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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2015년 겨울호 계간평>
폭넓은 詩心과 새로운 詩作의 시도
박 영 교
(시인 ․ 전 한국 시조시인협회 수석부이사장)
2015년도 마지막 달력장이 넘어가는 시기에 와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다.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함께 걸어갈 여당도 건강할 것인데 언론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치는 F급의 정치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도 국회에서 그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못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생의 일들은 빠른 시간이 요구된다. 국회는 당리(黨利)가 아니라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민생법안 처리를 빠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국민들의 수준이 위정자의 수준보다 높아서 누가 그르고 옳은가의 정도를 잘 헤아리고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무서워할 줄 아는 국회의원은 그 배지(badge)를 오래 달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야당 모두 건전한 정당으로 바로 설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계간『현대시조』에 발표된 작품을 보면 시인이 점점 젊고 신선한 작품이 발표되어 새로운 피를 수혈한 느낌을 받는다. 2015년 『현대시조』 가을호에 발표된 작품에는 먼저 <김정 시인의 소시집> 원고와 <현대시조 제77회 신인상 당선작>이 발표 되었고 <현대시조단 ‘이 계절의 신작’> 최승범 외 49명의 시인의 신작들이 발표되어 있다.
김정 소시집(小詩集)의 작품을 보자.
몸으로 만나본다 서대문 형무소를
생과 사가 갈렸다는
철문을 통과해도
안과 밖 똑같은 하늘 겨울비 여전하다.
가서는 오지 못한 독립투사 그 큰길을
섣부른 풋객기로
따라갈 수 없지만
죽어서 증언하노라! 미루나무 두 그루.
삐걱대는 애국애족 피 냄새 잊었는가
다시금 살아나는
그날의 신음소리
역사는 녹슨 태엽을 힘겹게 돌리고 있다.
-------------------------「미루나무 교훈 보다」전문
김정의 작품 「미루나무 교훈 보다」를 통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많은 애국지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보고 있다. 그 철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살아나오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얻은 우리나라가 지금은 너무나 어수선한 상황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가서는 돌아오지 못하는 독립투사들의 그 큰길을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삐걱대는 애국애족,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시인은 가슴 아파하면서 그 아픔을 “역사는 녹슨 태엽을 힘겹게 돌리고 있다.” 고 노래하고 있다.
뻐꾹뻐꾹 다리 절며
유월은 재를 넘고
철쭉꽃 자락자락
강물 위에 비치는데
또 한철
무명 설움이
물소리로 감긴다.
아픈 허리 통증이야
뜸질로 다스리지만
시간에 녹이 슬어
딱정이 굳은 자국
여태껏
오고 못 간 길
풀빛만이 더 짙다.-------------「유월은 다시 와서」전문
김정의 작품「유월은 다시 와서」도 시대적으로 가슴 아픈 노래이며 육이오의 한국전쟁을 의미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 세계에서도 유일한 분단국가가 바로 대한민국과 북한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통일을 하고 싶어도 강대국의 이해타산이 깔려있고 우리 자신의 계산이 맘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현실의 아픔을 토로해도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어 이렇게 분단되어 있는 것이다.
유월만 되면 우리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따발총 소리며 ‘땅쿵’하는 소련제 장총 소리가 지금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데 어찌 이 유월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내 마음 불어가는 스산한 이런 날엔
들꽃 향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아직도 못 잊은 사람 생각 한 술 보탭니다.
습기 찬 사유들은 가을 볕에 널어놓고
둘쩌귀 환하도록 덮은 시집 펼쳐가면
어느새 귀뚜리 소리 가을을 읽습니다.
들녘 끝 누군가가 저벅저벅 옵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따뜻한 찻잔 받들어 그대에게 드립니다.-----「가을을 끓이다」전문
이 작품은 계절감각과 못 잊을 사람의 그리움과 차를 우려내는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들꽃향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첫수 중장에서 자연의 향기와 종장의 못 잊을 그 사람의 생각을 보탠다고 했다.
둘째 수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살려서 노래하고 있으며 첫 수에 들꽃 향을 꺾어서 끓인 차를 셋째 수에서는 들녘 끝에서 추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대에게 따뜻한 찻잔을 드린다고 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모든 이를 가리키는 언어이며 위로하는 찻잔이다.
꽃잎이 하르르르/
나비 떼로 쏟아진 날/
다가온 너는 그때/
한줌 꽃 향기였다/
지금도/
찻잔을 들면/
그 속에 뜨는 얼굴.---------「꽃차」전문
시인이 쓴 작품 중에는 차와 관계되는 작품이 많다. 이 단형시조도 그리운 그대를 ‘한 줌의 꽃향’으로 표현하면서 그 꽃향의 차를 마시면서 그 꽃 찻잔 속에 어리는 그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시조단, 이 계절의 신작의 작품을 보자.
발 편히 뻗고
자리에 눕고 보면
눈 감고 챙겨야 할
무엇 무엇 있었던가
생각을
좇다가도 스르르
잠 포개는
밤이다------------------------최승범「밤」전문
우리가 고된 하루를 보내고 살아가는 동안 안식을 맞는 것이 밤이다. 우리 생활에 밤이 없으면 평생을 고단함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살아있는 동물들은 귀소(歸巢)의 본능이 있으므로 내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 평안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최승범 사백의 작품 ‘밤’을 통해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평범하지만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진실함이다. 오늘 한 일을 생각하다가 또 오늘 못한 일을 생각하다가 내일은 꼭 완성해야겠다는 생각 속에 잠은 스르르 오고 만다는 일상의 진실이 녹아있다.
고요한 밤에는 귀가 크고 넓어진다/
예비된 풀벌레나 별빛이 지는 소리/
아직도
닿지 않는 소리까지
미리 다 듣는 귀./
고요가 깊어지면 소리의 뿌리에서/
사르르 움직이려는 가느다란 의도(意圖)까지/
귀속에
물처럼 스며들어
환하게 다 들린다.------------------김종「고요한 밤에는」전문
우리가 작품을 읽다보면 너무나 많이 내 생각과 내 느낌이 비슷할 때 독자들은 공감을 얻는 것이다. 언어가 새롭다거나 낱말이 새로울 때 오는 감정도 있지마는 그 전체의 시적 형상화가 함께 움직일 때 독자들은 그 시를 좋아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어떤 문학잡지 가운데는 ‘내가 읽은 좋은 시’ 등등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이 읽은 시를 올려놓는 것을 보게 되는데 몇 작품은 공감을 하게 되나 나머지 작품들은 자신과 그 시인과의 관계에 의해 떠올려 놓은 작품인 것으로 보여 졌다.
