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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장,
서울 댁은 얼마 전부터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부두로 나간다.
누가 올 사람도 없는데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누군가를 찾는 그런 모습으로 매일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부두에 모습을 나타내곤 한다.
작은 섬이라 관광객들이 없으면 몇 되지 않는 마을 사람들뿐일 때도 많지만 그런 날도 행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부두로 나간다.
요즘 들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딸이라고 자청을 하는 아가씨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늘 그곳에서 찾곤 한다.
이제는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엄마라고 부르곤 한다.
때로는 애절하게 부르며 다가오려는 몸짓을 보인다.
또 때로는 거의 손을 마주 잡을 거리만큼이나 가까워 보이지만 마음처럼 그리 쉽사리 손을 잡아 볼 수가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간을 보며 부두로 나간다.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찾아와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안고 그렇게 멀리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본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서울 댁이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마을 사람 서넛과 타지인 같아 보이는 사내 두 엇뿐이다.
오늘도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향하는 서울 댁의 발걸음은 무겁다.
무언가 와 줄 것만 같은 매일 매일의 꿈 또한 그렇게 매일 사라져 버린다.
집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영우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오나?
누가 와서 자넬 찾더라.“
”네?
저를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요?“
”오야!
헌디 박수길의 아들이라 카드라!“
“네? 누구라고요?”
“수길이 아들이라 카는데 우에 알겠노?
퍼뜩 가보레이!”
서울 댁을 걸음을 빨리 한다.
마당에 사내 둘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신가요?”
“안녕하세요?
실은 얼마 전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
서울 댁은 그저 멀거니 사내를 바라본다.
어느새 영우엄마도 와 있다.
“그라믄 거그가 수길이 그 사람 아들이란 말이가?”
“네!
그렇습니다.
뒤늦게서야 소식을 듣고 와 보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소식을 들었으니 다행이고만.
이쪽에서 아무리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을 할 곳도 없으니 우짜겟노?“
사내 하나는 집 안 밖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동안 멀리 살고 있어서 아버지와도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살아왔지요.
헌데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이리저리 나름대로 알아보았습니다.“
“..............................”
“아주머니!
제 어머니인 노춘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계시던데요?“
서울 댁을 보며 묻는다.
“.........................”
서울 댁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제 어머닌 저를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외가 집 가족들이 있기에 증명을 해 줄 수가 있는 일입니다.
아주머니가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만 이곳을 떠나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입니다.“
”시방 이기 뭐라는 말이여?
뜬금없이 나타나서 뭐 수길이 아들이라꼬?
그라고 누기더러 이곳을 떠나라 카나?
그라보 보이 순 날강도가 아잉가?“
영우엄마가 길길이 날 뛴다.
“제가 박수길의 아들이라는 증명이라도 필요하신가요?”
“당연한 말이제.
당신들이 누군지 우찌 아노?
그라고 수길이 그 사람의 제사를 꼬박 모시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뭐시 어떤다고?
이 집을 떠나라니? 양심도 읎능가?“
영우엄마의 음성은 화가 나서 매우 커진다.
그때 마을의 이장이 들어선다.
좁은 마을이라 금방 소문이 퍼져나간 것이다.
“무신 일들이오?”
영우엄마는 마침 잘 되었다는 듯 말을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덜이 수길이 아들이라고 서울 댁을 몰아내려고 하덜 않나 참으로 기가 막힌다요.”
이장은 사내의 말을 듣는다.
“아, 예!
그 사람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워낙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 단 한 번도 내왕이 없던 사람이라 우리는 댁의 말을 선뜻 믿을 수가 없소이다.
박수길의 아들이라는 증빙서류를 가져오시고 나서 말을 합시다.“
”이 주민등록증으로도 확인이 되지 않습니까?“
”허허...........
한국사람 흔한 이름이기에 같은 이름이 많지요.
그리고 여기 서울 댁은 그 사람의 아내로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이오.
당신네들이 이제 와서 이곳을 떠나라 마라할 권리도 없습니다.“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장을 바라보지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지 대꾸가 없다.
