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울주군 영남알프스9봉 도전수기 응모 우수작>
영남알프스 9봉 도전기. -구름의 문 운문산을 향하여- 석골사 정문아래 간이 주차장은 이른 아침인데도 차량들이 벌써 꽉 차 있었다. 길 아래 석골폭포는 겨울내 가물었던 계곡의 적은 물로 큰소리를 내고 있었고. 청량한 물소리는 오늘 “영남알프스 9봉”을 도전하는 우리 일행에게 응원의 박수 소리 같았다.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 석골사 돌계단을 지나니 도전 첫 날의 마음이 가다듬어 졌다.
산을 정복하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한없이 너그러운 그의 품속으로 일상을 탈출하여 오늘 하루 그와 함께하고 오리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공자는 일찍이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하니 지헤로운 자는 동적이고 인자한 자는 정적이며, 지헤로운 자는 낙천적이고 인자한 자는 장수한다”하였으니 오늘 하루 인자가 되어 보고 싶어졌다. (子曰 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 壽니라)
천년고찰 석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통토사의 말사로 560년 신라 진흥왕 12년 비허선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 44호로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활약한 구국의 장소였다 하니 당시 의병들의 처절했던 전쟁을 상상해 보았다.
산길은 시작되었다. 영남알프스 9봉 도전도 시작되었다. 운문산 3.8k 상운암 3.0k 이정석을 확인하고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용기는 시작이고 시작은 성공의 절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체력과 자신감에 흔들렸던 며칠전의 마음은 싹 날려 버리고 오늘 첫 도전만이라도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4월 초순의 상운암계곡은 봄기운이 완연하였다. 바람은 봄 냄새를 진하게 풍겼고 나무잎 색깔은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계곡 상부의 선녀폭포 비로암폭포를 거쳐온 상운암 계곡은 팔풍재에서 시작된 대비골계곡과 합쳐지고 또 억산계곡과 함께 석골폭포로 이어져 있었다. 겨울가뭄에 계곡의 물은 바닥을 훤히 드러 낸채 산자락 끝으로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상운암 계곡은 길고 깊었다. 억산으로 가는 갈림길은 벌써 지났고 오른편 등성이의 치마바위도 왼쪽의 팔풍재 갈림길도 다 지나갔다. 길은 이제 점점 고도를 높여 갔고 숨도 가파졌다. 정구지바위를 지나니 멀리 높게 가로지른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만 지나면 부드러운 길이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길은 더 험했고 더 가팔랐다. 부드러운 딱발재로 가자는 리더의 의견을 무시한 일행들을 원망하였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한참을 오르고 올라 산모퉁이를 도니 상운암이 바로 보였다.
드디어 상운암에 도착하였다. 평상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산맥을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검은 산맥과 산맥은 저멀리 하늘 끝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었고 계곡에서 시작된 산자락은 하늘로 쑥쑥 솟구쳐 부드러운 등성이를 만들고 또 다른 등성이들과 서로 합쳐져 준봉에 닿아 있었다. 산맥은 준봉과 준봉들을 잇고 이어 구름속으로 희미해져 갔다. 준봉들은 영남알프스의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였고 기개가 세어 보였다. 다리를 풀고 숨을 고르어 다시 정상을 향했다. 길은 가팔랐고 계단목은 나뒹굴어 진행에 방해가 되었다. 심한 급경사구간이 끝나니 삼거리 능선길이 나왔다. 정상 0.3k라는 표지목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숨가품도 이내 사라졌다. 정상을 맞이할 기대가 컷다. 우측으로 완만한 길을 몇 분 오르니 운문산 정상석이 불쑥 나타났다. 운문산 정상이다.
운문산(雲門山) ! 구름의 문! 구름속의 운문산! 가슴이 벅찼다. 첫 도전에 성공하는 순간이다. 정상석도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정상에서 왼쪽 아래를 바라보니 작년에 올라왔던 아랫재능선이 가물가물 하였고 가지산도 보였다. 산맥들은 힘차게 솟구쳐 준봉을 만들고 사방으로 이어졌다. 사방에 펼쳐진 산맥과 준봉들을 보니 몸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아- 산바다 구름바다-!
