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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와 표어
도시의 말씀들
언어를 하나의 낡은 도시로 비유했던 사람이 있었다. <작은 거리들과 광장들, 낡은 집과 새로운 집들, 그리고 여러 시기에 걸쳐 보수된 집들이 혼재된 도시, 그리고 이 도시는 곧바르게 정돈된 거리와 획일적인 집들을 지닌 수많은 새로운 거리로 둘러싸여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이름은 비트겐슈타인이고 그의 비유를 거꾸로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리의 도시들은 말로 뒤덮여 있다.
도시를 뒤덮고 있는 플래카드와 표어 - 그 말들, 아니 말씀들은 허공에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인쇄되고, 암송되고, 강요되며, 숭배된다. 길다란 천에 커다랗게 확대 인쇄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내걸린다. 내걸려 펄럭인다. 펄럭일 뿐만 아니라 깃이 되어 가슴에 달리고, 머리띠가 되어 묶이고, 인쇄되어 뿌려지고, 수없이 반복되고, 재강조된다. 말씀들은 하루살이떼처럼 불어나 가는 곳마다 앵앵거리며 우리 눈에 엉겨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어릴 때 본 석유 등잔에도 그 말씀들이 녹색 고딕체로 박혀 있었다. <재건 불조심!> 그 후 그 말씀 즉 구호들은 깃이 되어 가슴에 매달렸다. 저축, 반공 방첩, 불조심, 위생 강조 주간… 그리고 길이가 길어졌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릴 때까지…>라는 혁명 공약을 거쳐 더 길다란 국민교육헌장이 되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이에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외우지 못하면 외울 때까지 기합받고 시험 보았던 그 말씀들은 어디 있는가.
터무니없이 공허함에도 말씀들은 계속되었다. <올해는 일하는 해, 새벽종이 울렸네, 잘 살아보세, 시월유신 구국영단, 중단 없는 전진, 한국적 민주주의…> 그리고 말씀의 배후에 있던 그가 죽었다. 그 초라함과 추악함은 모든 말씀을 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말씀들은 이어졌다. <정의 사회 구현, 보통 사람의 시대, 신한국 창조와 제2 건국>까지…
이런 메이저 말씀 외에도 우리는 수많은 말씀들을 기억 속에 담고 있다. 빈 골목길 같은 기억 속을 천천히 걸어내려가 보면 어둠 속에 말씀들이 네온사인처럼 멀리서 빛나는 게 보인다. <상기하자 6.25, 해안 따라 오는 간첩 상륙할 틈 주지 말자, 때려잡자 김일성,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살펴보자,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따위의 반공방첩 구호, 산림 녹화 구호인 <산산산 나무나무나무>, 교통 질서 구호인 <도시는 선이다>, 방화 구호인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이 구호들을 적당히 맞추면 몇 편의 그럴 듯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호명에 응답하라
이 말씀들, 구호들은 대개 송신자인 권력이 수신자인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정보로서 구호는 야콥슨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따르면 송신자, 수신자, 그들 사이의 메시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공유된 약호, 접촉 또는 의사 소통의 물리적 매체, 그리고 메시지가 관계되어 있는 전후 맥락으로 구성된다.
그것들 중 메시지의 내용들을 이해하는 약호(code)들은 문화적 관습에 따른다. 우리를 지배해 온,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구호는 반공, 방첩, 절약, 저축, 애국애족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코드는 어렸을 때부터 줄기차게 받아온 교육들이다. 그 내용들을 붙잡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로 그것들은 우리의 내면에 깊이 육화되어 있다.
알튀세를 빌자면 우리는 그 구호들의 호명에 즉각 반응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것은 구호의 내용에 동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논리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무수히 마주치는 구호들의 호명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자동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 구호가 지시하는 이데올로기를 혐오하면서도 동참하게 된다. 바라보는 순간이 바로 동참의 순간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수없이 많은 구호, 표어들에 부대끼면서 그것들에 무심해진다.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도 <정권이 바뀌었구나> 정도로 심드렁해진다. 즉 구호들은 끝없이 마모되고 닳아 없어진다.
구호와 표어들이 쉽게 닳고 사라지는 것을 에코는 그것들이 시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야콥슨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한 가지 기능 모델을 빌려온 에코의 설명은 구호가 시적인 구조를 취하려는 시도는 하고 있지만 지시적 메시지로서의 성격 때문에 쉽게 닳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밝혀준다.
에코는 시적 메시지는 어떤 규정이나 관습적인 정식 속에 요약되기 쉽지 않은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안에 해석의 폭이 넓고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심미적인 통찰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구호와 표어들은 시적인 구조를 갖추기 위한 전략들을 익숙하게 구사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옛날의 시에 자주 쓰이던 자수율과 대구이고 어떤 보험회사가 내건 플래카드처럼 시로 보이는 내용을 담기도 한다.
하지만 구호와 표어들은 아무리 시적인 척 위장해도 지시적인 메시지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코는 구호들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장치들은 구호와 표어를 독창적 방식으로 반복하거나 위반하는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를 덧붙이거나, 아니면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아마도 국정원은 새로운 설득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가장 먼저 실천한 기관의 하나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국정원의 포스터들은 과거의 반공 방첩 포스터와 다르다. 시각적 이미지와 구호를 광고 형식으로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성이 높아졌고 수명이 다소 길어졌다.
물론 그처럼 구호와 표어들이 약간씩 모습을 바꿔 반복, 강화된다고 해서 시적인 구조를 획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그렇게 반복, 강화해도 이미 지나치게 과부하가 걸린 메시지이기 때문에 결국은 무시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표어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의 운명이기도 하다.
