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괴로워
최용현(수필가)
“태환아,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 아빠가 사줄 테니까.”
사우나를 나서면서 내가 묻자, 오늘 웬 일이냐는 듯 태환이가 나를 한 번 힐끗 올려다보고는 바로 대답했다.
“피자요, 아니면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랑 콜라 사먹는 것도 좋고….”
“알았어, 롯데리아엔 다음에 가고 오늘은 피자 사줄게. 그 대신 피자 먹고 나서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야 돼.”
“병원엔 왜요?”
“응, 주사 한 대 맞으면 돼.”
“……….”
나는 태환이랑 함께 한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텅 비어있었다. 사우나에 갈 때마다 태환이에게 빨리 포경수술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애들이 포경수술 한 것을 사우나에서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다. 일찍 시켜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잡지에서도 여러 번 보았었다.
태환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 벌써 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면 이제 곧 3학년이 된다. 어제 아내가 우리 동네에 있는 비뇨기과의원에 전화를 하여 오늘 오전 11시에 수술받기로 예약을 했었다.
피자가 나왔다. 나는 여섯 등분 중 두 조각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태환이에게 주었다. 태환이가 맛있게 피자를 먹는 것을 보며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제대를 앞둔 고참들이 밤에 의무실에서 포경수술을 받고는 통증 때문에 내무반에서 끙끙 앓는 것을 보곤 했었다. 나도 포경수술을 해야 할 처지였는데 의무실에서 하는 것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휴가 때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휴가 때 부산 충무로에 있는 한 비뇨기과에 찾아갔다.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벗은 바지 쪽에는 커튼을 쳐주었다. 커튼 너머에서 계속 사그락 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마취주사 때문인지 아픈 감각은 전혀 없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미스 임, 수술이 잘 됐는지 시험 한 번 해볼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도의가 간호사에게 농담으로 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의식은 또렷했던 것 같다.
수술이 끝나자, 간호사가 수술부위를 흰 붕대로 칭칭 감아주었다. 무슨 영화에서 본 미라 같아서 피식~ 실소가 나왔다.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오니까 빨리 집으로 가란다. 시간에 맞춰서 약을 먹되, 술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실을 뽑으러 오라고 했다. 그땐 휴가 기간이 25일이나 되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펭귄 마냥 뒤뚱거리면서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니나 다를까 마취가 풀리니 격심한 통증이 왔다. 소변이 마려울 땐 통증이 더욱 심했다. 그 부분이 벌겋게 부어올라 엄청나게 팽창되어 있었다. 늘 텐트(?)를 치고 있어서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불편했다.
며칠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7일째 되는 날 그 병원에 갔다. 미스 임이 조심스럽게 실을 뽑아주었다. 그놈이 좀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또 텐트를 치는 바람에 핀셋이 그 부분을 건드릴 때마다 따끔하면서도 짜릿한 통증이 왔다. 이윽고 ‘다 됐어요.’ 하면서 미스 임이 도구를 챙겨서 나갔다. 후련했다.
집에 오는 길에, 모처럼 해방된 기분에 친구들과 탁구장에 갔다. 탁구를 치다가 그 부분이 탁구대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탁구장 바닥에 드러누워서 그 부분을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탁구장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죄다 몰려왔다.
“아빠, 다 먹었어.”
태환이의 목소리가 나를 추억에서 깨어나게 했다. 피자 접시는 물론 콜라까지 깨끗이 비어있었다. 이렇게 잘 먹는 것을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나 싶었다. 가끔씩 애들에게 피자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어서면서 말했다.
“자, 이제 병원에 가야지. 태환이 주사 맞아도 안 울 거지? 전에 예방주사 맞았을 때도 안 울었다지.”
“……….”
병원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였다. 걸어가기로 했다. 나중에 올 때는 택시를 타기로 하고. 병원에 도착하자 곧바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태환이가 울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간호사가 잘 구슬린 탓인지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데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 다 끝났으니 들어가 보세요. 가실 때 약 타가지고 가시고요.”
태환이는 그냥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 부분은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가 좀 애처로웠지만 조심조심 바지를 추어올려서 데리고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아내가 이불을 깔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 일곱 살인 태희에게는 오빠가 수술을 받아서 아프니 절대로 오빠 곁에 가지마라고 엄명을 내려놓았다.
