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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⑤
《개벽신문》 제61호. 2017년 1‧2월 합병호
포함과 회통
조성환 (서강대 철학과 강사)
한국은 종종 ‘종교백화점’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세상의 모든 종교가 모여있는 곳이다. 실제로 캐나다의 한국학자인 돈 베이커는 한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서울 강남에서조차도 한두 블록만 가면 불교, 기독교, 도교, 샤머니즘과 같은 다양한 종교사원을 볼 수 있다고 술회하고 있고(《한국인의 영성》 첫머리), 최근에 중국의 한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사태를 분석하면서 한국을 ‘종교백화점’ 또는 ‘종교박물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葛小辉 <“创教热情”登国际热搜, 韩国变成“宗教百货店”>《环球时报》 2016년 11월 22일자).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단일한 주자학적 질서가 깨지고 서양의 ‘종교’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한 일제시대에 이미 한반도에는 수많은 자생종교가 우후죽순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능화는, 일본이 규정한 ‘삼교’(신도-불교-그리스도교)가 아닌 ‘세상의 모든 종교’(百敎)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는 그것들 사이의 ‘회통’까지 논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서 원불교 재단에서 세운 원광대학교 캠퍼스의 한복판에는,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의 동상이 아닌, 유교·그리스도교·불교·서양철학을 창시한 공자·예수·붓다·소크라테스의 동상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한국사상사의 맥락에서 어떤 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최치원의 ‘포함’과 이능화의 ‘회통’ 개념을 실마리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최치원의 ‘포함’ 사상
3세기 말의《삼국지》에 소개된 한반도 부족국가들의 ‘제천행사’와 더불어, 한국사상의 원형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귀중한 자료로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9세기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 나타난 ‘풍류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핵심은 삼교를 포함하고 중생을 접화하는 것이다. 가령 들어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나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의 가르침이고, 무위의 일에 처하고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사의 종지이며, 어떤 악도 저지르지 않고 모든 선을 봉행하는 것은 인도 태자의 교화이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여기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최치원의 중국에 대한 대등의식이다. 그것은 ‘공자’나 ‘노자’ 또는 ‘석가’라는 존칭어 대신에 ‘사구’나 ‘주사’ 또는 ‘태자’라는 관직명이나 지위명을 쓴 점에서 알 수 있다. 실제로 최치원은 중국을 ‘중국’이 아닌 ‘서국’이라고 부름으로써, ‘동국’인 신라와 중심과 주변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설정하였다(최영성 「고운 최치원의 동인의식」 참조).
이와 같이 한국을 중국의 제후국가나 주변국가로서가 아니라 대등한 국가로 설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같은《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 신화에서는 건국의 시기를 중국의 성왕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요임금[唐堯]과 동시대인 ‘무진년(戊辰年)’으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이 중국과 출발을 같이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난랑비서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역시 ‘포함’일 것이다. ‘포함’에 대한 해석은 ‘풍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한국문화의 특징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포함삼교”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최치원의 주장대로 중국의 삼교는 처음부터 신라의 ‘풍류’에 다 들어있었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유불도 삼교를 절충 내지는 혼합한 결과가 풍류도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근원’으로서의 포함 개념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종합’으로서의 포함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해석은 모두 극단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후자의 해석은 한국문화의 근원이 모두 중국에서 유래하였다는 관점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비주체적인 반면에, 전자의 해석은 이것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는 한국문화를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보고 있고, 다른 하나는 한국문화를 지나치게 우월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최근에 이정배는 ‘포함’의 ‘함(含)’을 ‘수용’으로 해석하였는데(<생명평화마당> 신학위원회 4차 심포지엄 발표. 2013년 6월 5일), 이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른 관점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수용으로서의 포함’ 개념은 ‘포함’을 내용이 아닌 ‘태도’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외래사상을 수용하고자 하는 개방적인 태도”를 ‘포함’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이 관점에 따른다.
‘어우러짐’으로서의 풍류
최치원의 “포함삼교”는 전통적으로 중국문화를 수용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최치원은 전자를 ‘삼교’로, 후자를 ‘풍류’로 표현한 것이다.
‘풍류’는 말 그대로 ‘바람’과 같은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새롭게 하는 과정적 삶을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와 상통한다. 실제로 조선후기의 다산 정약용은 ‘화랑’에 대해서 ‘貴遊’(귀유=유랑하는 귀족집단)라고 설명하였는데(《아언각비》), 여기에서 ‘遊(유)’는 떠돌아다니는 놀이적 삶을 가리킨다.
