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안전하다
쾌적한 산행을 즐기려면 장비나 복장 등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 갑자기 돌변하는 기상에 조난을 당하지 않도록 장비를 챙길 뿐 아니라 올바른 사용법도 익혀두는 게 좋다.
봄, 여름, 가을 주말마다 산을 가던 이들도 겨울산은 선뜻 나서기를 꺼려한다. 그만큼 겨울산은 추운 데다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겨울산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우선 대상 산의 지도를 펴놓고 산세나 등산로, 눈사태 지역, 대피소 등 꼼꼼하게 살펴보고 갑자기 돌변하는 기상에 조난을 당하지 않도록 장비를 챙기고 운행법을 숙지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은 설악산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 산보다는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기간이 짧은 데다 몹시 추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등산하다가 갑자기 폭설을 만나거나 경사진 눈길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적설 상태에 따라서 눈길을 걷는 요령을 알아두어야 한다.
경사진 오르막길에서는 앞꿈치로 사면을 차서 디디며 올라야 미끄러지지 않는다. 반면에 내리막에서는 암꿈치를 들고 뒤꿈치를 눈 속에 박으면서 내려와야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걸으려면 바닥이 잘 구부려지지 않는 등산화를 신는다.
경사가 가파른 눈길에서는 곧장 오르내리는 것보다 비스듬하게 갈 지(之)자로 오르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스패츠와 크램폰 착용법
발목 이상 덮이는 눈길에서는 스패츠를 찬다. 스패츠는 짧은 것부터 슈퍼케이터까지 다양하나 장딴지 위까지 올라오는 긴 것을 사용한다. 스패츠는 크램폰(아이젠)을 착용하기 전에 찬다. 밸크로테이프나 지퍼, 버클, 고리는 반드시 발 바깥쪽에 두어야 걸을 때 거치적거리지 않고 걸려 넘어지지도 않는다.
크램폰 착용법도 종류에 따라 다양하나 기본은 똑같다. 크램폰은 워킹용의 4발에서 빙벽등반용으로 12발까지 있다. 등반 형태에 따라 맞는 등산화를 신어야 하되, 크램폰은 등산화에 맞는 튼튼한 것을 선택한다. 크램폰 착용 시 크램폰에 부착시키는 밴드의 조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밴드의 조임이 헐거우면 크램폰이 벗겨지고 몸의 중심을 잃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밴드 묶는 고리는 절대로 발 안쪽에 두지 말고 스패츠 차는 방법과 동일하게 발 바깥쪽에 오도록 한다.
크램폰을 착용하고 걸을 때는 등산화만 신고 걷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불편하다. 그러나 겨울철 산행에서 크램폰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눈이 내려 쌓인 뒤 처음 가는 등산로라면 굳이 크램폰이 필요없지만 다져진 눈이나 빙판 길에서는 크램폰을 착용해야만 걸을 수 있다. 크램폰을 착용하고 걸을 때는 크램폰 종류에 맞게 걸어야 한다.
우선 4발짜리 크램폰을 중심으로 설명하자면 4발 짜리는 등산화 중간에 위치하므로 발바닥 전체로 딛는다. 크램폰 포인트가 없는 앞꿈치나 뒤꿈치로만 딛는다면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반드시 크램폰 포인트가 동시에 빙면에 닿도록 디뎌야 하며 발의 바깥쪽이나, 안족 포인트가 먼저 빙면에 닿으면 미끄러진다. 발목이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꺾여 안정감을 잃고 넘어질 수도 있다. 반드시 크램폰 포인트가 동시에 빙면에 닿도록 한다.
스톡과 피켈을 이용한 눈길 걷기
크램폰 착용과 함께 등산용 스틱과 피켈을 휴대하고 필요에 따라 스톡과 피켈을 번갈아 사용하면 좋다. 스톡은 한 개 보다는 두 개를 사용한다. 눈길에서는 바스킷이 넓은 스톡이 좋으나 눈에 박혔을 때는 빼기 힘든 단점도 있다. 피켈은 한 자루면 되고 가볍고 자루가 긴 것이 좋다.