요 위에 뉘었다.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헐렁한 잠옷으로 갈아 입혔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고 야단이다. 그 부분을 건드릴까봐 이불을 덮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 문제였다. 소변보는 것이 고통스럽단다. 아내가 화장실까지 따라다녔다. 밤엔 잠도 못 자고 끙끙 앓았다. 그때마다 아내도 일어나 함께 앓았다.
하룻밤 자고 나니 좀 나아진 듯 했다. 밥은 아내가 떠먹여 주었다. 태환이가 볼만한 비디오를 빌려와서 줄줄이 보여주었다. 비디오를 다 보고 나면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게임을 할 때만은 신통하게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아내가 모조리 사주었다. 양념통닭, 신포만두, 피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태환이가 왕자처럼 행세하는 동안 태희는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나도 수술 할래. 맛있는 거 사줘.’ 하고 칭얼대는 태희를 보고 아내가 닭다리 하나를 쥐어주며 문밖으로 쫓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환이가 누운 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태희는 좋겠다. 그런 수술 안 해도 되고. 아, 남자는 괴로워.”*
첫댓글 정말좋은글이네요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고마운 말씀, 감사합니다.
ㅎㅎㅎ.저는 맹장염으로 후송병원에 입원해있을때 의무병에게 담배값주고 했었죠.
아~ 그때의 그 아픔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수가없지요. 도저히 이 지면에서는 쓸수가 없군요.
74년 겨울이니 벌써 많은세월이 흘렀군요,미쓰임이 실밥뽑았으니 얼마나 좋으셨겠습니까? 미쓰임이 아니라 임상병이
뽑으며 얼마나 겁줬겠습니까? ㅎㅎㅎㅎ
고참 때 졸병 의무병이 그 수술을 해주면 괜찮은데,
고참 의무병이 해주면 온갖 수모를 겪으며 고통을 참아야 했으니...
사제로 하니 미스 임의 볼이 약간 상기되면서 진지하게 실을 뽑아주었죠.
요새는 어릴 때 수술해야 한다고 하니 그런 스릴은 없어졌죠.ㅎㅎ
수술이라면, 발목에 금이가서 뼈가 어긋나지말라고 못<?>을 박았는데 얼마가 지난후에
못을 빼는데 마취를 안하고 빼면 빨리 아문다고해서 마취안하고 못을뺐는데 그때 수술과정을 지켜보니까
의사왈 "뭘봐?" 하기에 "못빼는것이 궁굼해서요" 했다.ㅎㅎㅎ
마취를 안 하고 발목에 박힌 못을 빼다니 대단하시네요.
마취를 하면 사각사각하는 소리만 나고 통증은 없지요.
물론 마취가 깨면 그 고통 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지만...
여자가 아이낳는 고통을 남자들은 죽어도 모르잖아요....
같은 이치죠.....
조물주가 사람 만들기를 정말 비스무리하게 고통을 소화하게 남여를 만들어 놓았내요^^
오늘도 즐거운 꽁트 잘 읽고 갑니다...
남자가 고래잡을(?) 때는 마취를 하니까 여자의 아이 낳는 고통보다는 덜 하겠지요.
마취가 깨면 아마 그 고통의 강도가 비슷할 것 같네요.ㅎㅎ
감사합니다.
후후
ㅎㅎ
ㅎㅎ
아주 오래전에.. 울 아들을 포경 수술 해 주었을때... 아기때 였어요
아기땐 아파도 말을 못하고.. 그냥 칭얼대기만 했죠
그래서 아기때 해 주라고 들 하나봅니다
서양에선 태어나서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안하면 퇴원을 안시켜 준다든가 ... 뭔가...
그땐 수술 부위가 닿지않게.. 종이컵을 잘라서 씌웠지요..
종일 텐트를 치고 있다는 ㅋㅋ
암튼
남자들도 괴롭긴 매 한가지네요~~
글 참 재미 있습니다
아, 어린 아드님을...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뭘 모르는 어릴 때 수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후일 만나게 되는 배우자가 더 좋아할 것 같아요.ㅎㅎ
저도 군에서 휴가 나왔을때 했었내요~~^^
층청도 고향에서요 옛생각이 나네요
휴가 나와서 하신 분도 더러 있군요.ㅎㅎ
잼나게 읽었네요.
남자나 여자나
자기몫의 고통은 다
지고 사네요 ㅎㅎㅎ
그렇지요.ㅎㅎㅎ
엉거주춤 벽을 잡고다니던 고참 생각이 나는군요... ㅋㅋ~~
더러 보던 장면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