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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산 UBF 특강 제 9 강 메시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말씀 / 마태복음 7 : 13-29
요절 / 마태복음 7 :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요즘 ‘순살 아파트’ 때문에 불안 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콘크리트에 철근이 안 들어갔다고 해서 순살 아파트라고 합니다. 집 지을 때 좀 힘들고 고되더라도 위험을 예견하고 견고하게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장래를 대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정리해고당하는 현실에 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홍수나 대지진보다 무서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에 대비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지혜로운 인생의 집짓기를 기도합니다.
1. 좁은 문(13-20)
13,14절을 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러 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성전 남쪽 벽 끝에 ‘윗문’이라는 문이 있었습니다. 이 문은 작고 좁았습니다. 이 문은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문이었습니다. 성전에 나아갈 때, 몸을 숙이고 옷깃을 당기며 가게 하려고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인간이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청년들 간에 ‘대세’라는 말을 요즘도 사용합니다. ‘트렌드’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세’와 ‘트렌드’ 따르는 것을 좋아하고 ‘대세’와 ‘트렌드’를 따라하지 않으면 ‘앗싸’(아웃사이더)로 여겨지지 않을까 소심한 걱정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과 길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이 들어가고 같이 걸어가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므로 검증된 것이라 안심 합니다. 저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개인이 검증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것 자체가 검증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고 하십니다.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도 좁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어떤 모습을 염두에 두신 것일까요? 많은 유대인들은 ‘선민’이라 확신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율법이 있는 백성이며 할례 받은 거룩한 사람들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들은 토라를 암기하였으며, 수시로 서기관들에게 부탁하여 구약성경구절을 받아 가지고 다녔습니다. 안식일을 지켰고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의로운 마음을 강하고 견고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면,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물질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 판단하였습니다. 조상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부자였으며 야곱도 부자였는데, 하나님 앞에서 몰래 죄를 지었으니까 물질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 판단해주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보아도 ‘하나님 앞에서 혹시 죄 지은 것이 없는가?’ 병든 사람에게 꼭 물어보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보면 ‘이렇게 어려움이 겹치고 계속 될 수 있는가? 회개할 것이 없는지 찾아보라’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만한 자부심에 빠져 있었으며 스스로 의롭다 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근거 없이 교만한 의심을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품었습니다. 아침이면 기도하면서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먼저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왜 필요한가? 우리는 이미 구원이 확정되었는데? 생각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분 정도로 관심을 가졌을 뿐, 예수님을 수단으로는 여길지언정 구원의 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다 지킨다고 자부하였기에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거룩한 백성들이며 구원은 확정이라는 자기의의 넓은 문으로 드나들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들이 바뀌어 한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길로 모두가 다니며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것에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영접하고 행하는 것이 생명인 것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미래에 닥칠 심판을 백성들에게 미리 경고하고 현재의 죄를 회개 하도록 돕는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감동을 받은 사람들 중에 사람들에게 달려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만 은혜와 감동을 받았을 것이라 확신하였습니다. 자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으며 자신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것을 알고 있다고 오만에 빠졌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스스로 영적 수준이 높다 자부하며 사람에게 찾아다니고 사람에게 말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영광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사람들의 존경과 함께 돈도 받고자 하였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처럼 행세하나 하나님께 드릴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유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순수하고 겸손해 보이는 양의 모습으로 옵니다. 선하고 친절해 보입니다. 영적인 것 같고 하나님을 향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런 거짓선지자들은 생명에 이르는 길을 가는 양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는 존재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식별하는 방안을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사람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마음의 추구하는 바가 선택의 순간에 나타납니다. 그 선택에는 열매가 따릅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품고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지며 이런 선택이 계속되면서 일정한 패턴이 형성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적 관계, 하나님께 대한 헌신보다 인간적인 유익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인간적인 것을 더 우선한다는 그의 가치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서 평생 하나님의 것은 뒷전이 됩니다.
