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앞은 신흥동 위 921m봉 능선, 뒤 멀리는 가마소 위 1,081m봉
보라, 굽이치면서 높이 솟아오른 저 산들을.
붉은 태양이 산등성이 위로 떠올라 아침을 탄생시키면,
하얀 안개 시트는 산의 무릎을 휘감고
산의 손가락인 나무들을 스쳐가는 바람은
하늘에다 대고 산의 등을 긁어주네.
---포리스트 카터,「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The Education Of Little Tree)」
※ 역자인 조경숙이 셋째 줄 이하 ‘그녀’라고 한 것을 ‘산’으로 바꾸었음
▶ 산행일시 : 2010년 2월 26일(토), 포근한 날씨, 황사가 낀듯 먼데는 약간 뿌옜음
▶ 산행인원 : 26명(영희언니, 메모리, 류영자, 배대인, 벽산, 산오름, 솔개, 쥐약, 드류, 김전무+2,
감악산, 더산, 대간거사, 박성룡, 산정무한, 메아리, 산울림, 베리아, 해마, 산소리,
하늘재, 만경대, 가은, 대장 상고대)
▶ 산행시간 : 8시간 10분(휴식, 점심시간 모두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15.4㎞
▶ 교 통 편 : 25승 버스와 봉고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5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9 : 00 - 홍천군 내면 방내리(坊內里) 엄수교 가기 전, 산행시작
09 : 26 - 762m봉
09 : 47 - △789.6m봉
10 : 52 - 955m봉
11 : 09 - Y자 능선 분기봉, 941m봉
11 : 39 - △885.1m봉
12 : 06 ~ 12 : 51 - 율전1교, 점심식사(45분 소요)
13 : 39 - 844m봉
14 : 08 - △878.7m봉
14 : 23 - ┼자 갈림길 안부
14 : 47 - 921m봉
15 : 45 - 1,045m봉
15 : 56 - △1,064.5m봉
16 : 25 - △992.1m봉
17 : 10 - 홍천군 내면 창촌리(蒼村里) 노양동(魯陽洞), 산행종료
22 : 1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762m봉 ~ 율전1교
아, 그리운 날 그날은 흔적 없이 어디로 가버렸나,
아, 그 세월 구름 따라 흘러서 가버렸나.
우리 시대 가인인 이미자가 독백하듯 노래한 ‘세월’의 한 구절이다. 평문으로는 별맛 없지만 곡조
로는 느낀 우수(憂愁) 가득한 절창이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지난날을 사무치게 그리게 한다. 아마
자고나면 오늘이 틀림없이 그러할 것 같다.
산행코스가 매력적이어서 일게다. 도상 15㎞. 이름 붙은 산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표고점 또는 삼각
점만의 14개 산봉우리인데 26명이나 모였다. 거의 다 그랬을 것이다. 춘천에서는 새벽 4시부터 서
둘렀고(산오름 님과 쥐약 님), 부산에서는 어제 미리 왔다(드류). 25인승 버스와 봉고차에 분승한
다. 버스가 모처럼 묵직하니 달린다.
솔개 님 텃밭이 있다는 하뱃재 넘고 방내천 따라 구불구불 31번 국도를 내려간다. 차창 밖으로 내
다보는 산기슭은 엊그제 내린 비로 어디고간에 눈이 다 녹아버렸다. 퍽 아쉬운 대목이다. 엄수교
위 ×636m봉은 산행로 선 그을 때 버림받을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버려두자는 주장은 무성해도
오르자는 주장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762m봉 아래에서 멈춘다. 능선 상으로는 636m봉 내리고 낮은 산등성이 넘어서 ┼자 갈림길 안부
를 지난다. 산행채비는 차안에서 틈틈이 마쳤던 터 우르르 내리자마자 산기슭 덤불숲 피해 빈 밭으
로 들어간다. 얼었던 겉흙이 녹아 진창이거니와 발에 힘주기가 무섭게 주르륵 미끄러진다.
아무 지능선을 붙들어도 762m봉으로 수렴한다. 대부대가 산개하여 고지 점령하려는 듯 산사면 오
르는 광경이 볼만하다. 밭두렁 위 길게 두른 고랑이 깊다. 자칫 빠지기라도 하면 헤어 나오기 무척
애먹겠다. 기합소리 내어 간신히 건너 산자락에 닿는다. 도로에서 올려다보는 사면은 홀리려고 펑
퍼짐하였나보다. 된비알이다. 공제선은 ‘나 잡아 봐~라’ 하고 자꾸 뒤로 물러난다.