“아마 이 집을 팔려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왔는갑다.
허지만 이 마을에 빈집이 수두룩하고 이 섬에 이자는 들어와 살 사람이 누구 있을꼬?
헛힘을 쓰덜 마이소.“
영우엄마는 집을 둘러보는 사내를 향해서 말을 한다.
그 사내 또한 머쓱해진 표정으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버린다.
“좋습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증명서를 해 가지고 오겠소.
그리고 또한 아주머니가 사용하고 계신 제 어머니의 모든 것들도 더 이상은 사용하지 못하시도록 모든 조처를 취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사망신고서를 내지도 않고 그렇게 한 것은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일이라고 알고 계신가요?“
”그것은 자네 아버님을 만나서 따져보시게!
우리 모두 그렇게 하라고 말을 한 사람도 없거니와 알지도 못하는 일이고 오로지 자네 부친께서 그리 하신 일이니 저승에서 자네 부친을 불러내서 따져보든지 하시게!“
이장 역시 조금도지지 않고 맞대응을 한다.
그가 설사 박수길의 아들이라고 해도 이제 와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떠난다.
서울 댁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다.
그 남자의 아들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또한 자신이 노춘자가 아님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 남자의 아내고 남자 아들의 엄마인 것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그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남자의 아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주머니!
아무래도 다 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이게 무신 소리고?
다 주고 나믄 자넨 으찌 살아갈라꼬?“
”이 한 목숨 어찌 하면 살아가지지 않겠습니까?
갯벌에 나가 부지런히 일을 하면 입하나 풀칠이야 하겠지요.“
”그카지 마라!
그거이사 우리네처럼 막 살아온 사람덜이 하는 거이지 자네같이 고운 사람이 할 일은 아니데이.
우에하든 내주면 안 된다.“
그러나 서울 댁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움켜쥘 마음이 없다.
집이야 동네에 빈집들이 많으니 이장님이 허락만 해 주면 들어가 살 집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에 그가 다시 오면 다 내어 주리라 생각한다.
서울 댁은 다시 모든 근심을 잊으려는 듯 갯벌로 나간다.
차라리 이제부터는 자신이 부지런히 일을 해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바쁘게 살아가노라면 쓸데없는 일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럭저럭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멀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서울 댁은 마음이 심란스럽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 남자의 아들이 나타나 모든 것을 내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다.
이제 자신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노춘자라는 아들의 엄마를 사망신고서를 제출하고 나면 자신은 공중에 붕 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서울 댁은 머리가 아파온다.
삶이 힘들고 피곤하고 허전해진다.
그대로 모든 것을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진통제를 찾아서 먹고는 그대로 자리에 눕는다.
자신이 누구이던 모든 것을 잊고 싶다.
이대로 눈을 감고 영원히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 사이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서울 댁은 갯벌로 나간다.
잡히든 안 잡히든 일손을 놓기가 싫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더욱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온다.
어느 사이에 일에 파묻혀 자신도 모르게 많은 낙지를 잡고 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제법 많은 양의 낙지가 들어 있는 소쿠리를 묵직하다.
이 갯벌에 이제는 낙지를 잡는 여인들이 별로 없다.
일을 할 만한 나이의 여인들이 모두 떠나고 연로하신 어른들만이 간간히 바다를 바라보며 젊은 시절의 한때를 회상하곤 한다.
갯벌에 나오는 여인네라야 영우엄마와 두엇일 뿐이다.
“우예 그리도 많이 잡았노?
내 모두 팔아줄끼다.“
영우엄마는 서울 댁이 잡아온 낙지를 들고 나간다.
늘 언제나 수매를 맡아서 해 주는 영우엄마다.
서울 댁은 다시 오후에는 바위 쪽으로 가서 해산물을 채취한다.
영우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들은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 이렇게 악착스럽게 살아가는 거야.
나중의 일을 나중에 생각하자.“
스스로를 달래며 일손을 부지런히 놀린다.
이제는 그런 일에 숙달이 된 서울 댁이다.
한참의 날짜가 지나도 그 남자의 아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마 모든 일들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만 같다.
