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문학관에서
최성희
한계령을 넘어온 바람 한 줄기
주막집 창문을 기웃거린다
버지니아 하늘을 돌아온 구름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인 듯
술잔 속을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목마가 운다
가을비를 우울처럼 두르고
방울소리가 페시미즘으로 벌럭이며 운다
이 가을엔 모두 어디로 떠나려는 걸까
바람에 쓰러져 간 술병들은 어느 행성에서
버지니아울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사랑도 허무도 전쟁도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처럼 지나가고
벽에 걸린 시인의 바바리 소매 사이로
생과 사의 애환이 옵티미즘으로 살아난다
페허속 한 시대를 병풍처럼 펼쳐 놓은 벼루와 먹
시처럼 살다간 세월을 술잔으로 돌리고 있다
문장 속 행간을 헤엄치는 우산들
구름도 바람도 빗물도 모두가
주인을 버리고 떠난 목마와 숙녀처럼
어디론가 출렁출렁 흐르고 있다
불효
최성희
칠월의 변방에 비가 내린다
젖은 이파리 속으로
비를 피해 찾아든 청개구리 한 마리,
개굴개굴개굴 굴개굴개굴개
목청 터지도록 어미를 찾는다
빗물에 떠내려가는 저 울음소리
내 목에 걸려 울고 있다.
화가 난 천둥 번개 우르릉 콰당탕탕
빗물처럼 울지 말라고
번쩍이는 피뢰침으로 내 정강이를 때린다
내 안의 청개구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막을 아는 이 나밖에 없다
어머니 수심 속에 철없던 아이 하나
저 풀잎 속에 숨어 청개구리처럼 울고 있다
*********************최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