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돌아보는 눈이 열려
글 : 한헌석 모세 ㅣ 한센인
나는 1949년 대전 인동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이끌고 논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지체장애 1급을 얻어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집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17살 때 계룡산에 있는 절에 들어가 20살 때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센인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그리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라도 얻으려 처음으로 종교에 발을 딛게 됐다.
그때 처음 알게 된 곳은 개신교 교회였다.
사춘기 시절 마음의 위안을 얻으러 갔으나
내 뜻과는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인들이 권하는 종교를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27살에 무작정 대구로 왔는데, 건강이 악화돼
천주교가 운영하는 칠곡 가톨릭피부과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한 동안 구약성경을 읽었고,
마음에 와닿는 좋은 내용이 많아 성경을 자주 읽었다.
이것이 천주교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입원한 동안 신부님,
수녀님이 방문해 홀로 외로운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때부터 신부님과 수녀님을 볼 때마다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고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알게 됐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생활이 계속됐고,
병원에서 알게 된 외국 선교사님 권유로 경남 산청에 있는
한센인복지시설 성심원이라는 곳에 가게 됐다. 29살 무렵이었다.
사회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다가 노인이 대부분인 시설에서
규칙적이고 규율에 맞는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 나오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중 8개월 동안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게 됐다.
이때부터 천주교 신자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 묵주기도를 하고 미사에 참례하며 점차 사회와
나 자신에 대한 불평불만도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내 어려움보다 타인의 어려움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도와드리며,
봉사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봉사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30년 8개월이라는 시설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2008년 8월 22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나는 사회로 나왔다.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이 눈물로 환송했고,
나도 그동안의 설움에 북받치는 눈물을 쏟았다.
경북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기쁜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하지만 묵주기도를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되찾았다.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따가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안으로 숨으려는 나는 주님을 알게 됐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생활하려 노력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도 사귀어 여행도 다니면서 즐겁게 생활한다.
내 곁에 항상 주님이 있다고 생각하니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고
비록 내가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말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인근 기차역에 자주 간다. 간혹 밥을 못 먹거나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빵을 사서 주곤 한다. 내 상황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이 보이면 그대로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어려움보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보듬으며 사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출처 : 평화신문 [나의 묵주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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