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으로 가는 길 (출 15:19-27)
이 시간에 “엘림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엘림은 마라와 신광야 사이에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광야생활의 여정에서 최초로 만났던 사막의 오아시스입니다.
그곳에 갈증을 해소시킬 12개의 물 샘과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70그루의 종려나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다 장막을 치고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엘림 오아시스는 교회를 상징하기도 하고, 또 우리 인생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은혜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늘의 기쁨과 위로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엘림의 은혜만 있다면 살아갈만한 세상입니다. 엘림의 은혜는 우리가 사모해야 할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엘림의 축복은 그냥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여정이 있었습니다.
1. 출애굽하였습니다.
19절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는데 성공하는 장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출애굽해야 합니다. 출애굽 즉 애굽을 어떻게 나옵니까? 애굽은 세상인데 이 패역한 세대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구주로 믿고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예수 말고는 다른 살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이 열재앙의 은혜입니다. 열재앙 중 마지막 부분만 생각해 보십시다. 마지막에 어둠의 재앙과 장자 죽음의 재앙이 내려집니다. 이 재앙으로 그 완고한 바로왕은 이스라엘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이 어둠과 죽음의 재앙이 성령으로 임했기에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즉 예수 밖에는 소망 없고 예수 밖에는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재앙의 신령한 의미입니다.
그래야 홍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홍해가 영적으로 무엇입니까? 다 영적인 의미가 있어요. 고전 10장을 보면 홍해는 세례라고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진정 예수 말고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확신 할 때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관점의 이 열재앙의 은혜는 아주 귀합니다.
예수님 약속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2. 소고 치며 춤추며 찬양했습니다.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를 뒤 따르던 애굽의 군대들도 모두 수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구원 앞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홍해의 찬양이 바로 엘림으로 가는 중요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할 일을 믿고 찬양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므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 공로를 누리는 길은 믿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해 놓으신 온갖 아름다운 것을 그냥 믿고 감사하고 찬양만 하면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소고치고 춤추던 미리암처럼 적극적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송이 약하지 않기 바랍니다. 강한 찬송이 세상을 이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만불평하지 마세요. 어리석게도 그들은 믿고 찬양할 기회에 불평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영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믿고 항상 찬양하는 사람에게는 엘림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3. 부르짖었습니다.
22-25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감격의 찬양을 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향한 사흘 길에 물을 얻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말았습니다. 마라에 이르렀지만 써서 마시지 못하는 독물이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지적하셔서 그 나무를 던졌더니 해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광야 세상길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찬양하려고 해도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기뻐하려해도 기쁨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길을 내시든지 길을 내어주십니다.
마귀를 놔두고 어떻게 엘림의 복을 받겠습니까? 부르짖고 기도하면 마귀 시험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고 말했습니다.
유비무환이란 말이 있습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이 다가오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전쟁이 피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강한 전투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주십니다.
4. 여호와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셨습니다.
25-26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이것은 불변의 약속입니다.
세계적인 정신과 의사 메데르 박사는 그가 정신과 의사로서 20년 만에 인간의 정신 속에 병을 만드는 원인이 죄 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죄는 만병의 원인이 된다.” 고 하였습니다. 짧은 세상입니다. 하나님 기쁘신 대로 사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엘림의 복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세상의 여정에 기쁨과 위로의 엘림의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 안에 엘림의 복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바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예수 없으면 살 수 없음을 믿고 더 확실히 믿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더 찬양하고 더 강하게 기도하므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