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맞춤 수공 구두: 숨겨진 비밀을 찾아서
 타고난 제화공이었던 페라가모의 ‘발에 꼭 맞는 구두의 비밀’에 대한 집착과 지적 갈증으로 전설을 만들어갔다. 그는 고향 보니토(Bonito)에서부터 발의 구조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고,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열정을 갖고 수개월간 연구하고 탐색하며 실험을 거듭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첨단기술로 구두를 대량생산하고 있었지만, 페라가모에게 그것은 무겁고 세련되지 않은 구두에 불과했다. 그는 보스턴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공장으로 갔다. 거기에서는 기계가 모든 것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감동 받지 못했고 그 광경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것은 제화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그 곳에서 개인의 기술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언급은 창조적 명장의 기술과 자존심에 대한 분명하고도 결정적인 옹호를 표현한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샌타 바버라(Santa Barbara)로 건너간 페라가모는 분명하고도 완고하게 ‘기계가 아닌 손으로’ 구두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구두 수선점을 열어 1914년에서 1927년까지 주로 영화제작소와 개인고객들을 위한 고객맞춤 수공 구두를 제작하였으며, 주요 고객들로 메리 픽퍼드(Mary Pickford), 더글러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banks) 1세, 코스텔로(Costello) 자매, 폴라 네그리(Pola Negri), 돌로레스 델 리오(Dlores Del Rio) 등이 있었다.
현대기술의 진보는 구두에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을 더해주었으나, 페라가모에게 있어 모든 발의 문제는 발의 형태나 구조에서 생기는 것들이었다. 해부학적 탐구와 실험을 거듭한 그는 발 측정 시스템에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이러한 원칙에 따라 편안한 구두를 제작할 수 있었다. 1927년 수공 구두 조립라인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피렌체로 돌아온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의 장인들과 함께 우수한 재료들로 고객맞춤 디자인 제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그의 최초의 회사,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설립하였고 이후 그의 이름은 브랜드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러부터 페라가모는 이탈리아 구두 산업에 혁신의 물결을 가져왔고, 그의 치수 측정 기준은 미국인 제조업자들과의 협업을 이끌어내면서 전 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구두 제작시 미국의 사이즈 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이로부터 다양한 발 모양에 부응하여 구두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모든 생산방식이 인간에서 기계로 대체되어 가던 시기에 수공으로 숙련된 창조를 이끌어낸 그의 장인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미, 전통적 솜씨, 그리고 품질과 편안함을 보증하는 정체성의 표식이 되도록 만들었다.
페라가모 디자인의 주요 예술적 특징
 페라가모는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많은 디자인들을 창조했는데, 페라가모사의 장인들이 만들어낸 섬세한 정련과 디테일들은 흡사 예술작품과 같았으며, 동시에 대량생산의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들로 특허를 받았다. 페라가모사의 대표적인 구두 발명품으로는 프렌치 토(French toe), 로만 샌들(Roman sandals), 웨지 힐(wedge heel), 쉘 솔(shell sole), 인비저블 나일론 슈즈(invisible nylon shoe), F-힐(F-heel), 나선형 힐(spiral heel), 조각 힐(sculpted heels), 크리스탈 밑창(crystal-soled shoe), 글로브드 아치(gloved arch), 스틸레토 힐(stiletto heel, spike hill), 바라(Vara), 간치니(Gancini) 등이 있다.
1914년에서 1927년 사이 샌타 바버라에서 영화제작소와 배우들을 위한 구두디자인을 하던 페라가모는 당시 유행하던 앞이 뾰족한 구두에 반해, ‘프렌치 토(French toe)’ 스타일을 디자인했다. 프렌치 토 스타일이란 앞의 뾰족한 부분을 잘라내고 발가락 부분을 둥그렇게 만들어 발이 짧고 뭉툭하게 보였지만, 높은 하이 힐을 붙임으로써 짧지만 가늘고 날씬한 느낌을 준 것이었다. 또한 당시의 사방이 막힌 형태의 구두와는 달리 샌들을 디자인했는데, 인도공주가 신은 로만 샌들(Roman sandal)은 프렌치 토와 함께 샌타 바버라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