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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이 주인된 교회를 꿈꾸며 원문보기 글쓴이: 죠슈아
월요일, 25 유월 2007 | |
주후 1세기에 등장했던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들은 사도들이 세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사도들을 탄생시켰으며, 이 세상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선교사적 사도들을 일으켰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성도들이 세운 안디옥 교회가 바로 그 예입니다. 이 작은 교회가 전세계를 위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작은 교회 하나를 들어서 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놀랍게 역사하실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주로 예루살렘에 머물러있었던 초기 열두사도와는 다르게, 안디옥 교회에서 길러낸 사도들은 최우선 목표를 선교지에 두고 교회 밖으로 나갔습니다. 안디옥의 선교적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열두사도들은 그저 불신자들이 교회로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이시대 일하시는 주님의 목적 최일선에 머무르기 원한다면, 이런 패턴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은 주로 전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사역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만약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과 같았다면, 그들은 아마도 안디옥 교회에서 생긴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 사도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훨씬 성숙하고 지혜로웠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안디옥에서 발전한 그 방식에 마음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재빨리 받아들이고, 안디옥 교회를 돕기 위해 사역자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열두사도와 장로들은 안디옥 교회의 사역이 예루살렘 교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역을 통해 얻어진 또 다른 종류의 열매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의 새로운 사역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예루살렘 사도들이 길러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사역은 어쩌면 즉흥적이고 예루살렘교회가 조정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 지도자들의 건강한 영적 성숙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이와 같은 초대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성숙이 바로 초대교회의 가장 강력한 능력을 길러낸 전략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 능력은 한 교회가 씨앗을 뿌리고, 또 다른 교회가 뒤따르며 물을 주고, 이를 통해 교회안에 연합된 놀라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입니다.
벌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며 수정시켜서 열매 맺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순회 사역자들은 여러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한 교회의 좋은 점들을 배우고 또 다른 교회에 그 장점을 전파합니다. 이런 전략은 1700년대 초기 모라비안 형제들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어서 존 휘슬러나 조지 휫필드 등을 통해 계속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개혁 이후 엄청난 영적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
이러한 전략은 20세기 후반 이후 오순절 교회와 카리스마틱 교회가 잘 적용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많은 사역들이 일어났고, 역사상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현대에도 이러한 사도들이 계십니다. 순회사역자 들 중에 얼스킨 홀트라는 분이 있습니다. 1년에 300일 이상을 계속 여행하면서 작은 교회나 가정 모임을 방문하는 얼스킨은 한곳에서 이틀 이상 머무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에 놀라운 생명력과 비전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스킨과 여행을 하면서 가까이 관찰할 기회가 몇번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동시에 매우 훌륭한 학생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항상 배울 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방문하는 교회에 그 장점을 전수하였습니다. 이분이 노트를 가지고 설교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현재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진부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항상 신선한 만나와 같았으며, 흥미롭고 참신했습니다. 또한 항상 예수님께 포인트를 두고 있었습니다.
얼스킨의 사역에는 아주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마다 그는 항상 훈련받는 제자를 여행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존 햄릭과 같이 그와 동행했던 제자들 역시 방문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존은 아마도 우리 모닝스타 사역 초기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MFM리트릿 사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모닝스타에서 카운셀러와 멘토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일어난 모닝스타의 여러 사역과 선교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사도 중에 밥 와이너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 역시 한 곳에서 며칠씩만 머무르면서 새로운 생명과 비전을 주님의 몸된 교회 전체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밥은 마라나타 캠퍼스 사역단체를 세워서, 많은 크리스찬과 리더를 양육하였고, 이들을 통해 여러 신앙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후에 주님께서 마라나타 사역을 흩으시고 밥의 사역을 단순하게 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1년간 안식년을 보냈습니다. 안식년 후에는 매우 강력한 교회나 신앙운동을 직접 일으키거나 혹은 교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여 계속 성장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밥의 사역기관은 기본적으로 돕는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처럼 조그만 조직이 그렇게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밥에게 넘치는 에너지가 있지만, 이 사역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얼스킨이나 존, 밥과 같은 많은 사도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꼭 필요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다른 무리와 섞이지 않고 한 무리에서만 교배를 한다면, 그 양떼는 점점 약해질 것입니다. 교회나 신앙운동도 마찬가지로 다른 교회나 신앙운동과 교류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점점 약해지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과 소유욕이 강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반드시 점점 약화되고 결국에는 사라지거나 조직이 와해될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는 자는 잃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는 예입니다.
