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 - 노고단 - 세석대피소 - 천왕봉 - 중산리
내일은 백두대간종주를 마무리 짓는 날 인데 비가 온단다. 우중 산행은 많은 체력소모를 가져온다. 32km의 지리산 길을 걸어야 함에 중년을 넘긴 여성대원들이 다소 걱정스럽지만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이다. 차고지에서 정대장을 기다리다 03:00분 출발하여 백두대간 장비점 앞에서 마지막 대원들을 태우고 03:24분 성삼재를 향해 출발했다. 모두들 들뜬 모습이다. 그동안의 힘듦을 마무리 한다는 기대감 때문일 거다. 나는 왜 이리도 덤덤한지.. 04:14분 지리산IC를 빠져 나와 성삼재에 도착하니 05:08분 예보와는 달리 비 내림은 멈추었고 운무가 잔뜩 끼어 있어 가시거리가 영 신통치 않다. 서둘러 산행 채비를 마치고 05:17분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노고단에 올라서니 비안개가 자욱하다. 철모르는 진달래도 보이고 철쭉도 보인다. 우리 종주 팀의 선두와 후미를 보는 것 같다. 돼지평전에 들어서니 안개비 듬뿍 머금은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수줍은 인사를 건네며 파이팅 하란다.
임걸령 약수터에선 파이프 가득 물이 콸콸 쏟아진다. 비 온 뒤라 수량이 많아졌나 보다. 한 잔 들이키니 가슴이 찌르르 하다. 노루목을 지나니 용수골, 피아골, 불무장등, 목통골 주변을 구름이 덮어 손오공이고 싶다는 강한충동을 갖게 한다. 삼도봉이다! 경남, 전남, 전북 3개도를 탑돌이 하고 용수골과 목통골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 댄다. 연하천산장이다. 행동식도 먹고 여성대원들은 물을 보충한다. 연하천산장 습지에는 현호색과 얼레지, 이름 모를 들꽃들이 겨우내 준비했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등산로 바닥엔 돌들이 많아지고 제법 오르락내리락을 한다. 오늘은 형제봉에 손 터치만 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본다. 여성 일일회원 한 분이 힘들어 한다. 동행하는 나에게 자꾸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일부러 7~8m 뒤에서 걸으며 부담감을 갖지 않게 해 본다. 한창 공사 중인 벽소령 산장은 귀곡산장을 연상케 하고 등산로 옆 벤치엔 산행에 지친이 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성대원들이 벤치에 눌러 앉았나 보다. 몇 번을 불러도 반응이 없다. 휴식도 필요하겠지만 이쯤 되면 얼빵 개기는 거다. 낙석지대 까지 갔다 되돌아가 여성대원들을 데리고 온다. 힘들겠지만 부지런히 걸어야 된다. 선비 샘에는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고 고급진 고글도 득뎀했다. 등산로 좌측으로 성질 급한 철쭉들이 반쯤 꽃잎을 열고 우리를 맞는다. 천왕봉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지리산제일봉을 찾아보란다.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 유혹하고 있다. 산은 산이요, 꽃은 꽃이고 물은 물이다. 영신봉을 지나 점심을 먹기로 한 세석산장이다. 선함님이 혼자남아 자신의 백두대간완주를 축하하러 온 지사모 회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가 소맥을 두잔 준다. 속이 찌르르한 게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다. 바지를 분리하여 반바지로 만드니 제법 시원하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촛대봉으로 향하니 철쭉은 이제 봉우를 맺기 시작했다. 우측으로 자꾸만 눈이 간다. 청학연못에 가서 낮잠이나 실컷 자고 북해교 쪽으로 하산하고 싶다. 정대장 한테 전화가 왔다.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으로 먼저 출발하겠다고..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까지 제법심한 오르내림이다. 장터목산장이다. 힘들어하던 일일회원이 하산을 망설인다. 물어보니 지리산 종주가 처음이란다. 천천히 라도 좋으니 끝까지 같이 종주하길 권했다. 계획하기 쉽지 않은 종주산행,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한 산행인가! 배낭털이를 하고 천왕봉을 향해 부지런히 오른다. 천왕봉에 도착하니 15:50분. 장하다 비경 후미대원들! 천왕봉에 우리 외에 2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함안서 오신 분들이라는데 비경마운틴을 안단다.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비경마운틴은 이미 전국구가 아닌가? 현수막을 정상석에 감고 기념사진을 찍는 당당한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서둘러 하산을 한다. 법계사 일주문에는 부처님오신 날 봉축 연등이 줄지어 걸려 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퍼지길 소망하며 샘물을 먹으려는데 물이 병아리 눈물만큼 나온다. 돌도 많고 계단도 많다. 무릎이 적당히 걸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우리와 같이 하산하다 조금 앞서 갔던 대원 3명이 중산교 바로 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우리를 부른다. 기다리고 있는 다른 대원들 생각에 빨리 오라고 이야기하곤 그냥 지나친다. 중산리탐방안내소 앞에 도착하니 17:54분, 송비산 형님이 기다리고 있다. 대원들은 버스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한참을 기다려도 일일회원과 늘 후미에서 늦던 대원이 아직도 도착을 하지 않았다. 우리라도 먼저 송비산형님 차로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에서 기다리던 대원들의 환영을 받으니 많이 미안하다. 오늘도 많이 기다리게 했다. 늦은 두 사람은 송비산 형님이 남아서 태워 오기로 하고 우리는 목욕탕 마감시간 때문에 18:18분 단성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간 제약이 많다. 우리들은 단성복지회관 목욕탕에서 짧은 씻음을 하고, 이웃한 성화식당에서 저녁을 먹었고, 진주 수정동 **단란주점으로 이동하여 종주기념패 수여식을 비롯한 간단한 의식(儀式)후 여흥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오늘은 모두다 주인공이다. 노래 부르는 모습들이 참 정겹다. 중간에 적당히 빠져 후배들이 부담없이 여흥을 즐기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집으로 향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 또 봄! 나이가 두 살을 더 먹은 긴 시간 동안 먼 길을 같이한 대원들에게 모두들 수고했고 고마웠다는 말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 하며!
