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브레히트는 현대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푼틸라 씨와 그의 하인
마티, 갈릴레이의 생애, 코카서스의 백묵원 ]
등등의 희곡은 지금도 공연되는 명작품이다.
15세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평생 1,200여
편을 발표하였다. 나치 독일 정권을 떠나 오랜
세월을 망명생활로 일관했으며, 분단 독일
시대의 동독 베를린에서 마지막을 생활하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1944)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시인은 전사, 병사, 자살 등으로 친구들과
이별한 경험을 통해, 아픈 추억을 비롯한
주검들을 떠올리며 이 시를 쓰게 되었다.
사실 강한 자가 약한 자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악착같이 생활하는 악바리
근성의 사람들이 육체적 허약자와 심리적
심약자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더 많다고
주장되고 있으며, 사실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암울한 시대의 한 가운데를
거치면서 오히려 반문한다. 강한 자로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그렇게
남았다는 자기 정당성 내지는 자기 변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사회생활 중이나
회사 등의 조직에서 일찍 자리를 떠나게
될 때 종종 사용하기 쉬운 말이 있다.
곧은 나무가 먼저 잘리고 강직한 인물이
먼저 떠난다고... 그런 면에서 강한 자는
오히려 도태되기 쉬울 수 있다.
강한 자는 다른 강한 힘과 겨루고 맞서야 되기 때문에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들 가능성도 넉넉히 많다.
오히려 약자는 약한 부분 때문에 스스로 내성(耐性)을 키우고
자기 보호본능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역설이 작용한다.
결국 이 시를 보면서 슬픔 당함이 강하지
못해서 왔다는 자학과 자책으로 연결되지
않아야 된다는 소박한 마음을 갖게 된다.
바로 이처럼 작은 줄 하나가 서로를
떨어지지 않게 꽁꽁 연결하고 있다.
강한 자와 약한 자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