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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인간이기에 결코 저버려선 안 될 서정적 유토피아
이경철(문학평론가)
시의 본령 서정을 형상화하는 이미지와 운율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 이미지와 운율. 서정을 형상화해 감동과 긴 여운으로 전하는 것이 이미지와 운율일 것이다. 시에서 이미지는 시인이 온몸으로 느낀 것을 독자들 또한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언어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드러낸 것 아니겠는가.
세계에 대한 느낌의 표상, 대상성의 내면화라는 서구의 시 이미지론은 동양에서는 미학의 핵심인 정경론情景論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정情과 세계의 경景의 접점에서 묘하게 교융交融하며 태어나는 것이 빼어난 이미지 아니겠는가. 하여 서구의 합리적 이성과 프로이드의 무의식 콤플렉스에서 이미지를 해방시킨 바슐라르가 말한 ‘순간화 된 형이상학으로서의 포에지’가 바로 우리네 정경교융의 이미지일 것이다.
전 우주의 비전과 하나의 혼의 비밀, 그리고 여러 대상의 비밀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의 이미지가 포에지이다. 시인과 세계의 정조가 극도로 고조돼 이미지로 익어터지는 그 ‘순간’은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순간, 회감과 예감의 찰나일 것이다. 하여 오늘도 우리는 좋은 풍경이나 영상, 음악을 만나면 “아, 시적이다, 서정적이다!”하고 감탄하며 홀연, 순간의 포에지를 떠올리고 있지 않은가.
이미지와 함께 운율이 시를 시답게, 서정답게 만드는 것이다. 시에서 운율은 동일 음이나 글자 수, 음보, 구절, 문장의 반복이나 나열 등에 의해 형성된다. 이 운율의 각 층위, 즉 외재율적 측면뿐 아니라 시상의 전개와 이미지의 중첩과 변용에서 나오는 내재율적 측면이 서로 협력하며, 혹은 갈등하며 수많은 변주가 가능한 게 운율이다.
운율, 리듬은 의미 이전의 세계 자체를 우리에게 떠오르게 한다. 하여 볼프강 카이저는 서구의 문학론을 종합해 살피며 음향과 리듬 같은 비이성적 언어를 서정시 혹은 서정적 장르의 한 본질적 특성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로만 인가르덴의 역저『문학예술작품』에 따르면 시는 음향, 음색, 운율 등 음성형상들의 층과 이미지, 메타포, 상징 등의 의미단위체들의 층 들이 중첩된 다성악적多聲樂的 구성체이다. 서정시의 본령은 의미보다는 음성형상들의 층위를 중심으로 주제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음상音像과 운율 등 의미 이전의 층위가 시를 의미론적 차원에서 존재론적 차원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옥타비오 파스도 “시를 자족적인 우주로서 끊임없이 반복, 순환시키는 것은 바로 시의 리듬”이라고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시작 체험을 바탕으로 파스는 “리듬의 반복은 원초적 시간의 초대이며 소환”이라고 했다. 직선적인, 발전론적인 산문과는 달리 원형적 시간을 끊임없이 반복, 재창조하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하는 것이 바로 시의 운율이며 이미지인 것이다. 지난 계절 나온 시집 중 이런 이미지와 운율에 방점을 두고 서정을 빼어나게 환기시키고 있는 시집 두 권을 감상해본다.
이상범 디카시집 『하늘색 점등인點燈人』
물든 잎 노을은 한 끈
순수가 가을을 걸쳐
여인이 붉은 빛 입을 때
우수는 속 깊은 숙성
적갈색 먼먼 이별 앞에
철학이 된 한 때 입상
-「단풍 입상」전문
이상범 시인이 4번째 디카시집『하늘색 점등인』을 펴냈다. 1963년에 등단해 시력詩歷 반세기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시인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포토샵해서 완성한 이미지에 시조 단수를 붙여 ‘디카시’라 명명하고 그런 시집들을 펴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로서의 순간적인 감식안의 렌즈에 잡힌 대상을 다시 포토샵이라는 화가적, 조각가적 심미안으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시를 붙인 디카시는 시와 영상이 융합된 작품.
해서 다른 유명 화가의 그림이나 사진작가의 사진과 만난 시화詩畵나 영상시와는 그 차원이 다른, 시서화詩書畵가 어우러진 디지털 시대 최첨단 문인화文人畵라고나 할까. 예전부터 부채 등에 직접 그림도 그리고 시도 짓고 써 전시회까지 열곤 하던 시인이 이 디지털 문명시대의 새로운 문인화를 선보이며 벌써 네 권의 디카시집을 펴내고 있는 것이다.
