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라고 번역하는 빠알리어 '실라(sila)'는 경전에서 중첩되는 여러 의미들로 나오고 있는데
모두 바른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맥락에서는 이 말이 도덕적 원칙에 부합되는 행위를, 또 어떤 경우에는
도덕적 원칙 그 자체를, 또 어떤 경우에는 도덕적 원칙을 준수한 결과로 생기게 되는 성격의 덕스러운 자질을 의미한다.
교훈이나 원칙이라는 의미에서의 '실라[戒]'는 윤리적 수련의 형식적 측면을 나타내고,
덕성으로서의 '실라'는 활기찬 정신을, 바른 행위로서의 '실라'는 현실상황으로 드러나는 덕성을 의미한다.
' 실라[戒]'는 '불선한 신체적, 언어적 행위를 그만두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런 정의는 외형적 행동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피상적인 것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다른 설명들도 있어서 이런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뿐 아니라 이 말이 처음 언뜻 이해한 것보다 더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예컨대, 아비담마에서는 실라[戒]'를 심적 요소의 세 가지 절제(viratiyo) -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 와
대등한 것으로 보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도덕 지침인 계의 준수를 통해 실제로 계발되는 것이
결국은 마음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실라'의 수련은 사회적으로 해로운 행위를 금하는 '공적인' 이익도 가져오지만
정신적 순화라는 개인적 이익도 수반하여 번뇌가 우리에게 이런저런 행동노선을 따르라고 명령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영어의 'morality(도덕)' 이라는 말과 그 파생어들은 불교의 '실라'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는, 의무와 구속의 뜻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함축적인 의미는 아마 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서양 윤리학 특유의 산물일 것이다.
불교는 비신학적 구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불교윤리는 '복종'이 아닌 '조화'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실 주석서들에는 '실라'를 '사마다나(samadhana)'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조화' 또는 '동위화(同位化)'를 의미한다.
계를 준수하면 사회적 차원, 심리적 차원, 업(業)의 차원, 선정의 차원에서 조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계의 원칙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제각각 여러 갈래로 서로 다른 개인적 이해와 목표를 가지고 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군중을 하나의 응집력 있는
사회질서 속으로 융화시키며, 개인들 간의 갈등도 비록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감소시키는 효과는 있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계의 준수가 마음에 조화를 가져다주고, 도덕적 비행으로 인한 죄의식과 자책 때문에 생기는 심적 갈등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업의 차원에서 계의 준수는 업의 보편적 법칙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장차 윤회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보장해준다.
마지막으로 선정의 차원에서 보면, 계는 마음의 예비적 순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이렇게 이루어진 마음의 순화는
더욱 심도 있게, 더욱 철저하게 적정(寂靜)과 통찰력을 체계적으로 계발해 나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첫댓글 법보시 감사합니다()()()
사회적 심리적 업 선정의 차원에서 조화를 누릴 수 있는 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