위의 김종 작품「고요한 밤에는」읽어보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첫 수 초장의 시구가 너무나 공감되며 이런 좋은 언어를 심어 놓을 수 있는 시인의 능력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자 없이도 직선을 그을 줄 알던 연필
쓸 만큼 쓰고 나니 심이 닳은 탓일까
면벽의
공간 좌표에
포물선만 그린다. ----------------이기라「전립선」전문
이기라의 작품「전립선」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노인층에 있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명이다. 이것을 이기라 시인이 연필로 비유를 하여 쓴 것이다.
우리가 모든 신체 각 부위별로 보면 어느 하나라도 성한 것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농기계나 어떤 물품을 칠십년 이상 쓰면 고물이 다 되어서 못쓰게 될 것이다. 사람의 한 부위는 생각해 봐도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의학기술이 발달되어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온 것이지 우리 자신이 잘나서 오래도록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90세에 아들을 얻었다하고 또 180세까지 산 시대가 소개되고 있지만 그런 시대는 어렵다고 본다.
물비늘 반짝이는
호숫가 낚시터에
낚싯대 드리우고
여유롭게 세월 낚는
미끼는 도둑맞아도
가을 햇살 벗한다.-------------정순량「세월 낚는 노인」전문
나이 많은 노인들의 일상을 정순량 시인이「세월 낚는 노인」으로 작품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미생활을 만들면서 자신의 시간 관리나 시간의 효율성을 체크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인내심과 시간의 기다림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미끼는 벌써 고기에게 빼앗겨버리고 있지마는 그 여유로움에서 정순량 시인의 내공이 큰 것이다.
밟혀서
일어나고
흩어져 씨가 된다
눈물로 쫓겨났던
맨살의 하얀 겨레
지금 막
지구촌 곳곳
다투어 꽃이 핀다.---------이도현「민들레」전문
이도현의 작품「민들레」는 우리나라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작품을 쓴 것으로 안다. 우리 민족을 불러 민들레 같은 민족이니 질경이 같은 민족이니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아무리 어려운 고난을 당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살아남는다고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도현 시인의 작품 부제에 담긴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을 대변해 주고 있으며 작품 속에는 이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많이 그런 고통 속에서 아픔을 견디며 살아오고 있었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다.
푸르다 푸르다 못해
살짝 한풀 꺾인 들녘
이때다 이때다 싶어
숨죽이던 것들이
일시에
벌촛길 따라
떠도는
저 밀잠자리떼.----------------오승철 「으아리꽃」전문
오승철의 작품「으아리꽃」을 읽어보면 우리에게 생소한 식물의 이름과 잘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의 이름으로 또 작품을 이끌어 나오는 언어의 맵시들이 항상 평범한 작법을 해 오던 시인들 시어의 어감보다는 다른 어법들을 보게 된다.
오승철 시인의 새로운 기법이 아니라 우리 독자들은 가만히 있지만 시인은 열심히 노력하고 찾아낸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오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시조작법을 스스로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품에 있어서 초장의 ‘한풀 꺾인 들녘’ 중장의 스몰스텝의 보법을 접하게 되는데 종장에 들어서게 되면 제목은 ‘으아리꽃’인데 종장에 표출되는 것이 ‘밀잠자리 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으아리꽃과 밀잠자리 떼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으아리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덩굴풀인데 그 꽃은 흰꽃이다. 그리고 밀잠자리는 꼬리 끝부분만 까맣고 나머지는 흰색이므로 벌초를 하려고 가서보니 으아리 꽃들이 마치 밀잠자리 떼처럼 보이는 것에 착안한 작품인 것 같다.
푸르게 싹 틔우고 허벅지게 꽃피우고
그늘에 매미 울리고 심장은 다 내어주고
나무는 나무의 길을 간다
성자의 길이다.------------------- 박옥위「나무」전문
박옥위의 작품「나무」이다. 모든 식물이나 나무들이 다 그렇겠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모두 다 내어주고 그들의 심장까지 내어주고 겨울을 맞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그 나무의 삶이 성자의 삶과 비유되는 것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노래하면서 시의 제목도 구체적인 나무를 제목으로 잡았으면 더욱 실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그 점이 좀 아쉽다.
무쇠솥 뚜껑을 콕콕 쪼는 새 이제 없다/
꽃 지는 소리 바깥
무심히 흐른 강줄기
우체부 자전거소리 파르르르 흩어진다./
벼랑바위 눈감기는 현깃증처럼 지나갈 /
무더기로 놓인 고요
무수한 빛깔 품는다 해도
영혼의 무게를 재는 생의 온기도 이슬이다.
-------------------------------황다연「또 다른 이슬」전문
황다연의 작품「또 다른 이슬」은 우리들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마음 속 기다림의 떨림 그 자체를 이슬로 비유된 것이다.
첫수에서는 솥에 불을 땐 무쇠 솥뚜껑에 매달린 물방울들을 이슬로 비유될 수 있으나 이제는 없고 우체부를 기다리는 자전거 소리가 내 마음 가운데 이슬로 맺는 것이다. 둘째 수는 벼랑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현기증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영혼의 무게를 재는 생의 온기를 이슬로 헤아려볼 수 있는 것이라고 황다연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적신다 호흡한다 입술 닿는 네 살이
웃는다 마주한다 손 끝 틔운 네 가슴이
비로소
너 소반에 앉아
가야금에 오른다.---------------노창수「음미의 율」 전문
노창수의 작품「음미의 율」은 가야금 음률을 차의 맛과 비유한 작품이다. 시인은 차를 우려서 소반에 오를 때까지 그 율격을 가야금을 울리는 음미로 비유하고 있으면서 그 동안의 내적 정감을 가야금 음률이 마음에 감미롭게 닿는 그리움과 그 맛의 온율(溫律)을 표현하고 있다.
햇살이 내려앉아 은어로 파닥이는 /아련한 그리움이 어머니로 비치면서/ 그 많은 그리움들을 나룻터에 부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에 노을을 얹어 놓고 /갈대숲 흔들면서 수런 수런 흘러가도/ 어제의 생각대로만 출렁이는 江물이여.-------- 김전「어제의 江」전문
김전의 작품「어제의 江」에는 어머니의 그리움에 대한 지난날의 세월을 흘러간 강의 이미지로 형상화 시킨 작품이다.
강 나루터에서 어머니의 그리움이 물결에 햇살 비취듯이 파닥이며 반짝이는 그 많은 그리움들이 생각이 나면서 지난날들이 은어 떼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표출하고 있으며 둘째 수에서는 인생은 점점 늙어가고 세월은 흘러가는데 우리들의 생각은 옛 그대로의 어머님 생각에 젖어 출렁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은 그 옛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강물에 마음을 흘러 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그리움이 막걸리 한 사발에 지난 세월의 출렁이는 아쉬움을 강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저녁노을이 짙게 내리는 갈대숲 서걱이는 출렁이는 강물이다.