유동식의 해석에 의하면, 화랑은 명산대천을 유랑하면서 자연의 정기를 흡수하고 거기에 깃들인 신령과 교제하였다고 한다(유동식 「한국인의 영성 풍류도」). 이러한 삶의 방식이 사상적 측면에서 드러난 것이 “포함삼교”이다. “포함삼교”는 어느 하나의 가치체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사상들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랑은 유교나 불교 또는 도교와 같은 특정한 진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느 하나를 배제함이 없이 모두를 아우르고자 하는 사상적 ‘어우러짐’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어우러짐의 정신이 바로 풍류도인 것이다. 자연과 어우러지고(遊娛山水) 사람과 어우러지고(接化群生) 사상과 어우러지는(包含三敎) 경지야말로 화랑의 지향한 최고의 경지였다.
따라서 풍류도는 기본적으로 ‘일교주의’가 아닌 ‘다교주의’를 지향한다. 즉 조선시대와 같이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인정하여 다른 사상이나 종교는 배척하는 ‘일교주의’가 아니라, 가급적 많은 사상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포함삼교”는 상황이 바뀌면 “포함사교”, “포함오교” 또는 “포함백교”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교’ 개념이 붕괴되고, 서양의 ‘종교’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한 일제시대에 이능화가 “백교의 회통”을 주장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풍토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한편 풍류의 “포함삼교”는 중국의 “삼교공존”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발상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삼교공존 내지 조화사상은 삼교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는 것이지, 삼교를 포함해서 새로운 ‘도’나 ‘교’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삼교끼리의 교류나 영향 관계는 있을지언정 삼교와는 다른 새로운 ‘교’는 설정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최치원의 “포함삼교”는 삼교를 수용한 새로운 ‘도’의 탄생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삼교의 소양을 골고루 갖춘 전인적 인간형의 양성을 지향한다. 즉 유불도 삼교의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인재를 기르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정약용에서의 유교와 천주교의 만남
최치원의 ‘포함’은 기본적으로 어느 사상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사상적 개방성의 표현이다. 이와 같은 포함의 태도가 한국사상의 역사상 가장 위축되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시대일 것이다.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신유학의 일교주의를 표방한 조선에서는 당연히 “포함삼교”보다는 “배제이교(二敎=도교와 불교)”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주자학적 질서가 약화되고 서양사상이 유입되는 조선 말기에 이르면, 본래의 ‘포함’ 정신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다산 정약용에서의 유교와 천주교의 만남이다. 잉글랜드의 한국학자인 캐빈 콜리는 다산의 사상을 ‘Christo-Confucianology’(그리스도-유교학)라고 규정하고, 그 사상구축의 방법론을 “resisting exclusions”(배제거부)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배제거부”야말로 풍류도의 ‘포함’에 다름 아니다. 즉 정약용은 천주교의 전래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유교와 천주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둘 다 포함하는 또는 유교 안에 천주교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유교 윤리’의 정점에 ‘천주교 상제(=God)’가 위치하는 새로운 형태의 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상제’는 유교의 ‘천(天)’보다 더 강력하게, 그리고 신유학의 ‘리(理)’가 수행하지 못했던, ‘도덕적 감시자’의 역할이 부여되고 있다. 그래서 이제 유학자가 ‘신독’(愼獨=혼자 있을 때에도 삼감)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도’에 부합되거나 ‘리’에 합치되어서가 아니라, 저 하늘 위에서 창조주 하느님이 굽어다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방식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다산의 유학을 우리는 ‘상제유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의 상제유학은 그의 작업이 마테오 리치의 해석학적 작업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말해준다. 즉 다산이 유교와 천주교를 융합시켜 새로운 유교 내지는 천주교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천주실의》의 저자인 마테오 리치는 유교 경전을 천주교 교리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유교와 천주교 사이의 ‘회통’(=두 개 이상의 사상체계가 서로 충돌되지 않고 근원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보이는 작업)을 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중국에 천주교를 전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다산은 유교의 윤리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유교 안에 천주교의 신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유교와 천주교의 ‘어우러짐’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원불교에서의 포함과 회통
최치원이 제시한 ‘포함’의 정신은 다산 이후에 일제시대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원불교이다. 가령,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1924~1948)의 제2대 회장을 지낸 조옥정(1876~1957. 본명 조송광)은, 구한말에는 유학자로 출발했다가 일제 식민지를 전후하여 동학교도가 되어 동학농민전쟁에 참전하였고, 이후에는 기독교에 몸담으며 교육 사업을 행했으며, 마지막에는 원불교에 귀의한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다양한 종교적 편력은 그가 종교에 있어서 ‘포함’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데, 이점은 그가 원불교로 전향한 뒤에 기독교인들과 주고받은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장로교인들: ‘야소교인으로 불교를 믿는 것은 웬 말인가? 초심을 바꾸지 말고 한곳[一方]에 머물며 평생 편하게 지내다가 여생을 마침이 어떠한가?’
조옥정: ‘그렇지 않소. 초심을 바꾸지 않고 한곳에 머무는 것보다 세상만사를 두 곳[兩方]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오.’
남장로교인들: ‘한 몸으로 두 곳을 섬기는 것은 부정한 행위요.’