헤게모니를 위한 시나리오
길거리와 건물에 걸린 구호와 표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무엇보다 먼저 구호와 표어들을 제작하기 위한 지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 혹은 장관의 명령으로 시작된다. 그 명령은 어떤 경우에는 직접적이고 어느 때는 암시적이지만 명령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엔 명령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계획들이 작성된다.
가령 안보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고위층의 언급은 <안보 의식 제고를 위한 시행 계획>이라는 문서로 만들어진다. 그 문서 내에는 방송, 언론을 통한 홍보와 각급 기관, 학교를 통해 시행되어야 할 방법들이 포함된다. 그 가운데 표어, 포스터를 모집하고 선별해서 플래카드로 만들어 거는 것도 들어 있다. 하급 기관들은 상급 기관에서 내려보낸 공문에 따라 표어와 포스터를 모집하고, 고르고, 손 보고, 전시한다. 관공서, 관변 기관, 정부의 입김이 쉽게 미치는 기관들은 재빨리 그 말씀들을 플래카드로 만들어 내건다.
그리고 간선 도로를 차지하는 건물과 대기업들은 협조 공문을 받는다. 그 협조 공문은 협조라는 이름의 명령이다. 감히 그 명령을 거역할 자는 없다. 그 결과 거리 곳곳에 물질화된 말들이 내걸리게 된다. 이 물질화된 말들은 보통 말들과 다르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바탕 위에 고딕체의 거대한 글씨들은 위압적이고 내용은 지시적이며 명확하다. 그 말씀들은 물론 플래카드로 그치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글씨가 새겨진 어깨띠를 매고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고, 학생들은 깃을 달고 포스터와 표어는 음식점, 지하철, 버스 등에 붙여진다.
이 끝이 뻔한 스릴러 영화처럼 시시하고 지루한 과정들은 사실 지배 권력과 지배 집단이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어떤 사회 체제가 피지배 계급 다수를 종속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화적 합의를 획득하고 재획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합의의 획득을 그는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아온 수많은 구호들이 강보하는 반공, 방첩, 불조심, 건전 문화, 절약, 저축, 애국 애족의 이념들이 바로 그 헤게모니다. 그러나 그 헤게모니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또 얻는다 해도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저항은 피지배 집단이 갖는 실제 경험과 지배 집단이 제시하는 이데올로기가 늘 상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법을 잘 지키고 열심히 노력하면 개인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사회가 밝고 건전해진다는 이념은 우리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받아온 교육의 결과 거의 내면화된다. 하지만 사회적 경험이 쌓임에 따라 그 이념은 가짜라는 것이 밝혀진다.
법을 잘 지키는 것은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찾아오지 않으며 실제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법은 무력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권력과의 유착과 한탕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저항이 발생한다.
이 저항은 극복되어야 한다.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대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를 얻기 위해 권력자들은 가끔 구속되고, 엉터리 청문회가 열리며 재벌들은 벌금을 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그 과정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구속된 권력자들과 재력가들은 온갖 종류의 질병과 사면으로 풀려 나오고 새로운 구호와 표어들은 또 다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이다.
상식, 지긋지긋한 말씀들의 악몽
지배 권력과 계급이 저항과 불완전성을 특성으로 하는 헤게모니를 획득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상식의 구축이다. 상식의 구축은 지배 계급의 사상과 이념을 특정 계급의 편견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배 이데올로기는 손쉽게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그 활동도 은폐된다. 우리를 키워온 모든 교육이란 사실 바로 그 상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구호와 표어들은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바르트에 따르면 이러한 상식, 구호들은 불건강한 기호의 대표적인 예이다. 바르트는 건강한 기호란 자신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처럼 속이지 않는 기호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구호는 자신이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임을 고백해야 한다. 즉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속이지 않고 의미를 전달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위치를 알려야 한다. 하지만 상식으로서의 구호들은 결코 자신의 인위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플래카드에 거대한 글씨라는 인위적 발명품에 의해 제시되면서도 악착같이 자연적인 것으로 속인다. 뿐만 아니라 대개 세계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그것이 그러한 기호들의 권위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서 사회 현실을 자연화하는 것, 즉 자연 자체처럼 순수하고 불변의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가진 기능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끝없이 문화와 이념을 자연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자연적 기호는 그 무기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처럼 헤게모니와 상식을 구축하기 위한 구호와 표어들이 정권이 바뀌고 세계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불건강한 기호로서의 구호들이 사실상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상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인 자유, 공정, 평등 등의 말들이 늘 립 서비스로만 남아 있어서이다.
그 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지배 계급과 권력에 의해 이념과 지표로 제시되면서도 한 번도 스스로 지킨 적이 없다. 지킨 적이 없으므로 끝없이 이데올로기적 상식을 구축하고 그에 따르는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불건강한 기호인 구호들을 악몽처럼 재생산해 낸다. 그러니까 이 지긋지긋한 말씀들의 악몽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개혁과 지속적이고 격렬한 저항이 필요한 것이다.
이동 전화기와 배낭 장식
가방의 작은 혁명
오래된 관습에 따르자면 가방이란 등에 메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드는 것이었다. 등에 메는 가방은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등산, 소풍을 갈 때처럼 제한적이고 실용적인 용도로 쓰여 왔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가방에 대한 그 낡은 관념은 오래도록 가방의 세계를 지배했다.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등뼈가 휜다는 불확실한 기사가 가끔 신문 사회면을 채우던 시절에 비하면 등에 메는 배낭의 유행은 작은 혁명이다. 그 혁명의 진원지가 비록 우리 나라가 아니라 해도 벌써 10년 이상이 지나도록 도무지 퇴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완전히 일상화된 배낭이 이처럼 자리 잡은 것은 아마도 그 실용성 때문일 것이다. 실용성이 없었다면 배낭은 이미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극단에 이르도록 천천히 진행된다는 유행의 속성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 유행은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상표의 유행을 낳았고, 그 상표의 선호도 역시 물처럼 흘러 망각의 하수도로 사라진다.