아버지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것이 유전자 검사뿐일 것이다.
또한 오래전에 사망한 어머니의 사망신고서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자료들과 증인들을 찾아내어야 할 것이기에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섬에서는 아무도 박수길의 아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서울 댁아!
아무런 걱정도 하덜 말그라!
그거이사 어디 생각처럼 쉬운 일이가?“
영우엄마의 말이다.
“그렇지만 아들이 분명하다면 모든 것을 내 주어야지요.”
“그카지 말그라!
우찌 하든 자네가 움켜쥐어야 한데이.
맨몸으로 우찌 살아갈라꼬 내 준다 카나?“
”...........................“
“자네 맴을 와 모르겟노?
허지만 아들이라고 모다 가져가라는 법이 읎다.
봐라, 아즉도 오덜 몬하고 있덜 않나?“
그러나 영우엄마의 예측과는 달리 박수길의 아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고 들어온다.
노춘자의 사망신고서를 발급을 했던 병원을 알아내고 다시 그 당시 노춘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증빙서류를 만들어 노춘자의 사망신고를 한다.
또한 서울 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모자간의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 박수길과 친생자라는 사실까지도 완벽하게 서류로 만들어 왔다.
“자, 이것을 보세요.
아주머니하고 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
노춘자는 이미 돌아가신 제 모친이고요.
이제는 노춘자의 이름으로 된 모든 것을 내 주셔야지요?“
서울 댁은 노춘자의 이름으로 된 통장은 내어준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어차피 팔리지도 못하는 집이니 사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이 다음을 위해서 제 이름으로 등기를 바꾸어 놓습니다.
어차피 제 부모님의 재산이니까요.“
그리고 박수길의 아들은 돌아간다.
통장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 저축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희색이 만연해진다.
그 속에는 그동안 서울 댁이 해산물을 체취해서 입금을 시킨 돈이 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다 내어준다.
영우엄마가 길길이 날 뛰지만 속수무책이다.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서울 댁이다.
그 시간 민회장은 보고를 받는다.
“통영에서 들어가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제는 주민이 별로 살지 않는 아주 조용한 섬이지요.
그곳에 서울 댁이라고 부리는 여인이 있는데 아마 지금까지 남의 주민등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남자는 몇 해 전 바다에서 실종이 됐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회장님께서 찾는 여인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그곳이 어디인지 자세히 말해!“
민회장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재촉을 한다.
찾아가는 길과 하루에 두 번을 들어간다는 시간까지도 알아본다.
그리고는 한송이에게 연락을 한다.
그러나 이제 민회장과 한송이는 만남 자체가 쉽지가 않다.
이미 매스컴에서는 민회장님의 며느리 감 후보로 물망에 오른다는 것과 민회장님과 송이가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것이 포착이 된 사진까지도 입수가 되었고 민우성과 만나는 것 또한 포착이 되어 기사가 나간다.
모든 정황들이 민영진회장의 며느리로 점찍어진다.
민회장은 송이와 함께 내려가기로 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자신이 함께 한다면 분명히 기자들이 따라 붙을 것이기에 전화로만 그 섬의 위치와 모든 것에 대해서 알려준다.
“한검사!
내가 함께 하지 못해서 참으로 유감이오.“
”회장님!
아무래도 제가 혼자서 다녀오는 것이 조용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휴가원을 제출하고 여행 삼아서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시오.
그리고 내가 도움을 줄만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시오.“
“네!
내일이라도 휴가신청서를 내고 출발을 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시오.
중간 중간 연락을 해 주면 고맙겠소.“
”노력을 하겠습니다.“
송이는 다음날 휴가 서를 제출한다.
선뜻 송이의 휴가를 받아드려진다.
한기범은 가슴이 심하게 뛴다.
동생 기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순간 심장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리도록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빠!
제가 가서 모시고 오겠습니다.“
”네가 혼자서 가면 되겠니?
나도 함께 가면 좋으련만 요즘 일이 너무 밀려서 휴가신청이 어렵다.“
한기범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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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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