조옥정: ‘거두절미하고 직접 보시오. 우리 눈은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우리 손도 하나보다는 둘이 나으니, 우리 발도 하나보다는 둘이 어떻겠소?’
(이상, 박용덕, 「경산연대기 <조옥정백년사>고」, 《정신개벽》6권, 1988 참조)
여기에서 남장로인들은 ‘일방(一方)’을 고집하는 ‘반(反)풍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주자학만을 인정했던 일교주의적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에 조옥정은 “하나의 눈보다는 두 개의 눈이 낫다”는 말로부터 엿볼 수 있듯이, 종교는 가능한 한 많이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좋다고 하는 다교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풍류도의 ‘포함적 종교관’과 상통하고 있다.
한편 조옥정의 이러한 입장은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옥정은 소태산에게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예수를 믿다가 변절하는 것 같아 유감이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소태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을 독실히 믿어서 심통제자가 되면 나의 제자가 되는 거나 다름없고, 내 법을 독실히 믿어 심통제자가 되면 예수를 떠나지 않은 것이다.”(상동)
여기에서 소태산은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결코 원불교를 믿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 수용의 측면에서는 포함적 종교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진리관의 측면에서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그 근원에서는 하나로 통한다는 융통적 또는 회통적 종교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점은 원불교의 다음과 같은 사상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이나, 교문을 별립하여 오랫동안 제도와 방편을 달리하여 온 만큼 교파들 사이에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일이 없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다 모든 종교와 종파의 근본 원리를 알지 못하는 소치라…. (《정전》 제1 총서편, 제2장 「교법의 총설」)
여기에서는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 근원에서 하나로 통하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융통’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능화가 <<백교회통>>(1912)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하늘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통한다고 본 것과 유사한 입장인데, 다만 이능화가 ‘회통’이라는 말을 쓴 반면에 원불교에서는 ‘융통’이라고 표현한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에 의하면 조옥정이 여러 종교를 수용할수록 좋다고 한 것이나, 소태산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곧 자기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 것은 모두 기본적으로 융통 또는 회통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즉 종교와 종교 사이에 장애가 없다[敎敎無碍]는 ‘회통’(=융통)의 태도가 확보되어야 비로소 여러 종교를 수용하거나 어느 한 종교만을 배타적으로 신봉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불교는 이러한 회통(=융통)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풍류도나 상제유학과 같은 새로운 ‘도’의 창출이라는 의미에서의 ‘포함’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유․불․선 삼교가 각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 하여 왔지마는,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므로 우리는 이 모든 교리를 통합하여 수양․연구․취사의 일원화와 또는 영육쌍전․이사병행 등 방법으로 모든 과정을 정하였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잘 공부한다면 다만 삼교의 종지를 일관할 뿐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의 교리며 천하의 모든 법이 다 한 마음에 돌아와서 능히 사통 오달의 큰 도를 얻게 되리라. (《대종경》제2 교의품 1절)
여기에서 ‘통합’은 풍류도적인 의미에서의 ‘포함’을 가리킨다. 즉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여 탄생한 새로운 ‘교’인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회통’과 ‘포함’의 두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능화는 ‘회통’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포함’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반대로 최치원은 ‘포함’은 말했지만 ‘회통’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풍류’라는 무집착의 ‘태도’가 회통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함’과 ‘회통’은 한국적인 종교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신라말기에 유불도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에서 시작되어, 거기에 더해서 세상의 모든 종교를 회통시키고자 하는 일제시대의 원불교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종교백화점’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유도 “한국이 하나의 풍류”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第四卷, 「新羅本紀」 第四 眞興王
유동식 「한국인의 영성 풍류도」(소금 유동식전집편집위원회 《소금 유동식 전집 제8권 : 풍류신학 II》, 한들출판사, 2009)
최영성 「고운 최치원의 동인의식」(고운국제교류사업회, 《고운 최치원의 철학·종교사상》, 문사철, 2009)
박용덕, 「경산연대기 「조옥정백년사」고」, 《정신개벽》 6권, 1988.
조성환 「동아시아의 지식형태와 공공성」(박치완 외, 《지식의 역사와 그 지형도》, HUINE, 2016)
Kevin Cawley, “Traces of the Same within the Other: Deconstructing Tasan's Christo-Confucianology”, 《다산학》 24-2, 2014
고수봉 「교리를 넘어 한국적 기독교의 한류를 기대하며」《에큐메니안》 2013년 6월 5일자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9849)
葛小辉(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박사과정) 「“创教热情”登国际热搜 韩国变成“宗教百货店”」 《环球时报》 2016년 11월 22일자
(http://world.huanqiu.com/exclusive/2016-11/9711738.html)
심재훈 「中관영매체 "한국은 종교백화점…위기의식 때문"」 《연합뉴스》 2016년 11월 22일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22/0200000000AKR201611221558000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