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원근법 이용해 책·사물이 주체가 된 그림으로 구성
피카소 입체파 조형원리와 흡사… 완벽한 공간감 구사
사대부들의 사랑방 풍경을 화폭에 옮기다
정조와 책거리에 관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정조가 신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송나라 학자 이정자(二程子)는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하면 책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흡족해진다’고 했다. 나는 책 읽고 공부할 시간이 없을 때라도 이 책거리 그림을 보면서 즐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책 그림이라도 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책거리가 어떤 그림인가. 책거리란 책과 함께 삶의 공간에 있음직한 물건들을 한판의 놀이처럼 자유롭게 펼쳐놓고 감상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책가도라 불리기도 하는 이 그림은 책을 비롯해 벼루·먹·필통·연적·종이 등 선비가 애용하는 물건이 층층이 쌓여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조선 후기, 특히 정조 때 대유행했다. 학풍을 권장하던 정조는 왕궁의 전속화가를 뽑을 때도 책거리를 시험에 즐겨 출제했는데, 왕의 애정과 관심 덕분인지 당시 양반집 사랑방에는 어김없이 책거리 병풍이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학문을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기를 끈 그림이라고 해서 책이나 문방용품만 그린 것은 아니다. 주로 서책이 쌓여 있는 그림을 선호하던 정조의 열정과는 달리 왕실이나 양반가에서 제작된 책거리에는 화병·향로·찻잔·자명종·공작깃털·담뱃대·시계·안경 등 청나라나 서양에서 수입한 화려한 물건도 자주 등장하는데,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즐기던 상류 계층의 취향 때문이었다. 또한 과일·채소·화조류와 같은 장식물과 살아 있는 동물을 그려 넣어 기복축사·권선징악 등 민화적 상징성을 띠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그림으로 당시 상류사회 사대부의 사랑방 정경이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유교적 사상에 심취해 있던 선비들의 예스러운 취향과 염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양한 시점이 한 화면에 공존
우리에게 책거리는 무척 익숙한 그림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서양의 원근법이나 화법에 길들여진 눈에는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 그림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일관된 시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림들은 대개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이 그려져 있지만, 책거리는 다양한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그려놓았다. 어느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이 동시에 뒤섞여 나타난다고 볼 수 있지만 나름대로 하나의 원리를 갖고 있는데 하나의 물체를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화면 안에 전면(全面)을 동시에 배치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사물을 위에서 본 모습, 왼쪽에서 본 모습, 오른쪽에서 본 모습, 앞에서 본 모습이 한 화면 안에 다 들어 있다. 소실점이 하나 혹은 둘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소실점의 그림인 셈이다.
이렇듯 책거리는 대상을 표현할 때 공간과의 상대적인 비례, 원근감을 따지지 않았다. 즉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관심도에 따라 중요한 것은 크게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작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가까운 것을 크게, 멀리 있는 것을 작게 표현하는 원근법의 원리가 아닌 자신의 관심도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 사고보다는 보이지 않은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민화의 또 다른 특징은 정면성이다. 정면성은 그리기 쉽고 또 이미 알고 있는 부분만을 골라 그리는 방법으로 원시미술이나 아동의 그림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의 그림을 더듬어보면 그들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벽한 전달 방법이었다.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우연한 각도에서 보이는 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림이 전달하여야 할 모든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규칙에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사실 그들의 방법은 화가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지도를 그리는 사람과 방법이 비슷했다. 예를 들면 그릇을 그릴 때 주둥이 부분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동그랗게 그리고 몸체는 직선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방법은 책거리 민화의 과일 그릇에 종종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그릇의 굽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책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책이나 사각함 등의 표현에서 앞면은 작게, 뒷면은 보다 크게 그리는 원근법에 반대되는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일반적으로 역원근법이라 부른다. 이것은 책이나 사물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처리하면서 인간 중심의 시각이 아닌 책, 또는 사물이 주체가 되어 그림을 구성하였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왜 이렇게 그림을 그린 걸까? 그건 사물을 가장 좋은 위치에서 본 모습들을 한 화면에 담음으로써 사물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공간감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결코 원근법을 모르거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여인의 옆모습과 앞모습을 한꺼번에 그린 피카소의 그림처럼 책거리의 화법은 입체파의 조형원리와도 흡사하다. 피카소보다 200년 혹은 300년을 앞서서 이토록 현대적인 그림을 그렸다니 우리 선조들의 천재성이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원색의 대비효과 및 색면의 평면성과 기하학 문양을 사용하는 등 현대적인 감성이 물씬 배어 있어 요즘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난색과 한색의 만남을 통해 공간을 구성한 것도 놀랍다. 원래 채도가 낮을수록 멀리 보이고 높을수록 가깝게 보이지만, 민화에서는 이런 방법을 버리고 차가운 색과 뜨거운 색이 함께 있으면 차가운 색이 뒤로 물러나고 뜨거운 색이 앞으로 나와 보이는 효과를 이용해 원근을 나타내고 답답하지 않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한국의 민화가 갖는 독창적인 원근법인 것이다.
너무 흔해서 버려지고 무시된 그림
현대미술의 화법을 수백 년 먼저 구사했을 정도로 앞선 그림인 데다 한때 사대부들의 사랑방에서 필수품이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끈 그림, 책거리. 당대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도 책거리를 그렸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지만, 정조가 어좌 뒤에 놓고 즐겼다는 책거리나 당시에 그토록 활발하게 그려졌던 책거리 중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책거리는 대부분 19세기 이후의 작품이니 말이다.
책거리를 포함한 민화의 경우 한두 계절 걸어놓았다가 그 위에 또 다른 그림을 붙이는 게 상례였고, 대대손손 물려줄 소중한 작품이라 여기지 않은 것이 그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원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다른 민화도 마찬가지다. 하긴 이름조차 없이 흔하디흔한 그림으로 즐기고 버려지던 그림에 ‘민화’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일본인인 야나기 무네요시였다. 책거리 또한 그가 1959년 <민예>라는 잡지에 ‘불가사의한 조선민화’라는 제목으로 철저히 무시된 원근법 속에서도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림이라 극찬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우리가 민화의 가치를 얼마나 낮게 보았는지 씁쓸할 뿐이다. 당시 우리에겐 민화를 그리고 즐길 만한 독창성과 감각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킬 줄 아는 혜안은 없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오래전에 전주 본가가 오래된 한옥이어서 어느 한 해에 대보수를 한 적이 있는데 안방 벽장문에 붙어 있던 민화를 버린 기억이 있다. 그림 위에 또 그림을 붙여서 스무 장가량이 두꺼운 책처럼 붙어 있던 그 그림들을 놀이 삼아 대충 떼어서 보고 버렸던 것이다. 그 시절은 민화라는 단어도 생소했고 나도 너무 어렸던 모양이다. 만약 한 장씩 떼어내 고이 간직했더라면! 그림의 가치를 몰라서 속절없이 버리고 만 나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심한 손길 속에서 수많은 민화가 사라져버렸을지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최웅철=문화평론가. (사)한국판화미술진흥회 총무이사, (사)한국화랑협회 국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웅갤러리, 세라믹요 대표로 전주시 온브랜드 운영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생활명품》 등이 있다.
첫댓글 역시 울 조상들의 능력 알아 줘야해요 우리가 몰라주니
누가 알아 주겠습니까?우리의 그림 울모두 열심히 공부합시다^^
옛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