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38]《나, 고자야!》
몇 년도에 있었던 일인지, 어느 지역에 살 때의 일인지
밝히지 못하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1. 속 썩이는 남자.
내가 그 지역으로 이사 가고 나서 며칠 후,
그 동네 토박이라는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나에게 이러는 거예요.
『이사 왔으면 떡을 돌려야지, 왜 떡을 안 돌려!』
나보다 몇 살 위로 보이기는 하지만, 나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
처음부터 말을 놓더라구요.
기분이 나빴지만, 어쩌겠습니까. 내가 이 동네 신입인데!
그래서 다음 날 시내 가서 떡을 사다가 몇 집에 돌렸어요.
그런데, 그 며칠 후, 이 남자가 오더니 또 이러는 거예요.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빗자루 가지고 동네 입구 쓸어!』
어라, 이게 뭔 소리야.
먼저 떡 이야기는 내가 아무 불만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번 이야기는 성격이 다르잖아요.
시골에는 어디든 봄가을에 한 번씩 마을 대청소하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건 당연히 해야겠지만
이건 나 혼자 하라는 거잖아요.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만 생각하니 시키는 대로 하면서 그냥 당하면
나중에는 완전히 호구 잡혀서 내 삶이 고달파지겠는 거예요.
그래서 분명히 말했어요.
『그건 못 해요!』
동네 사람들에게 왕따 당할 각오하고 이렇게 정면으로 맞받았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 밤, 걱정이 돼서 잠이 잘 안 오더라구요.
요즘 시골 인심이 옛날 같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무서워요.
집터도 좋고, 주변 경치도 좋아서 새 집 짓고 시골로 이사 갔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왕따 당해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이사하는 경우가
예상외로 많습니다. 무서워요, 요즘 시골 사람들!
그렇게 속으로 걱정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그 남자가 당뇨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이 들려와서
『옳지, 이 때다!』 하고 잽싸게 문병 가서 큰맘 먹고 봉투에
거금 3만 원(지금 돈으로는 약 7~ 8만 원 정도) 넣어 주었더니 그다음부터는
길에서 나만 보면 환하게 웃어주고, 부담 주는 이야기도 일절 없더라구요.
결국은 뇌물 3만 원으로 속 썩이는 남자 해결한 거죠.
2. 속 썩이는 여자.
여자: 『식구가 없어요?』
강봄: 『예.』
여자: 『왜 혼자 살아요?』
강봄: 『결혼을 못 했습니다.』
여자: 『애인은 있을 것 아녜요?』
강봄: 『애인 사귀면 돈 들어서 안 사귑니다.』
이사 간 지 한 달쯤 됐고,
속 썩이는 남자를 간신히 떼어버린 후 좀 살만해지니까
이번엔 여자가 바통을 이어받고 등장해서 속을 썩이더라구요.
텃밭에 풀을 뽑고 있는데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듯하다가
나를 보고는 마당으로 들어오더니 꼬치꼬치 캐묻는 거예요.
저거 말고도 많은 걸 묻고 답했지만 생략하고...
나중에 동네 사람에게 전해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 여자는
나이가 나보다 일곱 살 위.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서 과부 5년 차.
베트남 여자 세 명 데리고 집에서 하는 가내수공업으로
남자 못지않은 월수입에 과부치고는 재산도 좀 있는 편.
좀 과장된 것 같지만 동네 사람 말로는 남편 죽었을 때 이 여자 엄청 좋아했다고.
날마다 술만 퍼먹고 일은 안 하는 통에 골머리가 아팠는데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보험회사 몇 군데에서 나온 보상금이
8천5백만 원!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독실한 불교신자에 성격은 남자처럼 덜렁거리면서도 통은 좀 큰 편.
성격이 그래서 남편 죽은 후 애인을 금방 사귈 줄 알았는데
의외로 5년째 독수공방이라고.
근데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애인 없는 이유는 알겠더라구요.
만일,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그 여자 얼굴을 봤다면
대번에 알 거예요. 왜 애인이 없는지.
