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일대기 요약===
-생애 : 1912년 2월 19일~ 1993년 11월 4일
1912년 음력 2월 19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난 성철은 25세 되던 1936년 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
-결혼하고 20대 중반에 출가한 성철스님에게는 어느 고승과 달리 승속(僧俗)의 별난 인연이 있다. 두고온 아내와 두딸 가운데 열 넷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큰딸외에 아내와(일휴스님) 작은 딸 “불필” 모두 출가해 스님이 된 것은 특이하다.
-속세의 아내 일휴스님은 비록 늦게였지만 57세에 스님이 되어 정진하다가 돌아가다
-작은딸 불필스님 그 따님이 바로 속세의 나이로 올해 82세인 '불필不必스님'....
불교계에서는 유명하지만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진주사범학교 졸업후 10대 후반에 출가한 불필스님은 1961년 3월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정식 비구니계를 받은 뒤 경북 문경 대승사 묘적암, 경남 합천 해인사 국일암,지리산 도솔암 등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행했으며 현재 해인사 금강굴에 머물고 있다.
-성철스님은 임종 하기 전 불필스님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때가 되어서야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 스님의 삶은 화제의 연속이었으나 속세와 모든 관계를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한 승려였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시골부자의 7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속의 오욕 즉 식욕, 물욕, 수면욕, 명예욕, 색욕을 던져 버리고 16년간 날것만 먹는 생식을 하고 8년 동안 한 번도 드러눕지 않고 잠도 앉은 채 자는 장좌불와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성철 큰 스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부처님께 삼천배의 절을 하여야만 친견하였다. 그냥 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절해라, 삼천배 절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심중에 무엇인가 변화가 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남을 위해 절이 잘 안돼도, 나중에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며, 그렇게 행동하게 된답니다.
3000배를 하는 시간은 대략 7시간 이상 걸린다.
-겁외사 :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성철스님이 출생하여 24년간 사셨던 곳으로 부친은 대지주였는데 7남매 가운데 장남이었던 성철스님이 출가하자 심한 충격을 받고 인근지역으로 이주해버리고 이후허물어진 생가는 복원되기 이전까지 논밭으로 있었다고 한다.
생가였던 자리엔 한옥형태의 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생가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것이 아니라 기념관, 유품전시관 등의 용도로 건립되었고, 생가 앞쪽엔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원한 절'이라는 의미의 겁외사가 자리하고 있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참선 잘하라’는 마지막 한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성철스님이 남긴 유언(열반송)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유언은 다음과 같다.
일생 동안 미친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수미산을 덮은 죄업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한이 만 갈래나 된다.
한 송이 꽃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성철 스님의 딸이신 불필 스님의 회고록 요약===
“만고의 진리를 향해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딸이며 제자인 불필스님이 처음 밝히는 큰스님 이야기!
처음으로 밝히는 성철스님의 가족사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선지식들의 수행까지, 제자들을 뜨겁게 품은 은사 인홍스님부터 온 대중들을 감화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 책갈피마다 한국불교의 역사가 은은하게 묻어나고 스님들의 아름다운 향기가 깊은 무늬로 아로새겨지는 책이다.
성철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스님은 이 책에서 조부모님과 어머니 등 가슴 절절한 가족사에서 향곡스님, 법전스님, 인홍스님 같은 선승들의 성자 같은 삶, 봉암사 3년 결사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국불교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다. 또한 그동안 개인적으로 소장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성철스님의 법문과 편지, 사진 자료들이 실었으며, 과거에 가필된 형태로 발표되었던 성철스님의 친필 법문 노트를 원문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불교 수행자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증도가」, 「신심명」, 「토굴가」 등 여러 자료들을 채록해 실어 초심자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지침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불필스님은 지난 동안거 결제 한 철 동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이 책을 썼다. 처음에는 산속에서 살아온 선승인 자신이 책을 내는 일이 옳은 일인가 싶어 여러 차례 출간 제안을 거절했지만, 아버지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큰스님의 법대로 석남사 대중들과 참되게 수행해온 바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달라는 청을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 불필스님은 “이 책으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한 사람이라도 영원한 진리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라며 출간의 소회를 밝혔다.
