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루비우스 인간> 들어 보셨나요?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대표작품 중 하나로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란 스케치 그림이 있다. 걸작 명화는 아니지만, 시선을 끄는 이미지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보기는 많이 봤지만 그게 무슨 그림인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비트루비우스’는 무엇인가?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가 겸 예술가의 이름이다.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B.C. 80년경에 태어나 카이사르(시저)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활동했다. 그가 남긴 <건축서 De Architectura> 10권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를 많이 차용하였고 고대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가 그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건축할 때 중요개념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비례와 색체를 통해 눈을 즐겁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합목적성, 적합성, 통일성 등에 의해 즐거움을 주는 것 까지 포함한다. 또한 사람 각자의 주관적 태도보다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객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신체비례를 따르는 것이 건축의 아름다움과 완벽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이어받아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정신의 예술적 가치를 알베르티(1404~1472)가 명확하게 규정했다. 알베르티는 모든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선생님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의 이론과 가치를 정리한 사람이다. 알베르티의 이론서를 공부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바로 이런 거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비트루비우스 인간> 스케치 그림이다.
알베르티는 르네상스 조형미술의 가시적 결과물인 회화·조각·건축의 3대 장르에 대하여 이론적 체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회화에 대하여>(1435년), <조각에 대하여>(1440년), <건축예술에 대하여>(1472년)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15세기 르네상스 운동의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이 활동하기 전이다. 그림만 미술이 아니고, 조각과 건축도 미술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축은 미술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건축이 추구하는 고전적 아름다움이란 결국 수학적 계산의 결과이고, 건축가는 이성적 판단을 기초로 조화·비율·대칭의 수학적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알베르티는 비트루비우스의 미에 대한 이론을 차용하여 아름다움이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조화로운 상태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규칙적인 상태라고 정의했다. 르네상스 건축에서 강조된 전체와 부분과의 조화와 규칙적인 반복은 이 정의에서 나왔다. 또 알베르티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이란 개인의 취향이나 느낌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의한 조화와 질서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건축이 학습대상의 원조로 삼았던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건축서> 3권 도입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신전의 설계는 대칭을 기반으로 한다. 균형 잡힌 인체의 각 부분이 그러하듯 신전의 각 부분은 정확한 비율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비트루비우스는 신전설계에 반영해야할 균형 잡힌 인체의 비율을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우선 턱부터 이마 꼭대기까지의 길이가 신장의 10분의 1이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해서, 발의 길이는 신장의 6분의 1이어야 하고, 팔뚝이 길이는 신장의 4분의 1, 가슴넓이도 신장의 4분의 1 이어야 한다고 했다.
비트루비우스는 인체의 비율을 자세히 설명한 뒤 신전의 이상적인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원과 정사각형 위에 인체를 배치하는 방식을 인상적인 시각화기법을 통해 서술했다.
신전 내에서 전체와 각 부분의 대칭관계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팔다리를 펼치고 똑바로 누운 사람의 배꼽이 컴퍼스의 중심이라고 할 때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 컴퍼스로 그린 원의 둘레에 닿는다. 인체에서 원의 둘레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정사각형도 찾을 수 있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꿈치까지의 길이를 잰 다음 활짝 벌린 양팔의 폭을 측정해 보면 완벽한 정사각형처럼 양팔의 폭과 신장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트루비우스의 책 내용에 따라 정확하고 진지하게 실제로 그려본 사람은 책이 쓰여 진 후 1500년 동안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1490년 경 완공단계에 있던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에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디조르조, 자코모 안드레아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에 대입시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또한 각자가 직접 그림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 두 친구가 그린 것에 비해 레오나르도의 그림이 과학적 정확성이나 예술적 우월성, 완성도 면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비트루비우스가 주장한 대로 그렸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Vitruvian Man>이나 <인체 비례도, Canon of Proportion>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지만 현재는 모두 <비트루비우스 인간>으로 통용되고 있다.