운문산(雲門山) 봄기운 온산에 가득하네 (春氣滿萬山) 하늘은 푸르고 산은 녹색으로 변하네 (天靑變山綠) 산맥은 준봉들을 이어 가고 (山脈連峻峰) 늙은 등산객 지나 온길 바라 보네 (老客望過路)
인증샷 줄은 길지 않았다. 모두가 젊은이들이었다. 차례가 되어 함께 한 일행이 내 휴대폰으로 영남알프스9봉도전 앱을 열어 촬영해 주었다. 내 모양이 앱 하단 중앙 운문산 칸에 쏙 입력이 되었다. 하~! 참 신기하고 멋졌다. 영남알프스 9봉중 1봉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은 벅찼고 마음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멋진 앱! 울주군의 IT기술에 감탄하였다. 나머지 8칸도 빨리 채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신불산, 간월산을 향하여 -산행은 열정으로- 바로 이틀후에 신불산과 간월산 연계산행을 나홀로 도전하였다. 처음보는 영남알프스 웰컴센터는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였다. 시설물들이 모두 현대식이라 세련되었다. “영남알프스 산악문화관“ ”벽천폭포” “영남알프스 국제클라이밍장“등의 현대적 건물들은 넓게 자리잡아 주차공간과 녹지공간이 시원시원하였다. 산악문화와 산악인들을 위한 시설들이다. 이만한 시설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았고 국제적으로도 손색없을 시설들이다. 울주군의 산문화와 산악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행정지원에 감탄하였다. 주차장에서 들머리를 찿아 20여분을 오르니 홍류폭포길과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왔다. 당초에는 편한 길인 임도로 오르려 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험난한 홍류폭포쪽 왼쪽길을 택했다. 남은 8봉을 완등할 체력을 검증하고 싶었다. 홍류폭포로 가는길 초입에 조그만 목교(木橋)에서 혼동을 일으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쉼터정자쪽 산길을 택했다. 희미한 길은 가팔랐고 험하였다. 그래도 올랐다. 주등산로가 아닌 줄 뒤늦게 알았지만 이 길도 어느 곳에서 원길과 합류되거나 아니면 정상으로 이어지리라 믿고 올랐다. 갈수록 길은 험해갔고 위험한 구간도 나타났다.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정상으로 연결된 길인지도 의심되었다.
산길도 인생의 길도 선택의 중요함을 다시 깨달았다. 우연히 선택한 길, 남의 의해서 선택된 길, 확신없이 선택한 길-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길- 이미 선택된 그 길은 꿋꿋이 가야만 하리라. 자신의 길- 운명의 길이라-
1시간을 훨씬 넘게 오르고 오르니 드디어 왼쪽 저 멀리에서 칼바위능선이 검게 나타났다. 들머리에서 왼쪽 하늘에 가물가물 보이던 그 능선이다. 검고 날카로운 능선은 하늘로 치솟으며 산 정상을 향해 뻗어 있었다. 정상은 아직 보이지 않았으나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보니 웰컴센터와 시가지가 가물가물하였다. 그 아름다운 홍류폭포를 놓친 것이 억울하였다. 내 언젠가 다시 보러 오고야 말리라! 2시간을 넘겨 오르고 오르니 드디어 신불산 정상에 도착했다.
아~ ! 신불산! 수년만에 맞이하는 신불산 정상-! 태백산맥 여맥에 우뚝선 산-! 신령이 불도를 닦는 산! 간월산 영축산과 형제를 이루며 낙동강의 지류인 단장천,남천을 발원하는 산- 수만평의 억새평원과 아름다운 홍류푝포를 거느린 산- 신불산!
정상석은 위엄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작아졌지만 감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컷다. 등산길을 잘못선택한 길맹의 수치스러움과 숨가품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 내방산맥 줄기에 위치한 신불산은 영남알프스 9산중 가지산 다음으로 높은 1,241m이다. 산림청과 블랙야크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에 당당히 들어있다. 신불산공룡능선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전국 최대의 억새평원, 간월재를 중심으로한 드넓은 억새밭과 바위절벽, 작괘천계곡과 파래소폭포등은 전국 어느 곳과 겨누어도 손색이 없다. 신불산 정상은 봄 햇살이 가득차 있었고 둥근 돌탑은 수많은 산객들의 소원을 간직하고 있었다. 멀리 육중한 산허리는 등성이를 받치고 산맥은 준봉과 준봉들을 싣고 달리고 있었다.