p.31
태어나 처음 보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리라.'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딸에게 만나자마자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정이 떨어지게 한 사람이니 정말 미련이 남지 않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묘관음사에서 있었던 일도 바다에 모두 흘려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때 아버지가 다정하게 대했더라면 아버지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했을 텐데, 매정하게 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다 속에 묻고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단념하면 그때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가라, 가!" 하고 소리 질렀을 때 아버지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 혈육으로서의 인연을 정리했다. 이 세상에 내 아버지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고, 내 부모 안 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46
"행복은 인격에 있지 물질에 있는기 아이야. 부유하더라도 인격이 부족하면 불행하고 궁핍하더라도 인격이 훌륭하면 행복한기야. 자기가 절대적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계발해서 참으로 완전한 인격을 완성하자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기라. 그라니 부처님처럼 도를 깨친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고, 이 세상의 오욕락을 누리고 사는 것은 일시적 행복인기라."
오욕(五慾), 즉 인간이 추구하는 다섯 가지 욕망이란 먹고 싶은 욕구(식욕), 잠자고 싶은 욕구(수면욕), 이성과 접촉하고 싶은 욕구(성욕), 재물을 모으고 싶은 욕구(재욕),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는 욕구(재물욕, 권력욕) 를 말하며, 이것을 얻어서 즐기는 것을 불교에서는 오욕락(五慾樂) 이라 한다. 대체로 인간은 이것을 성취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이는 잠깐 누릴 수 있는 일시적인 행복이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는 말씀이었다.
p.55
"지가 올리는 없고 내가 가서 봐야제."
손녀를 빌미 삼아, 10년 만에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20년이 가까워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아버지 큰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한 뒤 한 번도 고향땅을 밟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도 워낙 고집이 세신 분이라 그때까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채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어서, 하나 있는 손녀까지 데리고 가느냐고 담판을 지으러 가신기라."
나중에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그간 가슴에 켜켜이 쌓인 것이 얼마나 많으셨던지 20년 만에 아들을 만나자마자 "석가모니가 내 원수다!" 라는 외마디 소리를 내뱉으셨다고 한다. 유학자인 당신께서 낮춰 보던 불교에 큰아들을 빼앗기고, 아들이 중이 되었다는 이유로 유림들에게 배척까지 당했으니, 쌓인 한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만 훤칠한 대장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스님의 모습에 압도당해, 돌아올 때에는 더 이상 다른 말씀이 없으신 채 "정말 도인이더라!" 하고 감탄만 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큰스님과의 짧은 만남에서 봄눈 녹듯이 풀리셨던 것 같다.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더" 하고 위로해 주셨다고 한다.
묵곡리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하인들과 함께 낫을 들고 경호강으로 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쳐놓았던 그물을 손수 거두셨다. 큰스님이 출가했을 때 '석가모니는 불살생을 근본으로 한다니 나는 살생 함으로써 내 아들을 빼앗아간 석가모니에게 복수한다' 면서 쳤던 그 그물이었다.
p.72
큰스님이 이영주(李英柱) 라는 속명을 버리고 '성철' 이라는 승려로 다시 태어났을 때 묵곡리 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할아버지는 답답함과 울분을 삭이지 못했고 할머니는 한쪽 눈을 잃는 고초까지 겪었다. 자식을 잉태했는데도 아랑곳 않고 집을 떠난 지아비에게 어머니가 느꼈을 배신감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에게서 한 번도 큰스님의 출가에 대한 한탄이나 불만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손주인 우리들에게 너무나 다정했고, 겨울밤 호롱불 밑에서 염불을 하시거나 언문 책을 읽으시던 모습은 늘 따스했다. 아들에게 가져갈 음식을 준비하시던 정갈한 모습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마저 느껴졌다.
p.84
3년 안에 도를 깨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고 있던 어머니는 10년을 기다려도 딸이 돌아오지 않자 석남사로 나를 찾아왔다. 한창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던 나는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더욱 냉정하게 대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느냐' 는 말 한마디는 물론, 따스한 눈길 한번 건네지 않았다. 큰스님이 나에게 그랬듯이 인정에 끌리면 부모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판단으로 어머니를 지나가는 행인처럼 대한 것이다.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하여 세속을 단연히 끊어버려야 한다" 는 큰스님의 말씀을 뼛속 깊이 새기고 공부할 때였다. 아마 지금 어머니가 찾아오셨더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인연을 끊어내지 않고는 생사해탈을 하여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독사보다 더 지독하다!" 하시면서 끝내 발길을 돌리고 마셨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불가의 인연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다시 석남사에 오셔서는 나의 은사 스님이신 은홍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셨다.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출가를 꿈꾸었던 언니, 평생 화두를 여의지 않은 채 임종을 앞두고 삭발한 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완고한 유학자였으나 돌아가실 때는 "이놈들아, 나는 성철스님에게로 간다" 고 말씀하시면서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 오십 대 중반에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어머니. 이러니 '우리 집안은 전부 전생의 스님들이 온 것 같다' 는 내 생각을 누가 틀리다고 하겠는가.
