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는 ‘신민’을 통해 지도자가 스스로를 먼저 수양하고, 그 모범을 통해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왕양명은 ‘친민’을 강조하며, 지도자가 백성과 가까이하며 그들의 고통을 직접 이해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스로를 수양하는 태도인 ‘신민’과 국민과의 소 통을 강조하는 ‘친민’ 중, 현대 사회에서 어느 것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더 중요한가?
-사실 둘 다 중요한 자세라고는 생각하지만 친민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민의 전재는 백성과 지도자의 상하위계의 관계다. 즉, 수직적이라고 할 수 있다(단편적으로 말하면). 친민은 수평적 관계이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떠한가? 대통령이 지금 일반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위하고 있는가? 아니다. 수단화가 됐다. 즉, 수직 구조에서 바라본 우리들은 대통령의 기준에서 일개 표를 얻게 하는 '천민'일 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왜 그렇게 가혹한 단어를 쓰느냐 묻는다면, 눈을 들어 현 정치를 봐라. 미래의 청년들에게 빚이 될 지원금을 뿌리는 이 사람이 과연 대통령으로서 일반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는가? 청년들은 그저 돈 벌이 수단이고, 노인들은 자신의 표 팔이 수단이며, 아이들은 장차 미래이긴 하나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만 미래로 취급하며 착한 척 하고있다.
나는 그렇기에 친민을 중시한다. 대통령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늘 겸손히 자각하고, 정책의 실효성 및 일방성만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 가능성까지 총체론적으로 거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단히 말해, 철학하는 대통령, 생각하는 대통령, 명예라는 칼이 자신의 목에 들어와도 그것을 빼지 않고 앞을 우직하게 걷는 대통령이 미래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셰익스피어가 쓴 맥베스처럼 '정의'라는 일면의 가치만을 스스로 너무 강조해 가혹하게 스스로에게 면박을 주며 그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선한척 건방떨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맥베스는 결국 야욕에 무너져 자신의 이권을 침탈당했지만, 철학을 하는 대통령은 그 이권의 무서움을 알고 늘 그 자리에서 벌벌 떨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 새로운 철학의 맥베스를 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