비오는 초록바다
통성이 잦아든다
견디는
이마에는
땀방울 송골송골
분만의
산통 같아라
올라오는 저 신비.--------------채명호 「출수出穗」전문
채명호의 작품「출수出穗」는 농촌생활의 보람을 출산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모든 씨앗들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고 그 푸르름 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로 인해 생산의 열매가 태어나는 것이 마치 분만의 산통을 앓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채명호 시인은 벼이삭이 나오는 아픔의 통성이 분만의 산통을 앓는 그런 것과 같이 느끼는 시인의 마음이 작품을 통해 받아드려지고 있다.
작품「권력」은 현재의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상황의식을 작품에 교모하게 엮어서 표출한 언어들이 멋있다. 특히 종장에서 시인은 전부를 다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개혁을/ 약이라 하나/ 사약인 듯 슬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가을이라면/
얼마나 그윽할까 가득히 채워 든든하고 /
홀홀히
비워야 맑아지는
삶의 쉼표 그 무한함./
달에 난을 치려고 푸른 붓 들고 보니/
단풍궁궐 환한 밤에 글 읽는 귀뚜라미/
달빛은
사색을 끌고
내 마음을 쓰다듬네.--------------- 김기옥 「가을 사색」전문
김기옥 시인의 작품「가을 사색」은 시인의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을이라면 가을의 풍성함을 그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 내려주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워야 맑아진다. 그리고 달에 난을 치려고하는 시인의 마음속에 귀뚜라미가 글을 읽고 달빛은 시인의 마음 가운데 와서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
가을비 내리는 날
무작정 떠나본다
차창에 스쳐가는 빗방울 바라보며
내 안에 잠자고 있는 풍경들을 꺼내본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흐릿한 기억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잊혀진 얼굴들까지 빗물 따라 흐른다.
흐린 세월 더듬으며
비를 따라 떠난 것은
오랜 외로움을 채우고 싶어서다
그리운 등불 하나쯤 걸어보고 싶어서다.-----원정호「비 오는 날에」전문
원정호의 작품「비 오는 날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가을비 오는 날이면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자신이 모르는 먼 길을 떠나면서 지난날의 기억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가을비 맞으면서 무작정 떠나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지난날의 그리움이 차창 밖에 내리는 비와 어울려 그리움의 풍경들을 만들어가는 것을 느껴볼 수 있다. 안개 속에 흐릿한 분위기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과 잊혀진 그리운 얼굴들이 빗물에 따라 흐른다.
마지막 수에서는 벌써 잊은 듯한 세월 속에서 지난날의 일들을 더듬으면서 떠나는 것은 시인 자신의 오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다시 채우고 싶다는 것,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운 등불 하나쯤 걸어두고 싶다는 것을 알고 시인은 독자의 공감을 부른다.
밤에 깨어 호올로
꽃밭에 물을 주네
낮을 태워 불씨가 된
토실한 별을 보며
가을엔
저 별들 불러
향기 가득
피우겠네.----------------공영해「 꽃밭에 물을 주네」전문
공영해의 작품「 꽃밭에 물을 주네」는 자연친화(自然親和)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사람 속에 살면서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나 말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흔히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고 싶어지는 법이다.
시인은 밤에 꽃밭에 물을 준다. 햇볕이 쨍쨍 나는 날일 때 잔여 물방울의 돋보기 현상으로 꽃잎사귀가 탈까 헤아리는 공영해 시인의 남의 입장을 챙길 줄 아는 예쁜 마음이 살짝 숨어있다. 공영해 시인은 별빛 아래 토실하게 자라는 식물을 보며 가을에 필 꽃의 향기를 기대하고 있다.
바다를 건너면서 고향을 알았다
한 생의 무늬를 짜던 그 침묵의 긴긴 시간
무거운 여장을 풀고 읽어내고 싶어라.
알고 보면 긴 세월도 순간에 온 오늘인 걸
창밖에 길을 내던 걸음마다 흔적 남아
함께 한 산과 들 바다 뜨겁게 안고 싶다.
몇 굽이 남은 길이 파노라마로 스친다
본향 가는 길이려니 가슴 뛰는 황혼녘
마음의 속살을 풀어 기도문을 적는다.-----이대전「마지막 기도문」전문
이대전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이가 들면 이승을 뜨는 연습으로 마지막 기도문을 작성 하거나 유언장을 써서 보관하거나 자신의 묘비에 세울 묘비명을 써 놓는 것이 보통이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이것이 독자의 공감 요인이다.
이대전 시인은 크리스천이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내 본향을 아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기독교적인 향기가 늘 배어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길에는 곧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데 요즘 글 잘 쓴다는 자들은 시인이 아니고 사람 냄새도 나지 않는다. ‘상’만 바라보고 먹이 따라 쫓아다니는 동물같이 보이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아는 시인은 다 알고 있다.
이승의 고향인 자연을 두고 무거운 여장을 풀어보지만 세월도 잠깐 순간의 오늘인데 세월을 이길 사람은 없는 법이다. 마음속의 속살을 풀어 마지막 기도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연못 속 오리발은
연뿌리를 간질간질
소금 먹은 소금쟁이
연꽃 잎을 간질간질
물방개
연밥 따는 아가씨 발
발가락을 간질간질.--------------심성보 「연 꽃」전문
심성보의 작품「연 꽃」을 읽어보면 시(詩)는 동시(童詩)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가장 마음이 진한 노래는 동시로 만든 가사의 노래를 불러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성보의 작품을 읽으면서 시인은 자신이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있는 동시나 동시조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작품을 천착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끌어가며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두면서 밑바탕에 있는 정감을 끌어내어서 작품을 창작하면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골목길 벽화마다
가난에서 희망을
검은빛 웃는 얼굴
흘러내린 땀방울
그 시절
가족을 위한 삶
눈물 나는 그림이다.---------- 김광자「탄광촌의 추억」전문
요즘 탄광촌에 가면 그 옛날 가슴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김광자의 작품「탄광촌의 추억」은 바로 그런 것을 대변해 주는 작품으로 알고 있다. 탄광촌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눅눅하게 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면서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둣하다.
골목길 벽화나 그 지역의 녹화사업, 그리고 그 지역의 삶의 아픔을 묻고 잊을 수 있는 삶의 땀방울을 생각하게 한다. 김광자 시인의 작품 종장은 탄광촌의 눈물 나는 옛 시절의 가족사를 보는 듯하다.
나는 오랜 세월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
일상에 눈이 멀어 상실된 나의 영혼
이 새벽 집을 나서며 나를 적신 빗방울.