이산저산 뽈뽈 거리고 다니다가 2004년 아무생각 없이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했었고, 종주를 마치고 나서는 지리산 구석구석 쏴 돌아다니다가 2009년 4월 낙동정맥 종주를 시작으로 1대간 9정맥 종주에 나섰었다. 2010년 10월 2번 째 대간 종주를 마쳤고, 2015년 한남정맥을 마지막으로 2대간 9정맥 종주를 마쳤었는데 1년 8개월 만에 비경마운틴 백두대간 6기 종주 팀 후미대장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진부령에서 산신제 지내고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1시간 여 동안 소나기 쏟아졌었던 일! 여명에 힘들게 황철봉 너덜지대를 오르며 마주했던 속초의 야경, 공룡능선과 설악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추억, 마등령 칼 추위에 덜덜 떨며 곧은 손으로 아침밥을 힘겹게 우겨 넣었던 일, 새벽 댓바람부터 알바한 사람 데리러 갔던 민병* 대원의 눈 부상, 사람을 날려 버릴 것 같았던 점봉산의 칼바람, 주유를 해놓지 않아 진주시내 이주유소 저주유소 헤매다 40여분이나 늦게 출발했던 일, 진고개에서 공단직원들에게 스티커 3장 선물 받았던 일, 삼수령휴게소에서 먼저 도착한 대원이 건네준 막걸리 한 잔, 태백산 아름다웠던 일출과 천제단 한배검 표시석 앞 제단에 웅크리고 앉아 4월의 새벽 찬바람 맞으며 기도하던 두 여인네 모습. 옥돌봉 연달래와 560살 할배 철쭉나무, 희양산에서 대원들이 잠시 흩어졌던 일, 악휘봉 노송군락과 4m 높이의 입석바위, 버리미기재의 감시 카메라, 장각동7층석탑 가는 길을 놓쳐 상오2리 로 하산 했던 일, 지기재 부근 비산비야(非山非野) 논, 밭의 대간 길. 국수봉 정상석 옆에 놓고 왔던 스틱을 되찾은 일, 추풍령 곶감 경매장에서 돼지 수육과 굴국에 생굴 회, 백수리산 정상에서 누워버린 일일회원, 대원 한 분 때문에 백암봉 직전에서 13:20분 늦은 점심을 먹으며 김포 등산친구들 산악회 회원에게 막걸리 2병 얻어 먹었던 일, 중재에서 임도를 건너자마자 고로쇠나무에 꼽아 놓은 호스에서 고로쇠 수액 800ml를 내 물병에 위치이동 시켰던 일, 오지 매요리에서 싱싱하고 푸짐한 회 잔치를 벌렸던 일, 노치마을 정자 안에서 김수* 대원이 준비해 온 장어 맛!
후덕한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人心들, 태고의 역사 속에 당당하게 서있는 우리의 산과들 그리고 이어진 계곡, 굽이진 강과 山群들... 참 많이도 걸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숨이 막힐 정도의 더위, 엄청난 폭우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신 동료들에게 당신들 정말 대단하다고 재삼 축하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아름다운 인연들 소중히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그 끈 단단히 묶었다가 통일된 그 날 못다 한 북녘 땅 대간 길도 함께 종주할 수 있길 소망하면서 다시한번 백두대간 완주를 축하드리고, 대간마무리 산행에 우정 참석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며 백두대간종주를 마무리 한다.
후미대장이란 역할 때문에 대원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는지.. 혹 불편함을 느낀 대원이 있으시면 이 글을 통해 사과드리고 싶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백두대간 마무리를 즈음해 석두거사 유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