규격화를 피하고 보니
모든 유행이 그렇듯이 유행이 절정에 이르면 사람들은 차별화를 요구한다. 그 차별화는 남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와 유행에 뒤지지 않겠다는 욕망이 뒤섞여 증폭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유행을 따르면서도 다르기를 바라는 이 이중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장식이다. 과거에도 그런 차별화는 있었다. 모자를 찢어 다시 기워 쓰고 다니며 불량한 척하던 학생들이 면도칼로 찢은 가방에 <고생 보따리> 따위의 글귀를 써서 좁은 손잡이 사이로 팔을 끼워넣어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투박한 차별화는 없다. 과거의 차별화가 피부에 새기는 문신과도 같은 것이라면 요즘의 차별화는 피부에 그리는 페인팅과 닮았다. 배낭을 장식하는 주종은 작은 인형들이다. 거기에 인형뿐 아니라 찌그러뜨린 콜라 캔, 화투, 마스코트 등의 장식물이 가세한다. 명백히 키치인 이 장식의 대장정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그리고 거기서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너도 나도 장식을 매달다보니 차별화가 아니라 동일화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유행이 바라는, 그리고 유행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은 가방뿐 아니라 이동 전화기, 자동차 등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아도르노라면 이러한 현상을 유사 개별화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유사 개별화는 음악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아도르노가 규격화를 감추기 위해 전체 구조와 상관없는 세부적인 곳을 변화시키는 대중 음악 산업의 책략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가방 장식과 같은 것에 정확히 해당되지는 않지만 가방의 장식들 역시 미리 소회된 것,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물론 이 유사 개별화는 산업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마치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공포를 피하듯이 개인들도 규격화를 피해 장식이라는 모래 속에 머리를 감추는 것이다.
예견된 브리콜라주
가방 장식은 동시에 브리콜라주이기도 하다. 딕 헵디지는 청년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이미 상업적으로 제공된 상품들을 자신들의 목적과 의미에 적합하도록 바꾸는 과정을 브리콜라주라고 불렀다. 물론 가방 장식은 상품이 재조명되어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반대의 의미를 갖는 식의 적극적인 브리콜라주는 아니다.
어쩌면 가방 장식과 같은 개별화는 이미 문화적 저항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는 장식품들을 시징화한 상업적 합병의 성공적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사 브리콜라주일 수도 있는 장식들은 가방뿐만 아니라 모든 유행 상품에서 일어난다. 이동 전화기, 자동차, 가죽 수첩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동 전화기에서의 유사 브리콜라주는 키치 장식과 상품의 결합이다. 그 키치 장식품들은 안테나, 장식용 구슬, 스티커 사진과 장식용 스티커, 페인팅 등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장식품들은 재빨리 상업화되어 길거리에서 팔린다. 이 장식용 액세서리는 이동 전화용으로 특화된 것도 있고, 아니면 스티커 사진처럼 용도가 확대된 것도 있다.
이동 전화기라는 상품은 원래 고가 품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동 전화기가 등장한 초기에는 아무나 갖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특수 신분의 상징처럼 보였다. 때문에 그 디자인도 기능적이라기보다는 형식적 측면이 강했다. 빛나지 않는 무거운 검은색에 길쭉한 직육면체의 형태는 권위적이고 고전적이기까지 했다. 일체의 장식을 거부하는 디자인과 그 희소성으로 인해 이동 전화기는 그것을 가졌다는 자체로 한 개인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그러므로 전화기를 장식할 필요도 없었다. 전화기 자체가 하나의 장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이동 전화기가 일반화되자 자체의 권위는 사라졌다. 디자인 역시 초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발달과 대중적 욕구에 맞춰 가벼움과 날렵한 형태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대기업에서 생산된 물건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이동 전화기의 디자인은 애초에 장식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동 전화기에 장식을 붙인다는 것은 그것이 상징적 저항일지 아닐지 판별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명백히 일종의 브리콜라주임에는 틀림없다.
경계인들의 정체성
배낭과 이동 전화기와 같은 물건에 장식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소유자의 신체로부터 분리된 소유물이라는 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신체에 직접 접촉되는 옷, 신발, 모자의 경우에는 그 소유가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음을 육체를 통해 직접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외모를 형성한다. 즉 어떤 점에서 육체와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낭, 두꺼운 가죽 수첩, 이동 전화기 등은 육체와 일체를 이루지는 않는다. 때문에 육체의 촉감을 통해 소유를 확인할 수 없으며 직접 육체를 장식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과의 구별과 차별화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동 전화기, 배낭의 장식은 소유의 확실성을 주장하고 특정한 개인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수많은 작은 인형, 구슬, 스티커, 축소된 수갑 등은 이 소유를 가시화하는 재현 매체인 셈이다.