신불산(神佛山) 산맥은 구름바다를 향해 파도치고 (山脈波雲海) 인간세상은 아득히 보이네 (莫莫見世上) 바람과 구름은 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風雲去不返) 신불산은 세월에 변하지 않네 (神佛山不變)
마주보는 간월산(1,069.1m) 신불산 정상에서 간월재로 가는 길의 전망대까지는 평탄하였다. 땀은 식어갔고 숨가뿜이 없는 평온한 길이었다. 욕심이 없는 세상위의 길-평화로운 길-하늘길이었다. 길의 사방은 산맥과 산맥, 하늘과 구름뿐이었다. 봄 햇살에 조금은 더웠지만 눈과 마음은 시원하였다. 저 멀리 간월산 줄기가 봄빛에 일렁거렸다.
간월재로 내려가는 아랫막길은 넓었지만 험했다. 나무계단과 안전가이드목이 낡고 제자리를 벗어난 곳이 많았다. 일 년에 수만 명이 오르내리니 성할 수가 있겠으랴- 간월재에서 간월산 정상은 25분이 소요된다고 이정표가 알려 주어 만만하게 보았다. 그러나 오늘 산길을 잘못 선택해 헛힘을 너무 쓴 탓에 초입부터 힘들었다. 봄 햇살에 눈도 부셨고 목도 말랐다. 오르막 경사 계단에서는 전진이 되지 않았다. 10분여를 뛰뚱뛰뚱 스팈에 온 몸을 의지해 폼없이 오르니 규화목(硅化木) 생성지가 나왔다.
지구 중생대에 나무가 화석(硅化木)이 되었다 하니 지구 탄생과 한반도 발전 과정에 호기심이 생겼다. 산중턱에 있는 자연사 유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해설판은 햇빛에 반사되었다. 험한 바위길과 돌길을 가려 오르니 드디어 간월산 정상이 나타났다.
간월산! 간월산(肝月山) 정상! 북쪽으로는 가지산, 서쪽으로는 재약산과 닿아 있었고 남쪽으로는 신불산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십 여년 전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으나 반가웠다. 정상석은 봄햇살을 반사하였고 저 멀리 파래소폭포로 이어진 임도가 하얗게 산허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간월재에서 웰컴센터로 내려오는 임도길은 넓었지만 경사와 급커브의 연속이었다. 길은 멀어 지루하였지만 내려올수록 봄은 더 짙어져 갔고 산새들은 짝 찿기에 시끄러웠다. 작괘천계곡 물소리도 더욱 소리내었다. 하산지점이 다와 가니 기운은 회복되고 기분도 최고조였다.
나홀로 산행- 나홀로 산행의 즐거움- 홀로 산행한자만이 알 수 있으리라- 나홀로의 생각, 코스선택의 자유, 나홀로의 시간- 모두가 나홀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마지막 도전 문복산(1,014.8m)
-기다림에 열정은 더해 가고-
5월 1일로 8산을 완등하고 문복산만 남았다. 산행금지 해제일인 5월 16일을 손꼽아 기다리니 완등에 대한 열정은 더해져 갔다. 드디어 그 날이 당도하였다.
대현3리 코스를 울주군에서 만류함에 운문령코스를 택했다 꼭두새벽에 출발하여 아침 6시 10분 운문령에 도착하니 벌써 도로에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10대 정도의 간이 주차장은 물론 만원이었고 도로 양쪽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이 100m가 넘을 성 싶었다. 모두가 문복산 등산객들이었고 모두가 영남알프스 9봉 완등 도전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문복산만을 남겨둔 그들은 오직 완등만을 생각해 왔고 시간을 의식치 않고 앞 다투어 도착해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등산로 초입은 한적했으나 산길을 오르니 도전자들이 띄엄띄엄 나타났다. 따라붙는 산객들을 양보하니 얼마 뒤 또 다른 산객들이 따라붙었다. 길은 평탄하여 걷기에 좋았다. 30여분을 걸으니 신원봉 오르막이 나타났다. 육산의 오르막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10여분을 헉헉거리니 신원봉 표지석이 낙동정맥 표지석과 함께 나타났다. 신원봉에는 찬란한 5월의 햇빛이 가득 쌓여있었다. 두팀의 도전참가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원봉에서 학대봉으로 이어진 길은 또 부드러운 능선길이었다. 나무잎들은 햇빛에 찬란하였고 산길에는 5월의 싱그러운 공기가 가득차 있었다.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졌고 기운도 났다. 봄날의 평온한 산길을 마음껏 누렸다. 한 참을 가니 학대산 오르막 계단이 보였다. 계단구간이라 산객들이 차례를 기다렸다.