“이상범의 정신은 나무에 열린 새처럼 자유롭고 그 감성은 층층이 무동을 타고 설악의 멧부리를 올려다보는 이슬처럼 맑다. 오랜 정신의 편력이 사물을 감추고 있는 우주적 의미를 간파하고 언어로 조형해 내는 시적 성숙이 절정을 치닫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60장의 디카 이미지와 거기에 딱 맞는 60편의 시조를 감상한 동료 이근배 시인의 평이다. 순간의 우주적 비밀을 포착해낸 디지틀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가 서로 협력하며 ‘찰나의 화두’, 우주적 포에지로 익어터지고 있다는 평이다. 위에 인용한「단풍 입상」은 호숫가 단풍 든 나뭇잎 아래 서있는 여인 이미지에 붙인 시이다. 단풍나무처럼 화사한 원색적인 단풍이 아닌 오래된 절의 단청 같은, 혹은 장닭 꼬리 색깔같이 우리 민족의 정한이 잔뜩 서린 느티나무 단풍 천지에 수직으로 서 있는 여인의 이미지에서 “우주의 속 깊은 숙성”을 보아내고 있는 시이다. 그와 함께 어느 바람에 우수수 흩어지는 낙엽 아래서도 꿋꿋이 붙박인 입상立像의 이미지가 순수와 이별의 의지, 혹은 철학을 떠올리게도 한다.
긴 장마엔 견딜 수 없어
몸의 사방 돋아난 뿔
들이받고 싶은 충동
감출 수가 없었나 보다
생강의 맵고 칼칼한 성품
예삿일 아닌 세상만사.
-「코뿔소」전문
김장철이라서 그런가. 요즘 유난히 햇생강이 시장 바닥에 많이 나와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고물고물하면서도 뒤틀린 몸뚱이 여기저기에 뿔 같은 혹도 참 많이 나있다. 그래 앞에 코뿔소 같이 긴 뿔이 나 있는 생강 이미지에서 생강의 맵고 칼칼한 성질을 잡아내고 있는 시가 「코뿔소」이다.
어디 생강만 맵고 칼칼한 성품이 있겠는가. 우리네 삶 또한 가끔은 지루한 일상에 들이받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을. 이렇듯 시인은 일상의 자잘한 이미지에서도 삶의 속내를 찾아 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 시인의 눈이 그와 딱 맞는 이미지들을 일상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들이 시 자체, 시의 전 층위가 운율이고 노래인 시조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시집이 이번 디카시집이다.
일필휘지 풀잎 위에
반짝반짝 이슬 몸통
영상은 내 영상이지만
빛 넣는 손 천상의 손
내 정성 고개 한 번 끄덕
놀라 깨는 하늘 동자.
-「이슬 몸통」전문
시를 쓰는 어는 사진작가한테 “렌즈를 갖다 대는 순간 피사체가 파르르 떨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풀잎의 푸른빛을 머금고도 수정같이 맑은 색을 굴리고 있는 풀잎 이슬 이미지를 시화한 이 작품을 보니 그때 들은 말이 좀 더 확연히 들어온다. 대상과 작가가 그대로 일치하는 서정적 순간, 작가가 떨리듯 피사체도 어이 떨리지 않겠는가.
피사체인 풀잎 위의 이슬 이미지와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한 몸통이 된 시가 「이슬 몸통」이다. 푸른빛이 맑디맑게 벤 천상의 빛까지에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통해 그런 이미지를 잡고 또 그런 시를 쓰게 하지 않았겠는가. 이미지에 대한 시인의 감동이 오종종 푸르고 맑은 하늘동자, 이슬까지 놀라 깨우고 있지 않은가. 팔순을 앞두고도 여전히 소년 같은 이상범 시인께 앞으로도 이런 인상적이며 의미 있는 디카시로 디지털 이미지 시대, 포에지로서의 이미지의 깊이와 품위를 다잡아 나가주시길 빈다.
최서림 시집 『버들치』
목화를 따 먹으면 목화처럼 환하게 피어나던,
그림을 그리면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집도
목화솜 같이 붕붕 떠다니던,
그림자도 없이 원근법도 없이
-「설한雪寒」부분
1993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한 최서림 시인이 6번째 시집 『버들치』를 펴냈다. 시인의 본명은 최승호로 시론詩論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가르치며 특히 오늘의 난삽하고 황막한 시단에서 서정성을 이론과 창작으로 꿋꿋이 지켜내고 있는 서정의 보루이기도 하다.
“서정시의 위대한 기능은 거부요 통합에 있다. 현실의 부정성을 거부하고 해체된 삶을 통합하는데 있다. 특히 근대 체험 이후 서정시의 그러한 기능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서정적 이념, 즉 사물들 사이의 행복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왔다.”
시론을 통해 위같이 밝히며 서정성을 하나의 이념, 신조로 삼고 있는 시인이 최 시인이다. 위 시 「설한」끝 부분에서와 같이 목화며 개며 고양이며 집이며 등 세계와 아무런 거리나 거리낌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서정적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찾고 있는 시인이 최 시인이다.