또 이러한 장식들이 10, 20대들에게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이 이른바 경계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성년자, 혹은 나이로서는 성인이면서도 그들은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세대이다. 그러나 독립, 자유에 대한 욕구는 엄청나게 강하다. 그러한 독립에의 갈망과 유행에 따르려는 민감함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더욱더 차별화를 요구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에게 있어 남들과 확실히 다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건의 하나는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다. 많은 돈을 가지면 가질수록 개인의 독립성은 더욱더 높아지고 타인과의 차별성은 강화된다. 하지만 10대를 비롯한 경계인들에게 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정체성의 확인이 자본의 소유로 표현되기는 어렵다. 미리 상속을 받았다던가 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은 아직 자본의 거대한 움직임 속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편입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때문에 그들의 자아 정체성은 문화적 차별에 의해 가시화된다. 의상, 헤어 스타일, 특정한 스포츠, 오락, 통신, 게임, 대중 문화에의 마니아적 몰입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도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아리, 같은 취미를 가진 집단과의 교류를 통해 강화된다. 폭주족, 팬 클럽, 통신 모임, 동호회 따위의 그룹이 그 자아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인하는 일종의 또래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제도화되는 젊음
가방과 이동 전화기의 장식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성인 집단과의 차별화를 확인하고 동세대끼리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차별에의 시도가 결국 유사성이 되더라도 그것은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물론 다른 세대와의 차별화를 위해 의식적으로 고려되고 선택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유행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무의식적으로 따를 것을 암시하는 유행의 배후에는 일종의 제도화가 있다. 르페브르는 자본주의 사회는 젊음을 제도화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성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어른들과 유사한 일상성을 마련해줌으로써 그들을 소비 시장에 통합시킨다는 것이다.
즉 젊음이라는 본질을 만들어내고, 젊음은 상업화시킬 수 있는 속성과 정당성을 부여받고, 특권적으로 또 그렇다고 여겨지는 인구를 형성하며, 특정한 물품들의 생산과 소비를 정당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유행의 형식을 띠고 젊은이들에게 침투한다. 그뿐만 아니라 스무 살을 위해 만들었다는 이동 전화기처럼 기업들은 모든 상품들을 문화상품화시킴으로써 차별을 제도화시킨다. 그렇다면 차별화는 사실은 차별이 아니라 제도에 편입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제도는 모든 것을 낳고 모든 것을 끌꺽 삼켜버리는 부드럽고 유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일리언인 것이다.
신발 - 신데렐라의 검정 고무신
신화는 계속된다.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이름을 딴 나이키 사의 농구화 에어 조단 때문에 122센티미터의 서전트 점프와 150센티미터의 런닝 점프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에어 조단은 조단의 이름을 업고 무섭게 팔려나가 나이키 사를 세계 최고의 신발 제조 화사로 만들고, 조단 역시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때문에 에어 조단은 단순한 농구화가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과 같다. 헤르메스를 날게 했던 신발의 신통력이 수천 년을 건너서 마이클 조단에게 이어진 것이다.
조단은 에어 조단을 신고 여섯 번의 우승, 여섯 번의 최우수 선수가 되면서 NBA농구를 세계 각지에 실어날라 상품 가치를 높였다. 조단은 신인 헤르메스처럼 농구라는 이름의 스포츠를 보호하는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는 헤르메스가 태어나자마자 아폴로의 양을 훔쳤듯이 자유투 라인에서 날아가 꽂는 덩크슛과 눈부신 이중 점프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훔쳤다.
그때 사람들의 마음은 둥근 농구공 모양이었을 것이고, 에어 조단의 신발 밑창에 들어 있는 압축 공기는 헤르메스가 타고 다니던 남풍이었을 것이다. 헤르메스는 이미 오래 전에0 그 영향력을 잃었고 조단도 은퇴했다. 그러나 신발의 신화는 계속된다.
나이키라는 상표의 신발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초였다. 전두환 치하였던 당시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라는 선동적인 카피와 함께 상륙한 나이키 운동화는 신발의 혁명을 불러왔다. 당시 가격으로 만 원이 훨씬 넘었던 고가에도 불구하고 나이키 신발은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열병처럼 번져갔다.
나이키 운동화는 시인 김수영이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떨어지거든 <꼬메> 신으라고 엄숙하게 충고한 농구화와는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거기에 검정색, 감색, 흰색이 주종을 이루던 단조로운 운동화와 농구화에 비교할 수 없이 화사한 색채, 낯설고도 이국적인 디자인과 광고의 위력이 더해져 나이키 신발은 수많은 유사 제품을 만들어냈다.
나이키의 날카롭고 자극적인 갈고리에 낚인 학생들은 신발을 사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했고, 살 수 없으면 훔쳤다. 새로 산 신발을 학교 신발장에서 도난당하고, 으슥한 골목길에서 뺏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말처럼 자신의 부보다 욕망이 훨씬 빨리 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명백한 범죄 행위를 범죄라고 느끼지 않게 하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그 이후 우리가 신는 신발들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짚신과 나막신을 고무신과 구두가 대신한 이래 초유의 신발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고무신, 굿디자인의 원형
우리 신발 역사의 일차 혁명의 주역인 고무신은 지금은 추억 속으로 멀어졌지만 국사 교재에 기록될 만한 민족 산업의 하나였다.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은 민족 자본으로서의 신발 산업, 특히 평양의 정창 고무공업사의 공장장인 이병두의 이름을 특별히 기록한다. 그가 1907년 일본에서 처음 발명된 고무신을 우리의 전통 신발의 형태를 살려 개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 고무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5년이다. 그때의 고무신은 서양식 구두를 모방한 것이었다. 고무신의 디자인은 뒷굽이 약간 높고 신발의 앞뒤에 고무를 덧대 마치 구두처럼 보였다. 이러한 디자인은 저가품인 고무신을 고가품인 구두와 유사한 시각적 기호로 만듦으로써 상품의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이병두는 바로 이러한 디자인을 한국인의 기호에 맞도록 전환시켰다. 이기백은 그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평양의 고무 공업과 메리야스 공업의 공헌이 민족 자본의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일본 회사의 고무신이 감히 넘보지 못했다고 언급하다. 이는 좋은 디자인의 힘이 무엇인지를 이미 오래 전에 보여준 예가 될 것이다.
