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도랑 치다 -사설시조 /김기수
대여섯 마지기 문전옥답에 벼농사 지어야지
출가된 두 딸일랑 제하고 대학 갈친 아들 삼형제가 시골에 모여라 하여
남 논 한 켠을 거저 빌려 못자리하던 날
여든 넘은 아버지는 경운기에서 모판 내려주기
허리 아프다는 나와 어머니는 진흙 뻘을 왕복하며 모판 옮겨주기
일에는 끈끈하다는 형과 쬠 더 젊은 동생은 허리 구부려 고난도의 모판 놓기
늙어 가는 어머니와 내가 씩씩 퍼렇게 입김 토하며 쉴 때
동생이 몇 발짝 마중 나와 짐 받아가는 센스에
도요다 생산시스템보다 더 잘된 분업으로 한 시간도 안 되어 끝나고
신작로 아래 도랑에서 요즘 고향 물 내음은 어떤지 또 진흙 발을 씻어야지
4대강 사업인지 동네 두어 폭 지류까지 완전 까뒤집어버린
정부에 고마운(?) 심정으로 내 놀던 도랑에 간만에 발 담그고는
물고기에 장난하려 풀섶 뒤져봐도 벌레들 산 송장 만나기보다 귀하고
수량水量에 비해 불필요하게 넓어진 면적을 포크레인이 바닥을 할퀸
손톱 자국의 폭으로 쫄쫄 흐르는 물이 가엽도다
진주목에 돼지목걸이 같이 가당찮고 허탈이라
신라시대 포석정도 아니고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동네 도랑을
화강암 석벽 쌓고 부작용 난 성형수술처럼 참 안 어울리게 해놨으니
그 물에 발 씻으려는 내가 어처구니없는 짓 같았는데 그때 동생 따라 들어오고
어머니 유리조각 조심하라 따라 들어오시는데 물길 참 어색하게 변했어도
그래도 어린 추억의 모습을 생방으로 살려 냈으니 기분 찝찝 삼삼 하더라
아픈 허리 뒷짐에 집으로 발걸음 재촉인데 어머니가 뒤에서 꼼지락 이시다
플라스틱 바가지 깨진 거며 인삼 농사에 쓰이던 차양막이며
버려진 장화 짝을 주워 둑 변 한쪽으로 정리 중이시더라
막 하늘 노랗도록 힘든 몸으로 오물 줍고 아예 도랑 치는 게라
4대강 사업 말고 울 엄마 손처럼 도랑이나 잘 쳐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장이 그렇게 버리지 말라고 방송을 해도 아직 양심을 파는 이가 있는 겨
누군가 아직 모르고 하겠지 하신다
한 말 거들어 요즘은 반상회도 안 하느냐고
그리고 배고프고 피곤타 그만하고 어이 가자고 했지만
국졸도 못하신 어머니가 대졸 아들 쉬라 하고 허리 굽혀 저러신담
이건 자식 더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어머니의 본능의 몸짓이다
봄 가슴이 찡하다
동네 찾아 드는 외지인에게 깨끗함 보여 주고 싶은 것이고
못 배운 당신, 사는 동네 수준 높다고 몸으로 말하고 계신 것이라
뒤통수가 아찔토록 어머니에게서 깜짝 지구를 내려 배운다
어머니의 본능, 제게도 좀 남아 있나요 예?
아픈 허리 잊고 희비喜悲 섞인 상으로 집으로 가는 동안
낯짝이 따갑도록 연신 봄볕이 매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