(위)프란체스코 디조르조와 (아래)자코모 안드레아가 그린 <비트루비우스 인간>
그렇다면,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서>나 레오나르도의 인체비례율에 따라 건축물이 실제 지어지고 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사례 별로 없다. 유명한 중세 성당의 평면도가 십자가 형태라고 설명은 해도 인체비례율을 따랐다고 하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인체비례율에 따라 건축해야 아름답고 완벽성을 보장한다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과학적 합리성을 확보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합리성·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비트루비우스나 알베르티의 수백 마디 말을 세상 유일하게 이런 식으로 그려낸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이야 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나르도의 <비트루비우스 인간> 원본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4층의 밀실에 보관돼 있다. 34.6×25.5 ㎝, A4용지 정도 크기의 1490년 작품인데, 빛에 의한 손상위험 때문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 『TIME』지 편집장이었으며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 유명인의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기<Leonardo da Vinci> 저술을 위해 특별히 부탁해서 봤다고 한다. 큐레이터가 들고 나온 원본을 보는 순간 “나는 레오나르도의 금속 펜에 의해 꾹 눌린 자국과 컴퍼스 바늘이 뚫어놓은 열두 개의 작은 구멍을 보고 놀랐다. 500년이 넘는 과거에 이 그림을 그렸을 거장의 손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기이하고도 친밀한 느낌에 휩싸였다.”고 했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2019. 4. 17 ~ 7. 14 다빈치 특별전 개최 배너가 걸려있다.
그림 속 남자는 레오나르도 자신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레오나르도는 서른여덟 살이었고, 그림 속 남자도 그 정도 나이로 보인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아름다운 곱슬머리와 균형이 잘 잡힌 몸매의 소유자였다. <비트루비우스 인간>은 레오나르도를 모델로 그렸다고 알려진 여러 그림의 특징과도 일치한다. 특히 브라만테가 그린 헤라클레이토스와 아주 비슷하다. 레오나르도가 말하길, 모든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회화 관련 기록에서 그것은 그림 속 인물이 화가를 닮게 되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그림을 자세히 보다보면 왼발이 조금 어색하다. 사람을 정면으로 그렸지만 왼발만큼은 90도 바깥으로 꺾이게 그려 놨다. 발의 길이가 신장의 그것과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게다가 정사각형 밑에 눈금이 그려진 직선이 그어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의 기록을 무조건 수용하여 표현했지만, 자신의 경험과 실험 결과를 반영하여 그림 아래에 적어 놓았다. 예를 들면 비트루비우스는 신장이 발 길이의 여섯 배라고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일곱 배라고 기록했다. 아무리 재어 봐도 발 길이가 그렇게 클 수는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림 아래에 구체적인 수치와 비율을 서술했다. 남자의 배꼽은 원의 정중앙에, 생식기는 정사각형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머리위치가 신장보다 14분의 1 낮아질 정도로 양 발을 충분히 벌리고 양 손이 머리 꼭대기 선에 닿도록 활짝 뻗으면, 쭉 뻗은 팔다리의 중심은 배꼽이 되고 다리사이의 공간은 정삼각형이 된다.
오늘날 <비트루비우스 인간>은 보통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든 못하든 매우 유명하고 자주 복제되는 그림이 되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 그림은 거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1956년 영국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가 쓴 <누드: 이상적 형태 연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책에 실려 있던 <비트루비우스 인간>도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대중문화의 생태계 속으로 들어간 이 그림은 진지하거나 가벼운 형태로 걷잡을 수 없이 복제되기 시작했고, 그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르네상스를 나타내는 대표그림으로 언론보도 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커피 잔과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차용되고 있다. 더욱이 2019년 봄에 번역본으로 한국에 소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월터 아이작슨 저, 신봉아 역) 책 표지에 이 그림을 단독으로 내 세웠다는 것은 그 그림의 의미와 가치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위)월터 아이작슨 저, 신봉아 역, 2019년, 띠지를 벗기면 비트루비우스가 선명하다.
(아래)토비 레스터 저, 오숙은 역, 2014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19년 5월 2일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9년은 그의 사후 500주기가 되는 해다. 2019년 5월은 유럽 전체가 레오나르도 열풍에 빠져있다고 어느 언론매체는 전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고향 피렌체에서도 거리 곳곳에서 레오나르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포스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우피치 미술관 건물 남쪽 모퉁이 아르노 강가에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박물관에 갔는데 거기서도 레오나르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갈릴레오와 주객이 바뀐 게 아닌가할 정도로 레오나르도의 일생과 작품에 대한 설명 전시물이 꽤 넓은 공간에서 디지털기기를 사용해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크고 작은 공간에서의 전시나 레오나르도 머리카락 DNA검사 프로젝트 등 적어도 유럽에서만 1000군데에서 레오나르도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고 했다. 레오나르도 생애 행적과는 전혀 무관한 영국에서도 114개 특별전이 열렸고, 2019년 5월 2일 서거 500주년 당일에는 다빈치의 유해가 안장된 프랑스 생위베르 예배당에서 에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같이 헌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비트루비우스 인간> 스케치 작품에 대해 왜 서양문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특별히 주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다분히 있다.
다빈치 묘소에 헌화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우)과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2019년 5월 유럽에는 겨울외투를 걸쳐야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