영적인 이스라엘의 청사진 혹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교회, 즉 모든 성도는 1년에 세차례씩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를 통해 사람들간에 많은 교류가 일어났습니다. 다른 종족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 공통의 국가적인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지난 수십년간 다양한 교회가 컨퍼런스 등을 통해 서로 교류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들이 배우고 더 강력해졌으며, 주님의 몸에 대한 전체 비전을 많은 성도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건강한 크리스찬을 배출하는 가장 건강한 교회는 항상 개교회나 신앙모임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강화해 나가면서 동시에 주님의 몸 전체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또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 여행의 자유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와 생각의 무한한 교류 덕분에, 소유욕이 강하거나 두려움이 쌓인 목사님이나 교회 지도자가 성도들을 자기 울타리 안에 고립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교류가 없는 교회는 점점 말라가게 될 것이고, 반대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만큼 성숙한 자들은 더욱 자라가고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교회 모습입니다.
이번 주에는 건강한 교회 생활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나누고 싶어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교회가 그 부르심에 따라 이 세상 가운데 강력하게 드러나지 못하면 전혀 열매 없는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교회 비전 없이 왕국비전을 갖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국에 대한 비전 없이 교회에 대한 비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복음의 정수를 놓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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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27 유월 2007 | |
교회의 참된 힘은 목사님이나 설교가의 탁월성이 아니라 성도들의 강건함에 있습니다. 현대 교회의 심각한 취약점 중 하나는 바로 성도들이 구비되지 못하였고, 에베소서 4장 말씀에 나온 여러 사역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성취하면 가장 강력한 교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16절 말씀은 교회 사역의 참된 목적과 그 결실에 대해 가장 간결하고 정확하게 명시한 구절입니다. 먼저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교회의 사역이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 세우는데 관심이 분산되기 쉽다는 것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역이 초대교회의 그것과 같이 되려면, 사역을 감당할 사람을 먼저 구비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과 같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일치된 신앙
그 뒤에 아래와 같이 성숙하고 강력한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1. 더 이상 어리거나 미성숙하지 않고, 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온갖 계획과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에 우리 자신과 성도들의 온 힘을 쏟아 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주님의 몸을 세워가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과연 실제적으로 성도들을 구비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람을 구비시키는 것은 전체 과정의 네번째 단계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이 말은 앞에 세 단계는 이미 잘 완성되었다는 것이고, 마지막 한 단계만 완성하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각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Mobilizing 동원 많은 교회들이 아직 1단계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성도 교육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실제 훈련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훈련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만약 항공기조정사 교관이라면, 저는 훈련생들이 실제 비행기를 타고 훈련 받기 전에 강의를 통해 비행 중에 할 일을 충분히 숙지시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사역자로 세우기 전에 충분히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육 후에는 반드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 바로 교회의 진정한 리더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지도자라면 주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따를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교육 후에는 반드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이유입니다. 주님은 가르치신 바를 제자들에게 항상 몸소 보이셨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마치면 이제 구비시킬 단계입니다. 비행기 조정 훈련생들은 이제 겨우 배운 지식을 제 앞에서 검증한 정도입니다. 모의비행을 통해 실제 비행기 조정 능력을 확인하고 나서야 단독으로 비행기를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전체 비행 훈련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아주 훌륭하고 칭찬받을만한 수준에 이른 것이지만, 능숙한 파일럿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 ‘단독 비행’은 누가복음 10장에서 주님께서 그 제자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게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매우 고무되었을 것이고, 또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신 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됩니까? 하지만 실제 그분의 일에 쓰임을 받을 때 느끼는 감격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주님께 쓰임 받는 것이 훨씬 더 큰 기쁨일 것입니다. 놀라운 주님의 기적을 계속 일으키는 사역자는 많은 이들을 격려하고, 또 많은 이들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헌신했을 때 얻는 격려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무게나 갈급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국에는 스스로 헌신하여 주님의 일에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두었을 때 엉망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리-지도자들의 두려움입니다. 성도들이 실수할 것이라는 우리의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사역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실수투성이인 베드로에게 많은 권세를 위임하지 않으셨습니까? 세계적인 음악가 한분이 제게 말해주기를, 라이브 앨범이 실제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실수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실수를 통해 연주에 생명이 더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나 사역이 어떤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 아무 생명도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은 실수한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일 것입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의인도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의인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인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교회 리더로서, 성도들이 아직 사역을 하기에는 미숙하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께서 70인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게 하셨던 누가복음 10장 말씀을 다시 잘 생각해보세요. 이 제자들이 주님께 와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것은 오히려 그 뒤인 11장에 나타납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서 엄청난 사역을 하라고 명하셨고, 제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기도조차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가장 성공적이었던 최고의 사역자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 사역하면 예수님과 같이 성공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사역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에 하나는 가장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 제자가 되게 하셨고, 제자들이 기도를 배우기도 전에 사역을 맡기셨으며, 스스로의 경험과 실패를 통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복음의 용사들로 이들을 빚어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시대의 교회가 주님께서 하셨던 방법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세운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이 세상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ANi선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