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련한 자의 반복 - 토한 것을 도로 먹듯 같은 죄를 짓는 습성
본문: 잠언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잠언 26장 11절 말씀은 솔직히 처음 들을 때 고개가 돌려질 만큼 아주 거칠고 적나라한 비유입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상상만 해도 눈이 찌푸려지고 속이 거북해지는 장면이지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개(כֶּלֶב)'는 지금처럼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마을 길거리를 배회하며 쓰레기를 뒤지는 정결하지 못한 짐승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 개가 몸에 해로워서 스스로 뱉어낸 더러운 오물(קֵאוֹ)을 시간이 지나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다시 입에 대는 모습을 성경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충격적인 말씀 앞에 가만히 머물다 보면,
이 말씀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로 다가와 가슴을 찌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결단하고 후회합니다.
"내가 다시는 그 사람 험담을 안 해야지." "이번에는 정말 홧김에 분노를 쏟아내지 말아야지."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이 열등감의 습관을 이제는 진짜 끊어야지."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결심하며 마음속에서 그 죄들을 다 뱉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다시 똑같은 미련함의 자리로 걸어갑니다.
익숙한 분노의 방식, 익숙하게 남을 깎아내리는 말버릇,
똑같은 시기와 질투의 자리로 돌아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돌아서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익숙한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잠언의 말씀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참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의 숨길 수 없는 적나라한 모습이라고 진단합니다.
죄의 반복은 우리의 본성이 여전히 오염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아픈 현실입니다.
미련함은 죄의 무게를 망각할 때 시작됩니다
성경 본문: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언 26:11)
성경이 말하는 '미련한 자(כְּסִיל)'는 지식이 부족하거나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욕망과 내 익숙함이 더 편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토록 아파하며 뱉어냈던 죄의 습관들을 자꾸만 거듭(שׁוֹנֶה) 행하게 되는 걸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어느 순간 그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아주 작은 비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심각하게 결심했다고 해봅시다.
의사가 "지금 당장 야식을 끊지 않으면 혈관이 막힙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먹던 배달 앱을 지우고 음식을 다 내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밤 12시가 되어 배에서 소리가 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을 합리화합니다.
"오늘 딱 한 번은 괜찮겠지.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먹고 행복한 게 나아."
그렇게 버렸던 배달 앱을 다시 깔고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우리의 건강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성품과 언어와 관계도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말 한마디 툭 던진 건데 뭘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화도 좀 낼 수 있지"라며 슬그머니 자기를 방어합니다.
죄를 '잠깐의 실수'라는 예쁜 포장지로 덮어버리는 것이지요.
죄를 짓고도 내 마음이 아프지 않고, 내 칼날 같은 말 때문에 남의 마음이 베어졌는데도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그 죄를 거듭 행하는 미련함의 궤도에 올라탄 것입니다.
내 중심적인 태도, 나만 옳다고 믿는 교만, 은밀하게 즐기던 뒷말과 험담이
우리의 영혼과 관계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는 이 무서운 현실을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죄의 무게를 잊어버리고 합리화할 때 미련한 반복의 사슬이 만들어집니다.
[복음] 심판의 비웃음이 아닌,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언 26: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토록 거북하고 충격적인 비유를 지혜의 말씀으로 남겨두셨을까요?
우리를 정죄하고 "너희는 어차피 개 같은 존재야"라고 비웃으시려고 이 말씀을 주셨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 거친 경고의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절절한 슬픔과 찢어지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키울 때, 아이가 뜨거운 가스레인지 불판에 손을 대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안 돼! 만지면 큰일 나!"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 지름은 아이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한 사랑의 절규입니다.
하나님 마음이 그렇습니다.
"내가 너를 죄의 늪에서 피 흘려 건져내었는데,
왜 다시 그 더러운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왜 또 그 망가지는 길을 고집하느냐?"
고대 근동의 지혜 전통과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경고는 언제나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이 생명의 길로 돌이키게 하려는 사랑의 초청이었습니다.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여전히 미련함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의 미련함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더 큽니다.
우리의 반복되는 죄의 깊이보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의 넓이가 훨씬 더 깊습니다.
하나님의 거친 경고는 정죄가 아니라 은혜의 자리로 돌이키라는 사랑의 초청입니다.
오늘 한 사람에게만 내려놓는 작은 순종의 여정을 살아보십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서 7:24-25a / 성경 문맥적 연결)
우리가 이 미련한 반복의 사슬을 끊기 위해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삶의 걸음은 무엇일까요?
거창한 백만 가지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의지하는 단 한 가지의 작은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며 스스로의 무능력을 탄식했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이 죄의 입맛을 바꿀 수 없습니다.
행동만 조금 고치는 태도 교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가 내 마음에 부어져 우리의 영적 입맛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여기에 비행기 조향 장치의 원리가 있습니다.
거대한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갈 때, 처음에 방향을 아주 미세하게 딱 1도만 바꾸어도 몇 시간 뒤에는 아예 다른 대륙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그 '1도의 변화'를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첫째로, '3초 멈추기'입니다.
오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익숙한 짜증과 분노, 혹은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바로 그 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딱 3초만 숨을 골라보십시오.
"주님, 제가 또 토사물로 돌아가려 합니다.
내 입술을 지켜주십시오" 하고 속으로 짧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드러내기'입니다.
죄는 은밀한 곳에서 곰팡이처럼 번식하고, 은혜는 빛 가운데 드러날 때 능력이 됩니다.
혼자서 "다시는 안 그래야지" 하고 숨기지 마십시오.
믿음의 신실한 동역자나 공동체에 "내가 자꾸 이런 언어의 습관 때문에 넘어지는데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솔직하게 고백해 보십시오.
오늘 내 주변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만 내 익숙한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미련한 반복을 깨뜨리는 성령의 시작입니다.
큰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의지해 오늘 행하는 1도의 작은 순종입니다.
[결론] 신앙의 본질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잠언의 말씀은 우리의 굳어진 마음에 종소리를 울립니다.
버린 죄를 다시 입에 넣으며 영혼을 무디게 만들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는 절대 이 사슬을 끊을 수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합시다.
신앙의 본질은 내가 얼마나 완벽해졌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가 죄인 됨을 깨달을 때마다, 그리고 나의 미련함을 발견할 때마다,
지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비록 연약하여 넘어졌을지라도,
은혜의 주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붙잡고,
오늘 미련한 반복의 자리에서 일어나 생명과 지혜의 길로 힘차게 걸어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내가 버린 죄의 토사물로 영혼을 다시 채우는 것은,
우리를 살리려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짓밟고 스스로 영적 쓰레기통이 되는 미련한 발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