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生들의 漢字 실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과 한자교육의 필요성
許 璧(延世大學校 敎授)
요즈음 또다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漢字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운동이 국내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漢字를 가지고 사상감정을 표현하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한글창제 이후 지금까지 한글을 사랑하는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한글을 사랑하고 아껴쓰자는 운동을 꾸준히 전개시켜 국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받아오고 있다.
우리의 한글을 사랑하고 아껴쓰며 긍지를 가지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함은 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가운데는 많은 漢字어휘가 쓰여지고 있다. 이러한 한자어휘는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말속에 흡수되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도 않을뿐더러 깊숙히 뿌리내려져 있으므로 오히려 이러한 어휘를 배제하고 순수한 우리말로만 표현하게 되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본인은 현재 대학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글 전용보다는 國漢文混用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동안 대학 강단에서 경험하고 느낀 漢字실력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과 漢字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1. 어려서부터 漢字교육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크게 도움이 된다.
본인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동시에 중국의 長春에서 살다가 귀국하여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을에 있는 서당에서 “千字文”과 啓蒙篇 등 기초 漢文을 배우고 나서 4학년에 편입했는데 당시 한문을 배우지 않고 다니던 다른 학생들보다 국어와 사회 등 전반적인 과목에서 남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을 실감했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배운 漢文이 밑거름이 되어 중국어문학을 전공하는데 많은 보탬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2. 세계화차원에서도 한자교육은 매우 편리하다.
우리말속에 들어 있는 漢字어휘는 대단히 많다. 우리가 상용하고 있는
한자어휘중에는 중국과 일본 등 이웃 나라와 똑같이 쓰여지는 경우도 있고 - 山․川․草․木․學校․圖書館․人物․國家 등 -
또 중국과 한국은 같은 어휘를 쓰지만 일본은 다른 어휘를 쓰는 경우도 있다 - 方法(仕方)․價格(値段)․眞實(本當)․郵票(切手) -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 같은 어휘를 쓰는데 중국은 다른 어휘를 쓰는 경우도 있다 -野球(棒球)․片道(單程)․看板(招牌)․金曜日(星期五)․汽車(火車)․萬年筆(鋼筆) -
또 한․중․일 삼개국이 각기 다른 한자어휘를 쓰는 경우도 있다. - (物件, 東西, 品物), (便紙, 信, 手紙), (登記, 掛號, 書留), (冊, 書, 本) -
그렇지만 이중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중․일 삼개국이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휘이기 때문에 漢字를 알고 있으면 중국과 일본에서 쓰이고 있는 많은 어휘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카나다 및 오스트렐리아 등 서방국가에서 발행되고 있는 우표 중에도 漢字가 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볼 때 세계화라는 차원에서도 한자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3. 漢字는 중국 사람들만의 전용물이 아니다.
漢字문화권에 속해 있는 우리 나라와 일본 및 월남 등 일부 지역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한자의 영향을 받아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독자적으로 제각기 한자를 만들어 가지고 중국 사람들이 만든 원래의 한자와 혼용하고 있다.
예컨데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㐈, 乧, 㐙 이라든가 乭 자 같은 글자는 일본이나 중국의 漢字 字典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독특한 漢字들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 볼 때 절대다수가 중국 사람들이 만들어낸 글자이지만 우리가 만들어 쓰는 것도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漢字교육의 필요성은 전국민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4. 음운학적인 측면에서 漢字교육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표준어에는 이른바 入聲韻을 포함한 몇가지 음이 소실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의 中古音이전의 음가를 파악하기에 매우 힘들다. 따라서 李太白이나 杜甫의 시를 감상함에 있어서도 현대음으로 낭송하게 되기 때문에 이들 시인들이 시를 썼을 때의 참된 맛을 느끼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시는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중국어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음은 현대중국어음이 아니라 중국의 중고음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入聲韻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음운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우리 한국사람들이 중국 사람들보다도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된다.
5. 한자교육부재로 일어난 몇 가지 실예
① 특히 80년대 이후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매년 연말연시때면 많은 제자들이 연하장을 보내오고 있는데 개중에는 나의 이름자를 잘못 써보내주어 새해 첫날부터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하다.
나의 이름자인 “璧”자는 “辟”(임금벽)자 밑에 “玉”자를 쓴 “구슬 벽”자로서 千字文 책에도 “尺璧非寶”라는 구절 속에 들어 있는 글자인데도 연하장에는 이 글자 대신 “壁”자를 써보내오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나는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획수가 두 개가 적은 “壁”자를 써보내는 것이려니 하면서도 한편 씁쓸한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② 몇 년 전 중국 문법 시험문제에 “사서에 보이는 대사의 특징을 논하라”라는 문제를 출제했더니 뜻밖의 답안이 나와 다시금 國漢文혼용의 필요성을 절감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문제를 “四書에 보이는 代詞의 特徵”으로 알고 요구하는 답안을 제대로 작성하였는데 일부 학생은 이 문제를 “史書에 보이는 大事”로 간주하고 답안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큰 차이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③ 요즈음 우리 문과대학의 학생중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훨씬 많다. 학기초마다 보내오는 출석부가 컴퓨터로 찍혀 나오는 한글 이름인데 어떤 경우는 한반에 다섯명의 이름이 같은 경우가 있다.
실제로는 성씨만 같을 뿐 漢字로 쓰면 전혀 다른 사람이었는데도 한글로만 찍혀나오니까 구별이 어려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한 때는 과제물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경우도 있었다.
④ 연세대학에서는 75년도까지만해도 인문사회계열학과에서는 “敎養漢文”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책정되어 1년동안 한문을 가르쳐 왔으나 76년도부터 필수과목에서 제외되어 지금은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수강생은 극히 적은 편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어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까지 한문실력저하로 연결되어 古典관계의 과목은 苦戰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져서 이러한 과목의 수강생들이 급속도로 감소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교재에 쓰여져 있는 내용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에 막대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⑤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답안지를 제하고는 컴퓨터를 가지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는데 漢字실력부재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시험답안지에 쓰여진 내용이 옳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컴퓨터로 제출된 보고서에도 同音異義語 때문에 잘못 찍혀져 나오고 있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경우는 한자의 음을 잘못 읽어서 찍는 과정에서부터 잘못되는 경우도 있지만 同音異語 현상 때문에 잘못 찍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자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밖에도 순수한 한글로만 적어 놓아 혼선을 빚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때마다 국한문혼용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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