p.96
과연 그렇다. 생자필멸은 우주의 철칙이라. 대해거산(大海巨山) 도 필경은 파멸하거든 하물며 그 사이에 끼어 사는 구구한 미물들이랴! 천하에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영웅호걸이라도 결국은 죽음을 못 면해서 소나무 밑에서 티끌이 되나니, 모든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낙양성 십 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몇몇이냐' 라고 노래함도 이 소식을 전하여 주는 것이다.
초로인생(草露人生), 초로인생, 풀잎의 이슬 같은 인생!
들판의 저 화초는 겨울에는 죽었다가 봄이 오면은 다시 꽃이 피건마는, 오직 이 인간은 한 번 죽으면 아주 가서 몇 천 년의 세월이 바뀌어도 다시 돌아오는 이 없으니, 우주는 인생의 분묘라 함은 이를 두고 이름이라. 참으로 영원한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고영웅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아방궁을 크게 짓고 밤을 세워가며 천하 풍류를 다하여 이 설움을 씻어보려고 노력하였건마는 순식간에 여산(黙山) 의 한 줌의 흙이 되고 말았으니, 이러한 발악은 교수대에 오르는 죄수의 가무(歌舞) 에 불과한 것이다.
p.128
해제 무렵이 되자 급기야 병이 났다. 이른바 상기가 난 것이다. 참선을 하는 수행자에게 가장 무서운 병 둘이 있으니, 기가 머리 위로 치솟아 생기는 두통인 상기병(上氣病) 과 냉병(冷病) 이 그것이다. 여름에 바위에 앉아 좌선을 하다 보면 종종 냉병에 걸린다. 바위가 겉은 따뜻해도 오래 앉아 있으면 냉한 기운이 몸속에 들어와 여간해서는 고치기 어렵다. 그러나 냉병은 상기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병이 상기병인 줄 안다. 몸 전체가 불덩어리인데, 그것이 몸이 아파서 열이 나는 것과는 전혀 달라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열이 펄펄 끓는 속에서 화두를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는 그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100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면 상기가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이 없는' 우리한테 왜 돌아가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청량사에서 하안거를 보내고 큰스님이 계시는 성전암으로 가서 상기를 하소연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급할수록 돌아가라 안 그랬나."
큰스님께서 상기 내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氣海丹田 腰脚足心 (기해단전 요각족심)"
이 글을 써주시면서 이렇게 일러주셨다.
"좌복에 앉아 온몸의 기운을, 높은 절벽의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하고 족심(足心) 에 생각을 두면 열이 내릴기라."
그대로 열심히 따라하다 보니 '어째서' 하는 간절함이 수굿해지면서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큰스님의 그 말씀은 두고두고 정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p.131
생사란 바다의 파도와 같다. 바다에서 끝없이 파도가 일어났다 스러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바다 자체는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친 것을 생사를 해탈했다고 한다. 생사를 해탈, 초월했으니 일체에 걸림이 없고, 일체에 걸림이 없으니 대자유를 성취한다. 이런 사람을 일러 도인이라고 한다. 도인은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에 영원에서 영원을 산다. 영원한 대자유인인 것이다.
p.138,139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공부를 성취하고야 만다!'
이러한 결심이 아니고는 이 공부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한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라야 공부를 성취한다" 고 하였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 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고 하겠다.
천 근을 들려면 천 근을 들 힘이 필요하고, 만 근을 들려면 만 근을 들 힘이 필요하다. 열 근도 못 들 힘을 가지고 천 근 만 근을 들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하루바삐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를 낳아준 가장 은혜 깊은 부모가 굶어서 길바닥에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 무서운 마음, 이것이 고인의 결심이다.
제왕이 스승으로 모시려 하여도 목을 베이면 베었지 절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고인의 지조이다.
