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톳 밥
이영백
가난 밥을 먹어 보았는가? 가장 무서운 것이 눈칫밥 다음으로 가난 밥이다. 가난 밥에는 “톳 밥”이 있다. 밥이 흰색이면 마치 부잣집에서 백고무신을 신은 것처럼 보이고, 밥이 검은색인 톳 밥은 마치 검정고무신 신은 것 같다. 톳 밥을 어렸을 때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검은색 꽁보리밥도 먹었다. 보리쌀을 물에 불려 푹 삶아 놓은 것에 불과하니 식감이라고는 없다. 모질게 자란 보리낱알은 섬유질이 억세었다. 보리밥이 더 검게 보이었다. 방앗간에서 더 깎아서 지었더니 흰 보리쌀이 되었다. 1차 삶아 두었다가 2차로 보리밥을 한 후 오랜 뜸을 들이면 밥맛이 훨씬 좋았다. 검은색 보리밥보다 검은색 “톳 밥”먹을 때가 더 싫었다.
톳은 초무침나물로도 먹었으나 식량이 부족하면 시커먼 톳 밥을 해 먹었다. 가난 때문에 검은색 톳 밥으로 지었다. 쌀알은 찾아도 안 보이고 보리쌀알이 군데군데 섞인다. 검은색 오롯한 것으로 된 톳 밥이다. 어렸을 때는 우리 집만 그렇게 해 먹은 줄 알았는데 다른 집도 밥해 먹었다.
오늘날에는 귀한 톳이요, 초무침 나물로 영양이 적격이다. 씹으면 씹는 대로 신선한 식감을 느낄 수 있어 잘 먹게 되었다. 확실히 톳 밥보다 반찬으로 먹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예전에는 주식 밥이 톳 밥이다.
“톳 나라”식당에서 돌솥 밥으로 먹어 보았는데 밥맛이 구수하다. 아울러 누룽지는 물을 붓고 우려먹었는데 별미이었다. 예전의 톳 밥과는 천양지차이다. 아마도 세월이 다른 시․공간 차이인가 보다. 오히려 현대에 와서는 톳 밥을 먹지 못하여 안달이다. 귀하디귀한 별미이다. 시간 내어 다시 그 식당을 찾아갔더니 이전하고 없다. 그곳에는 점심만 하였는데 아깝다.
오늘날 혈관질환, 성인병, 골다공증, 다이어트, 빈혈, 노환예방에 가장 좋은 식이요법에다 항암작용까지 한다는 것이 이보다 좋은 “톳 밥”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도 세월이 또 변하여 약이 된 모양이다.
사실 가난하지 아니하였다. 흰 쌀밥만 먹고 살아도 되는데 많은 자식 낳아 치송하려고 아버지는 먹는 것 아껴 논ㆍ밭 구입한 모양이다. 그랬다. 쌀로 밥 짓는 것을 줄여 돈 모으고, 그 돈으로 재산 늘이었다. 그래서 검은 “톳 밥”도 지어 먹였던 그 어린 날이 건강식으로 회억된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