. 여기에는 아직 구두 전문점이 한 군데도 없거든요. 포목 가게나 잡화 가게에서 기성품 구두를 팔고 있는 형편이니까. 틀림없이 구두 전문점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짐은 엘마에다 구두 전문점을 차렸습니다.
호텔 지배인의 말대로 장사가 잘 되어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였습니다.
사교적으로도 노력을 해서 많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짐을 기쁘게 한 것은 은행장의 딸 아나벨 양과 사귀게 된 것이지요.
1년이 지났을 때, 짐의 사업은 더욱 번창했으며, 그는 읍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답니다. 아나벨 양과 약혼도 하게 되었지요. 은행장인 아나벨 양의 아버지 아담스 씨도 짐에게 홀딱 반했답니다. 아나벨의 언니 부부와도 가깝게 사귀게 되어 한 가족처럼 지냈어요.
아나벨 양과의 결혼식을 2주일 앞둔 어느 날, 짐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옛 친구에게 편지를 썼어요.
보고 싶은 친구여!
다음 주 수요일 밤 9시, 리틀로크의 설리반네 집으로 와 주게. 좀 의논할 일도 있고, 내 연장을 자네에게 주고 싶네. 1,000달러를 주어도 이런 연장을 구할 수 없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난 옛날의 그 일에서는 손을 떼었네. 1년 전부터 이 곳 엘마에 가게를 차렸는데 장사가 잘되고 있지. 그리고 2주일 후엔 천사 같은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네.
이젠 1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남의 돈은 1달러도 손대고 싶지 않다네. 이건 진심이야. 나를 믿어 주게.
그럼, 다음 주 수요일에 설리반에 집에서 보세.
옛 친구 짐.
짐이 편지를 보낸 그 다음 주 월요일 밤, 형사 벤 프라이스가 전세 마차로 엘마로 왔습니다. 그동안 짐에게도 현상금이 붙어 있었어요.
현상금에 눈이 어두워진 짐의 옛 친구가 짐에게서 온 편지를 벤 프라이스에게 보여주고 말았답니다.
벤 프라이스는 읍내를 돌아다니며 짐에 대한 정보를 모아 들였어요.
‘뭐, 랠프 스펜서라고? 정말 웃기는 일이군. 네가 은행장의 딸과 결혼을 한다구? 어디, 두고 보자.’
이튿날 아침, 짐은 약혼자인 아나벨의 집에서 아침을 먹었어요.
그날은 예복도 맞출 겸 아나벨에게 멋진 결혼 선물을 사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요.
아침을 먹고 나서 짐과 아나벨의 가족은 모두 함께 번화가로 나갔답니다.
아나벨과 가족은 아나벨과 아버지 아담스 씨, 아나벨의 언니, 그리고 아나벨의 언니가 나은 9살과 5살 난 아나벨의 조카 등 모두 다섯 명이었어요.
그들은 짐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잠시 머물렀어요.
짐은 자기 방으로 올라가 연장 가방을 들고 내려왔어요. 그리고 모두 은행으로 갔답니다. 은행 앞에는 짐이 역까지 타고 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 우리 들어가 차나 한 잔하며 새로 들여 온 금고를 구경해 보도록 하세.”
하고 은행장 아담스 씨가 짐과 가족들을 돌아보며 말했어요.
모두들 은행장의 사무실로 들어갔습답니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 은행장의 안내로 모두가 금고실로 몰려갔어요.
새 금고는 특허를 받은 문이 달려 있고, 손잡이 하나로 모든 것을 동시에 조자할 수 있는 세 개의 강철 빗장으로 닫게 되어 있었답니다.
그리고 시한장치의 자물쇠가 붙어 있었지요.
아담스 씨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새 금고의 조작법을 짐에게 설명해 주었어요. 그러나 짐은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답니다. 아나벨의 조카인 애거더가 신기한 듯 금고 안을 들여다보며 손잡이를 만지작거렸어요.
가족들이 금고를 구경하고 있을 때, 방문 안으로 슬쩍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형사 벤 프라이스였어요. 아담스 씨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당신은 누구요?”
벤 프라이스가 금고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어요.
“예, 사람을 좀 찾느라구요.”
이때, 벤 프라이스의 눈과 짐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짐의 눈이 당황한 듯 가늘게 떨렸어요.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들어와 사람을 찾는 거요? 도대체 찾는 사람이 누구요?”
“아, 예. 여기에는 없군요. 죄송합니다.”
하고 벤 프라이스가 몸을 돌려 금고실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어요.
짐이 돌아보니 아나벨과 아나벨의 언니가 금고문을 두드리면서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 옆에서 메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어요.
금고 속에 다섯 살짜리 애거더가 갇힌 것입니다. 어른들이 벤 프라이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 메이가 애거더를 금고 속에 넣고 문을 잠근 뒤, 할아버지가 하던 대로 다이얼을 돌려 버린 것이었어요.
“이거 야단났군.”
금고 문의 손잡이를 몇 번이나 당겨 보며 아담스 씨가 힘없이 말했어요.
“시계의 태엽도 감아 두지 않고, 콤비네이션 자물쇠도 맞추어 놓지 않았어.”
“그럼, 이제 어쩌면 좋아요!”
애거더의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리틀로크에 가면 이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애가 숨이 막혀 죽고 말 거예요! 누가 이 문을 부수고서라도 우리 애 좀 꺼내 주세요.”
아나벨이 눈물을 글썽이며 짐을 보고 말했어요.
“어떻게 할 수 없나요? 랠프,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네?”
짐은 아나벨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나벨, 당신의 장미를 내게 줄 수 있겠소?”
아나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가슴에 핀으로 꽂은 장미를 뽑아 랠프에게 주었어요.
아나벨에게 받은 장미를 조끼 윗주머니에 꽂은 짐은 웃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여러분, 모두 문 앞에서 비켜나세요.”
짐은 연장 가방을 열었답니다. 가방 안에는 금고털이 연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이제 짐은 옛날의 금고털이 짐 발렌타인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내려다보고 있는 아나벨 가족도, 벤 프라이스도 짐의 의식 속에 없었어요.
짐은 늘 하던 버릇대로 조용히 휘파람을 불면서 가방에서 기묘한 연장들을 재빨리 꺼내어 순서대로 늘어놓았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짐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1분이 지나자, 짐의 드릴이 강철을 매끄럽게 뚫고 들어갔습니다.
8분, 9분, 10분.
드디어 짐은 이제까지 자신이 세운 기록을 깨며 금고의 문을 열었답니다.
“아, 애거더!”
애거더의 엄마는 짐의 팔에 안겨 나오는 기진맥진한 애거더를 받아 안으며 소리쳤어요.
아나벨의 가족은 모두 애거더를 둘러싸고 기쁨에 젖어 있었습니다.
짐은 가방을 들고 조용히 금고실을 나와 천천히 은행 입구로 걸어 나왔어요.
입구에는 형사 벤 프라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짐도 미소를 띠며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벤! 자, 갑시다.”
그런데 벤 프라이스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떨어졌어요.
“스펜서 씨, 뭔가 착각하고 계시군요. 전 선생 같은 사람을 만나 뵌 적이 없는데요.”
말을 마친 형사 벤 프라이스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