젊은이들은 힘차게 계단을 소리내며 올랐다. 나와 중년을 지난 여성 산객들은 그들에게 길을 양보하였다. 계단은 계속 이어졌었고 헉헉거리는 만큼 전진이 되지않았다. 계단은 싫었지만 계단공사를 한 사람들의 흘린 땀과 고생을 생각하니 힘 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속도를 조절하고 숨도 고르며 오르고 오르니 학대산 표지목이 나왔다. 능선에 진입하니 길은 평탄하여 계단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전망 바위가 나타났다. 5월의 태양은 온 산맥과 계곡에 봄빛을 쏟아 붓고 있었고 산아래 가물가물한 길과 지붕들은 햇빛에 반짝이며 인간의 세상임을 알리고 있었다. 준봉으로 힘차게 뻗어 올라간 등성들은 힘이 넘쳤다. 5월의 햇빛은 찬란하였고 하늘은 높고 파랬다.
시야의 끝 지점에 문복산이 가물거렸다. 태백산맥의 여맥인 중앙산맥에 속해 있는 문복산- 문복이라는 노인이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았다 하나, 그 곳이 어느 쪽 계곡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상으로 이어진 길은 험한 바위길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정강이가 위험스러워 조심하며 속도를 줄였다. 5월의 태양은 점점 온기를 더 하였고 산길은 햇빛이 가득 채워졌다. 지난 가을의 낙엽이 아직 제 자리를 찿지 못하고 산길에 딩굴고 있었다. 정상은 가까워지고 있으나 오르막이 또 나타났다. 코끼리바위는 보이지 않았고 하얀 바위가 나타났다. 그 바위를 오르니 정상과 높이가 같은 능선길이 나왔고 이정표는 정상이 180m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어 헬기장을 지나니 이내 긴 줄이 길을 막고 있었다.
모두가 영남알프스 9봉 도전자들이었다. 정상인증샷 줄은 150m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이제껏 산 정상에서 이렇게 많은 산객들을 보지 못했다. 순간 마음이 벙벙하였고 차례가 막막하였다.
긴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반대쪽 코스로 온 산객들은 길고 긴 줄에 혀를 내 두루며 꽁지로 갔다. 길이 음지라 땀이 식으니 추웠다. 햇 빛있는 부분까지라도 빨리 가고 싶었지만 줄은 꿈적도 안했다. 50여분을 참고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정상석 주변은 산객들로 시끄러웠고 북적였다. 인내심이 없는 인증객들은 정상 주변에서 인증샷을 눌러 댔다 앞에 젊은 남성도 혼자라 인증샷을 상조(相助)하기로 하였다.
사진을 촬영하였으나 등록이 되지 않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안한 순간이었다. 재 촬영은 불가능하였다. 줄선 사람들이 허용하지 않을 기세였다. 수 분의 시간이 지나니 응답이 왔다.
드디어 인증에 성공하였다. 하나 남은 문복산 빈칸이 채워졌다. 영남알프스 9산 완등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아-! 아무나 할 수 없는 도전! “영남알프스 9봉“ 도전 성공! 자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 동안의 불안했던 마음, 힘들었던 구간, 위험했던 순간, 새벽 고속도로 운전. 이제야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문복산(文福山) 푸른 하늘에 우뚝 서 있는 문복산 봉우리 (靑天屹立文福峰) 기개 수 만년 이어 왔네 (氣槪連來數萬年) 봄은 매년 오고 산은 봄을 매년 맞이 하는대 (春來每年山迎春) 인생은 한 번가면 돌아오지 않는 구려 (人生一去不返來)
멋진 프로젝트를 기획한 울주군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끝)
2022. 5. 17 우 진 권(1948.05.01) 대구광역시 북구 작원길 25 대백인터빌 103동 1207 (우 41482) 010-3495-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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