주능선에 들어도 인적 없기로는 여전하고 외려 잡목 숲이 극성이다. 드세기 짝이 없는 철쭉 숲이
다. 낙엽 밑 얼음장 건드렸다가 미끌미끌한 헛힘 쏟는다. 어느 메였던가. 오른쪽 골짜기 건너 능선,
삼리창말에서 응봉산에 이르는 능선이 장관이다. 상고대 눈꽃이 만발하였다. 카메라 앵글 들이밀
잡목 숲 트일 데가 있을까하고 연신 기웃하며 잰 걸음 하는 사이 762m봉을 넘는다.
살짝 내렸다가 길게 오른다. 잡목 숲 서슬에 고개 숙이거나, 양팔로 젖히기 버거워 자주 마루금 벗
어나서 사면으로 질러간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에게 대단히 미안하다. 도시 보여줄 게 없다. 적
설은 하필 엊그제 비가 훼방했고, 전후좌우 조망 없고, 암릉이거나 슬랩 손맛 볼 데 없고, 그저 잡
목 숲에 휘둘리기 예사다.
맹현봉 아득한 △789.6m봉이다. 삼각점은 현리 451, 1985 복구. 햇살 꾸준하여 건너 능선의 눈꽃
이 눈에 띄게 시들자 미련 홀가분히 떨치고 발걸음 늦춘다. 955m봉 오르는 길은 북사면. 드문드문
눈길이 오히려 덜 미끄럽다. 고개 들면 나뭇가지마다 상고대 눈꽃 흔적인 물방울이 역광으로 눈부
시다. 등로 주변 거목의 신갈나무와 그 가지에 둥지 튼 겨우살이 무리는 이곳이 오지심산임을 암시
한다.
Y자 능선 분기봉인 941m봉. 오른쪽 건너 능선은 하뱃재에서 응봉산을 향하는 영춘기맥이다. 우리
는 왼쪽 능선을 향한다. 소나무는 남겨두고 피나게 벌목한 사면을 오르면 △885.1m봉(삼각점, 현
리 454, 2005 복구)이다. 울창한 숲 한참 헤치다가 산기슭 철조망 두른 사면에서 왼쪽으로 비스듬
히 돌아내리니 율전1교다.
3. 오른쪽 건너 능선 응봉산 주변
4. 오른쪽 건너 능선
5. 멀리는 맹현봉 주변
6. 955m봉 오르는 길, 상고대가 녹아 물기가 번들거린다.
7. 멀리는 맹현봉
8. 941m봉
▶ △1,064.5m봉
점심자리로는 두어 가구 민가 옆 비닐하우스가 안성맞춤인데 개 3마리가 돌아다니며 하도 짖어대
는 통에 그리로는 다가가지 못하고 도로 옆 난데에다 자리 편다. 마치 원족 온 기분난다. 정월대보
름 오곡밥에다 갖은 나물반찬은 디폴트. 끓이고 볶는다. 미취(微醉)로 족할 일. 이런 때 기분 편승
하여 미주가효라고 청탁 불문하다가는 대취하여 후사를 그르치기 십상이라 삼가고 또 삼간다.
양껏 부른 배 어르며 율전1교 건너 사면을 향한다. 산기슭 도는 임도를 거들떠보지 않고 덤불숲으
로 들어간다. 수종(樹種) 구조 조정하려는지 간벌하였으되 엄나무와 두릅나무만은 남겨두었다. 엉
겁결에 그 날선 가시 움켜쥐었다가 속속들이 따끔하여 알아챈다. 더구나 발목 잡는 것은 질긴 가시
덤불이다. 이런 산행으로 쾌감을 느낀다면 마조히즘적 산행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으리라. 우
리 산행은 그 점에서는 미필적 고의가 하한일 것.
700m봉 넘는 것이 뜻밖의 고역이다. 안부에서 얌전히 돌아오는 임도를 보니 온몸 사방이 더욱 따
끔히 쑤신다. 길 좋이 다듬어 놓은 것은 잠시. 무덤 두 군데 지나자 등로는 다시 헝클어진다. 도드
라진 산등성이도 아닌데 ┼자 방위표시만 새긴 삼각점을 본다. 설마 844m봉에 올려다놓기 싫어 그
랬을라고.
후끈 달아 844m봉을 오른다. 덥다. 더산 님이 얼려온 밀키스가 알맞게 시원하다. 그 병입은 영자
입술인양 달콤하여 너도나도 다투어 입 댄다. 홑 반팔 셔츠차림 한다. 북사면 내릴 때는 늦겨울이
지만 남사면 내릴 때는 확실히 봄날이다.
뚝 떨어졌다가 바짝 오른다. 일송정 근처. 푸른 솔을 못 찾겠다. △878.7m봉 삼각점은 ┼자 방위표
시만 보인다.
봉봉 굴곡이 심하다. 엉덩방아 찧으며 ┼자 갈림길 안부. 오르는 등로 능선을 중심선으로 왼쪽은
특수작물재배지로 장뇌삼, 산더덕, 산약초, 조경수 심었다고 철조망을 3중으로 쳤다. 921m봉 오를
때까지는 느긋했다.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이 그나마 길 흔적 보여 그리로 잘못 들기 쉽다.
