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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우수 작품상 (시)
양 순 승
폐차장 가는 길
고삐에 단단히 묶인 소나타가 마지막 걸음을 위해 길 위에 둥글게 발을 내려놓는다 가능한한 길바닥과 더 밀착되어야 한다는 듯 마모된 걸음이 긴장한다 낡은 몸 뒤쪽으로 그림자 힘없이 따라 붙는다
녹색 신호등은 언제나 초록 수액이었지 직진의 주행거리가 마치 생의 승리인 양 의기양양 했었지 그러나 평생 야성을 잠재우고 길에 순종했으므로 수없는 고갯길을 넘을 수 있었지
마주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 빛날 때 순간순간 죽음이 뇌리를 스쳤지 내가 어두울 때 상대는 빛난다는 것 아니 상대가 빛날 때 내가 어두움을 인식한다는 것 생이란 언제나 상대적이지
빨간 신호등에 잡혀 생이 지체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좌회전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허공에 꽂힐 때 뒤 따라오던 그림자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편다 죽음으로 가는 속도는 생명의 속도보다 빠르다
폐차장에 마중 나온 벚꽃이 걸음을 멈춘 차 위로 산화하듯 꽃잎을 뿌린다 마모된 발등에 지린 오줌에도 환하게 4월이 내려 앉는다
허물 벗어나기
미루나무에 달라붙어 어느새 나무와 한 몸이 되어 있는 허물
매미는 안 보이고 소리 안 들려도 있는 듯 품고 있는 허물
몰래 입어봤던 시루스원피스를 벗으면서 과욕으로 살찐 몸 들키지 않게 나는 슬쩍 허물을 빠져나왔는데
빠져나온 내 몸이 갑자기 두려워지고 또 다른 가지에 앉는 것도 두려워지고 이미 풍경이 된 허물을 그냥 풍경으로 두는 것도 두려워지고
그래서 허물을 빠져나온 나는 다시 허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남의 집 방충망도 두드려보고 가끔 내 무게에 못 이겨 추락도 하였다
나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허물은 나대신 악착 같이 가지를 물고 서서히 풍경이 되어 가는데
나는 다른 가지에서 풍경이 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절이 가도록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나를 향해 빵빵하게 팽창되어가는 저 허물
다시 강을 건넌다
가출처럼 떠나온 여행길 진천 농다리*를 만났다
지네가 강물을 헤엄치는 모양의 다리는 돌들이 만든 것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강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똘똘 뭉쳐진 돌들 하나 같이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기역자 모양 돌은 네모 돌을 품고 세모는 마름모에 기대고 있다 둥글넓적한 것은 더 작고 모난 것들을 옆구리에 끼우고 길쭉하니 반듯한 돌은 제 등을 선뜻 내어 놓았다
삐죽거리는 돌멩이 하나 발끝에 차인다 네모에도 세모에도 곁을 내주지 못하는 독선 제 성질 못 이겨 튕겨져 나왔나 보다
뾰로통 돌아앉은 돌멩이 주워 강물에 씻는다 모난 곳 살살 토닥여 제자리에 끼운다
나도, 다리 위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던 인생 다독여 유연하게 다시 강을 건넌다
*진천 백곡천에 있는 다리로 제각각인 돌들을 다듬지 않고 정교하게 쌓아 만든 지네 모양의 돌다리. 양순승의「폐차장 가는 길」은 삶과 죽음의 감각이 사실적 이미지 속에 번득인다. ‘마주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 빛날 때/순간순간 죽음이 뇌리를 쓰쳤지’라는 구절은 시적 긴장감과 함께 현대 도시인들의 삶의 위기를 드러내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허물 벗어나기」는 매미가 나뭇가지 벗어놓은 허물이 시인자신의 삶의 허물로 전환되어 독자들에게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자꾸만 나를 향해 빵빵하게 팽창되어 가는/저 허물’에서는 허물이 단순한 자연현상의 실재에 머물지 않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 사유가 자신의 존재의 문제에까지 다가가고 있는 듯하여 주목되었다.「다시 강을 건넌다」는 강변의 돌들의 여러 형태를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여 서로 기대고 끼어서 사는 삶의 본래적인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시각은 차이들이 서로 평등하게 얽혀서 사는 생태계의 한 모습의 직관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었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과 문제제기의 사유가 그의 시적성취를 크게 기대하게 하였다. 2017년 1월 6일 심사위원: 김규화, 신규호, 심상운(글) 양순승 약력 / 2017년 2월호 시문학 등단 구로문화원 손옥자시밭가꾸기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