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知性)⌟
이 기능은, 세상사를 구명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틀리는 점은,
이 지성이 뛰어난 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을 기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요(要)는, 매사를 그대로 믿지 않고,
의문과 해답의 유연한 사색(思索)을 하는 것입니다.
지성의 척도는 항상 객관성에 있습니다.
세상사를 객관적으로 봅니다,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 의해, 사물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지성의 마이너스 면으로서는,
지성만을 단독으로 작용하여, 감정이나 이성, 본능이 무시되어 가면,
대단히 차가운 인간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배려, 계산을 하지 않는 행위를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지성은 합리성을 구하고, 과학 사회를 발전시켜 왔는데,
그 결과는, 여러 가지 비합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즉 인간사회를 풍부하게 하는 과학기술은,
오히려, 인류를 멸망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공해나, 여러 가지 살인 병기 등은 으뜸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지성은 세상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단독으로 작용할 때는, 어떻게 해도 근시안적으로 되어,
전체적으로 주의가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 폐해가 따라다닙니다.
세상사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작용이 있다면,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본래, 지성 그 자체는, 과학적이며, 사물을 분석 추구하는 것일 뿐이니,
사물을 생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서투릅니다.
세상사의 세밀한 연구에는 지성은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정치라든가, 행정이라고 하는 전체적인 문제가 되면,
그 능력은 반감하고 맙니다.
이것을 현실사회에 적용시키면,
연구자든가 과학자에게 정치나 행정이나 경영을 맡기면, 실패하지요.
오늘날 지방재정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적자재정의 공공단체의 장(長)은,
대개 학자 출신의 사람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자 중에는 정치적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고.
정치가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도 연구자 같은 지성의 소유자도 있습니다.
어쨌든 지성의 작용은 세상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성능이 있는데,
이것을 단독으로 작용시켜서는,
마음을 풍부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지(知)로 치우치면 모가 난다, 』
고 하듯이, 마음의 각 기능을 작동시키면서
지성을 연마해 가도록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정법(正法)은 학문이 아닙니다.
세상사의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학자나 연구자가 하듯이 정법의 연구자가 되어서는,
풍부한 인간성은 길러지지 않습니다.
불교, 기독교가 철학화되어, 학문으로 모습이 변해 있는 것도,
지(知)가 선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재의식의 지성은, 지혜인 것입니다.
지혜는 무엇이든지 응용할 수 있어서,
이것은 알지만 저것은 모른다. 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지혜를 끌어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것은 이제까지 반복해 온 것처럼 마음의 각 기능을 통해서,
반성과 실천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실천이라고 하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연상하는데,
세상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한다, 남의 말을 듣는다, 지식을 쌓는 것도, 실천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성의 뒷면에 있는 지혜가 솟아 나오듯이 되면,
세상사에 갈피를 못 잡거나, 초조해하거나, 실망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집니다.
지혜는, 마음의 각 기능의 작용에 기본을 두고 나타나는 것이니까.
그것은 또, 풍부한 인간성, 평안한 마음의 나타남으로써 표출되는 것입니다.
⌜이성(理性)⌟
이 성능은, 세상사의 도리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사의 도리는 풍부한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경험이 얕은 자는, 어떻게 해도 좁고, 편협된 지식에 사로잡혀,
전체를 한눈에 내다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성(理性)은 그런 고로, 인생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이성(理性)이라 하여도 이른바, 경험주의로 빠져,
지성을 연마하지 않고, 단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작은 도학자로 되고 맙니다.
만인에게 공통하는 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어느 지역사회의 속에서는 통하여도
다른 사회에서는 통용하지 않는다, 고 하는 것이 되겠지요.
이성(理性)은 지성(知性)의 힘을 빌려서,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고, 좁은 인생 경험의 시야를 확대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개인의 인생 경험의 범위는 넓은 듯 하지만 좁은 것입니다.
회사와 집 사이를 왕복해서, 일생을 끝냈다고 하는 샐러리맨의 경험을 생각해 보세요.
또 사람은, 여러 가지의 직업을 통해서, 일생을 끝내 가는데,
개인 개인의 경험 등은, 대단히 좁고 작은 것입니다.
그러한 좁고 작은 경험을 어떻게 살려서,
전체적인 도리로서 받아들여 가는가.
그것에는, 많은 사람의 지식이랑 경험을 배워,
지성의 작용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감정이랑 본능의 자세를 고려하면서, 이성을 길러 가는 것입니다.
이성(理性)에 집착하면, 독선으로 빠집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인생을 건넜다, 나는 이렇게 했으니까 성공했다, 라는 식으로....
고생해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은 왕왕, 독선적으로 되기 쉽고,
이러한 경향은 나이많은 연배자에게 많습니다.
그러나 이성(理性)의 훌륭함은,
세상사의 도리를 판단하는 능력이니까,
그 잠재의식의 작용은 우주를 포함할 정도의 큰 마음으로 되어 표출되어 왔습니다.
즉, 과거세의 경험이 이 기능 속에 가득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그것은 또 한 사람의 자신이며,
수호령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선으로 흐르지 않고,
지성이랑 감정, 본능의 작용을 통해서 이성을 연마하면,
수호령의 시사(示唆)랑 뜻밖의 생각이 떠올라 와서,
상황판단이 틀리지 않도록 되어갑니다.
만약 수호령의 힘이 부족하면, 지도령의 힘도 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