단절된 빗소리는 또 다른 벽이었나
내 안에 굳게 닫힌 문 하나를 열어두면
세상은 장미꽃보다 아름답게 보일 것을.
가슴 속 한 모퉁이 빈자리를 남겨두자
풍경소리 그려 넣고 빗소리도 새기면서
창밖에 떨어지는 잎 파문 속에 걷고 싶다.--------김승봉「빗소리」전문
김승봉의 작품「 빗소리」는 오늘을 바쁘게 살아오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김승봉 시인은 그 앞의 작품 「광장에서」도 묵직한 시적 감성을 젖게 하지만 작품「빗소리」는 더욱 정감을 주는 작품이다.
일상에 바쁜 나에게 신새벽 집을 나서는 나를 적시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바쁜 일상, 그 단절된 빗소리는 시인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벽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바쁜 삶일지라도 그 마음을 열어두면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함을 후회하는 느낌이다.
이제는 시인의 마음 한 모퉁이를 비워두면서 풍경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다 듣는 여유를 즐기며 창 밖에 떨어지는 나뭇잎 파문 그 속까지 걷고 싶어 하는 시인의 풍부한 감성이 그려져 있다.
어머니 말씀이다
내 살 동안 움직여라/
품에 품고 살 수 없는 아픔은 토(吐)해야 할 뿐/
아픔도
토하지 못하는 품고 살아갈 내 앞길.
돌개바람 하나 가득
맘 속 깊이 뿌리 내릴 때/
그리움 도를 넘으면 문설주에 눈물 떼 묻히고/
어머니
가슴앓이 속 푸른 강물을 틔운다.------------김복희「품고 가라」전문
김복희 작품「품고 가라」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그 유언의 말씀을 토대로 이끌어 낸 작품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이나 아픔에 대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런 아픔을 때로는 터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터뜨릴 수가 없어서 마음속에 무거운 짐으로 지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어머니의 삶은 자식을 항상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혼을 쉽게 생각한다. 자신들만의 평안을 위해 자식들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가 생기는 어려움, 함부로 표현할 수도 없는 내적 갈등, 그 가난한 시절의 힘든 삶을 이겨낸 어머니를 누구나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우리가 짊어질 운명처럼 닥쳐오는 일, 어쩔 수 없을 때 부르는 외마디 ‘어머니’를 가슴앓이의 슬픔과 그리움이 뒤엉킨 총체적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피다만 꽃이지만 대궁 아직 꼿꼿하다
열다섯 꿈 대신에 찢어진 무명치마
꼭 쥔 손, 저 단발머리 발꿈치 사뿐 들고.
화인으로 남아있는 온몸의 흔적들이
명징한 꽃대 위에 불씨를 장전하고
꽃이다, 나는 꽃이다, 수만 번을 외쳐보는.----이정원「꽃의 말씀」전문
이정원의 작품「꽃의 말씀」은 일본군들이 강제로 끌고 가서 젊은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일본인들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주한 일대사관 앞 소녀상을 세운 것에 대한 아픈 마음의 시이다.
이정원 시인은 칼럼, 수필집인『 코드 55』를 출간하여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시력도 시력(詩歷)이니와 수필에 대한 상당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위의 작품 속에는 단발머리 소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표본인 것이다. 마지막 행의 ‘꽃이다, 나는 꽃이다,’는 단발머리 소녀의 절규다.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이런 명징과 절규를 일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답을 촉구하며 분노하게 한다.
야위는 산허리에 모둠발로 서 있다가
되오는 갈빛 나비 설레는 날갯짓에
시절가 구절구절을 빚어내는 흰 적삼.
뒤꿈치 들어 올려 가는 목 늘여 가며
촉촉한 눈동자를 허공 높이 걸어 두고
가을을 열고 닫는다, 바람소리 품는다.------김영애「구절초」전문
김영애의 작품「구절초」는 약제로, 차의 재료로도 쓰인다.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하는데 시인은 구절초를 그 꽃의 아름다움이나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 작품화하고 있다.
김영애 시인은 첫째 수에서는 구절초의 삶의 위치, 빛깔, 서 있는 모습을 의인화 시키고 있으며 둘째 수에서는 그 의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눈동자의 촉촉함과 보고 있는 위치, 품고 있는 삶의 의미를 잘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슬픔으로 저물었던 기억을 닦는 자리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영혼(靈魂)
올곧게 비우지 못한 마음을 적십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깊고 아프다는 걸
알고나 있는 듯이 부드러운 햇살은
애틋함 도르르 말아 꽃을 피워 놓았습니다.
자리를 못 찾은 삶이 속살 저려 놓아도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그대 사랑이라고
바람은 들꽃 언덕에서 휘파람을 붑니다.
---------------------------이명희「바람의 노래」전문
이명희의 작품「바람의 노래」는 삶의 그 자체와 사랑의 인연들을 바람으로 비유하면서 쓴 작품이다.
그런데 특히 시조작품을 쓸 때 주의할 점은 작품 속에 표출되는 낱말의 억양과 유성음의 묘, 그리고 조사의 남용이 문제인 것이다.
시조시인들은 작품 그 속에서 우선 조사의 처리를 잘 해야 한다. 조사를 떼어버리고 의미가 통하면 과감히 버리고, 떼어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붙여두라는 것이다.
위의 작품은 언어구사력이 매우 좋다. 첫수 전체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며 둘째 수 초장의 언어도 누구나 끌어내지 못하는 언어이고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품었을 때의 소리가 마지막 종장의 소리라고 볼 수 있겠다.
이상에서 모든 작품을 읽어보았다.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어떤 시인의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작품이 그 패턴이 별로 달라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한 계절을 넘어가는가 하면 또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면 전번에 쓴 작품과 확연히 다르게 작품구상을 하고 또 작품의 형상화도 다른 형태로 표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자연적인 변화는 있다 할지라도 계획적이고 노력에 의한 삶의 변화는 그 사람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꾸준한 노력과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살아가는 시인은 자신을 항상 가변 시킬 수 있으면서 새로운 시작(詩作)의 시도를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인들이 조선시대의 음풍농월의 시작(詩作)이 아닐진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도하면서 작품을 써 가면 좋은 작품을 잉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내온 신간 시조문학에 대한 책들을 소개하면 우아지 시인의『손님별』<책만드는집>, 영언동인의『혀의 문장』, 최재남 시인의『바람의 근성』, 부산여류시조문학회 『부산여류시조』, 7인시조집 『鹿鳴』등을 잘 읽어보고 있다. ■
<현대시조 2015년 겨울호 계간평>
폭넓은 詩心과 새로운 詩作의 시도
박 영 교
(시인 ․ 전 한국 시조시인협회 수석부이사장)
2015년도 마지막 달력장이 넘어가는 시기에 와 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다.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함께 걸어갈 여당도 건강할 것인데 언론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치는 F급의 정치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도 국회에서 그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못하는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생의 일들은 빠른 시간이 요구된다. 국회는 당리(黨利)가 아니라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민생법안 처리를 빠르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국민들의 수준이 위정자의 수준보다 높아서 누가 그르고 옳은가의 정도를 잘 헤아리고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무서워할 줄 아는 국회의원은 그 배지(badge)를 오래 달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야당 모두 건전한 정당으로 바로 설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계간『현대시조』에 발표된 작품을 보면 시인이 점점 젊고 신선한 작품이 발표되어 새로운 피를 수혈한 느낌을 받는다. 2015년 『현대시조』 가을호에 발표된 작품에는 먼저 <김정 시인의 소시집> 원고와 <현대시조 제77회 신인상 당선작>이 발표 되었고 <현대시조단 ‘이 계절의 신작’> 최승범 외 49명의 시인의 신작들이 발표되어 있다.
