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진지 한록산 정상 116.1 미터 북한지역 임한리 마을 조망됨
오두산 통일전망대 조망
고려대전 앞 검단산 (송리산 ) 봉화대
한록산漢麓山 :양요당兩樂堂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동지도에 의하면 교하현에서 서측 7리에 한록산(漢麓山)이 있고 그 산에는 1리에 석성 (石城)이 있다고 하여 코로나19 상황속에 사람 만나는 것도 어렵고 한록산 답사에 나섰다. 그러나 어느산이 한록산인지 몰라 검단산 송리봉을 먼저 답사후 한록산을 찾아나서다. 옛 자유로가 개설되기 전 성동리 마을을 민간인 통제선이 있어 사전 예통을 하여야 출입이 용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로 개통후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1992년 개통되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이제는 접근이 용이하다. 교하현감 (1677년 숙종3년) 오시익(吳始益1632 - )을 알아본다.1651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1669년 개령현감, 전 목사를하다 교하현감으로 부임하다. 그의 조부는 오단(吳端)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추진하자, 성균관유생으로서 반대하는 상소를 주도하였다가 성균관에서 축출당하였다.
1639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43년부터 1646년 사이에 정언(正言)·헌납(獻納)·이조좌랑·사간·이조정랑 등을 거듭 역임하였다. 1645년 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164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집의(執義)·부응교(副應敎)·응교 등을 거쳐 1648년 승지에 이르렀다.
이어 황해도와 경기도의 관찰사 등을 지냈다. 1652년(효종 3) 매부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을 집에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을 때의 일을 빌미로 일어난 옥사에 연루되었으나 무고임이 밝혀졌다.
1655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도승지를 거쳐 1657년 이조참판·대사헌, 1659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660년(현종 1) 도승지로서 『효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63년 형조판서·판윤을 거쳐, 1670년 호조판서에 올랐다.
오정일(吳挺一) 아버지는 경기관찰사,이조참판,대사헌을 지낸 오정일 吳挺一 (1610~1670)은 7남을 두었는데 교하현감 오시익(1632~ )은 둘째아들이다.
1600년대 후반 오시익이라는 교하현감이 있었는데 한록산 자락의 경치 좋은 곳에 ‘능허대’를 마련하였고, 그 아들 오상붕이 60년이 지나 낡은 ‘능허대’를 허물고 집을 지어 ‘양요당(兩樂堂)’이라고 이름 자료가 있었다.
조선시대 어느 부자(父子)가 대(代)를 이어 자연경관을 사랑한 이야기도 알게되었다 .
자유로 성동 사거리에서 헤이리마을 앞산을 올라가려하니 공단지역이라 접근이 어려워 옛 군 검문소 앞 가나안 덕 음식점 부근으로 성동리 고개를 넘어 고향식당 쪽으로 해서 가다보니 산 밑에 축사로 사용하던 곳도 있었고 상여독으로 사용하던 폐가 건물도 있었다.
계곡과 능선을 오르다 보니 예전에 군부대 포진지등이 발견되고 정상에는 박격포 진지가 어려곳 있었다 . ( 측량좌표 표식 발견 S-9395 ) 고도를 확인한 결과 높이가 98미터확인함.
성동리 주민들은 이곳을 한록산 주봉으로 알고 있었음. 그러나 큰산이라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다 .한록산은 문헌에 의하면 고도가 117 미터로 나와있어 이봉우리가 아님을 알고 통일동산 전망대 입구 탄현소방소 앞 산을 오르다보니 서어나무 군락지도 찾게되고 무연고 묘소 등 군 시설물도 찾을 수 있었다. 양요당 주변으로 추정되는 곳에 그네가 있어 그네도 타 보았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인 성호 이익 李瀷(1681-1763)선생이 그 절경에 반해 ‘양요당8경’이라는 詩를 남겼다는 이야기도 양요당서에서 알게 되었다. (성호이익은 여주이씨임)
양요당은 그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과 물 ,두가지를 즐길 수 있는 집을 뜻하는 것으로 그 이름은 공자가 말한 지자요수 인자요산 (智者樂水 仁者樂山)에서 유래 했다고 볼수 있다.
교하현에서 서측으로 있는 산중 오두산성과 한록산은 한강 하구의 끝자락에 해당되며 임진강,사천강 물과 만나 삼도품에 이르러 그물이 조강으로 흘러가는 물결을 조망할 수 있기도 하다. 자유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두산성과 한록산 맥을 이루었으나 개발로
자유로와 성동사거리 큰 대로가 개통되었고 한록산은 경관이 아름다워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하는곳이다 . 양요당이 복원됨으로서 파주를 찾는 이들에게
좋은경관에서 즐길날을 기대해 본다 .
동복오씨 가계도 (만가보 참조)
오단(吳端) – 오정일(吳挺一1610-1670)- 오시익(吳始益)- 오상붕(吳尙鵬)- 오명운(吳明運) –오석범(吳錫範) –오영(吳瑛) 오상진 (吳象鎭)– 오운영 (吳雲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