고무신의 디자인은 기능주의적 신발 디자인의 원형이다. 거기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으며 오로지 발에 신는다는 기능에 충실하다. 고무신은 짚신, 나막신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죽신의 디자인을 새로운 재료인 고무로 탁월하게 소화해 낸 것이다. 남자 고무신의 둥그런 곡선, 여자 고무신의 길고 섬세한 곡선은 둘 사이의 성차를 강조하면서 구매자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주었다. 짚신과 나막신의 시대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가죽 신발의 디자인을 빌리고, 질기고 상대적으로 값싸다는 특성이 고무신을 신발 혁명의 주역으로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고무라는 재료가 주는 제약, 땀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음에도 고무신은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신발을 지배한 우세종이었다. 고무신 사이의 차별화는 색깔, 장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검정 고무신이 노동용이었다면 흰색 고무신은 외출용이었고 전통적인 꽃신을 흉내낸 꽃고무신은 아이들과 젊은 여성용이었다.
흰색이 외출용이 된 것은 때를 타기 쉽다는 특성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했고 두루마기와 같은 의상과 통일성 있는 조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흰색 고무신이 외출용인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였으며 오랜만에 하는 장나들이에는 비눗물로 잘 닦아 흰색이 눈부시도록 생생한 고무신을 신었다.
여성용 고무신은 기본적으로 흰색이었다. 그것은 검정색이 주는 투박함보다 흰색이 주는 가볍고 날렵한 세련성을 여성들이 선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강조하는 디자인이었다. 즉 발이 작아 보이도록 하는 디자인에 가벼운 색깔이 보태져서 우세종이 된 것이다.
고무신은 재단된 고무들을 풀로 붙여서 만드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제조법의 약점은 고무신의 밑바닥이 닳기 전에 접착 부분이 떨어져나가 신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고무신의 옆에 찢어지면 꿰매어 신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접착 부분이 떨어져나가는 것은 고무신을 손보던 행상의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고무신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고무신의 수명에 혁신을 가져온 것은 통고무신의 등장이었다. 1960년대 말에 등장한 새로운 공법의 산물인 통고무신은 접착제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고무판을 프레스로 찍어내서 만드는 방법이다. 때문에 접착 부분이 없었고 수명이 몇 배로 늘어났다. 통고무신은 종래의 고무신에 비해 너무나 질겼기 때문에 아이들은 새 신발을 얻어 신기 위해 일부러 찢거나 바위에 문질러 닳게 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어른들에게 들켜 야단을 맞았지만 통고무신은 그만큼 질겼던 것이다.
이 무렵에 여성 고무신에도 디자인상의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뒤꿈치를 높여 하이힐과 같은 효과를 얻도록 시도한 디자인이다. 그 디자인은 여성들이 한복을 입을 경우 하이힐을 신을 수 없으므로 뒤꿈치를 높여 하이힐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어정쩡한 디자인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백구두와 신데렐라
서양식 신발로서의 구두는 개화, 혹은 문명, 모던과 짝지어진다. 구두는 그 재료인 가죽을 가죽이 아닌 것처럼 위장한다. 짚신, 고무신, 나막신, 이집트 때부터 일반화된 가죽 샌들이 재료를 그대로 드러내는 데 비해 구두는 그것을 감춘다. 탄닌산으로 무두질된 뒤, 염색과 재단을 거치면서 짐승의 껍질이라는 재료는 인공적인 재료인 것처럼 변신한다. 그 변신은 구두약과 솔질로 반짝거리도록 닦여져 완성된다.
코끝이 빛나는 구두는 그 자체로 독립한다. 독립해서 신분과 계급과 자아를 표현한다. 어떤 종류의 구두를 신느냐와 어떤 상태인가는 하나의 환유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신는 사람이 극히 드물지만 백구두는 검정, 갈색 구두와는 달리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 흰색은 흰고무신이나 흰색 하이힐과는 다르다. 백구두는 인공적이고 작위적이다. 흰색은 가죽의 본래 색깔이 아니며 그 흰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요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백구두를 신은 사람은 제비족, 딴따라, 건달, 놈팡이, 한량 등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백구두를 신는다는 사실은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다.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간에 먼지와 때가 타기 쉬운 장소에 갈 필요가 없으며, 구두의 흰색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 과시는 구두코가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도록 유지하는 것과 같다. <서울 사람은 밥은 굶어도 구두는 닦는다>는 오래된 농담은 대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겉모습을 중시하는가를 증거한다. 외부에 대한 터무니없는 집착은 군 의장대의 구두가 한 극단을 이룬다. 의장대 일과의 상당 부분은 옷을 다리고 주름잡고 구두광을 내는 데 바쳐진다. 그것은 병사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짝이는, 파리가 낙상할 구두란 의장대, 볼거리와 구경거리를 만드는 부대로서의 존재 근거이기 때문이다.