김정 소시집(小詩集)의 작품을 보자.
몸으로 만나본다 서대문 형무소를
생과 사가 갈렸다는
철문을 통과해도
안과 밖 똑같은 하늘 겨울비 여전하다.
가서는 오지 못한 독립투사 그 큰길을
섣부른 풋객기로
따라갈 수 없지만
죽어서 증언하노라! 미루나무 두 그루.
삐걱대는 애국애족 피 냄새 잊었는가
다시금 살아나는
그날의 신음소리
역사는 녹슨 태엽을 힘겹게 돌리고 있다.
-------------------------「미루나무 교훈 보다」전문
김정의 작품 「미루나무 교훈 보다」를 통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많은 애국지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보고 있다. 그 철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살아나오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얻은 우리나라가 지금은 너무나 어수선한 상황을 독자가 생각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가서는 돌아오지 못하는 독립투사들의 그 큰길을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삐걱대는 애국애족,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시인은 가슴 아파하면서 그 아픔을 “역사는 녹슨 태엽을 힘겹게 돌리고 있다.” 고 노래하고 있다.
뻐꾹뻐꾹 다리 절며
유월은 재를 넘고
철쭉꽃 자락자락
강물 위에 비치는데
또 한철
무명 설움이
물소리로 감긴다.
아픈 허리 통증이야
뜸질로 다스리지만
시간에 녹이 슬어
딱정이 굳은 자국
여태껏
오고 못 간 길
풀빛만이 더 짙다.-------------「유월은 다시 와서」전문
김정의 작품「유월은 다시 와서」도 시대적으로 가슴 아픈 노래이며 육이오의 한국전쟁을 의미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 세계에서도 유일한 분단국가가 바로 대한민국과 북한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통일을 하고 싶어도 강대국의 이해타산이 깔려있고 우리 자신의 계산이 맘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현실의 아픔을 토로해도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어 이렇게 분단되어 있는 것이다.
유월만 되면 우리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따발총 소리며 ‘땅쿵’하는 소련제 장총 소리가 지금도 우리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데 어찌 이 유월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내 마음 불어가는 스산한 이런 날엔
들꽃 향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아직도 못 잊은 사람 생각 한 술 보탭니다.
습기 찬 사유들은 가을 볕에 널어놓고
둘쩌귀 환하도록 덮은 시집 펼쳐가면
어느새 귀뚜리 소리 가을을 읽습니다.
들녘 끝 누군가가 저벅저벅 옵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따뜻한 찻잔 받들어 그대에게 드립니다.-----「가을을 끓이다」전문
이 작품은 계절감각과 못 잊을 사람의 그리움과 차를 우려내는 마음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들꽃향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첫수 중장에서 자연의 향기와 종장의 못 잊을 그 사람의 생각을 보탠다고 했다.
둘째 수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살려서 노래하고 있으며 첫 수에 들꽃 향을 꺾어서 끓인 차를 셋째 수에서는 들녘 끝에서 추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대에게 따뜻한 찻잔을 드린다고 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모든 이를 가리키는 언어이며 위로하는 찻잔이다.
꽃잎이 하르르르/
나비 떼로 쏟아진 날/
다가온 너는 그때/
한줌 꽃 향기였다/
지금도/
찻잔을 들면/
그 속에 뜨는 얼굴.---------「꽃차」전문
시인이 쓴 작품 중에는 차와 관계되는 작품이 많다. 이 단형시조도 그리운 그대를 ‘한 줌의 꽃향’으로 표현하면서 그 꽃향의 차를 마시면서 그 꽃 찻잔 속에 어리는 그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시조단, 이 계절의 신작의 작품을 보자.
발 편히 뻗고
자리에 눕고 보면
눈 감고 챙겨야 할
무엇 무엇 있었던가
생각을
좇다가도 스르르
잠 포개는
밤이다------------------------최승범「밤」전문
우리가 고된 하루를 보내고 살아가는 동안 안식을 맞는 것이 밤이다. 우리 생활에 밤이 없으면 평생을 고단함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들 말한다. 살아있는 동물들은 귀소(歸巢)의 본능이 있으므로 내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 평안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최승범 사백의 작품 ‘밤’을 통해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평범하지만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진실함이다. 오늘 한 일을 생각하다가 또 오늘 못한 일을 생각하다가 내일은 꼭 완성해야겠다는 생각 속에 잠은 스르르 오고 만다는 일상의 진실이 녹아있다.
고요한 밤에는 귀가 크고 넓어진다/
예비된 풀벌레나 별빛이 지는 소리/
아직도
닿지 않는 소리까지
미리 다 듣는 귀./
고요가 깊어지면 소리의 뿌리에서/
사르르 움직이려는 가느다란 의도(意圖)까지/
귀속에
물처럼 스며들어
환하게 다 들린다.------------------김종「고요한 밤에는」전문
우리가 작품을 읽다보면 너무나 많이 내 생각과 내 느낌이 비슷할 때 독자들은 공감을 얻는 것이다. 언어가 새롭다거나 낱말이 새로울 때 오는 감정도 있지마는 그 전체의 시적 형상화가 함께 움직일 때 독자들은 그 시를 좋아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어떤 문학잡지 가운데는 ‘내가 읽은 좋은 시’ 등등의 이름으로 자기 자신이 읽은 시를 올려놓는 것을 보게 되는데 몇 작품은 공감을 하게 되나 나머지 작품들은 자신과 그 시인과의 관계에 의해 떠올려 놓은 작품인 것으로 보여 졌다.
