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는 바다 건너 외딴섬에 나락처럼 떨어져 있는 자신을 위해 머나먼 청나라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추사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것이다. 추사는《세한도》에서‘권세와 이익을 위해 모인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성글어진다’는 사마천의 말과‘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을 들어‘성인께서 특별히 소나무와 잣나무를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라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이상적이 시속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리를 갖고 있음을 칭찬하였다.
“고맙네! 우선, 이 《세한도》를 보게나(藕船是賞)”이상적은 이 작품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며 추사에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나 이익을 좇지 않고 스스로 초연히 세상의 풍조에서 벗어났겠습니까?
다만 보잘것없는 제 마음을 스스로 그칠 수 없어 그런 것입니다’라는 편지를 올렸다.
그리고 작품 오른쪽 귀퉁이에 ‘길이 스승님의 가르침과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장무상망> 인장을 찍어 스승을 향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남겼다.
또한 그는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지고 가 그곳 문인 16인의 글을 받아 스승의 뜻을 기렸다.
이 인장에 쓰인 <長毋相忘>은 한나라때 동경(銅鏡)에 보이는 「장무상망」「장상사 무상망(長相思 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잊지 않다)」
「불구상견 장무상망(久不相見 長毋相忘, 오랫동안 서로 보지 않아도 길이 잊지 않다)」
「견일지광 장무상망(見日之光 長毋相忘, 떠오르는 햇빛처럼 길이 서로 잊지 않다)」 등의 글귀와 감천궁(甘泉宮)에서 출토된 「장무상망」이 새겨진 기와에서 빌어온 것으로
인장의 형태를 네모나게 하고 자법(字法)을 반듯하게 바꾼 것이다.
여기서 毋(무)자는 ‘없다’ ‘말다’라는 뜻으로 無자와 통하는 글자이다.
이 인장은 추사는 물론이며 추사의 스승인 담계 옹방강(覃谿 翁方綱, 1733-1818)과
추사와 동갑내기인 아들 성원 옹수곤(星原 翁樹崑, 1786-1815)에게도 같은 글귀의 인장이 있다.
또 추사의 평생지기인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1859)과 추사 학예파의 형당 유재소(蘅堂 劉在韶, 1829-1911), 역매 오경석(亦梅 吳慶錫, 1831-1879) 등도 이 글귀의 인장을 즐겨 사용했다. 헌종이 소장한 인장을 모은『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에도 비슷한 인장이 많이 실려 있다.
이상적이 청나라 문인들이 《세한도》에 남긴 글을 낱장으로 베껴 놓은 둘째 장과 셋째 장 그리고 송나라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의 사(詞) 「축영대근(祝英臺近)」을
낱장으로 쓴 둘째 장과 셋째 장을 잇는 부분에도 같은 인장을 찍었다.
《세한도》속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장무상망>의 붉은 색 네 글자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도리는 무엇이며 또 세속 권력이나 이익과는 무관하게 몸과 마음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듯한 인장이다.
“우선! 이런 일은 세상에 언제나 있는 일이 아닐세”(《세한도》의 추사글)
“아닙니다. 스승님! 이 모든 것은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으므로
저절로 맑고 깨끗한 곳에 계신 분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이 그림과 글을 본 사람들이 제가 정말로 속된 세계에서 벗어나 권세와 이익의 밖에서 초연하다고 생각할까 두려울 뿐입니다.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치 않은 일일 뿐입니다.”(이상적이 추사에게 올린 편지글에서)
‘장무상망’은 이처럼 스승 추사 김정희와 우선 이상적의 변치 않는 의리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장이다. |
첫댓글 長毋相忘참 좋은 문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