눈이 허리까지 빠지는 곳에서는 러셀을 해야만 진행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스톡 두 자루를 수평으로 모아쥔 뒤 눈 표면을 스톡으로 누르고 한쪽 발을 들어 무릎으로 눈을 다진 다음에 발을 딛는 연속 동작으로 진행한다. 여러 사람이 번갈아 가며 선두에 서면 힘을 절약할 수 있다. 러셀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산행계획을 변경하는 게 현명하다.
설사면을 횡단할 때는 스톡 두 자루를 모아 쥐고 스파이크를 사면 쪽으로 향하게 해서 짚는다. 이때 스톡이 설사면과 직각이 되게 하고 스파이크가 사면 쪽에 짚은 상태에서 손잡이를 약간 들어 올린다. 체중은 스톡에 약간 기대듯이 하여 얹어주고 스파이크는 멀리 짚는다. 이런 상태에서 사면 쪽의 발을 먼저 앞으로 옮기고 다음 발 내딛는 것을 한 동작으로 3지점을 유지하면서 진행한다.
겨울산에서 면의류는 최악의 상황 불러오기도
우리나라 산은 날씨가 좋으면 겨울에도 어렵지 않게 산행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폭설이 내린다면 어떤 고산보다도 위험하다는 게 사고 사례를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설악산 산행 중에 청바지를 입고 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여름에도 우중에 면으로 된 옷을 입고 산행하다가 저체온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겨울에는 어떠하겠는가?
또한 여름철 산행은 여름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크다. 짐도 많고 체온의 변화도 심하다. 걷는 중에는 땀이 날 정도로 더위를 느끼지만 잠깐 쉬는 동안에는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열량을 많이 빼앗긴다. 땀을 배출하지 못하면 면 옷을 입고 있을 경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땀이 밴 면 의류는 순식간에 얼어버리고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저체온증에 걸리게 되면 처음에는 심한 오한으로 손을 더듬고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방향 감각마저 상실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한이 줄어들며 졸음이 오고 의식을 잃으면 동사할 수도 있다. 이때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저체온증은 초기에 감지하고 대처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열 손실을 막고 따뜻한 물을 마셔 몸에 열을 가해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옷을 잘 선택해서 입는 게 중요하다.
우선 속옷부터 살펴보면 폴리에스터나 폴리우레탄 같은 기능성이 뛰어난 합성 화학섬유로 된 등산용 속옷을 입고 그 위에 파일 바지와 재킷을 입으면 몸에서 발산되는 땀을 신속히 흡수하고 외부로 발산하여 항상 뽀송뽀송한 느낌을 준다. 이런한 의류는 가벼워서 활동하기에 편하고 보온력도 뛰어나다. 등산용 옷이 없다면 집에서 입는 순모나 순모와 화학섬유로 섞어 만든 바지와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를 입는 것도 좋다.
위와 같이 입고 등산하더라도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은 옷이 모든 것을 보완해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더위를 느낄 때는 겉옷을 벗고, 움직이지 않거나 쉴 때는 다시 입는 습관을 기른다. 또한 오랫동안 쉴 때에는 방한복이나 우모복을 입어 체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한다. 귀찮다고 그냥 걷거나 쉬면 체력소모가 심해 탈진에 이르고 급기야는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장갑이나 양말, 모자 또한 순모나 폴리에스터 소재의 제품이 좋다. 잡갑과 모자는 눈보라에 대비해 고어텍스 제품으로 갖춘다. 겨울철에 일박 이상 등산할 경우 여벌 옷과 양말, 장갑은 필수다.
겨울철 우리나라 산에서는 습설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옷에 닿으면 젖어 들어와 등산화 안까지 물이 스민다. 그러므로 적설기 산행에는 방수방풍인 윈드재킷과 오버트라우저가 적당하고 등산화는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발목 부분이 높은 것이 좋다.