위의 김종 작품「고요한 밤에는」읽어보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첫 수 초장의 시구가 너무나 공감되며 이런 좋은 언어를 심어 놓을 수 있는 시인의 능력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자 없이도 직선을 그을 줄 알던 연필
쓸 만큼 쓰고 나니 심이 닳은 탓일까
면벽의
공간 좌표에
포물선만 그린다. ----------------이기라「전립선」전문
이기라의 작품「전립선」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노인층에 있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명이다. 이것을 이기라 시인이 연필로 비유를 하여 쓴 것이다.
우리가 모든 신체 각 부위별로 보면 어느 하나라도 성한 것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농기계나 어떤 물품을 칠십년 이상 쓰면 고물이 다 되어서 못쓰게 될 것이다. 사람의 한 부위는 생각해 봐도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의학기술이 발달되어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온 것이지 우리 자신이 잘나서 오래도록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90세에 아들을 얻었다하고 또 180세까지 산 시대가 소개되고 있지만 그런 시대는 어렵다고 본다.
물비늘 반짝이는
호숫가 낚시터에
낚싯대 드리우고
여유롭게 세월 낚는
미끼는 도둑맞아도
가을 햇살 벗한다.-------------정순량「세월 낚는 노인」전문
나이 많은 노인들의 일상을 정순량 시인이「세월 낚는 노인」으로 작품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미생활을 만들면서 자신의 시간 관리나 시간의 효율성을 체크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인내심과 시간의 기다림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미끼는 벌써 고기에게 빼앗겨버리고 있지마는 그 여유로움에서 정순량 시인의 내공이 큰 것이다.
밟혀서
일어나고
흩어져 씨가 된다
눈물로 쫓겨났던
맨살의 하얀 겨레
지금 막
지구촌 곳곳
다투어 꽃이 핀다.---------이도현「민들레」전문
이도현의 작품「민들레」는 우리나라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작품을 쓴 것으로 안다. 우리 민족을 불러 민들레 같은 민족이니 질경이 같은 민족이니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아무리 어려운 고난을 당하더라도 거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살아남는다고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도현 시인의 작품 부제에 담긴 내용이 바로 그런 것을 대변해 주고 있으며 작품 속에는 이 지구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많이 그런 고통 속에서 아픔을 견디며 살아오고 있었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다.
푸르다 푸르다 못해
살짝 한풀 꺾인 들녘
이때다 이때다 싶어
숨죽이던 것들이
일시에
벌촛길 따라
떠도는
저 밀잠자리떼.----------------오승철 「으아리꽃」전문
오승철의 작품「으아리꽃」을 읽어보면 우리에게 생소한 식물의 이름과 잘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의 이름으로 또 작품을 이끌어 나오는 언어의 맵시들이 항상 평범한 작법을 해 오던 시인들 시어의 어감보다는 다른 어법들을 보게 된다.
오승철 시인의 새로운 기법이 아니라 우리 독자들은 가만히 있지만 시인은 열심히 노력하고 찾아낸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오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시조작법을 스스로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품에 있어서 초장의 ‘한풀 꺾인 들녘’ 중장의 스몰스텝의 보법을 접하게 되는데 종장에 들어서게 되면 제목은 ‘으아리꽃’인데 종장에 표출되는 것이 ‘밀잠자리 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으아리꽃과 밀잠자리 떼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으아리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덩굴풀인데 그 꽃은 흰꽃이다. 그리고 밀잠자리는 꼬리 끝부분만 까맣고 나머지는 흰색이므로 벌초를 하려고 가서보니 으아리 꽃들이 마치 밀잠자리 떼처럼 보이는 것에 착안한 작품인 것 같다.
푸르게 싹 틔우고 허벅지게 꽃피우고
그늘에 매미 울리고 심장은 다 내어주고
나무는 나무의 길을 간다
성자의 길이다.------------------- 박옥위「나무」전문
박옥위의 작품「나무」이다. 모든 식물이나 나무들이 다 그렇겠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모두 다 내어주고 그들의 심장까지 내어주고 겨울을 맞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그 나무의 삶이 성자의 삶과 비유되는 것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노래하면서 시의 제목도 구체적인 나무를 제목으로 잡았으면 더욱 실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데 그 점이 좀 아쉽다.
무쇠솥 뚜껑을 콕콕 쪼는 새 이제 없다/
꽃 지는 소리 바깥
무심히 흐른 강줄기
우체부 자전거소리 파르르르 흩어진다./
벼랑바위 눈감기는 현깃증처럼 지나갈 /
무더기로 놓인 고요
무수한 빛깔 품는다 해도
영혼의 무게를 재는 생의 온기도 이슬이다.
-------------------------------황다연「또 다른 이슬」전문
황다연의 작품「또 다른 이슬」은 우리들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마음 속 기다림의 떨림 그 자체를 이슬로 비유된 것이다.
첫수에서는 솥에 불을 땐 무쇠 솥뚜껑에 매달린 물방울들을 이슬로 비유될 수 있으나 이제는 없고 우체부를 기다리는 자전거 소리가 내 마음 가운데 이슬로 맺는 것이다. 둘째 수는 벼랑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현기증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영혼의 무게를 재는 생의 온기를 이슬로 헤아려볼 수 있는 것이라고 황다연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적신다 호흡한다 입술 닿는 네 살이
웃는다 마주한다 손 끝 틔운 네 가슴이
비로소
너 소반에 앉아
가야금에 오른다.---------------노창수「음미의 율」 전문
노창수의 작품「음미의 율」은 가야금 음률을 차의 맛과 비유한 작품이다. 시인은 차를 우려서 소반에 오를 때까지 그 율격을 가야금을 울리는 음미로 비유하고 있으면서 그 동안의 내적 정감을 가야금 음률이 마음에 감미롭게 닿는 그리움과 그 맛의 온율(溫律)을 표현하고 있다.
햇살이 내려앉아 은어로 파닥이는 /아련한 그리움이 어머니로 비치면서/ 그 많은 그리움들을 나룻터에 부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에 노을을 얹어 놓고 /갈대숲 흔들면서 수런 수런 흘러가도/ 어제의 생각대로만 출렁이는 江물이여.-------- 김전「어제의 江」전문
김전의 작품「어제의 江」에는 어머니의 그리움에 대한 지난날의 세월을 흘러간 강의 이미지로 형상화 시킨 작품이다.
강 나루터에서 어머니의 그리움이 물결에 햇살 비취듯이 파닥이며 반짝이는 그 많은 그리움들이 생각이 나면서 지난날들이 은어 떼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표출하고 있으며 둘째 수에서는 인생은 점점 늙어가고 세월은 흘러가는데 우리들의 생각은 옛 그대로의 어머님 생각에 젖어 출렁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은 그 옛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강물에 마음을 흘러 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그리움이 막걸리 한 사발에 지난 세월의 출렁이는 아쉬움을 강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저녁노을이 짙게 내리는 갈대숲 서걱이는 출렁이는 강물이다.
