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지인여행은 전북 무주, 연두색 봄빛이 내려앉은 금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파스텔 노랑부터, 연두 초록까지 푸른빛의 가지각색 스펙트럼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봄빛을 연출해내는 광경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만 한낮에는 30도에 육박하는 때 이른 여름 날씨로 걷기가 많이 힘드셨을 텐데 불평없이 여행을 즐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금강변을 걷기에 앞서 홍도화축제가 한창인 홍도마을에서 가볍게 산책을 하며 몸을 풉니다. 홍도화는 복숭아 종류지만 열매는 맺히지 않는 복숭아나무입니다. 자주빛에 가까운 검붉은 꽃송이들이 화려하고 탐스런 모습으로 마을길 2km 정도에 이어져있습니다. 우리가 간 날은 운좋게 홍도화가 만개한 상태로 홍도화축제가 열리고 있더군요. 차량을 통제하는 홍도마을길을 걸으며 모처럼 여유롭게 화사한 꽃길산책을 합니다. 칙칙한 도시의 색깔에서 벗어나 울긋불긋 화사한 꽃을 보니 우리 마음도 어린아이처럼 밝아집니다. 여행 시작길에 만난 홍도화 덕분에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금강변 걷기의 출발지인 부남면소재지로 향합니다.
금강은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해 무주, 공주를 지나 서천에서 서해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비단강입니다. 오늘 여행은 금강 천리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무주 벼룻길과 잠두리 옛길, 서면마을로 이어지는 남대천길을 걸었습니다.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이라고 이름 붙은 이 길은 무주군이 도소마을에서부터 서면마을까지 조성한 총 19km의 강변길입니다. 조성했다기보다는 마을주민들이 걷던 지름길, 지금은 새 길이 뚫리면서 다니지 않게 된 옛길을 이은 것입니다. 그래서 편리하게 포장된 길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대신 옛사람들의 삶이 묻어있고, 전해오는 옛이야기가 정겨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인간적인 길이라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중간중간 아스팔트길을 제외하고 대략 13km가량을 걸었습니다.
부남면사무소 앞에서 내린 일행은 정겨운 대소리 마을을 지나 금강을 끼고 도는 비탈길인 벼룻길로 접어듭니다. 초반의 돌길을 지나자 보드라운 흙길에 연초록 나뭇잎들과 어우러진 금낭화 현호색 철쭉이 어여쁩니다. 푸른 나뭇빛을 담은 금강물도 푸르고, 나무도 푸르고 온통 푸른 세상입니다. 각시바위를 지나 짧지만 아름다운 벼룻길을 나오니 강변둑에 만개한 복사꽃이 우릴 반깁니다.
벌써 시간은 12시가 넘었습니다. 여기서 걷기를 중단하고 무주시내로 이동해, 어죽과 도리뱅뱅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굴암리마을 강변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굴암리마을의 벚꽃길은 예년같으면 흰벚꽃이 흐드러졌을 텐데, 며칠 전 내린 폭우로 벚꽃이 다 진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강변으로 연초록 나무들과 강물의 조화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문제는 뜨거운 햇빛과 높은 온도입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더니 1시를 넘어선 낮 기온이 거의 30도에 육박합니다. 그래서인지 굴암리 강변길과 굴암삼거리를 지나 잠두리옛길까지 천천히 즐기지 못하고 무척 빨리 걸어오셨더군요.^^
요대마을 구간은 아스팔트구간이라 버스로 이동하고, 일제시대 때 지어진 용포교 옛다리부터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용포교 옛다리 옆으로는 37번 국도,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잇달아 걸려있어 재밌기도 하고, 무주가 예나 지금이나 금강에 둘러싸인 강변마을이라는 것을 실감케합니다. 아마 오늘 우리가 차든 걸어서든 넘은 다리만도 10번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용포교에서 서면마을로 이어지는 강변길은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지나는 폭신한 흙길입니다. 쑥향인지, 이름모를 나무향인지 싱그러운 향기가 진동하는 길은 햇볕을 막아주는 숲길이라 힘이 쑥쑥 납니다. 조금 전 강변 땡볕에 지쳤던 우리 일행들은 다시 원기를 회복하며 즐겁게 트래킹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걷다보니 금강과 남대천이 만나 이어지는 금강 나루에 서면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 금강트래킹의 종착지이기도 하지요. 강변길을 빠져나와 만나는 키작은 다리인 세월교를 지나면 서면마을입니다. 세월교란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흐르는 강물을 지척에 두고 살아가던 무주 사람들의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금강 트래킹은 싱그러운 봄을 한껏 느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의 포인트가 되어 준 붉디붉은 홍도화와 스쳐지나간 복사꽃, 사과꽃, 배꽃도 화사했지만 연초록빛으로 생명의 기운을 물씬물씬 풍기던 푸르른 새이파리들의 싱그러움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기운내, 기운내” 속삭이는 기분이었던 것은 저만은 아니겠지요. 이번 여행에 만난 아름다운 초록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힘들어질 때는 가끔 꺼내서 미소짓고 기운내려구요.^^
한 명도 낙오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금강 트래킹을 완주해서 더 뿌듯합니다. 이번 여행의 최소연소자인 초딩 하윤이와 병헌이는 대열의 맨 앞에서 내심 1등을 다투며 끝까지 다 걸었죠. 우리에게 웃음을 주며, 우리 발길을 더 서두르게 했던 그 아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들에게도 금강트래킹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금강에서 연두빛 봄을 실컷 만난 기쁨이 다시 돌아온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길 바랍니다. 여행의 피로 잘 푸시고 다음 여행길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