겨울산의 복병 설맹 예방하기
겨울산의 꽃도 눈이고 걸림돌도 눈이다. 산 전체가 눈으로 덮인 겨울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러나 '설맹' 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설맹은 '설안염' 이라고도 한다. 설맹은 태양이 쬐는 눈길을 걸을 때 장시간 눈에서 반사되는 강한 빛 때문에 일어난다. 가벼운 경우 눈물이 나오고 눈을 뜰 수 없다. 각막 표면에 혼탁이 생길 수도 있다. 대개 자외선을 쬔 후 수 시간 뒤에 일어난다. 중증인 경우는 시력이 저하되고 시야의 중심이 어둡고 희미하게 보이거나 일시적 야맹을 일으킨다. 이것은 망막이 화상을 입은 상태로서 망막에 부종이 생기는 것이다. 증세는 가벼울 경우 방치해도 낫지만, 비타민 B2를 보충하고, 디오닌연고를 바르며 뜨거운 물수건으로 눈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온엄법을 쓰면 1~2일 내에 낫는다. 중증의 경우는 의사의 치료를 받는다. 설맹은 심하면 시력을 잃기도 한다. 설맹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첫째 산행 도중에 직사광선이나 눈으로부터 반사되는 광선을 바로 보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눈이 있을 땐 피할 수 있지만 눈 덮인 능선을 걸어야 하는 경우는 빛을 차단하는 인위적인 기구를 사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가급적 해나 눈을 직접 바라보는 것은 피한다.
둘째 선글라스나 고글을 사용한다. 선글라스나 고글은 멋으로 끼는 게 아니다. 자신의 눈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이기 때문에 안과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사용한다. 흔히 현지 장비점 등에서 아무렇게나 구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색깔만 요란했지 차단효과가 없는 불량품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처방에 의해 구입한다. 요즘은 100퍼센트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고글이 나왔다.
셋째 등반 도중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해 틈틈이 길게 감고 길게 뜨는 반복 행동과 눈을 마사지해 준다.
넷째 선글라스와 고글은 갑자기 벗어선 안된다. 눈을 감고 벗거나 아니면 텐트 속과 같은 그늘진 곳에서 착용하고 벗는 규칙을 몸에 익힌다. 자외선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가장 강렬하다는 점도 늘 염두에 둔다.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탠 크림 꼭 발라야
자외선은 살균작용에 의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유익한 면도 있지만, 피부염 및 피부암을 일으키거나 각종 면역기능을 저하시키는 해로운 면도 있다. 그러므로 겨울철 적설기에는 자외선을 막기 위한 선탠크림을 바르고 산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선탠크림 제품에는 자외선 차단 시간을 표시하는 자외선 차단지수(SPF)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수치가 높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전문기관에서는 SPF 수치를 15~20으로 권장하고 있으나 고산등반가들은 30 이상인 것을 선호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외선차단지수가 15이면 3시간 동안 자외선을 차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겨울철이라고 자외선 양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므로 선탠크림과 함께 입술크림을 발라서 피부를 보호하는데 신경을 쓴다.
체력의 3할은 늘 비축, 비상식과 보온병 필수
겨울산행은 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최대한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장비와 식량을 준비한다. 또한 겨울 산행은 더위와 추위를 번갈아 느끼면서 쳬력 소모도 많아지기 때문에 체력 안배에도 신경을 쓴다. 통상 체력을 100으로 보았을 때 오를 때 40%, 내려올 때 30%를 쓰고, 30%는 항상 남겨 놓는다.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로 정상을 고집한다면 조난을 당할 위험성이 크다.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40% 이상의 체력소모를 했다면 냉정하게 되돌아 내려오는 게 자신은 물론 동료들을 위하는 것이다. 겨울산 뿐만 아니라 산에서는 어더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식을 꼭 가지고 다니는 습관을 들인다. 흔히들 간식과 비상식량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비상식량과 간식은 차이가 있다. 간식은 끼니와 끼니 사이 틈틈이 먹는 것이지만 비상식은 폭설에 갇히거나 조난 당했을 때 살아남기 위한 필수 식량이다. 따라서 간식은 없어도 비상식은 있어야 한다. 비상식으로 적합한 것은 조리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가볍고 부피가 적어야 되고, 당분과 칼로리가 높아야 한다. 비상식으로는 육포, 어포, 건빵, 미숫가루, 초코바, 사탕, 건포도, 말린 과일 등이 적합하다. 비상식과 함께 겨울 산행에는 보온병이 필수다. 보온병에는 늘 따뜻한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겨울산에서 장비가 중요하듯이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산에 대한 경외심이 없으면 자만하고 방심하게 된다. 항상 겸허한 마음과 외경심으로 산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산은 더욱 아름다워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