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안철수재단> 이사장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고문을 고리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연결된다.
박영숙 이사장 남편 안병무 前한신대 교수(1996년 死亡)는 소위 민중신학의 대부로서 1987년 한백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한백교회를 함께 설립한 사람은 (종북좌익) 한명숙 민통당 대표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이다.
박성준 교수는 67년 통혁당 간첩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1년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인 94년 일본 릿쿄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딴 뒤 다시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맑시스트(공산주의) 크리스천”으로 소개해왔다. 몇 개의 기사를 인용하면 이러하다.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2001년 季刊 ‘새길이야기(3호)’인터뷰)”
“(···)朴 선생(박성준氏) 순서가 돌아오자 자신은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맑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참된 기독교인은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음). 이제 그 살아온 내력으로 사람들과 소곤소곤한 만남을 갖고 싶어 마이크를 쓰는 모임, 인터뷰, 텔레비전 출연은 가급적 사양한다.(週刊기독교 2003년 11월 1509호 인터뷰기사 中)”
2.
<한백교회 상징인 '돌'>
한명숙 대표의 남편 박성준氏와 안철수재단 박영숙 이사장 남편 안병무氏가 공동으로 발기해 설립한 한백교회는 소위 解放神學(해방신학)을 표방한 교회다(해방신학은 참된 기독교가 아닌, 비성경적인 이단임).
한백교회는 주기도문이 없다. 주기도문 대신 사용되는 신앙고백문은 “출애굽 사건과 갈릴래아 민중 예수 사건 속에 보이신 解放(해방)과 생명의 기운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십시오” 등 내용이다. 88년 만들어진 최초의 신앙고백문 역시 “우리는 이 세계를 나날이 새롭게 변혁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 解放(해방)의 실천을 행하시는 야훼 하느님을 믿습니다”로 시작됐다.
한백교회는 찬송가 뒤에 수록된 교독문도 없다. 교독문 대신 전태일의 일기를 읽거나 김남조 시인의 시를 읽는다. 교회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닌 ‘무명의 돌’이다. ‘한백의 상징’이라 부르는 이 돌들은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가져온 것이다.
교회 소개 책자를 보면 비전향좌익수(6·25사변 당시 국군과 싸웠던 빨치산·인민군 출신으로 국군과 싸우며 끝까지 대한민국 편으로 전향치 않은 좌익사범) 박종린氏와의 소모임을 갖는 활동이 있고, 선교 사업으로 비전향좌익수를 후원한다고 적혀있다.
성탄절 예배 주보엔 한진중공업 김진숙씨가 勞使(노사) 잠정합의 찬반투표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트위터를 싣고 ‘김진숙의 기도’라는 제목을 달아 놓았다. 그 바로 아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날 피땀으로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 누가복음 (22:41~45) 본문이 실어, ‘김진숙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에 비유해 놓았다.
3.
한명숙 대표의 남편 박성준氏는 소위 反戰平和(반전평화)운동에 정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심지어 이슬람 지하드(소 ‘성전(聖戰)’)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라고 정당화했다. 또 9·11테러에 대해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以上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 논문 中)”고 말했다. 일부를 인용해보자.
“한반도는 위험을 안고 있는 불안한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 언제나 미국이 있지요. 우리가 이번의 사태(9·11사태)를 보면서 ‘오만한 미국의 콧대를 꺾었다!’ ‘미국도 당해봐야 한다」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미국이 무슨 짓을 했기에 테러리스트들이 그토록 처참한 보복을 생각해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무친 한과 절망과 증오의 뿌리가 무엇인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합시다”
박성준氏는 미국의 이라크전은 “군수산업의 이익을 도모하고, 석유이권과 중동패권을 노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로 삼는 전쟁이 아닌 침략(2003년 3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으로, 아프가니스탄전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고 그 나라의 자연을 마구 짓밟고 완전초토화하는 것(2002년 3월21일 著 ‘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 등)”으로 비난했다.
그는 91년 걸프전에 대해서도 “수십만의 젊은 이라크 병사들이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사막에서 살육되고, 미국이 이라크 사회의 인프라 구조를 파고해버렸고 생필품의 수입마저 막는 경제제재를 지금도 풀지 않아서 백만 이상의 이라크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 등 병으로 죽어갔다(‘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 등)”고 주장해왔다.
박성준氏는 특히 미국의 對北제재가 한반도에 전쟁을 부른다며 북한정권의 不法행위를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2002년 경 쓴 ‘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 는 글을 일부 인용해보자.
“설마 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 민중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부시대통령과 미국정부에게 화해와 평화를 향한 우리 겨레의 역사적 행보를 방해하지 말라고 단호히 경고하자.(···)만에 하나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덮쳐온다면 우리는 휴전선 일대에 평화의 천막을 치고 평화를 호소하는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그는 같은 글에서 “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안전을 남의 손, 外勢(외세)·강대국 미국에 맡겨놓고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며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反戰論(반전론) 또는 平和論(평화론)의 외양을 띄고 있는 박성준의 ‘反美’는 정작 평화를 부수는 북한의 테러나 도발에 대한 비판은 없다. 북한의 핵폭탄 비판도 없다. 김일성·김정일의 700만 민족학살이나 정치범수용소·공개처형, 탈북자 강제송환과 영아살해·강제낙태 등 끔찍한 만행에 대해도 침묵한다.
관대한 잣대는 후세인에게도 적용된다. 후세인은 중동의 屠殺者(도살자)였다. ▲1987년 18만의 쿠르드족 독가스학살 등 수십만의 자국민을 처형해왔고 ▲2000년 대통령 및 친인척 비방 시 ‘혀 절단刑’ 등과 전기고문·눈알 뽑기·강간 등을 자행해왔다. ▲후세인의 폭압을 피해 이라크 인구 2300만 명 중 약 400만 명이 해외로 도피했다. ▲1980~1988년 이란과 전쟁,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동원한 전쟁과 失政(실정)으로 전 세계 석유 매장량 2위인 이라크는 1천억 달러 빚더미에 올라섰다.
4.
박성준氏는 기독교 한 지파인 퀘이커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 퀘이커 공동체 ‘펜들힐’에서 “평화학”을 공부했다. 퀘이커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다. 朴씨는 퀘이커에 대해 “각 사람 속에 빛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ere is 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정수다”고 정의했다( ‘새길이야기’ 인터뷰)(=비성경적 이단(뉴에이지) 사상임).
박성준氏는 퀘이커적 ‘깨달음’을 위해 호흡수련을 강조한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베트남출신 틱 낫한 스님의 ‘숨쉬기’ 수련”을 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틱 낫한 스님의 숨쉬기를 수련하라고 권합니다. ‘깨어있는 가득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 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숨쉬기는 마음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숨쉬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삶과 깨어있는 의식 사이를 다리 놓아 줍니다.(···)처음에는 정상적인 숨을 쉬다가 차츰 숨을 길고 느리게 하여 숨결이 곱고 잔잔해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숨의 길이는 꽤 길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숨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가 ‘깨어있는 가득한 마음(mindfulness)’의 상태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