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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가 하는말 중에서, "개똥밭에 굴러 있어도 이승이 좋다."고 합니다.그런데 이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고...어쩌면...다를 수도 있습니다.즉 - 죽은 사람에게 '삶'이란"기쁜일이 아닐 수도 있잖겠습니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하는짖이 다른...제가 아는 몇사람의 장교분들을 여기에 올려 봅니다. 
1965년 10월4일.. (이때는 제가 gop 백마 28연대 신병교육 2중대에서 조교로 근무할 때 입니다.) 越南戰에 投入되기 직전 마지막 훈련을 받던 중에 수류탄 校場에서 부하가 던진 수류탄이 많이 집결되여있는 부하들 사이로 떨어지자.수류탄 위로 자신의 몸을 던져 그많은 부하들을 求하고 자신은 장렬히 散花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나 하나를 희생해서라도.."부하들을 求하겠다는 殺身聖人 精神. "위대한 것은 죽음이고 인간은 그 죽음속에 산다"고 는 하지만,部下의 터무니 없는 失手로 육사출신으로 당시 30세의 꽃다운 청춘이 스러져 갔습니다. 그 때 실수의 장본인이 지금 살아 있다면 평생 罪의식 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재구님이 지금 생존해 계시면 77~79 세 정도 되셨으리라 짐작 합니다. 
해사 11期로 해병 소위에 임관,월남 전장에서 베트콩이 중대원을 향해 던진 수류탄이 폭발하기직전,"모두엎드려!!"라고, 고함을 치며 수류탄 위에 몸을 던져 散花했다. 강재구 이인호 소령의 殺神聖人의 정신은 당시 전 국민들이 슬퍼했고 두사람의 넋을 기렸다.또한 당시 현역들은 군인정신의 한껒 고무됐고 그 일로 군인들의 위상도 높아진게 사실이다.(난 그당시 이 놀라운 소식을 혼바산 아래서 들었습니다.) 그때,강재구소령.이인호소령이 수류탄을 덮칠 때 그자리에 있다가 살아난 전우들은 두사람이 있는 묘역에 참배를 하는지. 참배를 하겠지요.얼마나 고마운 분들 입니까!! 그런데 지난번 눈내린뒤에 세번 현충원에 갔었는데 장교들이 묻혀있는 50묘역엔 세번 갔었던 저의 발자욱만 있어서 맘이 씁쓸했습니다.못오는 사정들이 있겠지요. 
오상욱 백마1진 28연대 2대대장. 양평에서도 나트랑에 상륙했을 때도 본 적이 있습니다.키는 그리 크지는 않은분인데 철모를 벗었을 때 보니 분필 냄새가 많이나는 學者같은 인상 였는데,캄란에서 한달반 정도 근무하다가 투이호아로 이동했을 때,작전지역인 혼바산 통로의 지뢰 작업을 나갔다가 지뢰가 폭발...당시 무전기로 통해서 들은바에 의하면 身體는 다 조각난 살덩이로 근처에 흩어졌고 머리만 있다...고,애석한 일 입니다. 
아나운서 오영실의 아버지...전사 당시는 잘 모르겠지만,당시 전투부대 부대대장이나 연대 참모로 보입니다. 쥔장님의 안내로 알게됐고 현충원에 갈적마다 참배를 합니다. 위에 네분은 50묘역에 계시고, 
백마1진 28연대 1중대장 대위 유재문.(당시 나는 2중대 2소대 분대장) 유재문 중대장은 늘씬하고 키가 큰 편이다.작전시 분대병력이 탈 수 있는 헬기가 오면 1~2 중대는 작전지역 산 정상에 렌딩을 한다. 트럭이 오면 와지선에 도착 거기서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며 수색및 소탕전을 벌인다. 네명의 중대장 중에서 늘 선두에 나와 자신이 대대장 역할을 다 할 정도로.. 우리가 보기에도 1대대 선임중대장으로서 혼자 책임을 다 진 사람처럼 보였다. 나폴레온의 말처럼 "군인은 진급을 할 때 운도 따라야 한다"고 했듯이 유재문 중대장은 運도 따라서 훈장도 많이 받았다. 後에 들으니 진급도 빨라서 중령으로 진급후,9사단 29연대 1대대장으로 재파월. 1973년 1월28일 아침,"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들었다. 
무슨 戰爭의 神도 아닌 사람이 늘 앞장서서... 앞장서면...복장이 조금만 달라도.계급이 쫌만 높아 보여도.앞에서 지휘하는 군인은, "敵軍의 저격의 목표가 되니까 그러지 말도록" 그게 지휘관의 방침인데..내생각에 1중대장 님은.. 전사하시던 날..뭔가 선두에서 특출한 행동을 한것 으로 짐작된다. 참으로 애석한 일 이다.당시 1중대엔 입대동기 1명과 하사관학교 동기 1명이 있었다. 유재문 (나중에 비석을 보니까 한글로 성씨가 바뀌여 류재문으로)중대장님의 묘소는 3묘역 맨위에 있다. 내가 하사관학교에서 전쟁 교육을 받을 때,교관의 말씀. "남자는,특히 군인은..그옛날 조선 대표로 입장도 못하고 밖에서 배를갈라 창자를 끄집어내 만국회의장에 뿌리고 죽어간 이준열사는 나라를 구하고자 그렇게 목숨을 바친 것 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 용감히 목숨을 바친다는건 아무나 할 수 없는일이다. 忠勇千秋란,"살아서도 죽어서도 조국에 대한 충성과 용기는 영원히!!"이게 大韓 男兒의 근본이며 군인 또한,.이래야한다.전쟁에서 실수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살아있어야 전쟁을 할 것 아닌가! 여기선 그걸 가르친다." 전쟁터에서 잠간 동안의 만용과 실수로 生死가 갈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내가 알던 이들의 주검을 슬퍼하고 명복을 빕니다. |
첫댓글 선배님!
자료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선배님 자료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너무나.감명깊게.잘.읽었읍니다.
지난 형충일때 김영배 전우님 안내로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이곳에 등록을 했습니다.
최현득 백마 1진 동기님이 백마 카페에 등록을 하셨네요. 반갑습니다.
백마 카페가 환해지는 느낌 입니다.
김영배 선배님 반갑습니다. 더욱이 1진 동기선배님까지......
두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