그날 이후로 내가 이 여자에게 엄청 시달렸어요.
며칠 후 저녁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봤더니 그 여자였고
총각이라 반찬을 못할 것 같아서 김치를 좀 해왔다는 거예요.
그때는 처음이라 별 부담 없이 받아먹었어요.
그리고, 털털한 성격과는 다르게 김치가 맛있더라구요.
근데, 며칠 후에 또 가져와요. 김치는 아니고, 다른 반찬을.
며칠 후에 다른 걸 또 가져와요. 그렇게 이삼일 단위로
각종 반찬에 국, 찌개, 매운탕, 부침개...
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겠더라니까요.
여기는 작은 시골 마을이잖아요.
소문 한번 잘못 나면 엄청 시달리는 데가 시골인데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더라니까요.
그래서 내가 정중하게 이야기했어요. 앞으로는 음식 가져오지 말라고.
그랬더니, 자기 먹을 거 하면서 조금 더 해서 반찬 못하는 총각 좀 주는 게
뭐 어떠냐면서 계속 가져오는 거예요.
근데, 이 여자 말이 안 맞는 게, 이 동네엔 나 말고도 결혼 못해서 혼자 사는 노총각이
세 명이나 있었어요. 그 사람들 한테도 반찬을 좀 해주면서 나도 준다면 이해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안 주고 나만 주니, 내가 부담 안 갖게 생겼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자기 집에서 몸뻬 입고 일하다가 나한테 음식을 가져올 때는
바로 코 앞인데도 치마로 갈아 입고, 입술에는 시뻘건 립스틱을 디립따 칠하고 오는데,
참, 환장하겠더라고요.!
그거까지만 해도 괜찮겠는데, 나중에는 자꾸 불러내요. 밖으로.
점심, 혹은 저녁에 외식을 하는 거죠. 처음에는 전화를 해서 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문자로 일방통보를 하기에 이르렀어요. 몇 시에 어디로 오라고.
돈도 다 자기가 내요. 나도 가끔 한 번 사려고 하면
글 쓰는 총각이 무슨 돈이 있냐면서 걍 무대뽀로 자기가 내더라구요.
정말이지 더 이상은 안 되겠어서 내가 딱 잘라서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는 밥 안 얻어먹겠다고. 그랬더니 이 여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하고 다니는 게 쪽 팔려요?』 이러는 거예요.
내 속을 들킨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하더라구요.
까놓고 말이지만, 그동안 엄청 쪽팔렸어요. 같이 길을 가거나 식당에 들어갔을 때
내가 주위 사람들 눈치를 살피는 이유가 그거예요. 내가 이렇게 못생긴 여자하고
같이 있다는 게 너무 창피하고,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하지만,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막 아니라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아주머닌 참 매력 있고 예쁘신 분이라고,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막 했더니
이 여자가 헤~ 웃는 게, 그 말을 진짜로 믿는 눈치 더라니까요.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기를 『누나라는 말이 안 나와요?』
이러는데, 참 환장하겠더라구요!
정말 심각했어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더라구요.
『저녁 먹으러 가게 내 차 있는 데로 와요.』
이런 문자가 왔을 때 『그냥 집에서 먹을게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이상하게 그 여자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겠더라니까요.
평소에 결심은 단단히 해요. 「전화나 문자 오면 딱 잘라 거절해야지!」
근데, 실제로 전화나 문자가 오면 안 되더라니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그 여자에게 돈 얘기를 했어요.
50만 원만 꿔 달라고.
물론 내가 50만 원이 없어서가 아니고, 갑자기 쓸 데가 생겨서도 아니에요.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여자가 「어! 내가 자기 좋아한다고 돈 뜯어먹으려고 하네!」
이러면서 나한테 정이 떨어질 것 같아서 돈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더니, 『아, 그래요? 잠깐 기다려요.』 하면서 집에 들어가더니
봉투를 하나 가져다가 주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돈을 꿔줘도 은행에서 찾아다 줄 줄 알았는데
50만 원 정도는 그냥 집에 두고 산단 말인가?