신발, 구두가 한 개인의 자아를 표현하는 극단을 우리는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내였던 이멜다 마르코스에게서 본다. 마르코스가 몰락했을 때 최대의 화제는 이멜다의 3,000켤레가 넘는 구두였다. 지금은 구두 박물관에 소장된 이멜다의 구두는 금으로 장식된 것, 배터리가 장치되어 있어 스위치를 켜면 저 혼자 춤을 추며 불이 켜지는 신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다. 거의 정신분석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대리 자아이자 분신, 알터 에고이다. 그것은 몰락 이후의 이멜다가 숨겨둔 재산을 이용해서 거의 몰수당한 구두와 맞먹는 수준의 구두 컬렉션을 다시 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이멜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신데렐라 콤플렉스일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미스 필리핀과 퍼스트 레이디, 화려한 몰락과 뻔뻔한 재기에 이르는 그녀의 삶은 현실 속의 신데렐라의 일생이다. 그 신데렐라가 동화 속의 신데렐라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증거가 되는 신발에 평생을 바쳐 집착한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이힐, 우리 시대의 전족
신발의 전설과 신화는 의상과 마찬가지로 신분과 계급을 재현하고 공간의 이동과 짝지어진다. 의상과 모자에 관련된 신화들이 도깨비 감투처럼 사람들의 눈을 가려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는 데 반해, 신발을 신분을 드러내고, 정체성을 밝히며, 공간을 정복한다. 헤르메스의 날게 달린 신발이 공간을 정복하는 대표적인 경우라면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징표는 신데렐라의 구두나 콩쥐 팥쥐에서 볼 수 있다. 또 짝을 이루어야만 완벽해지는 신발의 특성으로 인해 신발은 성적인 결합을 위해 쩍을 찾는 상징이 된다.
성적인 것을 완벽하게 재현한 신발이 하이힐이다. 하이힐은 우리 시대의 전족이다. 전족은 발의 성장을 막는다. 성장을 막기 위해 발을 천으로 동여매는 것이 성적 쾌감과 관계가 있다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장치, 혹은 양자 모두라는 설이 있다. 여하튼 중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발을 성적 상징화해 왔다. 그리고 그 배후에 강력한 남성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은 하이힐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전족이 중국이라는 특정 지역, 특별한 역사적 조건에서 당대의 가부장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현한 것이라는 것뿐이다.
물론 외형상의 차이는 있으며 하이힐은 무식하게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육체적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다 자란 발을 길쭉하고 폭 좁은 틀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존 피스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하이힐은 남성으로부터 여성에게 외부적으로 강요되기 때문에 신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결과 나타난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하나가 된다. 피스크는 여성들은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남자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고 여기면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가르쳐 준 엉덩이, 넓적다리, 유방 등과 같은 신체 부위를 스스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이데올로기의 내면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그 배후를 의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여성이 이처럼 남성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하나의 매력적인 대상이 되는 데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동의를 하든 말든 결국 스스로 남성의 권력에 지배되는 대상이 된다. 하이힐을 신음으로써 여성들은 절뚝거리며 불안하게 걷고, 스스로 신체적인 활동과 힘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하이힐을 신는다는 것은 여성이 피지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되며, 약하고 수동적인 여성다움을 규정짓는 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의미를 재창출하여 보급하는 데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 하이힐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하이힐은 높은 뒷굽 때문에 키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때문에 하이힐은 미에 대한 기준이 서구적인 것으로 바뀌어 큰 키와 긴 다리에 대한 선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단점을 보완하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하이힐은 성인만이 신는 신발이다. 이 성인용 신발의 높은 굽에 대한 10대들의 선망을 신발 업자들이 놓칠 리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평평한 고무창에 굽이 높은 운동화류와 이른바 키가 커 보이는 신발이다. 그 중 굽이 높은 운동화류는 평평한 바닥으로 인해 평발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서 발의 성장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그 신발은 겉보기에는 하이힐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거의 유니 섹스 모드에 가까운 투박함과 부자연스러운 신발 바닥의 높이는 하이힐이 가진 날렵함, 날카로움, 섹시함과 대비된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그것은 하이힐의 높이를 운동화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며, 그 높이는 미성년자들이 어른과 같은 높이의 시선의 권력을 얻는 데 일조한다.
신발, 인간다움의 상징
우리의 관습에서 발은 손과는 달리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장갑은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신발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신발을 신는 것은 발을 감싸고 보호해야 하는 인체의 구조적인 필요에서뿐만 아니라 자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발은 공기 중에 놓이는 손과는 달리 끝없이 대지와 접촉하며 중력을 받는 지점이다. 게다가 발은 눕기 전에는 거의 쉬는 시간이 없다. 신발은 발과 대지, 인체와 지구 중력 사이의 접점이다. 그 접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이동한다. 때문에 신발은 동물로서의 인간, 산양과 말처럼 굳은 젤라틴질의 발굽을 갖지 못한 인간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버팀대이다.
그러므로 신발은 인간다움에 대한 증거이자 인간 자체이다. 간단하게 인간이란 신발을 신는 동물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발로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생애 최초의 신발을 신은 것은 걷기 시작한 다음이다. 걷기 이전의 신발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으며, 걷기 이전의 인간, 엎드려 기어서 이동하는 인간은 신발을 신을 자격이 없다. 따라서 신발은 인간이라는 종의 집단적인 무의식의 가장 아래, 그 중력을 받는 지점에 있다.
옷을 잃어버린 것보다 신발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황당해한다. 왜냐하면 맨발, 혹은 양말 차림으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박탈당한 비참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옷을 찢어 입는 것, 옷을 벗고 달리는 것은 제도와 관습에 대한 반항의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맨발로 걷는 것은 단지 수치일 뿐이다. 궁금하거든 맨발이나 양말 차림으로 시내를 백 미터만 걸어보면 될 것이다.
공기처럼 가볍게
모든 신발 회사들은 자기네가 제조한 신발이 자연과 가장 가깝다고 선전한다. 즉 신발의 이상은 신지 않은 것처럼, 맨발처럼 느껴지면서 동시에 편안한 것이 목표이다. 마라토너나 육상 선수의 신발에 거액이 투자되고 그것이 얼마나 가볍고 편안한가가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신발의 이상에 접근했다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상품이면서 자연 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상품을 신화화하는 최상의 수단이다. 밑창에 공기가 들어있는 신발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공기처럼 가볍게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선전의 배후에는 바로 헤르메스의 신발의 신화가 무지개처럼 걸려 있는 것이다.