비오는 초록바다
통성이 잦아든다
견디는
이마에는
땀방울 송골송골
분만의
산통 같아라
올라오는 저 신비.--------------채명호 「출수出穗」전문
채명호의 작품「출수出穗」는 농촌생활의 보람을 출산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모든 씨앗들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고 그 푸르름 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로 인해 생산의 열매가 태어나는 것이 마치 분만의 산통을 앓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채명호 시인은 벼이삭이 나오는 아픔의 통성이 분만의 산통을 앓는 그런 것과 같이 느끼는 시인의 마음이 작품을 통해 받아드려지고 있다.
작품「권력」은 현재의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상황의식을 작품에 교모하게 엮어서 표출한 언어들이 멋있다. 특히 종장에서 시인은 전부를 다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개혁을/ 약이라 하나/ 사약인 듯 슬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가을이라면/
얼마나 그윽할까 가득히 채워 든든하고 /
홀홀히
비워야 맑아지는
삶의 쉼표 그 무한함./
달에 난을 치려고 푸른 붓 들고 보니/
단풍궁궐 환한 밤에 글 읽는 귀뚜라미/
달빛은
사색을 끌고
내 마음을 쓰다듬네.--------------- 김기옥 「가을 사색」전문
김기옥 시인의 작품「가을 사색」은 시인의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을이라면 가을의 풍성함을 그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 내려주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워야 맑아진다. 그리고 달에 난을 치려고하는 시인의 마음속에 귀뚜라미가 글을 읽고 달빛은 시인의 마음 가운데 와서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
가을비 내리는 날
무작정 떠나본다
차창에 스쳐가는 빗방울 바라보며
내 안에 잠자고 있는 풍경들을 꺼내본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흐릿한 기억들이 하나 둘 깨어나고
잊혀진 얼굴들까지 빗물 따라 흐른다.
흐린 세월 더듬으며
비를 따라 떠난 것은
오랜 외로움을 채우고 싶어서다
그리운 등불 하나쯤 걸어보고 싶어서다.-----원정호「비 오는 날에」전문
원정호의 작품「비 오는 날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가을비 오는 날이면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자신이 모르는 먼 길을 떠나면서 지난날의 기억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가을비 맞으면서 무작정 떠나보는 시인의 마음에는 지난날의 그리움이 차창 밖에 내리는 비와 어울려 그리움의 풍경들을 만들어가는 것을 느껴볼 수 있다. 안개 속에 흐릿한 분위기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과 잊혀진 그리운 얼굴들이 빗물에 따라 흐른다.
마지막 수에서는 벌써 잊은 듯한 세월 속에서 지난날의 일들을 더듬으면서 떠나는 것은 시인 자신의 오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다시 채우고 싶다는 것,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운 등불 하나쯤 걸어두고 싶다는 것을 알고 시인은 독자의 공감을 부른다.
밤에 깨어 호올로
꽃밭에 물을 주네
낮을 태워 불씨가 된
토실한 별을 보며
가을엔
저 별들 불러
향기 가득
피우겠네.----------------공영해「 꽃밭에 물을 주네」전문
공영해의 작품「 꽃밭에 물을 주네」는 자연친화(自然親和)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사람 속에 살면서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나 말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흔히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고 싶어지는 법이다.
시인은 밤에 꽃밭에 물을 준다. 햇볕이 쨍쨍 나는 날일 때 잔여 물방울의 돋보기 현상으로 꽃잎사귀가 탈까 헤아리는 공영해 시인의 남의 입장을 챙길 줄 아는 예쁜 마음이 살짝 숨어있다. 공영해 시인은 별빛 아래 토실하게 자라는 식물을 보며 가을에 필 꽃의 향기를 기대하고 있다.
바다를 건너면서 고향을 알았다
한 생의 무늬를 짜던 그 침묵의 긴긴 시간
무거운 여장을 풀고 읽어내고 싶어라.
알고 보면 긴 세월도 순간에 온 오늘인 걸
창밖에 길을 내던 걸음마다 흔적 남아
함께 한 산과 들 바다 뜨겁게 안고 싶다.
몇 굽이 남은 길이 파노라마로 스친다
본향 가는 길이려니 가슴 뛰는 황혼녘
마음의 속살을 풀어 기도문을 적는다.-----이대전「마지막 기도문」전문
이대전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이가 들면 이승을 뜨는 연습으로 마지막 기도문을 작성 하거나 유언장을 써서 보관하거나 자신의 묘비에 세울 묘비명을 써 놓는 것이 보통이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이것이 독자의 공감 요인이다.
이대전 시인은 크리스천이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내 본향을 아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기독교적인 향기가 늘 배어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길에는 곧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데 요즘 글 잘 쓴다는 자들은 시인이 아니고 사람 냄새도 나지 않는다. ‘상’만 바라보고 먹이 따라 쫓아다니는 동물같이 보이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아는 시인은 다 알고 있다.
이승의 고향인 자연을 두고 무거운 여장을 풀어보지만 세월도 잠깐 순간의 오늘인데 세월을 이길 사람은 없는 법이다. 마음속의 속살을 풀어 마지막 기도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연못 속 오리발은
연뿌리를 간질간질
소금 먹은 소금쟁이
연꽃 잎을 간질간질
물방개
연밥 따는 아가씨 발
발가락을 간질간질.--------------심성보 「연 꽃」전문
심성보의 작품「연 꽃」을 읽어보면 시(詩)는 동시(童詩)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가장 마음이 진한 노래는 동시로 만든 가사의 노래를 불러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성보의 작품을 읽으면서 시인은 자신이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공감할 수 있는 동시나 동시조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가서 작품을 천착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끌어가며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두면서 밑바탕에 있는 정감을 끌어내어서 작품을 창작하면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골목길 벽화마다
가난에서 희망을
검은빛 웃는 얼굴
흘러내린 땀방울
그 시절
가족을 위한 삶
눈물 나는 그림이다.---------- 김광자「탄광촌의 추억」전문
요즘 탄광촌에 가면 그 옛날 가슴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김광자의 작품「탄광촌의 추억」은 바로 그런 것을 대변해 주는 작품으로 알고 있다. 탄광촌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눅눅하게 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면서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둣하다.
골목길 벽화나 그 지역의 녹화사업, 그리고 그 지역의 삶의 아픔을 묻고 잊을 수 있는 삶의 땀방울을 생각하게 한다. 김광자 시인의 작품 종장은 탄광촌의 눈물 나는 옛 시절의 가족사를 보는 듯하다.