사해(四海) 의 부귀는 풀잎 끝의 이슬방울이요, 만승의 천자는 진흙 위의 똥덩어리라는 이런 생각, 이런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야 꿈결 같은 세상 영화를 벗어나 영원불멸한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털끝만한 이해(利害) 로써 칼부림이 나는, 소위 지금의 공부인(工夫人) 과는 하늘과 땅인 것이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 거품 같은 이 몸을 가리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한다. 오직 대도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 깨나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해야 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지 않으면 대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한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불법 만나기도 어렵다. 모든 불보살(佛菩薩) 은 중생들이 항상 죄짓는 것을 보고 잠시도 눈물 마를 때가 없다고 한다.
p.168
나에게 전갈이 온 것을 보면 큰스님께서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아셨을텐데도, 큰스님은 그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나중에 들으니 그래도 시자를 보내 문상을 하게 했다고 한다.
수십여 년을 뵙는 동안, 큰스님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출가할 때 다 버리고 간 분인데 무슨 사심이 있었겠는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 홀로 만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장부의 기상이 펄펄 살아있는 출가시(出家詩) 를 보면 원망하고 말 것이 조금도 없다. 그분이 나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라는 생각, 전생과 후생, 이런 모든 것들이 붙을래야 붙을 수 없다.
P.177
출가의 길에서 계율(戒律) 은 첫 번째 생명선이다. 계를 지키지 못하면 깨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수 없듯,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계율은 도덕성을 말한다. 그러니 계율이 어찌 승가에만 해당하겠는가. 세상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떠들썩한 것은 이 도덕성을 저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도덕성을 저버린 채 일을 성취하려 하는 것은 가시나무를 심어놓고 천도복숭아를 취하려는 것과 같다. 나는 도덕성이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데 으뜸가는 기초라고 생각한다.
p.180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최후로 부촉하셨다.
"내가 설사 없더라도 계(戒) 를 스승으로 삼아 잘 지키면 내가 살아있는 것과 같으니, 부디부디 슬퍼하지 말고 오직 계로써 스승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라. 너희가 계를 지키지 못하면 내가 천년만년 살아 있더라도 소용이 없느니라."
지당한 말씀이다. 계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릇이 깨어지면 물을 담을 수 없고, 그릇이 더러우면 물이 깨끗하지 못하다. 흙그릇에 물을 담으면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흙물이 되고 말며, 똥그릇에 물을 담으면 똥물이 되고 만다. 그러니 계를 잘 지키지 못하면 추하고 더러운 사람의 몸도 얻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고 만다.
p.217
생전에 '가지산 호랑이' 라고 불렸던 인홍스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을 의미하는 '승(僧) 자를 해체하여 보아라. 사람 인(人) 변에 일찍 증(曾) 아니냐. 보통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먼저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제자는 일체중생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청빈으로 수도생활의 생명을 삼고, 일체중생을 위하여 기도하며 끝없이 하심하고 봉사해야 한다."
p.230
수도의 목적은 이타에 있다. 이타심이 없으면 이는 소승외도(小乘外道) 이니, 심리적,물질적으로 항상 남에게 봉사한다. 자기 수도를 위하여 힘이 미치는 대로 남에게 봉사하되 추호의 보수도 받아서는 아니 된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환자나 빈궁한 사람을 보거든 특별히 도와야 한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는 10대 제자 가운데서도 밀행제일(密行第一) 이라 한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일이라도 귀신도 모르게 한다. 오직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자성(自性) 가운데 쌓아둘 따름, 그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 푼어치 착한 일에 만 냥어치 악을 범하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자기만 손해볼 뿐이다.
예수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오른손으로 남에게 물건을 주면서 왼손도 모르게 하라."
세상의 종교도 그렇거늘, 하물며 우리 부처님 제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천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행!
실행 없는 헛소리는 천 번 만 번 해도 소용이 없다. 아는 것이 천하를 덮더라도 실천이 없는 사람은 한 털끝의 가치도 없는 쓸데 없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고인은 말하였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나니, 말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또 말했다.
"옳은 말 천 마디 하는 것이 아무 말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니 오직 실행만 있을 뿐 말은 없어야 한다.
p.235
간절한 마음이 곧 부처다. 간절한 마음만 내면 되는데 그것을 못 하는게 우리 중생이다. 그런데 왜 마음을 내지 못하는 것일까? 오랜 세월 쌓아온 업으로 인한 장애 때문이다. 이 사실을 직관해서 장애를 없애는 것이 수행이며, 그 중에서 가장 수승한 기도가 절 수행이다.