돈 - 권력의 기호에 대한 미친 짝사랑
돈이라는 이름의 진리
사람들은 돈을 사랑한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유산을 빨리 받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려고 제 발목을 자르고, 유흥비를 조달하려 자식들을 팔아넘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방적이고 미친 듯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돈은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돈은 오직 돈을 사랑할 뿐이다. 채만식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그의 소설 [태평천하]에서 등장 인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아무튼 그놈 돈이라는 물건이 저희끼리 목족(睦族)은 무섭게 잘하는 놈인 모양입디다. 그러길래 자꾸만 있는 데루만 모이지요?
그렇다. 채만식의 표현대로 일가친척이 지나치게 화목한 돈은 자기들끼리 모여 뭉치가 되어 라면박스와 골프 가방을 거쳐서 빌딩과 국회의원과 도지사와 대통령이 된다. 그러므로 돈 앞에 인간이란 유령에 불과하며 자본주의란 간단히 말해 돈만이 살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세계이다.
사람들은 권력을 사랑한다. 권력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선거철이 되면 선량 후보들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유권자들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토록 권력을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권력이 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권력은 돈을 생산해 내고, 돈은 권력을 만든다. 권력의 아버지요 어머니인 돈의 권세는 진실을 침묵시키고, 모든 죄를 사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1980년대의 탈옥범 지강헌의 경구는 열 명의 공자를 침묵시킬 수 있는 진리다. 진리란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 시대의 유일신인 돈의 표면에 모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진리의 현신인 돈, 그럼에도 우리는 그 진리를 보지 못한다. 돈의 액수에 눈이 아득하게 멀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찾아낸 다른 진리와 마찬가지로 돈이 진리라는 증거는 우선 그 추상성에서 발견된다. 물물교환의 단계를 거쳐 조개껍질, 소금, 금화, 은화와 같은 금속 화폐, 지폐에서 수표, 어음, 전자카드 등의 신용화폐에 이르기까지 돈은 줄기차게 추상화 과정을 거쳐왔다. 바로 이 추상성이 다른 종류의 진리들과 돈이 어깨를 같이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돈이 발명된 배경에도 추상적인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지상의 서로 다른 사물과 노동 행위들을 무차별적으로 재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척도를 만들겠다는 사고의 결과가 돈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면 이른바 <일반적 등가물>로서의 추상성이다.
구체적인 물질에서 완벽한 추상으로의 변화와 함께 돈의 위력은 점점 증대되어 간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급류를 이루어 한 국가를 경제 위기로 몰아넣고 보통 사람들의 삶의 기반을 파괴해 버린다. 돈의 무한한 권세는 가진 자들에게는 마술과 기적을 낳게 하고, 없는 자들에게는 그 존재 자체를 뒤흔들리게 하고 결국에는 뭉개버린다.
[악마의 사전]의 저자 비어스는 돈이 <교양의 증표이며 상류 사회로의 입장권이며 그것이 수중을 떠날 때 이외에는 아무리 지니고 있어도 별볼일없는 그림의 떡>이라고 비꼰다. 그러나 그도 돈이란 <가지고 있어서 그다지 해롭지 않고 운반하기 쉬운 재산>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정교하게 인쇄된 권력의 얼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지만 끝없이 더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인 돈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각 언어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돈을 하나의 시각 언어로 보기보다는 그 액수, 용도, 가치 등에만 관심을 가진다. 때문에 돈은 늘 욕망, 분노, 눈물, 한숨, 부도, 비리, 오욕 등의 단어와 결합된다. 아마도 그러한 결합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잠시 돈을 욕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 언어로 살펴보자.
세계의 모든 돈이 그렇듯이 우리 나라의 최고액권인 대표 지폐 만원짜리도 권위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있다. 그 표정은 돈을 발행하고 유통시키는 권력의 언어이자 표정이다. 만원짜리에는 수없이 많은 권위와 권력의 신호들이 숨어 있다. 그것은 만원짜리 지폐에 세종대왕의 얼굴이나 물시계, 경회루, 용 따위의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 그려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도상들이 왕권, 왕궁 등을 상징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재료, 묘사 방식, 무늬, 색채 역시 그 자체가 권력의 기호이다. 우선 종이부터 특별하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면섬유로 만든 특수한 종이 위에 짙은 녹색 계열의 색으로 찍힌 만 원짜리는 글자와 숫자를 제외하고는 극하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판을 새겨서 찍어 낸 이 미세한 선들은 앞서 말한 도상들과 그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정교한 무늬들을 이룬다.