나는 오랜 세월 빗소리를 듣지 못했다
일상에 눈이 멀어 상실된 나의 영혼
이 새벽 집을 나서며 나를 적신 빗방울.
단절된 빗소리는 또 다른 벽이었나
내 안에 굳게 닫힌 문 하나를 열어두면
세상은 장미꽃보다 아름답게 보일 것을.
가슴 속 한 모퉁이 빈자리를 남겨두자
풍경소리 그려 넣고 빗소리도 새기면서
창밖에 떨어지는 잎 파문 속에 걷고 싶다.--------김승봉「빗소리」전문
김승봉의 작품「 빗소리」는 오늘을 바쁘게 살아오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작품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김승봉 시인은 그 앞의 작품 「광장에서」도 묵직한 시적 감성을 젖게 하지만 작품「빗소리」는 더욱 정감을 주는 작품이다.
일상에 바쁜 나에게 신새벽 집을 나서는 나를 적시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바쁜 일상, 그 단절된 빗소리는 시인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벽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복잡하고 바쁜 삶일지라도 그 마음을 열어두면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함을 후회하는 느낌이다.
이제는 시인의 마음 한 모퉁이를 비워두면서 풍경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다 듣는 여유를 즐기며 창 밖에 떨어지는 나뭇잎 파문 그 속까지 걷고 싶어 하는 시인의 풍부한 감성이 그려져 있다.
어머니 말씀이다
내 살 동안 움직여라/
품에 품고 살 수 없는 아픔은 토(吐)해야 할 뿐/
아픔도
토하지 못하는 품고 살아갈 내 앞길.
돌개바람 하나 가득
맘 속 깊이 뿌리 내릴 때/
그리움 도를 넘으면 문설주에 눈물 떼 묻히고/
어머니
가슴앓이 속 푸른 강물을 틔운다.------------김복희「품고 가라」전문
김복희 작품「품고 가라」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그 유언의 말씀을 토대로 이끌어 낸 작품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이나 아픔에 대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런 아픔을 때로는 터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터뜨릴 수가 없어서 마음속에 무거운 짐으로 지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어머니의 삶은 자식을 항상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혼을 쉽게 생각한다. 자신들만의 평안을 위해 자식들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가 생기는 어려움, 함부로 표현할 수도 없는 내적 갈등, 그 가난한 시절의 힘든 삶을 이겨낸 어머니를 누구나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우리가 짊어질 운명처럼 닥쳐오는 일, 어쩔 수 없을 때 부르는 외마디 ‘어머니’를 가슴앓이의 슬픔과 그리움이 뒤엉킨 총체적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피다만 꽃이지만 대궁 아직 꼿꼿하다
열다섯 꿈 대신에 찢어진 무명치마
꼭 쥔 손, 저 단발머리 발꿈치 사뿐 들고.
화인으로 남아있는 온몸의 흔적들이
명징한 꽃대 위에 불씨를 장전하고
꽃이다, 나는 꽃이다, 수만 번을 외쳐보는.----이정원「꽃의 말씀」전문
이정원의 작품「꽃의 말씀」은 일본군들이 강제로 끌고 가서 젊은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일본인들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주한 일대사관 앞 소녀상을 세운 것에 대한 아픈 마음의 시이다.
이정원 시인은 칼럼, 수필집인『 코드 55』를 출간하여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시력도 시력(詩歷)이니와 수필에 대한 상당한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위의 작품 속에는 단발머리 소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표본인 것이다. 마지막 행의 ‘꽃이다, 나는 꽃이다,’는 단발머리 소녀의 절규다.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이런 명징과 절규를 일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답을 촉구하며 분노하게 한다.
야위는 산허리에 모둠발로 서 있다가
되오는 갈빛 나비 설레는 날갯짓에
시절가 구절구절을 빚어내는 흰 적삼.
뒤꿈치 들어 올려 가는 목 늘여 가며
촉촉한 눈동자를 허공 높이 걸어 두고
가을을 열고 닫는다, 바람소리 품는다.------김영애「구절초」전문
김영애의 작품「구절초」는 약제로, 차의 재료로도 쓰인다.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하는데 시인은 구절초를 그 꽃의 아름다움이나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 작품화하고 있다.
김영애 시인은 첫째 수에서는 구절초의 삶의 위치, 빛깔, 서 있는 모습을 의인화 시키고 있으며 둘째 수에서는 그 의인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눈동자의 촉촉함과 보고 있는 위치, 품고 있는 삶의 의미를 잘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슬픔으로 저물었던 기억을 닦는 자리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영혼(靈魂)
올곧게 비우지 못한 마음을 적십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깊고 아프다는 걸
알고나 있는 듯이 부드러운 햇살은
애틋함 도르르 말아 꽃을 피워 놓았습니다.
자리를 못 찾은 삶이 속살 저려 놓아도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그대 사랑이라고
바람은 들꽃 언덕에서 휘파람을 붑니다.
---------------------------이명희「바람의 노래」전문
이명희의 작품「바람의 노래」는 삶의 그 자체와 사랑의 인연들을 바람으로 비유하면서 쓴 작품이다.
그런데 특히 시조작품을 쓸 때 주의할 점은 작품 속에 표출되는 낱말의 억양과 유성음의 묘, 그리고 조사의 남용이 문제인 것이다.
시조시인들은 작품 그 속에서 우선 조사의 처리를 잘 해야 한다. 조사를 떼어버리고 의미가 통하면 과감히 버리고, 떼어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붙여두라는 것이다.
위의 작품은 언어구사력이 매우 좋다. 첫수 전체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며 둘째 수 초장의 언어도 누구나 끌어내지 못하는 언어이고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품었을 때의 소리가 마지막 종장의 소리라고 볼 수 있겠다.
이상에서 모든 작품을 읽어보았다.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은 어떤 시인의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작품이 그 패턴이 별로 달라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한 계절을 넘어가는가 하면 또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면 전번에 쓴 작품과 확연히 다르게 작품구상을 하고 또 작품의 형상화도 다른 형태로 표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자연적인 변화는 있다 할지라도 계획적이고 노력에 의한 삶의 변화는 그 사람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꾸준한 노력과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살아가는 시인은 자신을 항상 가변 시킬 수 있으면서 새로운 시작(詩作)의 시도를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인들이 조선시대의 음풍농월의 시작(詩作)이 아닐진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도하면서 작품을 써 가면 좋은 작품을 잉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내온 신간 시조문학에 대한 책들을 소개하면 우아지 시인의『손님별』<책만드는집>, 영언동인의『혀의 문장』, 최재남 시인의『바람의 근성』, 부산여류시조문학회 『부산여류시조』, 7인시조집 『鹿鳴』등을 잘 읽어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