“너무 멀리 떠나왔구나/말이 곧 목화가 되고 따뜻한 구름이 되던 땅으로부터/구름을 타고 하늘을 만지고 놀던 때로부터”(「목화」부분). 그러나 나와 세계와 그것을 중재하는 말이 서로 일치했던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기 때문인가. 시인의 이번 시집 속 시편들은 거개가 슬프고 아프다. 위 시 「설한」 앞부분에서는 그런 세계로부터 멀리 떠나온 사람들의 세계를 “마음의 곳간부터 텅, 텅, 비어 있다”라고 그리고 있으니.
“말이 곧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말이 곧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돌아가기, 아니/말이 곧 목화가 되고 햇콩이 되는 때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물렁물렁한 말의 혓바닥으로/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 핥아주기”.
시집 앞에 실린 짧은 ‘시인의 말’ 전문이다. 실체와 이름이 하나였다 이제는 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들. 그래 시편들이 처연하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삶속에도 여전히 유전돼 흐르고 있는 자아와 세계가 일치돼 행복했던 아득한 신화시대, 우리네 유년의 그 꽃대궐. 그러나 지금은 서로 분리돼 아픈 오늘을 살더라도 서정적 통합을 저버릴 순 없다는 시인의 신념이 여전히 빛나는 시집이다.
속이 텅 빈 말의 배를 눌러
시를 게워내게 하고 싶지 않다
사물의 껍질에서 끝없이 미끄러지고 마는 말로
시를 주물럭거리고 싶지는 않다
염통이 팔딱팔딱거리는 말로
구멍투성이 말랑말랑한 말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말로
참꽃 같은 시를 낳고 싶다
참말로 먹을 수 있는 시를
-「참꽃 같은」전문
이번 시집에는 ‘말’, 언어에 대한 시가 많다. 불립문자不立文字나 언어도단言語道斷 같은, 말은 본질을 제대로 전할 수 없다는 언어에 대한 회의나 언어 의식이 짙게 벤 시나 말장난 같은 시가 아니라 언어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시들이 많다. ‘참말’,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로 돌아가려는 시들이 많다. 위 시처럼 속이 텅 빈 말이 아니고, 사물의 본질로 직격하지 못하고 껍질에서 미끄러지는 말이 아니라 참꽃 같이 “참말로 먹을 수 있는 시를” 낳고 싶어 한다. 말이 실체가 되고 본질이 되는 시를.
해서 표제시「버들치」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버들치 사투리인 ‘중택이’란 별호를 지닌 친구는 “버들치 같이 해맑은 얼굴로 산림청 서기를 하다 이제는 진짜로 버들치가 되어” 계곡 버드나무 숲 속에다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송사리」라는 시에서는 성이 송 씨여서 초등학교 때부터 ‘송사리’로 불리던 친구가 탁류 같은 서울은 겁이 나서 못살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진짜 맑고 여린 송사리 같이 살고 있다.
언어와 실체, 실제가 하나 된 세상에서 실제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뜻이 아니라 소리의 이미지, 음상音像의 언어들인 ‘팔딱팔딱’, ‘말랑말랑’, ‘통통’ 등을 많이 사용하며 ‘욜랑거리다’, ‘설겅거리다’, ‘미끌거리는’ 등의 말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아 음상의 본질을 찾아가고 있는 시들도 많다.
“괄호 속에 끼인 십일월 같이 우울한 生,/안개에 묻어 눅눅하게 그냥 스쳐지나가고 있다”(「십일월」부분). 가을도 아니고 눈 내려 겨울도 아닌 낀 계절 11월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 막대기 같은 1과 1 사이에 낀 계절이 11월이다. 그 사이 괄호 속에서 나와 세상을 원초적으로 만나게 할 말은 이제 그 효험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래 우리네 생과 세상, 우주는 우울하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 그래도 서정적 유토피아의 수호자 최 시인은 참말과 참 이미지로 아래와 같이 아름답고 듬직한 시를 여직도 선보이고 있다.
새소리에 물이 올랐다
족제비 털 같은 햇살이 가파른 비탈을 쓰다듬고 있다
노인들이 새처럼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방울새처럼 해종일 재재거린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삼동三冬을 버텨낸 산새 소리가 기워주고 있다
독방 같은 몸속에서 말의 씨알들이 꿈틀꿈틀 아프게 깨어나고 있다
-「입춘 지나」전문
입춘 지난 정경情景을 그대로 묘사한 위 시에서 언어도 이미지도 참으로 살아나고 있다. 봄을 맞은 우주적 풍경과 시인의 마음에 아무런 거리가 없다. 어느 말들도 비틀어지지 않고 그런 정경만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서정적 유토피아는 결코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시인의 신념이 이뤄낸 절창으로 내겐 읽힌다. 너무 아프지 않은 이런 좋은 시로 서정의 유토피아 계속 지켜나가시길 빈다.
이경철/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와 《문예중앙》주간으로 일하며 현장비평적인 평론 다수 발표. 2010년《시와시학》 시 등단. 저서『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편저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명시』, 명화 100선 시화집 『꽃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 『시가 있는 아침』 외.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 만해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