거짓선지자를 구별하려면 그들의 교훈과 영향과 결과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장 친절하고 말은 그럴 듯하지만, 중심 교훈이 문제가 있습니다. 영적인 것 같지만 사실 인본주의적입니다. 그 영향도 보아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마음 중심에는 자기중심, 이익중심이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이게 좋다 하고 다른 때는 저게 좋다 합니다. 같은 상황 같은 이슈를 가지고 예전에는 이랬다가 후에는 저랬다 합니다. 진리 중심이 아니라 이익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영광에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자기합리화와 변명이 빈번합니다. 자기 잘못은 두루뭉실 넘어가기 때문에 잘못을 계속 반복합니다. 전에 한 잘못, 전에 했던 실수, 전에 범한 죄를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계속 반복합니다. 공의가 없고 공평하지 않아 가까이 있는 사람들 중에 화나는 사람, 피해의식 갖는 사람, 억울한 사람, 원통한 사람이 생겨납니다. 떠나는 사람들, 돌아서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또, 바꾸지 않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 불쾌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이가 많아져도 늘 철없는 사람처럼 눈치 없이 말하고 행동합니다. 사람들이 왜 자기 때문에 상처받는지 사람들이 나 때문에 불쾌해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합쳐지고 쌓여서 아름다운 생명구원의 열매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변화된 인격과 내면의 열매가 없습니다. 20대에 하던 일을 30대에도 하고 있고 30대에 하던 습관을 40대에도 고치지 못합니다. 40대가 넘어가면서 주변사람들 안목이 의식되니 그 상태는 죽는 날까지 평생 지속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맺히는 삶의 열매는 속일 수도 없고 좋은 열매를 억지로 맺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말, 행동, 습관, 생활이 모여서 인생을 채웁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인생에서 행한 것을 보고 심판하십니다. 나쁜 열매 맺는 나무는 찍혀 버려지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좋은 열매 맺고자 힘써야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20대에 고달프고 20대에 괴롭고 20대에 차별받고 20대에 고난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생각 마음대로 하고,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하고, 하고 싶은 행동 마음대로 행하고, 자기 계획과 자기 의도대로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은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만납니다. 자신의 생각이 다 옳지 않으며,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해서 다 내뱉을 수 없는 것이며, 나의 습관과 행동이 속히 고쳐야 한다는 것을 연단과 고난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고쳐지기까지 계속 고난과 연단을 받은 후에야 습관과 행동은 시정이 됩니다. 이런 후 좋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거짓 선지자들도 율법을 가지고 말합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율법을 잘 가르칩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사람들에게 기도의 종이라 인정받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의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하고, 자기의 많은 기도생활을 사람들에게 반드시 알립니다. 영적인 생활 한다고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과 같이 온순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런 외적인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졌더라도 열매는 속이지 못합니다. 열매가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자기가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 올 때, 절대 자기를 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오류를 지적받을 때,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잘못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대학시절 잘 연단 받아야 합니다. 고달프고 난처하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로 진실한 모습으로 나가는 연습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꼼수를 부리고, 인간적인 선택을 하고 핑계대고 변명하는 모습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2.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21-29)
21-23절을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입으로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 말씀의 쫓겨나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들, 선지자 노릇 한 것, 귀신을 쫓아낸 것, 많은 권능을 행한 것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행한 것이며 외적인 것들입니다. 주님께 쫓겨나는 사람의 특징은 남은 가르치기 좋아하지만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고치지 않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유대인들 대다수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고 이방인들만 정죄하고 판단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고 아픈 사람, 병든 사람들을 향하여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라고 하고 지적하고 자기가 인생을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선택함 받은 거룩한 사람이고, 율법에는 달인이요, 기도 많이 하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 다른 인생, 전체 조직들을 가르치고 바꾸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먹든지 자든지 서든지 누웠든지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지 스스로 살피고 그 뜻대로 살고자 영적 투쟁을 해야 합니다.
다함께 2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계속 25-27절도 읽어 보겠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 말씀을 들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들은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공부하거나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맞다’, ‘내 말씀이네’, ‘찔리네’ 하지만 그뿐이라면 문제입니다. 들은 것을 행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듣고 즐기라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행하라고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라 하십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기둥과 벽 지붕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보기 좋게 잘 지었습니다. 그러나 기초를 얼마나 튼튼하게 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이 ‘순살 아파트’라는 것 때문에 불안 해 합니다. 광주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짓고 있던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져서 사람들이 몇 사람 사망했습니다. 콘크리트 속에 넣어야 할 철근을 규격대로 넣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이번에는 주택건설 공기업이 지은 아파트에 철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주차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공기업이 지은 아파트 전체를 조사하고 있는데 그렇게 규격대로 철근을 넣지 않은 아파트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심지어 이 사실을 숨기려고 조사 과정에 까지 거짓 보고를 넣고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철근도 콘크리트 속에 들어가기에 보이지 않습니다. 집의 기초도 땅 아래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심한 바람이 불고 홍수나 지진이 났을 때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은 무너집니다. 기초가 튼튼한 집은 견고하게 서있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인격적으로 공부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같은 말씀을 배우고 들었을지라도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는 내적 투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 좀 찔리네’ 하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그대로 행할까 애쓰는 사람도 있고 ‘말씀 좋네’ 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투쟁하는 사람도 있고, ‘저거 나 들으라고 메신저가 나 찍은거야’ 인간적으로 반응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중대한 때에 인간적인 선택을 하여 큰 문제를 자초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고 어려움이 와도 오히려 은혜 입는 계기가 되며, 고난을 겪어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는 모두 집 짓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집은 언젠가 닥쳐오는 홍수를 견뎌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옵니다. 우리 삶에는 종국에 ‘죽음’이 있고, 세상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홍수는 우리가 지은 집을 검증 합니다. 홍수는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집을 지었는지 알게 합니다. 홍수를 견디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비바람을 견디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지진에도 끄떡없는 집을 지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기초가 잘된 집을 짓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심판 날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있는 인생의 집을 짓기를 기도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힘이 있고 권세 있음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도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절실하게 대하지 않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병고치고 먹여주고 좋은 것이 있으면 따르고 좋은 것이 없으면 따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용하고자 하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즐기면서 자기 드러내는데 이용하려고 하였습니다. 결코 자기 습관, 자기의 행동, 자기의 생활과 삶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좋은 말씀은 수긍하고 들었으나, 순종하기 힘든 말씀은 걸러서 들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즐기고 자기의 우월성을 드러내는데 활용하는 일에는 열정이 많았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자신의 죄, 자신의 과오, 자신의 실수,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넓은 문, 멸망으로 가는 문으로 들어갈 때,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 않은 좁은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 가기에 힘든 협착한 길을 가는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이었으며, 성경 말씀을 듣고 먼저 자신이 회개하고 자신이 먼저 나쁜 습관을 버리고 자신의 행함과 생활을 바꾸기에 힘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도 말씀을 즐기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자신이 먼저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인생의 집을 짓기를 기도합니다.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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