자꾸 엎드리다 보면 하심이 되고 참회가 되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p.252
어머니는 겉으로는 얌전해 보여도 자존심이 강하고 머리가 명석한 분이셨다.
당시 어머니는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홀로 고향집을 지키면서 혹시나 딸이 돌아올까 하는 기대만으로 기다리고 있었으니 비운의 여인이 따로 없었다. 사십 대에 딸을 절로 보내고 오십 대 후반에 이른 어머니에게는 벌써 노년의 체취가 묻어났다. 소쩍새처럼 그리움을 노래해도 받아줄 사람 하나 없던 세월이 너무나 쓸쓸했을 나의 어머니. 그러나 나는 10년 만에 찾아온 어머니를 지나가는 행인보다 더 무심히 대했다.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하여 세속을 단연히 끊어버려야 한다."
생명처럼 지니고 다닌 법문 노트의 말씀이 삶 자체가 되어 있을 때이니 이미 혈욱 관계를 떠나 있었다. 출가 전에도 내게 모든 것을 걸고 의지하며 사는 어머니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이렇게 잡으려고 애쓸까?' 생각하면서도 곁을 주지 않았는데, 출가해서는 오죽 했겠는가. 내가 냉정하게 대하자 어머니는 "독사보다 더 지독하다" 고 하시곤 발길을 돌리셨다.
p.268
큰스님의 백일법문이 늘 새롭게 읽히는 것은 동서고금을 오가는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노자, 맹자, 공자, 장자 등 동양사상의 대가들 이야기에서부터 서양물리학과 수학에 이르기까지 인용이 매우 다양하며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인용들은 경전의 가르침과 연결되어 궁극적으로는 불교적으로 해석된다.
p.327
대부분의 상좌들이 성철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발심 출가했다. 큰스님의 법이 퍼져나갈 때 상좌들이 몰려온 셈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하면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렇게 출가들을 할까요?"
대답은 간단하다. 선근(善根) 이 있어야 한다.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선근이 먼 생으로부터 있었기에 자기 길을 찾고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중노릇은 억지로는 안 된다. 오리는 물에서 살아야 하고 꿩은 산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먼 생으로부터 익혀온 업에 따라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출가하라' 는 소리를 잘하지 않는다. 스스로 발심해야 그간 살아오던 환경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것이 진발심(眞發心) 이다.
p.358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입시철이 되면 절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천생 만생의 인연 속에서 부모도 되고 자식도 되었으니, 큰바닷물보다 많은 어머니의 젖을 먹었고 태산보다 높은 뼈를 버렸다. 그만큼 자식과 부모 간의 인연은 지중하다.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킨다고 부모 노릇을 다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돈주머니 역할만 하면 아이들은 갈지자로 걸으면서 살게 된다.
무엇이든 강요하면 역으로 간다. 그러니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회초리를 들고 맞다 싶으면 칭찬해 주어야 한다.
자식에게 부모는 영원한 선생님이다.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처럼, 부모는 낮은 곳에 서야 한다. '네가 잘 성장해서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거라' 하고 기도해야 한다.
p.360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솔개의 수명은 80년이다. 그런데 솔개가 40년쯤 되면 산정에 올라가 반년에 걸쳐 고행을 한다고 한다. 길어져 쓸모없게 된 부리는 바위에 쪼아 부수고 무딘 발톱도 새로 난 부리로 뽑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거워진 깃털마저 뽑아 정리한 후, 새로운 부리와 발톱과 깃털로 새롭게 40년을 산다고 한다.
짐승도 지혜가 있어 낡은 것을 스스로 부수고 새롭게 태어나는 데, 하물며 사람이 자신이 낡은 것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무딘 채 살아가서야 되겠는가.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기도는 낡고 잘못 살아온 자신을 바로 보게 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지금 바로 시작하라!
p.366
"이번 생에 잘못 모셨으니 다시 다음 생에 만나 뵙겠습니다."
큰스님께서 떠나시기 얼마 전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니는 내가 가면 내 같은 사람 또 만날 줄 아느냐!"
그 말씀이 연화대에서 내뿜는 푸른 불빛 속에서 가슴속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 일만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지고 창자가 끊어지는데, 천생만생의 기나긴 인연을 생각하면 한숨이 바람이 되고 눈물이 바다가 되어도 오히려 남을 것이었다.
"생사의 바다에서 마음의 눈을 바로 떠서, 영원한 대자유인으로서 스님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스님, 뵙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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