이 정교함은 두말할 필요 없이 돈을 복제해서는 안 된다는 암시이다. 그것은 암시일 뿐 아니라 복제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장치이며 그 장치는 궁극적으로 발권력으로 대표되는 권력에 대항한 도전 금지의 신호이다. 거기에 보태어 컬러 복사기 따위로 복제할 수 없는 은선과 세종대왕의 얼굴이 또 하나 숨어 있다. 이와 같은 권위는 여러 번 강조된다. ‘총재의 인’이라고 찍힌 붉은 도장, 모두 다른 글씨체로 되어 있는 액수, 종이의 재질감, 인쇄 잉크의 두께에서 오는 촉감 등이 그것이다. 위조와 복제를 금지한다는 것은 곧 권력에 대한 도전의 금지이다. 그 권력은 돈이라는 상품을 디자인하고 발행해서 유통시킬 수 있는 권력이다. 그러니까 돈은 곧 권력의 얼굴인 것이다. 권력이 정당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돈은 개혁되거나 그 디자인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이 붕괴되면 그 순간 돈은 표면에 새겨진 그 정교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휴지 조각이 된다. 돈은 결코 경제만의 논리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 이미지, 이데올로기
돈에 새겨진 얼굴들 역시 한 국가가 가진 이데올로기의 단명을 드러내 보인다. 기원전 8세기경 세계 최초로 균일한 무게와 모양을 한 중국의 철제 금속화폐인 도전과 포전, 그리고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화폐에는 사람의 얼굴을 새기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중국과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국가들은 돈에 얼굴을 새기는 관습이 없었다. 지배 계급들이 돈을 입에 올리고 세는 것 자체를 피했을 만큼 돈을 천하게 여기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관습은 거짓에 가득 찬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는 돈에 얼굴을 새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레지스 드브레에 따르면 서구인에게 있어 한 개인이 이미지화되는 것은 최상, 최고의 사건이 된다. 왜냐하면 이미지화된다는 것은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으로부터 면역되고 보호받는 자아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진정한 생명은 허구적 이미지 속에 있는 것이지 현실의 신체 속에 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서구에서 개인의 초상은 시각적 영예이며 심각한 권력의 게임이었다. 로마 시대의 초상 조각도 초기에는 저명 인사, 귀족들에게만 허용되다 제1공화정 말기나 되어야 일반 시민들과 여성들에게 허용된다.
로마 사대에 돈에 새겨진 얼굴들은 오늘날도 그렇듯이 왕과 같은 권력자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과시하고 선전하는 수단이었다. 금화나 은화가 가진 가치와 그 위에 돋을새김으로 찍힌 권력자의 얼굴의 결합은 그 권력이 곧 발권력임을 말해준다.
돈에 찍힌 얼굴이 권력자가 아닌 것은 예외적인 경우뿐이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 지방인 갈리아를 정복한 뒤 그 기념 주화를 만들 때 패배한 갈리아 인들을 상징하는 수염과, 머리가 길어 야만적으로 보이는 남자와 역시 머리가 긴 여자를 갈리아 정복의 상징으로 새겨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인 칼푸르니아의 얼굴을 새긴 주화도 만들어 유통시켰다. 국립 조폐소를 신설하고 보통 화폐에 생존 인물인 자신의 옆얼굴을 새긴 것도 카이사르가 시초였다.
우리 나라 돈에 생존 인물의 얼굴이 찍힌 것은 1950년 7월22일 처음 발행된 천원권에 새겨진 이승만의 얼굴이 처음이었다. 그 지폐가 빅정희 정권에 의해 1962년 개혁된 다음, 1975년에 지금의 천원권에 새겨진 퇴계 이황의 얼굴이 등장한다.
퇴계 이황의 초상은 이른바 상상해서 그린 추사(追寫)이다. 이황은 살아 생전 초상화 그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초상은 남아 있지 않다. 세종대왕의 초상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세종은 왕이었으므로 당시의 국립 이미지 제작소였던 도화서의 화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초상이 그려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버렸다. 희한하게도 우리의 돈에 새겨진 인물들은 이승만을 포함해서 모두 다 이씨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이씨 왕조의 지배하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지폐와 동전에 찍힌 얼굴들은 그 얼굴들을 찍기로 결정한 권력의 의식과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모습이 찍힌 프랑스의 오십프랑짜리가 프랑스를, 워싱턴이 미국을 대변한다면 우리 돈에 새겨진 저명한, 그러나 권위적인 인물들과 표정은 우리의 심층적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다. 화가도, 문인도, 실학자도 아닌 장군, 왕, 유학자 등으로 일관된 우리 돈 속의 인물들은 권력이 무엇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가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리고 보통 때 우리는 그런 것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오로지 그 양, 부피, 액수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전자화폐의 배후
기든스가 상징적 징표로 부르는 돈은 그가 말하듯 신용 수단으로서 시간을 괄호치고, 표준화된 가지가 물리적으로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수많은 개인들 사이의 거래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공간을 괄호쳐 압축시킨다. 쉽게 말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유통된다는 뜻에서 시공을 압축시켜 한 장에 담아놓은 진리의 상징, 이러한 돈의 추상성의 극단이 전자화폐이다. 전자화폐는 완전한 추상, 0과1이라는 디지털 숫자로 존재한다. 아니 그것은 존재라기보다는 기호 자체, 추상 그 자체이다. 실체는 없고 기호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돈의 궁극적인 형식이며 진리의 완결품이다.
전자화폐의 등장이야말로 돈의 혁명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오늘의 돈과 같은 부피와 무게 없이 집적회로 칩이 내장된 카드에 화폐적 가치를 저장했다가 물품이나 서비스 구매시 사용할 수 있는 지급 결제 수단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자화폐는 신용 카드, 직불카드, 현금카드로도 사용이 가능하며 마그네틱 카드를 쓰지 않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적다고들 한다. 동전도 지폐도 필요없으므로 제조 비용과 유통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세수, 조세 관리 효율성 증대, 가격 세분화의 가능 등등의 이점이 끝없이 나열되는 전자화폐는 일부 국가에서 시험적으로 사용 중이며 우리 나라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전자화폐는 현금을 전자신호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즉, 전자화폐의 배후에는 돈더미가 엄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더미를 이루는 한 장 한 장의 돈마다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엄숙하게 찍혀 있다. 지금 당장 돈을 꺼내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그 이데올로기가 확인될 것이다. 그리고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 돈을 위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현금을 맹목적으로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사랑이 전혀 구제받을 가망이 전혀 없는 피투성이 짝사랑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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