어쨌거나 내 작전은 실패했고, 돈 50만 원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 여자에게
코를 더 바짝 꿰었어요. 나중에 생각난 건데요, 실패의 원인은 「50만 원」에 있었던 것 같아요.
500만 원을 꿔달라고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순진하게 액수를 너무 적게 부른 거죠.
그 후로도 계속 끌려다니다가
내가 드디어 그 여자의 손에서 해방된 건 그로부터 몇 달 후였어요.
「풍선 주딩이」가 무슨 뜻이냐면, 이 동네 노총각 SH의 별명이에요.
입이 하도 싸고, 입이 하도 가벼워서
그 노총각한테 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느라고
동네를 한 바퀴 돈대요.
만일 밤늦게 무슨 말을 들으면, 이웃집 자는 사람 깨워서라도 말을 전해야
자기도 잠을 잔다는 거예요.
어느 날, SH를 내 집으로 불러 놓고 술을 한 잔 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20대 초반에 내가 전라도 무등산으로 혼자 등산을 갔다가
돌 비탈에서 미끄러지면서 뾰족한 돌에 자지 밑을 콱 찍혀서 부상을 당했어요.
엄청 심하던 통증은 한 삼일 만에 사라졌는데, 자지가 안 서는 거예요.
그때 사귀던 애인이 있었는데, 막 빨고 별 짓을 다 해도 안 서더라니까요.
가슴이 철렁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수술을 하라는 거예요.
건강보험이 안 돼서 돈을 3백만 원이나 주고 수술을 했는데, 그래도 안 서요!
수술하고 한 달 안에 발기가 될 거라 그랬는데, 석 달이 지나도 안 되더라니까요.
그래서 병원에 쫓아가서 막 따졌더니, 원무과장이 봉투에 30만 원을 넣어주면서
죄송하다고, 될 것 같아서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자기네도 몰랐다고, 하지만
수술 효과가 1년 후에 나타날 수도 있으니 기다려보라면서 막 죄송하다 그러는데
내가 뭐 할 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왔어요.
사귀던 여자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 자지가 안 서니까
다른 남자한테 시집 갔구요.』
그로부터 며칠 후, 마당에서 뭔가를 만들려고 그라인더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그 과부 아줌마였는데, 엄청 험악한 얼굴로 소리를 막 질러요.
그래서 내가 아니,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왜 이렇게 소음을 일으켜! 오늘 일요일이라서
직장 다니던 사람들 다 쉬고 있는데, 왜 이렇게 큰 소음을 일으키냐고! 이런 걸 해도
평일에 해야지, 왜 다른 사람들 쉬지도 못하게 시끄럽게 하냐고! 작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교양이 없어?』 이러는 거예요. 허!...
그러니까, 그라인더 소리가 시끄럽다고 온 건데, 갑자기 나한테 반말을 하면서
고래고래 악을 쓰더라니까요. 사람이 완전히 180도 달라진 거예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아, 내가 고자라는 말이 벌써 이 아줌마한테 들어갔구나!」
그렇게 짐작이 가더라구요. 그리고, 옷도 안 갈아입고 몸뻬 차림으로 그냥 왔고
입술에 뻘건 칠도 안 하고 온 걸 보면, 내가 고자라는 말을 듣고
「다 틀렸구나! 이 놈이 고자인 줄도 모르고 내가 이제까지 헛 돈 썼구나!」
벌써 그런 표정이더라니까요.
아주머니는 그라인더 소리 한 번만 더 나면 경찰 부를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엄포를 놓고 가셨고, SH 덕분에 그 후로도 이사할 때까지 나는 아~ 주 편하게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가끔, 혼자 커피를 한 잔 끓여놓고 창밖을 보고 있을 때
그 아줌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나도 이젠 늙은 것 같습니다.
2022년. 1월. 30일.
제1차 세계 민중혁명.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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