곡(哭)소리 난다. 명색이 조림한 자작나무 숲인데 잡목과 가시덤불이 완전 장악했다. 눈 딱 감고 머
리부터 암만 들이밀어도 곧 튕겨져 나온다. 돌다보면 제자리걸음이다. 돌파작전 바꾼다. 납작 엎드
려 긴다. 신흥동 위 지능선 분기봉까지 그런다. 이어 산죽지대가 시작된다. 산죽 숲 등로에는 눈이
모여 있지만 녹아내리는 중이라 아작아작 걷기 좋다.
내게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통통한 참나무를 우아하게 휘감고 올라가는 은선(銀線), 그 끝 나뭇
가지는 별모양 씨앗으로 휘청한다. 언 낙엽 한 잎 한 잎 들추며 그 근원을 살핀다. 수직(垂直)하기
마련. 코 박기 무섭게 청향 발한다. 뇌두 만지는 감촉. 그 아래 손아귀 꽉 찬 느낌. 대물일 터. 짜릿
한 손맛으로 전율한다. 나중에 두고두고 이 순간을 그리며 즐기는 것은 알뜰한 부수(附隨)다. 발걸
음이 한결 가볍다.
푸짐하고 너른 산죽사면을 무찔러 오른다. 1,045m봉은 변곡점. 그 너머부터는 평탄하다.
△1,064.5m봉 정점에 서기 전 개활지로 다가가 하늘금으로 펼쳐진 가리왕산 연릉 감상한다. 잣나
무 숲 지나면 묵밭 같은 벌판이 △1,064.5m봉 정상이다.
9. 봄기운을 느낀다
10. 율전1교로 내리는 도중 벌목 사면
11. 밤밭이 가는 길
12. 밤밭이 가는 길
13. 1,045m봉 사면, 산죽지대
▶ 노양동(魯陽洞)
△1,064.5m봉 정상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후미 기다리겠다는 산울림 님 두고 간다. 혼자다.
선두의 눈길 족적 부지런히 쫓는다. 노양동 내리는 갈림길에서 나 역시 기다리마고 했는데 사방 분
기한 그럴듯한 지능선을 천방지축 쑤셔대다가 갈림길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옛적 기
억으로 문암산 이르는 능선을 더듬어 △992.1m봉을 오른다.
벽산 님이 먼저 와 있다. 점심 이후 그새 반갑다. 일전의 화천 일산 짝 날까. 함께 간다. ┬자 문암산
갈림길을 지나고 줄달음한다. 목장인가 높디높은 철조망이 막아선다. 철조망에 손가락 오지 끼어
붙들며 잡목 울창한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어느 덧 17시가 가까워오고 얼른 내려오라는 전갈이 우
리를 살린다.
양수교가 저 산등성이 바로 아래인데 발걸음 풀어버린다. 내려가자하니 후련하다. 철조망에 그만
매달린다. 하산. 거죽만 녹은 사면이 쉽사리 벗겨진다. 미끄덩하여 바리캉 자국이거나 슬로프 길게
낸다. 계곡으로 내리고 밭두렁 돌무더기 유지하다가 기어코는 진창에 빠진다. 노양동마을. 먼저 내
린 일행과 하이파이브 한다.
14. 가리왕산, 1.064.5m봉에서
15. 가리왕산, 1.064.5m봉에서
16. 992.1m봉
17. 침석봉 주변
18. 문암산
첫댓글 밤밭이 가는 길 사진을 보니 포근한 느낌을 받습니다....26명의 전사들이 산행을 해서 산도 훈훈했나 봅니다...산행기 감사합니다.
드류님의 감칠맛나는 산행기 푹~~빠졌다 갑니다...사진도 글도 모두 명품입니다...같이했던 산행길 되돌아 볼 수 있어 넘 좋습니다..감사합니다...
그 날의 풍경과 발자취를 이토록 선명(鮮明)하게 되살려 주시다니 ... 산과 사물을 바라보며 대하시는 풍요로운 시각에 감탄할 뿐입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제겐 새로운 경험이었고, 여러분과 함께 했기에 더 행복했습니다
┼자 방위표시만 새긴 삼각점을 본다. 설마 844m봉에 올려다놓기 싫어 그랬을라고.==> 삼각점이..그랬을 것 같네여~ 수고하신 산행기 즐감하였습니다..
통통한 참나무를 휘감고 올라오는 은선, 흔들리는모양의 ...잊을 수 없는 손맛이죠
그 와중에도 근사한 그림을 많이 건지셨네요~~별로 조망도 없던데~~ 하기사 온통 시선을 땅으로만 두고 산을 헤맸으니 뭘 봤겠어요. 문암산과 가리왕산, 상고대가 멎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